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922)
111. 합숙 (11)
은광고 2학년 0반이 대관 중인 영화관 안.
황호가 직접 대관을 진행한 이 상영관은 VIP 전용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좌석 수가 많지 않고, 일반적인 영화관 의자와 달리 큼직한 리클라이너, 2인용 소파와 침대 등이 배치되어 있어 이용객은 편한 자세로 영화로 볼 수 있었다.
게다가 황호는 상영이 길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간단한 조리가 가능한 푸드 카트와 이동식 냉장고도 구비해 두었다.
그 덕에 맹효돈이 호평한 버터 갈릭 맛 팝콘과 고르곤졸라 치즈볼을 다들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2학년 0반 학생들의 관심은 음식이 아니라 화면 속의 반 친구에게 쏠려 있었다.
“부반장! 하프로 저 새끼 뚝배기를 깨라!”
“상훈이가 고개를 돌려서 의신이가 안 보여요!”
“음, 우측 상단에 쿼터 뷰 화면이 떠 있긴 한데, 눈에 잘 안 들어오네.”
“저 부분만 확대해서 홀로그램을 추가로 띄우도록 하겠다.”
황호가 상영관의 담당자에게 말을 전하자 직원이 센스 있게 송출 중인 방송 화면 중 두 부분을 확대하여 영화관 스크린 좌우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하나는 인게임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는 쿼터 뷰 화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재 게임 중인 유상훈의 방 안이었다.
작게 송출되던 두 화면이 크게 확대되어 분할되자 반 아이들이 잘 보인다며 기뻐했다.
“와, 영화관에서 보는 거라 그런지 의신이가 영화에 나오는 거 같아요.”
“의신이 엄청 침착해 보인다.”
“부반장의 얼굴이 안 나와서 그런지 수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게.”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반 아이들은 조의신을 바로 알아봤다.
송출 화면에 조의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은 게 아쉬운 건지, 수상하네 안 하네 하며 의견을 나누며 응원을 계속했다.
그 와중에도 방패병의 파티는 계속 리트라이를 거듭하며 해일을 부르는 타락 정령에 도전했다.
“후원 계속 들어온다. 만 원 이하는 후원 안 되는데도 끊이질 않네. 다들 우리의 파트너를 주목하고 있나 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도네이션 메시지에 무명의 초신성, 음유시인을 언급하는 내용이 많은 걸 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지.”
구슬비와 옹길동의 말대로 후원 인사가 많았고, 조의신을 언급하는 내용이 많았다.
유상훈은 전멸하여 재도전하기 전마다 시간을 잠깐 들여 후원 감사 인사를 했는데, 강제로 휴식이 길어질 만큼 후원자가 넘쳐났다.
대부분 평범하게 응원하는 내용이었지만, 방패병을 도발하는 메시지도 있었고 의미와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특정 후원자의 이름과 내용을 보던 황호가 혀를 찼다.
―(알림) 유일한 제자 님께서 55,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방송 잘 보고 있어요. 트라이가 길어지면 기분 전환으로 다른 아바타도 써 보는 건 어떨까요? 우편 열어 주시면 용 비늘 아바타 세트 보낼게요.
황호가 마음에 안 드는 메시지 중 하나는 용족이 보낸 것이었다.
부담을 주지 않도록 고심한 듯한 후원 금액이나 닉네임을 보았을 때, 용족의 후예인 게 뻔히 보였다.
앞자리가 55인 건 5월 5일 어린이날에 제자가 된 걸 암시하기 위함일 거다.
―(알림) 은혜 갚을 토끼 님께서 82,82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용 같은 소리 하네! jo2god111한테 토끼 귀 머리띠가 잘 어울릴 것 같으면 개추! 일단 나부터!
의심할 필요도 없이 저 하찮은 메시지는 옥토연이 보낸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의미 없는 어그로성 후원이라고 판단하고 무시했지만, 이를 두고 보지 않은 자가 있었다.
―(알림) 우주최강 님께서 11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토끼 귀 비추. 애들 노는 거 방해하지 말자.
저 유치한 수식어를 쓰는 건 황호가 알기론 원족의 수장, 제천대성뿐이었다.
제천대성은 무지기 건으로 도시후를 주목하고 있으므로 방송을 보고 있을 법했다.
하지만 제천대성도 조의신에게 툭하면 은인 소리를 해 대며 비정기 오찬회나 원족의 영역에 초대하려는 낌새가 있었기에 황호는 기분이 불편해졌다.
―(알림) 싫은데요? 님께서 222,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게임 속 아바타보다는 현실에서 입을 옷을 후원하고 싶은데요. 스트리머 분이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셨으면 하네요. 물론 출연자 전원이 의상을 입어 줘야 해요.
저 아니꼬운 말투는 서돌임이 틀림없었다.
서돌이 방송을 보고 흥분하여 존댓말로 메시지를 적었을 걸 생각하니 불쾌함이 치솟았다.
조의신에게 개인적으로 모델을 권해도 응하지 않자 단체로 섭외할 생각인 듯했다.
황호는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놀고들 있군. 저런 후원을 할 정도로 한가하고 일이 없는 건가.”
이 말은 부메랑이 되어 황호에게 돌아왔다.
“네? 그건 지호도 마찬가지잖아요.”
“쟤는 왜 자학을 해.”
“…….”
사월세음이 지적하자 독고미로가 맞장구치고 한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호는 졸지에 한가하고 할 일 없는 진족이 되었으나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황호는 반박하는 대신 속으로 후회했다.
‘적은 금액으로 나눠서 후원해야 했거늘. 첫 번째로 후원해야겠다는 생각에 성급히 행동했군.’
황호는 방송의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큰돈을 쾌척했으나 돌아온 건 차단과 환불이었다.
그가 당한 꼴을 본 후속 주자들은 전략을 짜서 다소 적은 금액을 후원하며 전략적으로 방송을 즐기고 있었는데, 황호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눈에 띄는 진족과 후예 외에도 평소 조의신에게 소매 넣기를 하고 싶어 했던 이들이 마치 한을 풀듯이 후원을 해 대고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중 일부가 조의신의 몫이 될 게 아니었다면, 당장 허튼소리를 하는 진족더러 꺼지라고 연락했을 거다.
황호의 기분을 뒤로하고 후원 행렬이 이어졌다.
“지금 누워 있는 거 시후 맞지? 왜 계속 꿈틀거리지?”
“불편한 자세라 저런 건 줄 알았습니다만, 잘 보니 몸으로 숫자 모양을 만드는 것 같군요.”
권레나의 질문에 도시후를 관찰하던 목우람이 추측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 없이 화면을 보던 아이들이 ‘아!’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도시후는 누워서 후원 금액 앞자리에 맞춰 몸으로 숫자를 만들며 도네이션 리액션을 하는 중이었다.
바닥에서 숫자 모양으로 꿈틀거리는 도시후의 몸짓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점마 아까부터 뭘 하나 했네.]
[플레이어 많이 버는 거 아니었음? 많이 어렵냐? 왜 이렇게 짠하냐.]
[리액션 알바 중인가…… 열심히 산다ㅋㅋㅋㅋ]
[해탁이 몇 시부터 트라이했어요? 오늘 방패병 첫방이에요?]
[흑마도사야…….]
[스크롤 내리면 방송 정보 다 나오는데 계속 똑같은 질문하는 놈 있네.]
[방장아 끝나고 쟤한테 뽀찌 잘 챙겨 줘라.]
[아바타 다른 것도 착용해 줘 ㅠㅠㅠㅠㅠㅠ]
도시후는 한순간에 열심히 사는 불쌍한 놈이 됐는데, 그는 TC 그룹의 자제였다.
조의신 앞으로 된 용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저 넷 중에서 가장 재산이 많았다.
후원과 채팅창에서도 각종 오해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가운데, 방패병 파티는 마침내 ‘물 제물의 침식’ 패턴 파훼의 실마리를 잡는 데에 성공했다.
―침식 시작까지 30초 남았어.
조의신의 침착한 목소리가 영화관의 음향 시설을 통해 울려 퍼졌다.
조의신은 고작 세 번째 트라이에서 파훼법을 눈치채고 다른 두 명이 추리할 수 있도록 힌트를 줬지만, 정령의 위협적인 공격 패턴에 정신을 빼앗긴 장남욱이 좀처럼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했다.
도시후는 그런 장남욱을 놀려 먹고, 본인도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시도를 해 보며 즐겜을 했으며 유상훈은 행복하게 뉴비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장남욱이 패턴 파훼를 위해 정령이 소환한 토템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까부터 창술사는 토템과 상호 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소. 혹시 저 타락한 정령이 사술(邪術)을 사용한 게 아닌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사술……? 아, 걸려 있는 디버프가 없어. 직전에 의신이가 정화의 선율을 연주했거든.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그냥 저놈이 실수한 거 같은데.”
진정묵은 정령의 디버프를 의심했으나 민그린이 말한 대로 장남욱의 상태창은 매우 깨끗한 상태였다.
반 아이들 대부분은 지적은 안 하고 있지만, 송대석 말이 맞다고 추측했다.
채팅창에선 창술사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내용으로 넘쳐났다.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못 깨고 있다고?]
[창술사 님, 화면 설정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님? 잘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창술이는 화면이 문제가 아님. 다 문제임. 음유시인이랑 방패병이 떠먹이는 오더 주는데도 못 따라감ㅋㅋㅋ]
[수준 너무 차이 나는데 그냥 창술사 쳐내고 새 파티원 구해라. 너무 답답하네.]
[파티원 까면 영구 차단행임.]
[매니저님, 또 한 놈 갑니다.]
장남욱을 공격하는 댓글의 수위가 점점 올라가자 이를 애써 무시하려던 아이들도 불만을 토로했다.
“아직 시작한 지 30분도 안 지났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냐.”
“저런 말 하는 사람들은 다 게임 잘하는 사람들이에요?”
“아니겠지. 그림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린이 작품 보고 뭐라고 할 때가 많잖아. 여기에도 그런 놈들이 넘쳐날걸.”
매니저 남궁규연이 경고 없이 차단을 박고 채팅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매니저에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라는 문구가 몇 차례 떠오르자 매니저가 공지를 어긴 시청자를 썰고 있다는 걸 깨닫고 악질 시청자가 잠잠해졌다.
정작 그들이 노린 장남욱은 채팅창을 볼 여유도 없이 게임에 집중하는 중이라 그 내용을 보지 못했다.
―토템이랑 상호 작용이 안 돼! 어떡하지?
―대쉬 키 누르면서 이동하고 있는 중인지 확인해 봐.
―아……!
조의신의 말에 장남욱이 탄성을 뱉었다.
급한 마음에 대쉬 키를 누르며 이동하고, 행동하느라 실수가 나온 듯했다.
조의신의 조언을 받아들여 상호 작용에 성공한 장남욱이 토템을 들어 올렸다.
도시후가 바닥에 핑을 찍어 장남욱을 유도했다.
―여기야, 빨리!
―미안해, 금방 갈게!
장남욱이 토템을 들고 허둥지둥 이동해 기둥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파티원 전원, 물 제물의 침식이 일어나기 직전에 제물을 침식시키는 기둥 안에 토템을 던져 넣었다.
기둥으로 빨려 들어간 토템에서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오고, 급박한 분위기의 BGM이 밝게 바뀌었다.
“발판의 붕괴가 멈췄어요!”
“오, 저 새끼 바닥으로 내려온다!”
사방팔방으로 튀던 물방울이 빛을 잃고 바닥으로 가라앉고, 의식을 방해받은 정령이 땅으로 떨어졌다.
장남욱과 도시후는 멈춰 서서 그 장면을 보고 환호했지만, 유상훈과 조의신은 바로 공격을 가하기 위해 떨어진 정령을 향해 뛰어갔다.
정령을 향해 달리는 방패병과 음유시인의 모습이 마치 게임사에서 의도적으로 연출한 장면처럼 보일 만큼 역동적이었다.
정령이 추락하는 모습과 지면의 변화, BGM의 연출과 동시에 방패병의 돌진이 이어지자 1인칭 화면으로 이를 보는 시청자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방패병 시점으로 보니까 미쳤다]
[캬 이거지]
[이 갓겜이 연출에 진심인 건 알았지만, 아직 1페이즈인데 이렇게 공을 들였다고?]
[아니 누가 해탁이를 1인칭으로 하냐고ㅋㅋㅋㅋ 이걸 평생 못 볼 뻔했네ㅋㅋㅋ]
[VR 모드는 그냥 배경이랑 캐릭터 감상용으로 내놓은 줄;]
[쿼터 뷰 아니면 레이드 못 뛰겠던데 방패병 님 정말 잘하시네요.]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 2학년 0반 아이들의 환호 속에서 해일을 부르는 타락 정령은 2페이즈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