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923화 : 합숙 (12)
111. 합숙 (12)
1페이즈 파훼에 성공했지만, 우리는 2페이즈에서 오래 정체되었다.
스토리상 2페이즈부터 난이도가 급상승하는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물 제물의 침식’이 저지당하자 플레이어들을 적당히 상대하면서 계속 해일을 부르던 타락 정령이 이를 중단하고 전력으로 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채팅창 민심이 엉망이 되었을까 봐 조금 마음에 걸렸는데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심한 어그로꾼들은 초반에 차단을 당했고 2페이즈에 들어서며 연출이 더 화려해지고 활용하는 전투 스킬이 다양해지며 보는 재미가 늘어난 덕분인 것 같았다.
[방송 일찍 끝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
[아 뉴비 절단기가 쉬워 보였냐고ㅋㅋㅋㅋ]
[1페이즈 빨리 깼길래 2페이즈도 금방 할 줄 알았는데 역시나]
[잘하고 있는데 뭘]
[빨리 깬 건데 욕하는 채팅이 왜 이렇게 많았어요?]
[그건 욕하는 사람 맘이지]
[님들 오늘 방송 몇 시부터 한 거예요?]
[저 질문은 대체 몇 번째 보는 거냐]
[2페이즈 어떻게 깰지 기대됨]
아직 우리 파티는 2페이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큰 패턴을 보지 못했다.
레이드는 보통 특수 기믹, 전멸기 등이 포함된 큰 패턴과 자잘하게 피해를 입히는 작은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1페이즈의 마지막 물 제물의 침식처럼 특별한 기믹 수행을 시간 내로 해내야 하는 게 큰 패턴이고, 방금 도시후를 두 방 만에 골로 보낸 기술이 작은 패턴이다.
“어, 죽었다.”
≪흑마도사 이름뭘로지을까고민중인 님이 해일을 부르는 타락 정령에 의해 사망하였습니다.≫
[물 싸대기 맛이 어떠냐]
[한 대는 방패병이 대신 맞았는데도 죽네 ㄷㄷ]
[흑마도사는 왜 맞으러 감ㅋㅋㅋㅋ]
[패턴 너무 어지러운데요. 뉴비들이 저걸 어떻게 잡아요 ㅎㅎ;]
[크리 터져서 저런 듯. 흑마도사가 방어력 쓰레기라도 물 싸대기 두 방 만에 뒤지는 건…….]
[그런데 초원 태워 먹던 현자 놈은 무슨 배짱으로 제타에서 깝친 거임? 해탁이가 싸대기 한 방 갈기면 박살 날 각인데ㅋ]
[현자는 레이드 방송마다 끌려 나와서 부관참시 당하네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을 보니 타락 정령이 팔을 크게 휘저으며 물 속성 공격을 해 대는 걸 유저들 사이에서 ‘물 싸대기’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런 작은 패턴의 경우, 순수한 반사 신경만으로 피하거나 전조 현상을 외워 대처해야 한다.
방금 전, 타락 정령은 물 싸대기를 때리기 전에 두 손을 모으고 한 발자국 물러났었다.
유상훈은 이 패턴을 외우고 있었는지 타락 정령이 두 손을 모으자 바로 물 싸대기에 대비해 맞아 줄 준비를 했지만, 도시후가 딜을 넣기 좋은 포지션을 잡는답시고 생각 없이 이동하여 맞고 말았다.
도시후가 죽자 당황한 장남욱도 이어서 죽은 건 덤이다.
‘유상훈 같은 탱커가 있어도 한계가 있어. 어느 정도는 패턴을 알고 싸워야 해.’
2페이즈에 접어들면서 작은 패턴에 딜러들이 죽어 버리는 경우가 늘면서 공략이 점점 더뎌졌다.
보통 작은 패턴은 탱커인 유상훈이 다 맞아 주지만, 피해를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하다.
탱커가 방어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 스킬을 사용하는 철없는 딜러를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하하, 싸대기를 맞았더니 분위기가 싸하대.”
“아…….”
메인 딜러가 모두 죽어서 중단 버튼을 누르던 유상훈이 탄식했다.
이어서 채팅창이 ‘?’로 뒤덮였다.
[????]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흑마도사 지금 개그침? 고등학생 맞음?]
[흑 부장님의 재미있는 유우머에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껄껄껄~ 아이고~ 배꼽이야~]
[방금 방패병 심한 욕 하려다 멈춘 듯]
[방장님 대신 뭐라 해 드림. 진심 개노잼 현실에서도 싸대기 맞고 싶냐ㅡㅡ]
[방 사장 자네가 참아]
[……나만 재미있었나.]
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까이자 도시후가 시무룩해했다.
그래도 도시후의 편이 몇 명 있었는데 시청자의 연령 폭이 다양한 듯하다.
‘진족들이 시청자의 평균 연령대를 다 올려놓고 있긴 하지.’
후원하는 이들 중에 아는 사람과 진족이 꽤 포함되어 있던 것 같았다.
황지호처럼 대놓고 큰 금액을 보내면 환불과 차단이라도 했을 거다.
하지만 너무 적지 않으면서도 거절하기에는 미묘한 금액이 오는 바람에 그냥 두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진족들은 후원란을 통해 12지 회담을 연상하게 하는 헛소리들을 주고받았는데, 다행히도 시청자들은 각종 방송에 흔히 출몰하는 콘셉트 충이라고 여기며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다음 후원도 지인이 보낸 듯했다.
―(알림) 야근 곧 시작 님께서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녁 먹을 때가 됐다. 먹고 하자.
곧 야근할 건데 이 방송을 볼만한 사람은 홍규빈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한중일 청소년 교류전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홍규빈도 한숨 돌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개최 기간 동안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긴 하다.
그런데 딱히 홍보한 적이 없는데 저 진족들과 어른들은 어떻게 알고 방송을 보러 와서 후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지금 얼마나 한 거야?”
“방송 시작한 지는 다섯 시간 정도 지났어. 쉬는 시간이 길었으니까 게임한 시간만 따지면 네 시간 정도 됐을 거라고 생각해.”
“딱 저녁 먹을 시간이네.”
아이들도 좀 출출했는지 홍규빈의 후원을 계기로 저녁 얘기를 꺼냈다.
시청자들도 저녁을 먹으라고 권하는 분위기였다.
[저녁 먹고ㄱ]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굶음]
[굶지는 않은 듯? 쉴 때 간식 야무지게 먹더만.]
[어 이제 막 보러 왔는데ㅠ;]
[어차피 깨려면 한참 걸릴 거 같으니 걱정 니은]
[저녁 뭐 먹을 거임?]
“저녁 먹고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후원 인사를 한차례 한 유상훈이 채팅창 분위기와 아이들의 반응을 확인한 후, 저녁을 먹자고 선언했다.
“간식은 너희가 사 왔으니까 저녁은 내가 살게. 뭐 먹고 싶냐?”
“고기!”
“뭐든 좋지만, 먹기 편한 게 좋을 것 같아.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면 저녁 시간이 길어지잖아. 다들 기다릴 거야.”
유상훈은 의견을 취합해 채끝살 스테이크 덮밥으로 메뉴를 정하고 주문했다.
음식이 오는 사이에 시청자들은 그동안 간식 뭐 먹었는지 소개해 달라며 졸랐고, 유상훈은 흔쾌히 승낙했다.
넉넉하게 사 온 덕에 아직 개봉을 하지 않은 간식이 많아 소개하기 용이했다.
“이건 음유시인이 사 온 거고, 저건 창술사랑 흑마도사가 가져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푸딩이 제일 맛있었어요. 광고 아니고, 그냥 쟤가 산 거예요.”
유상훈이 고른 오늘 최고의 간식은 내가 MITRON에서 사 온 살구 서머 푸딩이었다.
식빵 대신 브리오슈를 사용해 만든 브레드 푸딩이었는데, 류장이 추천한 거라 그런지 독특한 식감과 차갑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유상훈은 광고 취급을 받을까 봐 MITRON의 상표를 반쯤 가리고 올렸는데, 눈썰미 좋은 시청자들은 어느 가게인지 전부 금방 파악했다.
방송에서 나온 걸 먹어 보고 싶은 건지 바로 주문을 하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저기 은광고 맛집임. 개 유명함.]
[맛있겠다…… 나도 저거 사 먹을까]
[저 가게로 들어가서 주문했는데 다 품절됨ㅋㅋㅋ 니들이 그랬냐?]
[다들 하는 생각이 똑같네ㅋㅋㅋ 나는 주문 성공함! 내가 막차 탄 듯ㅅㄱ]
[방패병이 추천하는 간식은 무명의 초신성이 산 거냐?]
[아는 사람 동생 은광고 다니는데 무명의 초신성이 빵이랑 커피 자주 사 준다고 자랑함]
[뭐야 나도 사 줘요]
[음유시인 님이 샀다는 간식 목록 다 적어 주시면 안 될까요ㅠㅠ?]
[무명의 초신성한테 부담 주는 거 싫어서 은광고 안 갔는데 잘한 듯ㅎㅎ]
[그냥 못 간 거라고 해라]
게임을 안 하는 중이라 시청자 수가 빠질 줄 알았으나 먹방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오히려 조금 늘었다.
유상훈이 빨리 배달해 주는 음식점을 택한 덕에 주문한 스테이크 덮밥은 15분 만에 도착했지만, 맛은 보통이었다.
배가 고파 먹긴 했지만,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 굳이 찾아서 먹을 만한 메뉴는 아니었다.
그 바람에 더 좋은 걸 먹으라며 후원을 하는 이들이 시끄럽게 굴었다.
‘첫날이라 이렇게 후원을 많이 한 거겠지. 다음에 방송할 기회가 있으면 더 조용히 할 수 있을 거야.’
유상훈은 식사 중에는 후원 감사 인사를 적당히 하며 작전 회의를 주도했다.
유상훈은 평소에는 의욕 없이 사는 놈이지만, 배짱도 있고 할 때는 하는 타입이었다.
주변에서 반강제로 부반장을 떠맡길 정도로 말이다.
“패턴은 이제 눈에 좀 익었지? 뭐 할지 대충 보이지 않아?”
“보이기는 한데…… 손이 안 따라가. 스킬 쿨 될 때마다 돌리는데 딜도 잘 안 나오고…….”
“침착하게 해. 트라이에서는 딜 넣는 거보다 생존이 우선이야. 딜각은 나중에 잡아.”
유상훈은 과도한 훈수가 안 될 정도로 간단히 창술사의 딜 사이클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장남욱도 딜 사이클에 관해 알고는 있지만, 막상 인게임에서는 적의 패턴에 휘말리고 맵 이리저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대로 따라 하기 힘들 거다.
유상훈은 딜 사이클이 꼬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언했다.
“딜이 안 나오는 건 버프 타이밍에 못 맞춰서 그래. 스킬 쿨 돌았다고 바로 쓰면 버프가 없을 때 큰 기술이 들어가게 돼.”
버프를 주는 건 음유시인인 내 몫인데, 유상훈의 말대로 생존을 우선시하므로 적의 패턴에 맞춰 방어 버프를 먼저 주곤 한다.
하지만 몸이 튼튼할 때 딜을 넣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딜러들이 공격 버프가 아직 안 들어간 상태에서 큰 기술을 써 버릴 때가 있었다.
그런 상황이 여러 번 쌓이다 보면 딜이 안 나와 레이드가 길어지고, 그사이에 실수가 쌓여 죽게 된다.
“무작정 큰 기술을 몰아치는 것도 좋지 않구나. 눈앞의 적만 보느라 파티원의 버프에 관해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어.”
“레이드에 머리 박으면서 배우면 돼.”
장남욱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 보며 유상훈이 아주 즐거워했다.
뉴비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행복한가 보다.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어 가끔 질문을 던지던 도시후가 말했다.
“전투 수업에서 배운 거랑 비슷하다. 그치? 실기할 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아, 정말 그렇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능력은 우리가 다루는 이능이랑 유사한 점이 많아서 도움이 될 것 같아. 공격대를 구성해서 적을 토벌하는 것도 그렇고, 게임 내에 이계 공략 콘텐츠가 있는 것도 그렇고…….”
“게임은 원래 시뮬레이션의 일종이잖아. 이계 시뮬레이터랑 비슷한 거겠지.”
나도 저 세 사람의 말에 동의했다.
PlayerZ는 개발 의도를 발표할 때, 플레이어에게 경의를 표하며 만든 게임이라고 밝혔다.
이 갓겜은 플레이어와 이계 공략에 관해 아주 잘 아는 사람이 만든 게 분명했다.
그러다 보니 전투 수업에서 배우는 부분과 게임을 공략하는 수단이 비슷해지는 듯했다.
‘마치 전투를 배우고, 연습하는 것 같아.’
PlayerZ를 즐기면 저절로 이능에 관해 익힐 수 있게 된다.
이 게임을 하고, 게임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플레이어의 전투에 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