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924)
111. 합숙 (13)
2학년 0반 학생들이 대관 중인 상영관 안.
방패병의 파티가 저녁을 먹는 동안 이들도 식사를 하기로 했다.
메뉴는 황명 타워에 입점 중인 수제 햄버거로, 아이들 대부분은 새우 패티와 베이컨 등이 조합된 시그니처 메뉴를 택했다.
게임 방송이 길어져서 슬슬 지루해질 때가 됐으나 다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걸 먹으니 아직 따분해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쟤들 지금 공략 안 보고 하는 중인 거지?”
“그럴걸요. 상훈이는 패턴 파훼하기 전에는 오더 안 내리고 지켜보기만 하잖아요.”
“그럼 오래 걸릴 것 같군요. 경험자는 한 명뿐인 파티는 공략을 봐도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어, 방금 채팅창 관리한 거 의신이 같아요. 그냥 새로 뽑은 매니저한테만 맡겨 두지.”
“……나중에 저 영상 쟤가 편집할 예정 아니야? 섬네일이라도 내가 만들어 주고 싶은데.”
조의신은 방송만 나오는 게 아니라 관리도 하고 영상 편집도 했다.
장시간 방송을 켜고 게임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조의신은 그것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이를 두고 조의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반 아이들이 조의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열중해서 화면을 보던 인선오가 물었다.
“의신이는 정말 초보자야? 게임을 굉장히 잘해서 방패병 같은 경험자인 줄 알았어. 인터넷 방송 진행도 굉장히 잘하고…… 편집도 한다고 들었는데.”
인선오가 입을 열자 근처에 앉아 아보카도 콩고기 햄버거를 먹던 독고미로가 조용히 주시했다.
독고미로는 여름방학 동안 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인선오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2학년 0반 아이들은 새로 등장한 급우에게 너도나도 관심을 줬기에 독고미로의 태도는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편하게 관찰하는 사이, 독고미로는 인선오가 조의신에 관해 알고자 한다는 걸 확신했다.
‘이번 방송도 그래. 방송에 나오는 유상훈, 장남욱, 도시후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긴 한데, 가장 궁금해하던 건 저 셋과 부반장과의 관계성이었어.’
조의신의 능력, 특기, 평판, 성품, 기호품, 타인과의 관계성 등등…….
인선오는 조의신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누구에게 무엇을 묻던 반드시 조의신에 관한 질문을 하나씩 섞곤 했다.
독고미로는 인선오가 조의신에 관해 캐려고 한다는 건 확신했지만, 정확히 조의신의 무엇을 캐려는 건지, 왜 그러는 건지는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플젯은 4반 부반장이 권해서 시작했을걸? 방패병이 방송 중에 그렇게 말했대.”
독고미로는 자신의 경계심을 감추며 답했다.
독고미로에 이어서 옹길동과 구슬비가 말했다.
“우리의 파트너 답게 조의신은 다재다능하지만, 특별히 게임을 즐기는 것 같진 않았지.”
“응, 게임보다는 원예를 더 잘 알 거야. 저번에 걔가 원예부에 구경 와서 얘기한 적 있거든? 얘기 듣던 부장이 말했는데, 신문부 아니었으면 우리 부에 데려왔을 거래.”
구슬비의 자랑 비슷한 말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조의신의 비화에 관해 털어놓았다.
조의신은 한 번쯤은 반 아이들의 부 활동이나 취미 생활에 어울려 준 듯했다.
“부반장은 맛있는 거 많이 알고 있어. 우리 반 간식은 거의 다 부반장이 고르는 건데, 다 맛있다. 아, 걔 수학도 잘해.”
미식가 맹효돈의 말에 반 아이들 모두가 동의했다.
조의신은 반 아이들이나 후배들의 간식을 고르는 데에 진심이었고, 그만큼 음식에 관해 잘 알았다.
또, 수학 수업을 듣지 않는데도 낙제 위기에 놓인 짱돌을 구원한 유능한 수학 과외 교사이기도 했다.
“음악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죠. 연주하는 건 별개입니다만, 클래식의 경우 일부 소절만 들어도 바로 제목을 맞힙니다. 수업종의 곡명이 궁금하면 부반장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맞아, 내가 바이올린 더 못 켤 때도 연주 도입부만 들어도 바로 연습곡 이름을 맞히더라.”
목우람과 권레나는 조의신이 음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며 칭찬했다.
하지만 조의신의 연주 실력에 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축제 때 뻣뻣하게 트라이앵글을 치던 조의신의 모습을 알아서 떠올렸다.
“의신이는 미술 작품에 관해 잘 알아. 동양화, 서양화 가리지 않고 작품명이나 작가 이름을 다 알고 있더라. 내가 쓰는 재료에 관해서도 다 아는 것 같아.”
“위성도. 우리 반에서 내 말 이해하는 놈은 부반장뿐……만 아니라 그린이도 있어.”
“……솔직히 말하면 대석이가 뭔 말 하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아.”
민그린과 송대석은 조의신이 예술과 위성에 관해 잘 안다고 단언했다.
민그린의 말대로 조의신은 전시회에 갔을 때, 큐레이터 못지않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게 작품 해설을 해 주었다.
송대석은 가끔 폭주하듯이 위성에 관해서 길게 떠들곤 하는데, 그걸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송대석이 저리 말하는 걸 보니 조의신은 그 위성 잡담 폭격을 전부 이해하고 있었나 보다.
“아, 의신이는 체스를 잘 둬요! 작년 체스 챔피언이었어요. 저는 체스 소모임 소속은 아니지만, 한이랑 같이 체스에 관해 배웠거든요? 그래서 안 건데, 작년 결승에서 둔 의신이 수가 정말 절묘하더라고요.”
사월세음은 조의신의 체스 실력에 관해 언급했다.
조의신은 작년 은광고에서 치러진 스테일메이트 배에 출전해 결승에 진출한 염준열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고작 교내 체스 대회 우승 경력이긴 하지만, 은광고에 실력자가 많다 보니 조의신의 체스 실력에 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편, 급우들의 말을 듣던 옹길동은 조의신이 사실 얼마나 뛰어나고 위대한 괴도인지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아야 했다.
“크으윽…… 조의신은, 우리의 화려함에 관해서 이해하고 있지.”
옹길동은 말을 얼버무렸다.
괴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밀 엄수가 필수였다.
그래서 늘 화려함과 눈에 띄는 걸 강조해도 옹길동은 괴도에 관해서는 가능한 말을 삼갔다.
반 아이들은 그저 ‘의신이가 쟤네들의 관종력을 이해해 줄 만큼 마음이 넓구나’라고 생각했다.
옹길동이 ‘괴도는 대중 사이에서 고독한 법!’이라고 되뇌는 사이 침묵하던 진정묵도 말 한마디 얹었다.
“부반장은 무(武)에 관한 깨달음이 깊소. 검을 겨루어 보고 싶은 상대 중 하나지.”
진정묵이 말하는 깨달음이 뭔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조의신이 세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도 있긴 하지만, 진정묵이 사용하는 무협 용어를 조의신이 제대로 이해했기에 저런 평가가 나온 것이었다.
한이는 그 속내까진 알지 못했지만, 진정묵의 말에 동의했다.
“공청훤 선생님께서도 의신이는 우리 학교를 대표할 만큼 강하다고 했어. 교류전에서 의신이가 어떤 싸움을 할지 기대하고 있어.”
반 아이들이 말을 한마디씩 얹는 분위기였다.
인선오는 자연스럽게 아직 말을 하지 않은 황호 쪽을 돌아보았다.
황호는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었으나 말해도 상관없는 말을 해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황호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조의신은 차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다. 향을 확인하고, 차를 한 모금 마시는 것만으로도 찻잎의 이름을 바로 맞히더군.”
황호는 조의신에게 차를 대접하던 때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조의신은 황호가 내놓는 차의 가치에 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조의신은 그의 출신을 의심할 정도로 몸가짐이 바르고 다례에 관한 이해가 깊어 아주 즐겁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게 작년이었는데 그게 먼 옛일처럼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여러 정보가 쏟아진 바람에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인선오는 태연한 얼굴로 감탄을 표했다.
“와, 의신이는 많은 분야에 관심이 많구나.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사월세음이 곧바로 ‘네! 의신이는 못하는 게 없어요!’ 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반 아이들도 어색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조의신도 완벽한 건 아니었다.
“……옛날에 주오 아일랜드에서 만든 조각의 상태가 좀.”
“……음, 연주라든가.”
“……전에 철판 아이스크림 롤 만들 때, 모양이 미묘했지.”
“……부반장, 직접 요리는 잘 안 하려 한다. 두 번 중 한 번은 실패한다고.”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인선오가 바로 말을 바꾸었다.
“아, 그럼 의신이는 뭐를 제일 좋아해? 새로 들어왔다고 많이 신경 써 줘서 나도 보답하고 싶거든. 참고하고 싶어.”
조의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이 질문에 바로 답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조의신의 미담, 특기에 관해선 줄줄 말하던 반 아이들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굳이 따지자면 음식 중에선 오렌지가 들어간 것을 꼽을 수 있겠으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미묘했다.
모두가 고민하는 가운데, 가장 빠르게 답을 찾은 이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어.”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하지 않는 대신, 반 아이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띄우던 김유리가 말했다.
김유리는 디바이스를 켜서 SNS 앱을 열었다.
그러자 안다인이 몇 시간 전에 올린 흰 강아지 사진이 하나 나왔다.
사진 속에서는 잠든 강아지가 안다인의 품에 폭 안겨 있었다.
“의신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올무야!”
“아……!”
반 아이들이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은 반 아이들 사이에서 올무의 주인으로 인식되어 있는 황호도 반론하지 못했다.
저 대답이 과연 인선오가 원하는 답이었을지는 의문이지만, 확실한 정답이 나왔으니 더 질문하지는 않았다.
인선오는 아주 잠깐 곤혹스러워하며 올무의 사진을 보다가 표정을 감추고 웃었다.
독고미로가 이를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딩동.
독고미로의 디바이스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플레이리스트에 함께 출연했었던 BJ국내산콩이었다.
BJ국내산콩은 인터넷 방송인인 만큼, 지금 시청자 수가 상당히 쏠린 방패병의 방송에 관심을 가진 듯하다.
마침 그 방송에 출연한 조의신이 독고미로와 같은 반이니 안부 인사 겸 연락한 듯했다.
‘국내산콩 오빠도 이거 보고 있었구나. 혹시 다른 사람도 보고 있나.’
독고미로는 방송에 참여한 시청자 목록을 열었다.
독고미로는 그동안 인터넷 방송에 몇 번 출연한 적이 있어서 그쪽에 지인이 몇 명 있는 상태였다.
숫자가 너무 많아서 팔로우가 많은 아이디를 추려서 확인했다.
확인 결과, 독고미로가 출연했던 인방의 스트리머들은 다 방패병의 방송을 보는 중임이 판명됐다.
‘플레이어가 방송에 나오니까 다들 보고 있구나. ……어?’
목록 속에 독고미로의 시선을 끄는 아이디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국회의원 성국언이 소통용으로 만든 인터넷 방송 계정이었다.
거의 방송은 하지 않지만, 지지자들이 팔로우를 많이 하는 바람에 목록에 든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독고미로와 연이 닿을 뻔했던 스트리머였다.
‘……이 방송을 보고 있구나.’
그 스트리머는 플레이어가 꿈이었던 인물로, 센터 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