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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화 (1/273)

프롤로그

-프롤로그-

2017년 전국체전 서울시 고등부 검도 대표 선발전.

[예선 1차: 김현수(성만고) 대 서백호(삼중고)]

검도 명문으로 이름 높은 성만고의 3학년 김현수는 최근 문체부장관배 대회서 3위에 입상한 뛰어난 선수다.

그의 실력이라면 예선 없이 바로 서울 대표에 이름을 넣어도 이상할 것 없으나, 최근 대회 규정이 바뀌는 바람에 시드도 아닌 예선 1차부터 참가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덕분에 김현수와 같은 조에 편성된 선수들은 죽상이 되고, 다른 조에 편성된 선수들은 크게 안도했다.

예선전에서 김현수의 존재는 그야말로 생태계 교란종이었다.

“큭!”

하지만···.

모두가 예선을 쉽게 통과할 거라 생각했던 김현수는 지금 혼란에 빠져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그와 죽도를 맞대고 있는 예선 1차전 상대 때문이다.

‘내가 이런 듣도 보도 못한 놈에게 고전한다고? 더구나 이 새낀 1학년이잖아!’

검도부가 있는지도 몰랐던 삼중고 소속 1학년 ‘서백호’.

경기 전까지만 해도 쓸데없이 강해 보이는 이름에 비웃음을 흘렸는데, 검을 맞댄 직후 김현수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졌다.

‘돌려 머리치기’와 ‘머리 받아 허리치기’, ‘손목 머리치기’까지.

눈으로 좇기 힘든 검 놀림에 연이어 타격을 허락했다.

비록 그 공격이 심판들에게 유효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판정이 후한 심판진을 만났다면 이미 경기가 끝났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탁! 타악!

“머리!!!”

“이앗!!!”

그리고 동시에 벌어진 머리치기에서 서백호의 속도가 김현수를 압도하며, 결국 1점을 빼앗기고 말았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섬전 같은 공격이었다.

‘대체 이런 자식이 어디 있다가 이제 튀어나온 거야?’

김현수가 3위로 입상했던 문체부장관배의 우승자도 매서운 속검의 소유자였지만, 서백호의 쾌검과 비교하면 오히려 평범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두 판째!”

검도 경기는 2점을 먼저 따낸 사람이 승리한다.

이제 김현수가 한 점을 더 내어주게 되면 지게 된다.

겨우 지역 예선 1차전 경기.

여기서 무명의 1학년에게 패배한다면 그가 쌓은 커리어를 부정당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목표로 했던 대학 진학에도 문제가 생기고 만다.

‘빌어먹을!’

때문에 김현수는 이를 악물고 싸웠다.

이 경기는 단순한 지역 예선 1차전이 아니다.

그의 미래가 달린 경기가 되어버렸다.

김현수는 서백호의 공격이 유효타가 되는 것을 막으며, 신중하게 빈틈을 찾았다.

‘젠장! 틈이 안 보여!’

그러나 쉽지 않았다.

방어만 하다가 오히려 위험한 일격을 허용할 만큼.

“머리!!!”

-탁! 타앗!

그림과도 같은 서백호의 ‘스쳐 받아 머리치기’가 작렬한 것이다.

‘파, 판정은?’

다행히 심판들은 이를 유효타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김현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것도 잠깐.

이내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새 상대가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 타타탁! 탁!

“큭!”

이길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이 김현수는 너무 싫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경기를 이어가던 그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기권하겠습니다.”

“뭐?”

돌연 서백호가 기권을 선언한 것이다.

승기가 완전히 넘어간 상태였다.

자괴감을 느낄 만큼 기량 차이도 컸고.

김현수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요···. 윽, 나온다.”

그리고 황당한 이유와 함께 서백호가 창백해진 얼굴로 죽도를 내팽개치며 대회장을 벗어났다.

“······.”

“······.”

“······.”

김현수는 물론, 세 명의 심판까지 바보 같은 표정으로 두 눈을 껌뻑여야 했다.

“청띠 승리.”

이런 걸 기사회생이라 해야 할까?

하늘이 도왔는지 김현수는 상대의 배탈 덕분에 예선 1라운드를 돌파했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서백호가 보여준 모습이 압도적이었으니까.

‘머지않아 또 만나게 되겠지. 검도 세계는 의외로 좁으니까.’

김현수는 다음에 반드시 굴욕을 설욕하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날 이후 검도판에 서백호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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