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2)
‘야생동물의 짓인가?’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짐을 살폈다.
다행히 분실물은 없었다.
그러나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짐은 누가 봐도 인위적이다.
바람에 의해 쓰러졌다던가 그런 게 아니다.
때문에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의 소행이라 의심하면서도 ‘사람의 짓’이라는 경우의 수를 배제하지 않았다.
‘월광도가 무인도지만, 출입이 금지된 섬은 아니니까.’
나 이외 다른 누군가가 섬에 있을 수도 있다.
낚시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캠핑족일 수도 있고.
분명한 것은 사람의 짓이면 매우 곤란하단 사실이다.
멋대로 남의 짐을 뒤지는 인간이 결코 정상일 리 없으니까.
‘차라리 야생동물의 짓이면 좋겠네.’
내가 바란 건 서바이벌에 재미를 더한 오락 영상이지, 미스터리나 공포 스릴러가 아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드론을 띄워보자.’
풍경을 찍기 위해 대여해온 드론을 이용해서 섬을 탐색해 보기로 했다.
드론을 이용하면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드론 가방을 찾았는데.
-크르르르.
갑자기 뒤에서 짐승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폐가 마을에서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어째서 무인도에 개가?’
그 개를 본 순간 안도감과 당혹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짐을 어지럽힌 유력한 용의자가 인간이 아니란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고.
저 개가 야생화된 들개로 보인다는 점 때문에 당혹감을 느꼈다.
멋대로 남의 짐을 뒤지는 인간을 상대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지만, 들개도 멧돼지 못지않게 위험한 야생동물이니 조심해야 한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무인도에 개를 갖다 버린 거야.’
세상에 참 제정신 아닌 인간들이 많다.
키울 자신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내야지, 왜 이런 섬에 풀어 버린단 말인가.
나는 들개가 흥분하지 않게 느릿느릿 뒤로 물러났다.
야생동물을 만나면 등을 보이지 않고 자연스레 퇴장하는 편이 좋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다만 개는 눈을 마주 보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슬쩍 시선을 피해줬다.
-크르르르!
그러나 이런 방법이 모두 통하는 건 아니다.
배가 고프거나 번식기에 접어든 야생동물이라면 바로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까.
바로 지금처럼.
-크와아앙!
“젠장!”
들개가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눈알을 굴려 숨을 장소나 이 상황을 회피할 물건을 찾았다.
그러다가 무인도에서 가장 흔한 쓰레기인 폐그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던져서 잡을 수 있을까?’
투망도 아니고 일반 그물을 넓게 펼쳐서 날렵한 들개를 잡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일단 들개가 걸려 넘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닥에 그물을 펼쳐 두고, 추가로 던지기용으로 쓸 그물을 움켜쥐었다.
-다다다닥!
“허···.”
이어서 고개를 들어 들개를 보니, 어느새 거리가 다섯 걸음 이내로 좁혀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까워진 들개와의 거리보다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헛바람을 삼켰다.
‘원근감이 왜 이래?’
시야를 가득 채운 들개의 덩치가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건 생김새만 개지, 곰이나 다름없는 몸집을 갖고 있었다.
네발로 달리고 있는데도 눈높이가 나와 비슷할 정도로.
‘말이 돼!?’
나는 황급히 들고 있던 그물을 뿌리며 정글도를 뽑아 들었다.
저런 괴물이라면 내 목 정돈 간단히 물어뜯을 수 있을 것이다.
동물 보호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겠다.
-촤악!
그물이 덮쳐오자 거대 들개가 재빠르게 자세를 낮췄다.
그물은 녀석의 등을 쓸고 지나갈 뿐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거대 들개가 그물을 벗어난 순간을 기다렸다.
곧이어 그물을 돌파한 들개의 얼굴이 드러나자, 정글도를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큭!”
엄청난 반발력이 정글도를 타고 오른손에 전해졌다.
그로 인해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맥없이 뒤로 튕겨 나갔다.
높은 질량을 가진 짐승이 돌진해 오는데, 가만히 서서 칼을 찔러 넣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숨이 턱 막히고 정글도를 쥐고 있던 오른손은 뼈가 부러진 것처럼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커엉! 컹! 컹!
나는 이를 악물며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대 들개의 상황을 살펴보니, 한쪽 눈에서 제법 많은 피를 쏟고 있었다.
거대 들개는 무섭게 짖어댔지만, 기세만 사나울 뿐 직접적인 위협은 되지 않았다.
이유는 바닥에 깔아놨던 그물이 들개의 발에 엉키면서 얼떨결에 포박되었기 때문이다.
‘왜 물지 않나 했네.’
정글도 끝이 날카롭지 않아 생각보다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했다.
그래서 물어뜯길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이건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
-크아아앙! 컹!
들개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도 요란하게 짖어댔다.
반드시 나를 죽이겠다는 것처럼.
‘이게 개가 맞긴 한 건가?’
상식적으로 이렇게 큰 개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섬에 늑대가 살고 있을 리도 없고.
아니, 애초에 늑대도 이렇게 클 리가 없다.
이건 진짜 괴물이다.
-뚜둑!
그때 어디선가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뚝두둑뚝!
-크아아앙! 컹!
거대 들개가 난리를 치자 폐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근처에 숨을 데도 없고, 녀석을 다시 포박할 여유도 없다.
금방이라도 그물이 터져나갈 것 같은 상황.
이젠 선택을 해야 한다.
“미안하다.”
결국, 부상을 입은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정글도를 움켜쥔 나는 거대 들개의 목덜미를 찔렀다.
-푹!
날붙이가 살덩어리에 파고들다가 딱딱한 뼈에 걸리는 감각이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미지근한 피가 얼굴에 튀었다.
앞선 공격은 충돌로 인한 통증이 워낙 커서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너무도 노골적인 감각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는 정글도에서 손을 떼며 뒷걸음질을 쳤다.
-후욱··· 후욱···. 훅.
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 들개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이다.
거친 숨소리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나를 노려보는 눈빛은 점차 흐리멍덩해졌다.
곧이어 녀석의 숨이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한 나는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팔, 이게 무슨 상황이야.”
서바이벌 영상을 찍기 위해 무인도에 온 거지만, 내가 바란 서바이벌은 이렇게 피가 낭자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생존 게임이 아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감정을 추스르던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들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녀석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 어어어?”
하지만 그런 내 눈에 보인 것은 핏물을 뒤집어쓴 거대 짐승의 사체가 아니라···.
사방으로 흩날리는 푸른 빛 가루의 향연이었다.
-사르르르.
현실감이 떨어지는 너무도 기이하고 아름다운 풍경.
나는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했다.
“뭐, 뭐야?”
온몸에서 밀려오는 통증도 잊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방금까지 거대 짐승이 쓰러져 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바닥엔 폐그물과 정글도가 나뒹굴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짐승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여기저기 튀었던 피도 어느새 증발해 버렸다.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네.’
계속되는 오른손의 통증이 내가 경험한 게 헛것이 아님을 증명할 뿐이다.
그런데 기현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
눈앞에 반투명한 ‘파란색의 평면 사각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 낌새 없이, 아무 이유 없이,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파란색의 사각형은 마치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존재했다.
“······. 이건 또 뭐야?”
내가 미친 걸까?
도무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침착하게 뺨을 때려 보고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바뀌는 건 없었다.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지구의 시스템이 일부 변환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파란 사각형에 글자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파란 사각형이 스마트폰의 메시지창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번 메시지가 떠오르니, 그다음부터 알 수 없는 정보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각지에 웨이포인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각지에 안전구역이 생성되었습니다.]
[각지에 특수 지형이 생성되었습니다.]
[각지에 특수 자원이 생성되었습니다.]
[각지에 몬스터와 NPC가 생성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 아버지, 이게 조현병인 걸까요?’
만약 이게 조현병의 증상이라면 모든 게 납득이 된다.
내가 미쳐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가슴팍에 차고 있던 액션캠을 떼서 영상을 돌려 보는데···.
-크와아앙!
“어?”
거대 들개와의 전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 아니겠는가?
혹시 이런 영상들마저 망상장애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이마를 짚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눈앞에 계속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업데이트 도중 토벌한 몬스터의 경험치와 보상이 정산됩니다.]
[그랑 다이어 울프를 토벌하여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그랑 다이어 울프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능력치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상태창을 열어 능력치를 분배하세요.]
마치 게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메시지들.
나는 그것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고, 이런 내게 황당해할 필요 없다는 것처럼 푸른 빛이 몸에 깃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빛 때문인지 통증에 시달리던 오른팔과 자잘한 부상이 치료되었다.
“······.”
덕분에 눈앞에 벌어지는 이상 현상들을 더는 단순한 정신병으로 치부하기 힘들었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했다.
[눈앞에 이상한 글자 나만 보임?]
[지금 우리 아파트 난리 났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 나고!]
[도심 속에 늑대 무리라니 이게 뭔 상황이야? 강남 S백화점에 오지 마! 늑대 밥 될 수도 있어!]
[112하고 119전화 전부 먹통임!]
[이 짐승 뭐야? 동물원에서 탈출한 원숭이인가? 그런데 왜 피부색이 초록색이지?]
그러자 패닉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무언가에 공격을 당하고, 정체불명의 메시지를 받은 상태였다.
SNS엔 위급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다급한 구조 요청이 쏟아져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혼란에 정점을 찍듯, 요란한 알람과 함께 재난문자가 왔다.
-띠이이이! 띠이이!
[동시다발적인 테러 발생]
[국민 여러분께선 외출을 자제해주시고, 외부에 계신 분들은 빠르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정신 상태가 온전하단 건 알겠다.
그런데 이런 미친 상황이라면 차라리 내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게 낫지 않을까?
“이게 말이 돼?”
현실이라기엔 너무도 몰상식한 상황.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사건 사고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묻지마 범죄처럼, 신이 미쳐서 인간에게 묻지마 장난을 치는 걸까?
나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허공에 떠 있는 메시지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사이 메시지 창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어있었다.
[그랑 다이어 울프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5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그랑 다이어 울프 가죽 2장을 획득했습니다.
[그랑 다이어 울프 최초토벌 보상이 추가 지급됩니다.]
-75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늑대검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에 이어 아이템까지 나와 준다.
무슨 게임도 아니고, 황당함에 헛웃음이 났다.
‘일단 선장 아저씨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해야겠지?’
촬영이고 뭐고 일단 섬부터 떠야겠다.
나는 월광섬까지 실어 준 어선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다시 연락 주겠······. 허억! 괴, 괴물! 끄악! 컥!]
수화기 너머로도 들리는 아비규환의 대환장 쇼.
“선장님! 선장님 괜찮으세요!? 선장님!”
-뚜뚜뚜.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좆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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