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4화 (4/273)

무인도 (3)

*

게임을 연상시키는 메시지 내용도 혼란스럽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현재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보았던 거대 들개··· 아니, 그랑 다이어 울프 같은 괴물이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하며 큰 인명 피해를 내고 있다.

지금은 이런 일이 어째서 발생한 건지, 이런 공격이 앞으로도 계속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은 뒤로 미뤄 놓고, 신변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나야 운이 좋아 무사할 수 있었으나, 보통 사람이 ‘그랑 다이어 울프’같은 괴물을 만난다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육지에 있을 내 가족까지도···.

-뚜우우. 뚜우우. 뚜우우.

“이런 젠장···.”

선장과의 통화가 끝난 직후,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두 분 다 연락이 통하지 않았다.

혹시 우려할 사태가 벌어진 걸까?

‘부모님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어야지, 이 병신아.’

나는 스스로를 욕했다.

사실 선장보다 전화를 먼저 걸었다고 해봐야 불과 20~30초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부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그 20~30초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전화를 걸었으면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오오오오!

그렇게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때, 폐가 마을 쪽에서 정신을 일깨우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건지···.

녀석들이 이쪽으로 오기 전에 일단 숨어야 한다.

나는 마을 반대편 쪽 해변가 위에 컨테이너가 있단 것을 떠올리며, 약품과 비상용품이 든 가방과 전동 드릴 같은 공구가 든 가방을 움켜쥐고 자리를 옮겼다.

-크륵...

낡은 컨테이너는 문이 잠겨 있지 않아서 무사히 숨어들 수 있었다.

먼지로 가득한 창문을 살짝 열어 보니, 그랑 다이어 울프가 선착장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허공에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삼키며 그랑 다이어 울프의 행동을 주시했고, 다행히 거대짐승에게 재차 공격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저 새끼는 왜 계속 선착장과 폐가 마을을 오가는 거야? 마치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혹시 게임처럼 활동 영역이 정해져 있는 걸까?’

어쨌든 그랑 다이어 울프는 이곳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안심하고 부모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백호니!? 서백호!?]

“아버지!”

하늘이 도운 건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막혀 있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 들었다.

나는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정신이 없어서 받을 수가 없었어.]

“괜찮으신 거죠? 어머니는요?”

[······. 우린 괜찮아.]

전혀 안 괜찮은 느낌.

바로 이어지지 않는 대답에 나는 표정을 굳혔다.

“왜 뜸을 들이시는 거예요? 설마 어머니께 무슨 일 생겼어요?”

[후우, 그래. 엄마가 조금 다쳤어.]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답.

크게 당황한 나는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돈 아니라니까.]

“얼마나 다치셨는데요?”

[오른팔하고 왼쪽 허벅지를 조금 깊게 베였어. 그래도 큰 혈관은 베이지 않아서 꿰매고 관리만 잘하면 문제없을 거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머니가 다쳤단 사실에 걱정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목숨에 지장은 없다고 하니까.

“지금은 두 분 모두 부대에 계신 거예요?”

[그래, 계룡대 안에 있는 병원이야.]

아버지는 군인이시다.

그것도 육군본부에서 근무 중인 대령 계급의 군인.

아버지 말에 의하면 어머니와 함께 부대 밖에서 점심을 먹다가 사고에 휘말리셨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괴물 때문에 고생하긴 했지만, 지금은 두 분 모두 계룡대에 들어간 상태이니, 나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린 걱정할 필요 없어.]

“다행이네요.”

[그런데,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안전한 거야?]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에겐 지방으로 여행 영상을 찍으러 간다고만 했지, 걱정하실 것 같아서 무인도에 간다는 이야긴 안 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레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했고···.

[뭐!? 무인도!? 야이 미친놈아!]

아버지에게 욕 한 사발 들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죠.”

[후우···. 그건 그렇지.]

“일단 안전한 곳을 찾아서 숨어 있어요. 이대로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려 봐야죠.”

[거기가 어디라고?]

“충남 태안의 월광도요.”

[아빠가 헬기를 공수해 보마.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 보면 당장은 힘들 거야. 분명 장군들도 제 가족 챙긴다고 헬기부터 알아보고 있을 게 뻔하니까.]

대령이면 낮은 직급은 아니지만, 비상 상황에서 멋대로 헬기를 운용할 수 있을 정돈 아니다.

그게 사적인 이유라면 더더욱.

그나마 아버지가 육사 출신이라 여기저기에 인맥이 많아 헬기 구하는 걸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거다.

[식량은 있어?]

아버지 말에 나는 약을 포함해 긴급물품들이 담겨 있는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압축식량과 칼로리바가 들어 있었다.

“고립을 대비해서 4일 치 식량을 챙겨오긴 했어요.”

[그나마 다행이네. 알았어. 그 사이에 헬기가 도착할 수 있게 아빠가 최대한 노력해 볼게. 움직이지 말고 안전한 곳에 잘 숨어 있어.]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진급 막히지 않게요.”

[쓸데없는 걱정 하긴.]

이후, 아버지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사람을 공격하는 괴물들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으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신기루처럼 등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괴물은 고블린이나 오크, 다이어울프, 검치호 등, 게임 속의 몬스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형태이며, 마법처럼 신비한 힘을 사용하는 괴물의 목격 정보도 입수되었다.

또한 괴물은 실내보단 실외에서의 등장확률이 높고, 죽이고 또 죽여도 계속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에 군대를 투입해도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한다.

“그럼 이 섬이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당장 늑대 한 마리 빼면 다른 괴물은 보이지 않던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계룡대보다 안전하진 않을 거 아니냐.]

“그건 그렇죠.”

그리고 괴물 외에도 기존에 없던 ‘이상 지형’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호수나 산처럼 말 그대로 새로운 지형이 생기거나, 건물이나 조형물처럼 지구의 것이 아닌 듯한 시설도 발견되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육군본부에 근무하시는 만큼, 정보취득이 빠르시다.

하지만 아직 사건 발생 초기라 추가적인 조사와 자료 정리가 필요하다.

아버지는 중요 정보가 입수되면 그때그때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육본의 정보를 그렇게 막 알려줘도 되는 거예요?”

[생존 정보인데, 뭐가 문제겠어.]

아버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몸 조심하고,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겠어요. 어머니 통화 가능해지면 먼저 문자로 연락 주세요. 그럼 제가 전화할게요.”

[그래.]

통화는 이걸로 끝.

보통의 부자지간이 그런 것처럼 지금까지 아버지와 30초를 넘게 통화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역대급으로 길게 통화했다.

“후우···.”

아무튼 여러모로 다행이다.

부모님의 안전을 확인해서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참 멍하니 있다가.

비상 가방의 내용물을 다시 살폈다.

‘이걸 챙겨와서 다행이네.’

안에는 약품뿐만 아니라 비상식량도 들어 있었다.

날씨의 영향으로 배가 뜨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챙겨온 건데, 이런 상황 때문에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식량은 2500kcal의 압축식량 3개와 320kcal의 칼로리바 2개, 추가로 산에서 따온 과일 조금이 있다.

‘비상 상황인 만큼 식량을 아껴야 해. 압축식량과 칼로리바는 그냥 까지 말자.’

이 섬엔 먹을 게 많다.

당장 근처 제방과 선착장만 가도 굴과 섭이 덕지덕지 붙어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유통기한이 긴 보존식량들은 건들지 않기로 했다.

그냥 아버지의 말을 믿고 먹어버려도 되지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미쳤는데, 계획이 뜻대로 되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시팔, 진짜 서바이벌이 되어 버렸네.’

급전개도 이런 급전개가 어딨단 말인가?

하도 어이가 없으니 절로 웃음이 났다.

‘나머지 짐들도 가져와야겠어.’

지금 숨어 있는 컨테이너가 낡긴 했지만, 생각보다 아늑하다.

창문을 빼면 전체가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방어력도 제법 높아 보이고.

나는 이 컨테이너를 베이스 캠프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나머지 짐들도 이곳으로 옮겨오기로 마음먹었다.

‘늑대가 마을로 향할 때 나가면 안전하게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아.’

그랑 다이어 울프는 계속해서 폐가 마을과 짐이 쌓인 선착장을 오가고 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완전히 일정하지는 않지만, 녀석이 10번 넘게 왕복하는 동안 폐가 마을에서 가장 짧게 머물렀던 시간조차 짐을 나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타이밍을 맞춰 컨테이너를 나서려는데···.

‘능력치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상태창을 열어 능력치를 분배하세요.’

‘늑대검을 획득했습니다.’

문뜩 잊고 있던 메시지창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직도 시야 끝에 매달려 있는 반투명한 메시지창.

나는 ‘혹시’라는 생각으로 허공에 혼잣말을 했다.

“상태창?”

[상태창]

-레벨: 5

-칭호: 없음

-능력치

근력: 5 순발력: 5 마력: 5

잔여 능력치 포인트: 4

-보유 코인: 90

그러자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허, 이게 되네?”

게임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 같은 내용과 소설에서 본 것 같은 상황.

진짜 신의 짓인지, 외계인의 짓인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게 내겐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짧게 혀를 찬 나는 상태창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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