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5화 (5/273)

의외로 좋아 (1)

[상태창]

-레벨: 5

-칭호: 없음

-능력치

근력: 5 순발력: 5 마력: 5

잔여 능력치 포인트: 4

능력치는 ‘근력’, ‘순발력’, ‘마력’ 3가지로 매우 심플 했다.

잔여 포인트가 4인 걸 보니, 이건 레벨업을 할 때마다 하나씩 주는 모양이다.

능력치는 모두 5로 통일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기본 능력치가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도 능력치가 나랑 같나?’

나는 아버지에게 능력치가 몇이냐고 물어보려다가 바쁘실 수도 있으니 일단 스마트폰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상태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확인 결과 능력치는 5로 모두 같았다.

남녀노소 예외 없이.

‘잘하면 군필이 여고생에게 얻어터지는 장면을 볼 수도 있겠네.’

너무도 평등한 조치에 헛웃음이 나왔다.

능력치가 통일되었단 뜻은 누군 능력치가 하락하고, 누군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의미일 텐데, 신기하게 이질감을 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그렇고.’

아마 이런 것도 세상에 발생하고 있는 이상 현상의 일부인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근력에 포인트를 투자해 보기로 했다.

“오오.”

근력이 5에서 6이 되며 20%가 향상되었다.

그런데 그 차이가 놀랍도록 명확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컨디션이 최고조일 때 이상으로 활력과 힘이 넘쳐나는 느낌이다.

겨우 능력치 하나를 상승시켰을 뿐인데 이렇게 체감되자, 나머지 포인트도 근력에 모조리 때려 박으려 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신중하게 해야지. 마력은 제쳐놓더라도 순발력까지는 확인해야 해.’

나는 검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격투 스포츠를 경험했다.

때문에 어떤 스타일의 싸움이 자신에게 맞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나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엔 순발력을 높여 보았다.

“좋은데?”

순발력 역시 근력만큼이나 상승 수치가 체감되었다.

-후후훅!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쉐도우 복싱을 해보니, 감각이 더욱 기민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신체의 반응 속도 또한 빨라졌고.

바라는 대로 몸이 움직여 주다니, 너무 신기했다.

그간 여러 운동을 하면서 몸이 머리를 따라가질 못한다고 느꼈는데, 그 답답함이 해소된 기분이다.

‘능력치를 어떻게 올려야 할지 알겠어.’

남은 능력치는 2.

나는 근력과 순발력에 잔여 포인트를 하나씩 추가했다.

-능력치

근력: 7 순발력: 7 마력: 5

잔여 능력치 포인트: 0

지금이라면 정글도만으로도 그랑 다이어 울프를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자신해선 안 된다는 걸 안다.

앞선 전투는 운빨로 얻어걸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능력치가 상승했다고 해서 체형이 변하지는 않네.’

만족감을 드러낸 나는 상태창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발견하곤 손을 멈췄다.

상태창 상단에 웬 아이콘이 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상자와 검, 스크롤 모양의 아이콘 세 개.

나는 그게 뭔가 싶어 손가락으로 찔러 봤고, 인벤토리창과 스킬창, 퀘스트창을 불러오는 버튼임을 알게 되었다.

‘어쭈? 스킬하고 퀘스트도 있어?’

스킬창과 퀘스트창은 공란이므로 패스하고, 인벤토리창을 확인하니 그랑 다이어 울프를 토벌하고 얻은 보상이 들어 있었다.

[그랑 다이어 울프 가죽 2장]

[늑대검]

인벤토리는 총 10칸인데,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칸이 100칸 정도로 매우 많았다.

아마 퀘스트나 아이템, 재화를 통해 인벤토리를 추가 확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사달을 일으킨 게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K-RPG를 참고하신 모양이군요?’

확인 결과 인벤토리에 여러 물건이 담긴 가방은 보관이 안 되고, 한 칸에 한 종류의 아이템만 담을 수 있었다.

[늑대검 / 한손반 장검 / 등급: 고급]

-그랑 다이어 울프의 이빨에는 강철의 강도를 높여주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잘 제련된 강철 검에 그랑 다이어 울프의 이빨 가루를 더한 검이다.

-근력+1

늑대검은 그랑 다이어 울프 ‘최초 토벌’에 따른 추가 보상이다.

정글도와 달리, 제대로 된 서양식 장검이었다.

더구나 날의 길이와 손잡이의 길이도 죽도와 비슷해서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무기 같았다.

‘좋네, 검이 능력치까지 올려주다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정체불명의 시스템을 사용하며 만족해하는 나 자신 역시 정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뭐든 이용해야 한다.

서바이벌에서 ‘적응’만큼 중요한 미덕도 없으니까.

‘이제 슬슬 나머지 짐을 찾아오자.’

나는 그랑 다이어 울프가 선착장을 떠나는 타이밍에 맞춰 컨테이너를 나섰다.

밖에 있는 나머지 짐들을 안전한 컨테이너 안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

어느 권투 선수가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뜬금없이 이게 뭔 개소리냐면, 지금의 내 상황이 그렇단 뜻이다.

컨테이너 안에서 지켜본 결과 그랑 다이어 울프의 활동엔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녀석이 멀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나가면 마찰 없이 짐을 찾아올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가 어찌 되었냐 하면···.

-깡!

“젠장!”

지금 그랑 다이어 울프에게 존나게 처맞고 있는 중이다.

내 통계에 따르면 녀석은 폐가 마을로 이동해서 3분 20초 동안 돌아오면 안 되는데, 어째서인지 단 1분 30초 만에 복귀한 것이다.

당연히 돌발 상황은 여지없이 생존을 위한 전투로 이어졌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다.

-크앙!

“큭!”

명색이 이름표에 ‘울프’라는 단어를 달고 있으면, 늑대답게 아가리만 들이밀 것이지 왜 범처럼 앞발을 휘둘러 오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온몸이 칼로 베인 듯한 상처와 피로 혈인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치명타는 허락하고 있지 않다는 점일까?

높아진 능력치와 제대로 된 무기가 없었다면 진작에 끔살을 당했을 것이다.

‘아깐 정말 운이 좋았구나.’

묶여 있는 그랑 다이어 울프를 상대할 때는 몰랐는데, 직접 부딪힌 녀석은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피지컬이 아니었다.

그랑 다이어 울프가 힘을 쓰면 속절없이 뒤로 밀려나기 바빴다.

지금의 이런 모습은 절망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순간.

나는 승리를 위한 실마리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어.’

그랑 다이어 울프의 전투 패턴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는 반격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촥!

지금까지 방어 일변도였던 나의 검이 처음으로 그랑 다이어 울프의 공격보다 먼저 뻗어졌다.

줄곧 늑대의 공격을 보고 대응했다면, 이번엔 공격을 받기 전에 패턴을 읽고 미리 대응한 것이다.

그 결과는···.

-컥!

성공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찌른 나의 검을 향해 그랑 다이어 울프가 아가리를 쑤셔 넣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칼날이 그대로 녀석의 입속에 빨려 들어갔다.

아마 제삼자가 봤다면 늑대가 일부러 검에 달려든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템이랑 경험치나 왕창 토해라.”

검도도 그렇고 다른 격투기도 그렇고, 1:1 승부가 기본인 스포츠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나를 분석하고 연구해온 상대다.

분석이 완벽하다면 어느 정도의 기량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녀석에게도 여지없이 통했다.

나름의 난이도 조절인지, 그랑 다이어 울프는 생각보다 움직임이 단조로워서 패턴 파악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서걱! 파팍!

-컹! 깨깽!

아마 늑대 새끼는 꽤나 재밌었을 것이다.

짐승 주제에 인간을 샌드백 취급했으니까.

이젠 녀석이 샌드백이다.

[그랑 다이어 울프를 토벌하여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그랑 다이어 울프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6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그랑 다이어 울프 가죽 2장을 획득했습니다.

나는 철저히 그랑 다이어 울프를 괴롭히다가 죽였다.

딱히 원한 때문이라기보다 패턴 타이밍을 조금이라도 완벽하게 숙지하기 위함이었다.

-파앗!

레벨이 오르면서 모든 부상이 회복되고, 나는 새롭게 얻은 능력치를 순발력에 추가했다.

순발력과 근력은 1:1 비율로 투자할 생각인데, 늑대검에 ‘근력+1’ 옵션이 있어서 순발력을 올린 거다.

그렇게 무사히 위기를 넘긴 나는 짐들을 컨테이너로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고, 마지막 짐을 컨테이너 안에 넣을 때.

-아우우우!

그랑 다이어 울프 한 마리가 하울링과 함께 근처 허공에서 뿅하고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게임 속의 리젠 같은 느낌.

바로 앞에서 리젠 된 바람에 그랑 다이어 울프는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컹!

[그랑 다이어 울프를 토벌하여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1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그랑 다이어 울프 가죽 3장을 획득했습니다.

패턴은 유효했다.

한번 싸움에 익숙해지니, 이번엔 앞선 전투처럼 피범벅이 되는 일도 없었고, 능력치가 높아진 만큼 더욱 수월하게 처치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이면 쉽게 레벨업하겠는데? 처리하기 좋게 한 마리씩 나와주니까.’

레벨업에 목맬 필요 없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고, 오만하게 굴다가 삐끗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체 능력의 상승효과를 맛봤기 때문일까?

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우선 드론으로 섬의 상황부터 파악하고 사냥을 계속 진행할지, 고민해 보자.’

그러나 나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이곳은 위기에 빠져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무인도라는 걸 다시금 상기하면서.

-위이잉!

나는 드론을 날리며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