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좋아 (2)
*
드론이 날아오르고, 조종기에 부착된 화면으로 영상이 출력됐다.
비싼 값을 준 만큼 드론은 만족스런 화질을 자랑했다.
“섬의 전경부터 살피자.”
일단 섬의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드론의 고도를 계속 높였다.
어디에 어떤 지형이 있고,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를 기록해서 나만의 지도를 만들 생각이다.
“왜 아직도 전경이 안 담기는 거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드론이 꽤 높이 올라갔음에도 섬의 풍경이 한 화면에 담기지 않았다.
“월광도 22만평, 해안선 길이(둘레) 4.5km.”
나는 월광도란 섬의 정보를 내뱉었다.
이유는···.
“족히 몇 배는 더 커 보이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월등히 큰 섬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유튜브 촬영을 할 때부터 섬의 규모가 생각보다 큰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긴 했었다.
“설마.”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의문을 이어가던 나는 문뜩 아버지가 알려줬던 정보를 떠올렸다.
‘곳곳에 이상 지형이 생기고 있어. 방금까지 도로였던 곳에 난데없이 산이 들어서기도 하고,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호수가 생기기도 해. 이 이상 지형 중엔 건물이나 동상 같은 시설물도 있다고 하더라.’
이상 지형.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다.
‘이 월광도에 이상지형이 생겨났단 뜻인가.’
그게 아니면 지금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
과연 섬이 커진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도를 만들기 위해 일단 섬의 형태를 노트에 그렸다.
본래 월광도는 산 하나, 분지 하나, 모래사장 하나를 조촐하게 품고 있는 둥근 섬이다.
하지만 영상에 나오는 변형된 월광도는 산봉우리가 두 개였으며, 분지 셋, 모래사장도 셋이 딸린 타원형의 섬이었다.
뿐만 아니라, 산 너머로 호수와 작은 규모의 숲도 있어서 규모가 더욱 커 보였다.
“드론이 없었다면 큰일 났겠어.”
드론이 있기에 섬의 상태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었고, 쉽게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만약 혼자 싸돌아다니며 지형을 파악했다면 패닉에 빠졌을 거다.
“이쪽에서 젠되는 그랑 다이어 울프는 3마리구나. 한 마리는 마을 입구와 선착장을 오가고, 나머지 두 마리는 마을 내에서만 활동하네.”
나는 생존을 위협할 괴물들의 이동 경로를 지도에 하나하나 기입했다.
조사결과 그랑 다이어 울프 외 9종의 괴물을 추가로 발견했고, 이 괴물들은 17개소에 분산 배치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엔 고블린이나 오크를 연상시키는 인간형 몬스터도 있었는데, 녀석들이 드론을 향해 돌을 던져서 하마터면 추락할 뻔했다.
‘괴물들끼리 활동 구역이 정해져 있다니, 마치 게임 속 사냥터를 보는 것 같네.’
사냥터 중엔 두 종류의 괴물이 동시에 나오는 곳도 있고, 구역이 겹치는 곳도 있었다.
‘섬 전체에서 괴물들이 차지한 영역은 약 3할 정도. 그 말은 3할의 땅만 피하면 아무 지장 없이 일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단 뜻이다.’
덕분에 안전하게 해산물을 채집하고 과일을 딸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식량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신경 쓰이는 게 괴물들만이 아니란 거야. 이것도 이상지형이겠지?’
드론으로 알아낸 것 중엔 몬스터 관련 내용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몸을 숨기고 있는 컨테이너에서 200미터 정도 이동하면 나오는 폐가마을.
그 폐가마을 북쪽에 누가 봐도 인위적인 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거대 수정이다.
‘스타그래프트 푸로토스의 파일런 같이 생겼네.’
마름모 형태의 거대 수정이 허공에 둥둥 떠서 푸른 빛을 뿜고 있던 것이다.
더구나 그 수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누가 봐도 월광도의 것이 아닌, 유럽 양식의 건물 여섯 채도 자리하고 있어서 의문을 자아내게 하였다.
뭔지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드론의 고도를 낮춰 가까이 접근시켜 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뭔가 중요한 시설 같긴 한데,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꺼림칙할 뿐이다.
드론을 이용한 섬의 탐색이 끝나면 인터넷이나 아버지를 통해 알아봐야겠다.
“지도 작성은 이 정도면 되겠지.”
지금 만든 지도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나무가 우거져서 드론의 고도를 낮춰도 시야가 확보 안 된 장소도 제법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곳엔 안 가면 그만이다.
“응?”
마침 드론의 배터리가 거의 다 떨어졌단 알림이 떴다.
그래서 귀환 명령을 내렸는데.
“저건 또 뭐야?”
복귀하던 드론에 의외의 것이 찍혔다.
“내가 쳐놨던 덫인 거 같은데?”
촬영을 위해 산에 올랐을 때 쳐놨던 폐그물로 만든 포획덫.
그 덫에 무언가가 걸려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이거 설마.”
그것도 심상치 않은 녀석이 걸려 있었다.
*
-바스락.
나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곳은 산속.
괴물의 영역 한복판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오크를 닮은 괴물의 영역이 위치한 곳이다.
원랜 드론에 저장된 영상을 차근차근 살피면서 지도의 완성도를 높일 생각이었으나, 포획덫에 걸린 무언가를 발견한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 덫에 걸린 녀석이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면 반드시 잡아야 했다.
-키에에엑!
“오, 진짜 그거인 것 같은데?”
현재 지구에 닥친 이상 현상은 게임의 시스템을 닮아있다.
그래서 ‘혹시’란 생각으로 조심조심 산에 오른 건데···.
이거 아무리 봐도 내 예상이 맞는 같다.
“아까 고라니 울음소리를 낸 게 너였구나.”
작은 체구를 가진 인간형 몬스터.
생김새는 고블린을 닮아있고, 피부는 황금빛으로 번들거린다.
“현실에서 황금 고블린을 보다니.”
그렇다.
내가 친 덫에 걸린 건 다름 아닌 황금 고블린이었다.
여러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보너스 몬스터 같은 존재.
워낙 빨라서 그렇지, 잡기만 하면 많은 보상을 주는 몬스터.
그게 황금 고블린이다.
‘물론, 현실의 황금 고블린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거야 처치하고 보면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늑대검을 치켜들었다.
황금 고블린은 내 검을 보며 잔뜩 위축되었다.
그 모습이 불쌍해 보이지만, 신기하게 동정심 따윈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녀석으로 인해 내 생존환경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죽어.”
-푹!
예리한 늑대검이 황금 고블린의 목에 틀어박혔다.
그에 녀석은 고통스레 발버둥을 쳤다.
칼로 무언가를 찔러 목숨을 빼앗는 게 처음이라면 움찔 놀랐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세 번의 경험 거쳤기에 쫄지 않았다.
나는 손에 힘을 더욱 주고 그대로 칼을 비틀었다.
-뚜둑!
[황금 고블린을 토벌하여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황금 고블린을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2,5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과연 황금 고블린!
대량의 경험치를 쏟아내면서 눈앞에 레벨업 메시지가 연이어 떠올랐다.
기존의 내 레벨은 6이었는데, 덫에 걸린 녀석 목 한번을 찌르고 단번에 레벨 12가 되었다.
그로 인해 능력치 포인트 역시 6이 추가되었다.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하하···.”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다.
황금 고블린의 주머니는 피부색만큼 두둑하기로 유명하니까.
[황금 고블린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52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중급 회복 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회복의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매직 로브를 획득했습니다.
-안전 텐트를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마력탄’을 획득했습니다.
[황금 고블린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스킬북 ‘도약’을 획득했습니다.
-행운의 탈리스만을 획득했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이름만 봐도 어떤 아이템인지 예상이 되는 물건들.
8줄의 보상 메시지는 절로 입꼬리를 위로 솟구치게 하고,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월광도는 외부와 단절된 무인도긴 하지만, 어쩐지 축복받은 섬인 것 같다.
***
서백호의 아버지 서인호 대령은 스마트폰에 계속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과장님, 뭐하십니까?”
그런 그에게 ‘최 소령’이란 친한 부하가 다가와 물었고, 서인호 대령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들 녀석에게 대재앙에 대해 정보 좀 전해주려고.”
“어? 백호 계룡대 안에 없습니까?”
“유튜브 영상 찍는다고 싸돌아다니다가 고립되고 말았거든.”
“이런, 하필 지금···.”
“그래도 신변에 문제는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다만 지금 있는 장소가 무인도라 그렇지.”
“······. 엄청 심각한 거 아닙니까?”
“심각하지.”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메시지만 적고 있어서 걱정할 정도는 아닌가 싶었는데···.
이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최 소령은 서인호 대령이 무슨 정보를 쓰나 싶어서 슬쩍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웨이포인트]
전 세계 곳곳에 등장한 거대 수정.
일정 액수의 코인을 지불하면 다른 지역의 웨이포인트로 공간이동을 시켜준다.
단, 사용자가 방문한 적이 있는 웨이포인트로만 공간이동이 가능하다.
[안전구역]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 말 그대로 안전한 구역.
안전구역 안에서 휴식을 취하면 부상이 빠르게 회복되고, 짧은 휴식만으로도 피로감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안전구역 안에는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상점이 입점해 있으며 판매 아이템은 구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안전구역은 보통 웨이포인트 주변에 형성되어 있으며, 코인으로 이용료를 지불 해야 한다.
[화기통제]
몬스터는 화기(총, 폭탄 등)로 사살할 경우 경험치와 아이템, 코인을 주지 않는다.
냉병기를 사용해 몬스터를 처치해야만 보상을 얻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꽤나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는데, 관심을 갖고 정보를 모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도 많았다.
그래서 최 소령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어도 허가 받지 않고 정보를 외부에 공유하는 건 추후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거 알려줘도 되는 겁니까?”
“왜? 찌르게?”
“아, 아닙니다. 괜히 나중에 트집 잡혀서 대령님 진급에 문제 생길까 봐 그런 겁니다.”
“그럼 진급 안 하면 되지. 상관없어.”
서인호 대령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군인이다.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문제없이 별을 달 수 있을 거란 평가가 주를 이룰 인물.
그런 그가 이리 말하니, 헛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장교에게 별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들은 별 하나 달겠다고 온갖 똥꼬쇼를 다하는데, 그까짓 거 안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말을 하다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상사였다.
“그러고 보니, 안전구역을 이용하면 사모님 치료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다친 마누라 끌고 계룡대 밖에 나가면 참 무사하겠다. 그치?”
“음···. 그것도 그렇네요.”
안전구역 외에도 레벨업을 이용한 치료법도 알게 되었지만, 모두 부상자인 그의 부인에겐 어찌할 수 없는 그림의 떡과 같은 이야기였다.
괜히 다친 서인호 대령의 부인 이야기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최 소령.
그는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저도 하나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게 있습니다.”
“그래?”
최 소령은 흥미를 보이는 서인호 대령의 모습에 성공적으로 화제를 바꿨다고 생각하며,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혹시 영약이라고 아십니까?”
“영약? 무협지에 나오는 그거?”
“맞습니다. 누군가 산에서 아이템으로 분류가 되는 약초를 캤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초에 능력치 상승 옵션이 붙어 있었답니다.”
“오, 확실히 처음 듣는 이야기네. 말대로라면 진짜 영약이라 불러야겠어.”
서인호 대령은 최 소령의 이야기에 흥미를 표하며 그 내용을 문자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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