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는 무인도 (1)
***
단 30분.
이상 현상이 지구에 발생하고, 도시가 기능을 잃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예고 없이 나타난 몬스터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생존자들은 건물 속에 숨어 구조를 기다렸다.
“씨발. 정부는 뭐하는 거야.”
“뭐하겠어. 안전하게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탁상공론이나 벌이고 있겠지.”
대한민국은 군사 강국이다.
특히 육군에 한해서라면 미국과 러시아, 중국 다음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하다.
하지만 그런 강대한 육군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국에서 일시에 발생한 대재앙을 바로 진압하는 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육군 대부분이 전방에 집중되어 있는지라 민간인 구조를 위한 부대 전개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타탕! 타타타타!
“어? 총소리?”
“군인이다! 군인!”
“사, 산 건가?”
그리고 어찌어찌 부대가 전개되더라도 문제가 끊이질 않으니···.
몬스터는 죽이고 또 죽여도 다시 등장하고, 수십 수백만의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는 등장하는 몬스터의 자릿수부터 달라서 민간인의 구조가 쉽지 않았다.
“어어? 군인들이 물러가는데?”
“뭐? 아니, 왜!?”
물론, 대량살상 무기를 사용하면 조금은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민간인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도시에서 그런 무기를 펑펑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
덕분에 군대의 파괴력은 반감되고, 개인화기에 의존해 몬스터와 줄다리기를 하니, 사태가 해결될 리 없었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을 구하려고 부대를 분산시키니까 해결이 안 되지. 부대를 집중시켜서 한 지역씩 장악해 나가야 돼.”
“사실 사람들을 구조해도 문제야. 이 많은 사람을 어디에 수용하는데?”
“만약 수용할 곳을 찾더라도, 공장이 멈추고 자원 수급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식량 문제는 금방 닥칠 거야.”
그렇다 보니 상황판단이 빠른 사람들은 무작정 구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뭐? 직접 움직이자고?”
“미쳤어?”
당연히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일리 있어.”
“방법은 있고?”
일부 공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인터넷을 보니, 지금 세상에 닥친 이상 현상은 게임 시스템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그럼 우리도 그 방식에 적응해야지.”
“설마 괴물들하고 싸우자는 거야?”
“필요하다면.”
“미친!”
“지금까지 괴물들이 달려드니까 도망치기만 했지 맞서 싸울 생각은 안 했잖아. 여럿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승산 있어. 약한 괴물들부터 차근차근 잡아가는 거지.”
“너무 극단적이야. 기껏해야,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움직이자느니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괴물이 존재하는 한 안전은 없어. 안전을 손에 넣고 싶다면, 개죽음을 당하지 않을 정도의 능력이 있어야 해.”
“차라리 경찰서의 무기고를 털자고 하지?”
“그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경찰서를 털든, 괴물을 잡고 레벨을 올리든, 결국 외부 활동을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야.”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다양한 생각이 존재했다.
진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월등히 많지만,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자 하는 도전자는 계속해서 생겨났다.
“어? 거대 늑대가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은데?”
“이런 미친! 도망쳐!”
“어? 오, 오지 마!”
-크아아앙!
“끄아아악! 살려줘! 사, 살려!”
“뭐해! 다 같이 찔러!”
“꾸, 꿈적도 안 하는데?”
물론, 도전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몬스터에겐 정해진 활동 구역이 있지만, 어그로가 끌리면 그 자리를 벗어나 달려들고, 어그로 범위도 넓어서 원치 않는 몬스터와의 전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랑 다이어 울프 같은 강력한 피지컬의 몬스터가 달라 붙으면 사람들의 도전정신은 순식간에 후회와 절망으로 바뀌었다.
“너 검도 선수였다며! 뭐하는 거야!?”
“병신아! 실전하고 경기랑 같냐!”
“인터넷에 누가 쓴 글 보니까, 몬스터는 게임처럼 싸울 때 일정 패턴이 있대! 잘 보고 분석해봐!”
“뭐라는 거야! 당장 목숨이 간당간당 한데 누가 그런 걸 신경 쓰겠냐!”
괜히 인간 분쇄기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닌 것처럼, 하나의 파티가 다시 그랑 다이어 울프에 의해 전멸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몬스터 사냥.
분명 많은 사람이 도전하고 있지만, 적응이 쉽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그런 면에서 서백호는 여러모로 매우 희귀한 케이스에 속했다.
운과 냉정함, 적절한 전투 센스를 가진 그는 남들과 달리 너무도 손쉬운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
-크와아앙!
“이제 하나도 안 무섭다. 똥개야.”
나는 달려드는 그랑 다이어 울프의 기세에 움츠러들지 않고, 편하게 검으로 주둥이를 올려쳤다.
-쾅!
그러자 녀석의 목이 훤히 드러나고, 나는 그런 그랑 다이어 울프의 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스킬을 사용했다.
‘마력탄.’
-팟!
핏물이 튐과 동시에 그랑 다이어 울프의 목젖에 구멍이 생겼다.
마력탄의 위력은 진짜 총알에 미치지 못할 뿐, 일반적인 칼질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크륵.
아무래도 마력탄이 목젖에 구멍을 낸 것에 그치지 않고 목뼈에까지 타격을 준 듯 그랑 다이어 울프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목이 뚫려 고통스레 헛숨을 쉬던 녀석이 혀를 길게 내빼며 죽음을 맞이했다.
-파앗!
너무도 쉽게 끝나버린 전투.
그랑 다이어 울프는 이내 빛이 되어 사라지고 보상 메시지가 떴다.
“이제 슬슬 스킬 사용이 익숙해진 느낌이네.”
현재 레벨은 13.
황금 고블린을 처치하고 난 후, 레벨 1이 더 올랐다.
레벨업에 따른 능력치 포인트는 순발력에 투자했고, 그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10을 달성했다.
능력치가 전부 기본 수치의 두 배가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내 신체 능력은 어느 운동을 하더라도 올림픽 금메달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수준이 되었다.
서전트 점프는 1.5미터가 가볍게 넘고, 달리기도 100미터 마의 9초를 돌파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근력이 크게 증가해서 그랑 다이어 울프와의 힘 싸움에도 쉽게 밀리지 않으니, 일반적인 인간의 규격을 초월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단순 운동 능력만 그 정도라는 거지.’
높아진 신체 능력에 도약 스킬을 더하게 되면, 영화 속 슈퍼히어로 수준의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다.
도약은 높이 뛰기 용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앞으로 뛰쳐나가는 순간에 사용하면 돌격 스킬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비록 마력 소모량이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전투에선 다양한 옵션이 되어주는 만큼 아주 유용했다.
“이 정도면 연습은 충분하겠지.”
당장에라도 안전구역에 쳐들어갈 것처럼 굴어 놓고 그랑 다이어 울프와 놀고 있는 이유는 높아진 신체 능력과 새로 얻은 스킬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성장세가 가파른 만큼 새로이 얻은 능력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다.
“일단 마력부터 충전하고.”
이제 충분히 조율이 된 것 같으니 안전구역으로 향하려 한다.
하지만 그전에 컨테이너 앞에 쳐놓은 안전 텐트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소비된 마력을 충전하기 위함이다.
마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차오르는데,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앉아 있을 때가 충전이 빠르고, 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안전텐트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 빠르게 충전이 된다.
‘충전 끝.’
충전 시간은 마력 1에 10초 정도가 소요된다.
앉아서 쉬면 20초, 가만히 서 있으면 1분의 충전 시간이 소요된다.
[안전 텐트를 해체하시겠습니까? YES/NO]
“예쓰.”
잠시 후, 텐트를 해체한 나는 계획을 실행했다.
일단 그랑 다이어 울프 영역을 피해서 폐가 마을에 접근했다.
그리고 오크 영역을 앞에 두고 안전 텐트를 설치했다.
[안전 텐트를 설치합니다. 설치 해제는 10분 후부터 가능합니다.]
참고로 안전 텐트는 전투 중엔 설치가 안 된다.
마음 같아선 더 가까이 가고 싶지만, 오크에게 어그로가 끌린 순간 전투 상태로 인정이 되기 때문에 이곳이 가장 안전하게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거리였다.
이제 무얼 하냐.
‘마력탄.’
오크를 끌고 오면 된다.
나는 마력탄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크를 공격했다.
-팍!
[오크를 토벌하여 경험치 50을 획득했습니다.]
[오크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9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오크 가죽 1장을 획득했습니다.
시작부터 운이 좋다.
마력탄은 코를 파고 있던 오크의 미간을 그대로 꿰뚫어 버렸고, 즉사 판정이 떴다.
-크락!
이왕이면 서로 멀리멀리 떨어져 있어서 하나씩 저격으로 죽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녀석들은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한놈이 죽자마자 나머지 놈들이 한 번에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남은 오크의 숫자는 총 다섯.
나는 녀석들이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 마력탄을 날렸다.
[오크를 토벌하여 경험치 50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움직이는 상대를 맞히는 건 쉽지 않았고 다행히 한 마리를 추가로 제거할 수 있었다.
남은 오크들과 나와의 거리는 약 2미터.
거친 숨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가까워졌다.
흉흉한 기세로 달려온 오크 4마리가 돌도끼를 치켜든 그 순간.
“바이.”
나는 한 걸음 물러나 안전 텐트의 몬스터 접근 금지 구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오크 4마리 걸음을 멈추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안전 텐트의 효과 확실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지?’
이후 벌어진 전투는 졸렬함의 극치였다.
나는 안전 텐트의 안전구역을 들락날락하며 녀석들과 싸웠고, 오크들은 어리버리를 까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안전 텐트는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주는 대신 나도 몬스터를 공격할 수 없어서 이런 식으로 싸워야 했다.
[비정상적인 전투 방법으로 인해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전투 방법으로 인해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전투 방법으로 인해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전투 방법으로 인해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는 이런 내 졸렬함을 나무라듯 항의를 보내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목적은 달성했다.
내 목적은 안전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오크들을 치우는 거지, 경험치 벌이가 아니다.
당연히 나도 무협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장풍(마력탄)도 쏘며 멋지게 싸워보고 싶지만, 굳이 익숙하지 않은 다대일 싸움으로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흠흠, 그럼 안전구역에 들어가 볼까?”
나는 당당하게 텅빈 오크 영역을 지나쳐 안전구역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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