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는 무인도 (3)
한국에 위치한 NPC라 그럴까?
윌리아는 동양인의 외모를 갖고 있다.
참한 외모에 그렇지 못한 강력한 몸매.
남자라면 모두가 반할 수밖에 없는 부류의 미인이다.
그런 여성이 오해할 수밖에 없는 대사를 내뱉으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뒤늦게 그녀가 던진 공이 변화구란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 윌리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아, 동료요? 좋은 시스템이네요.”
“뭔가 아쉬워 보이시는데요?”
“제가요? 아닌데? 무슨 말씀이시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일부러 오해할 수밖에 없는 뉘앙스를 풍긴 게 분명했다.
아까 스킨쉽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주 요망한 NPC다.
NPC라고 해서 게임 속 인공지능처럼 정해진 일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같은 지성과 개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얼른 화제를 바꿨다.
“사람 중엔 NPC를 괴롭히거나 해코지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 어떻게 대응하죠?”
딱히 그녀를 해코지하겠다는 마음으로 물은 게 아니다.
나도 윌리아란 존재를 처음 봤을 때 거부감이 들었다.
분명 사람 중엔 NPC들을 재앙을 일으킨 원흉의 끄나풀 정도로 여기고 공격하는 경우도 있을 거다.
이번 일로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일수록 더더욱.
“저희는 기본적으로 시스템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 없이는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죠.”
“그렇군요.”
자신만만한 태도.
나는 시스템의 보호란 게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궁금해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쿡 찔렀다.
방어막 같은 게 생겨서 접근을 막는 거려나?
-푹.
그런데 아무런 방해 없이 손가락이 부드러운 살에 파묻혔다.
“······? 손댈 수 있는데요?”
이런 내 돌발행동에도 그녀는 친절함을 잃지 않고 말했다.
“제가 서백호님에게 흥미가 있거든요. 그래서 막지 않은 겁니다.”
마치 유혹하는 듯한 모습에 기겁한 나는 손가락을 뗐고, 그런 내 눈앞에 의외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NPC 윌리아의 호감도 20% 상승했습니다.]
“이건?”
뺨을 찔렀더니, 호감도가 올랐다?
영문 모를 상황에 나는 윌리아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예요.”
지나치게 친절하다.
이 섬에 인간이 나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순조롭게 레벨업 중인 사람이라서?
아무튼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호감도라는 건 NPC의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고로 동료로 영입하기 위해선 호감도가 80을 넘어야 합니다.”
“호감도를 높이는 방법은요?”
“보통 사람들처럼 차근차근 친분을 쌓아가거나, 제가 하는 부탁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부탁은 퀘스트를 의미할 것이다.
내겐 기준이 모호한 친분 쌓기보다 퀘스트가 공략하기 편해 보였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저에게 할 부탁은 없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레벨을 20까지 올리셔야 부탁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레벨이 13이니, 7은 더 올려야 한다.
머쓱해진 나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이 신전에서 물을 구할 수는 없나요?”
“애석하지만 없습니다.”
“엥? 윌리아 씨는 물 안 마셔요?”
“물이나 음식 등을 먹을 수는 있지만, 굳이 먹지 않아도 활동에 지장은 없습니다.”
“윌리아 씨는 레벨이 몇입니까?”
“정해진 레벨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백호님의 동료가 된다면 자연히 제 레벨도 서백호님과 같아질 겁니다.”
“보유 스킬은 힐과 블레스 두 개뿐입니까?”
“네. 하지만 조건에 맞는 스킬은 추가로 습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는 것처럼요.”
“신관 스킬 중에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부활은 없나요?”
“없습니다.”
일방적인 질문과 답.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질문을 마구 던졌고, 그녀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답을 주었다.
“안전구역의 규모는 조금씩 차이가 있던데, 이건 단순히 랜덤입니까? 아니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겁니까?”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런 오지에 신전과 윌리아 씨가 배치된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신전이 기리는 신은 누구입니까?”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질문이 무거워졌고, 결국 호감도 부족으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질문 타임을 끝낼 때가 온 것이다.
“귀찮을 텐데, 친절하게 답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만 움직이는 건데 어려울 건 없죠.”
새삼 호감도 시스템이 참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NPC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스윽 신전 내부를 살펴본 나는, 미련 없이 윌리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용건은 끝났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때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가시려고요?”
“네, 할 일이 많으니까요.”
상점에서 식료품을 팔았다면 조금은 쉬웠을 텐데, 식수든 식량이든 뭐든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 해가 떠 있는 동안 일을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윌리아란 NPC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미인이지만, 그 미모가 배를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아쉽네요. 대화 상대가 생겨 기뻤는데···.”
그러지 마라.
그럼 나 또 오해한다.
“자주 오겠습니다. 좋든 싫든 저도 대화 상대가 당신뿐이니까요.”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서백호님의 재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신전을 나선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윌리아를 마주한 순간 들었던 적개심도 어느새 사라지고, 묘하게 발걸음이 무거운 게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마치 뭐에 홀린 느낌이다.
“NPC들이 모두 저런 느낌인가?”
NPC가 모두 윌리아 같다면 사람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 같다.
하나는 적개심에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외모에 빠져서 허우적대거나···.
아무리 봐도 저건 사람을 홀리는 요물이다.
*
안전구역을 벗어나자 오크들이 다시 리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등 뒤에 안전구역을 낀 상태로 이전에 사용했던 ‘졸렬 전투’를 재현했고.
[비정상적인 전투 방법으로 인해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전투 방법으로 인해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전투 방법으로 인해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무사히 안전 텐트를 수거한 뒤 베이스 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 가는 태양에 나는 바삐 움직여 굴과 섭을 캐오고, 상점에서 사 온 내화벽돌로 간이 아궁이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땔감을 구해오니, 어느새 완전히 밤이 되어 있었다.
“안전 텐트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무인도의 밤은 어둠 그 자체다.
다행인 건 안전 텐트에 조명 기능이 딸려 있어서 텐트 문을 열어 놓으니, 충분히 시야 확보가 된다는 거다.
나는 상점 주방코너에서 구입한 은박지에 섭과 굴을 싸서 타오르는 땔감 속에 던져 놓고, 냄비에 바닷물을 받아와 끓이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끓여서 냄비 뚜껑에 맺힌 물방울은 바로 먹어도 되는 담수니, 잘 걷어서 모았다.
그 결과 30분이 지나지 않아 깨끗한 물 한 컵과 잘 구워진 조개 구이를 획득할 수 있었다.
“후우, 후우. 앗뜨.”
아주 배부른 정도는 아니어도 충분히 한 끼가 되는 양이었다.
조개구이를 해치우고 단숨에 물 한 잔을 들이킨 나는 텐트 앞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도시에선 보이지 않던 별들이 너무 잘 보인다.
상황에 맞지 않게 밤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감상을 내뱉었다.
“완전 감성 캠핑이네. 빌어먹을.”
그리고 디저트로 한 움큼 따온 산다래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먹으며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한차례 어머니와 통화를 마쳤지만, 그땐 한창 일하고 있던 때라서 여유롭게 통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 아들!]
어머니는 반갑게 내 전화를 받으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곧이어 엄청나게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하셨고, 머지않아 내 걱정에 울먹이셨다.
그때, 아버지가 옆에서 안 그래도 힘든 애 힘 빠지게 하지 말라는 말이 들렸다.
어머니도 아차 싶으셨는지, 결국 애써 웃으며 힘내라고 나를 응원하셨다.
[조심 또 조심하고. 괴물들 근처로는 가지도 마.]
“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야말로 몸조리 잘하시고요.”
나는 차마 어머니에게 강해졌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몬스터와 싸우며 레벨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경기를 일으킬 테니 말이다.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이번엔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거긴 정말 괜찮은 거예요? 인터넷 보니까 다들 난리도 아니던데.”
[육군, 공군, 해군 사령부가 모여 있는 곳이 계룡대 아니냐. 고난에 빠진 국민들에겐 미안하지만, 이곳의 안보태세는 청와대 못지않아서 아주 안전해.]
부모님의 안전이 보장되어 있다는 게 지금의 상황에선 축복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나는 내 신변만 걱정하면 되는 거니 말이다.
“그런데 군인들이 명령에 잘 따르긴 해요? 가족들이 위험에 빠져 있는 상황에선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텐데.”
[아무래도 그렇지. 그래서 탈영병이 많긴 한데, 얌전히 지시에 따르는 장병이 더 많아. 전시나 다름없는 지금 상황에서 탈영해봤자 그 끝은 좋지 않을 테니까.]
“다들 불쌍하네요.”
[불쌍하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군대.
하지만 지금 복무를 하고 있는 남성들은 완전히 코가 꿰이고 말았다.
어쩌면 무인도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 빼면, 내 상황이 훨씬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신전? 거기에 신전이 있다고?]
이후 우린 통화로 그사이 손에 넣은 정보를 교환했다.
그러다가 신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버지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단순히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놀라신 느낌이랄까?
[젠장. 하필이면···.]
“왜 그러세요?”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에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신전이 10개 정도 목격되었어. 그런데, 문제는···.]
“문제는요?”
[그 신전 주변엔 꼭 사람을 잡아가는 위험한 던전이 존재한다는 거야.]
“······. 네?”
[너도 게임을 해봤을 테니, 던전이 뭔지 알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나는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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