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탈출 (1)
아버지는 내게 제안할 게 있다고 말씀하시며, 일단 그 계획을 밝히기 전에 두 가지 실험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실험이요?”
[하나는 드론을 날려서 섬에 비행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해보는 거야.]
나는 바로 드론을 날렸다.
그 결과.
-키에엑!
“이, 있어요!”
드래곤을 작게 축소 시켜 놓은 듯한 몬스터 3마리가 매섭게 소리를 내지르며 드론을 쫓아왔다.
비행 몬스터가 발견된 곳은 아직 가보지 않은 월광도의 북부.
나는 필사적으로 드론을 도망치게 하여, 나중에 주우러 갈 수 있게끔, 안전구역 근처에 떨궜다.
비행 몬스터의 존재를 확인해서 다행이다.
아버지가 사전에 탐색을 시키지 않았다면 자칫 돌발상황을 겪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멋대로 와이번이라 이름 붙인 녀석들은 드론이 조용해지자 다시 자신의 구역으로 날아갔다.
[두 번째 해줬으면 하는 실험은 이동하는 뗏목 위에 안전텐트를 설치할 수 있냐는 거야.]
어버지 천재신가?
움직이는 이동체에 안전텐트를 설치하다니?
꽤나 기발한 아이디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여러 방법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안전텐트는 고정된 장소에만 설치할 수 있습니다.]
“실패네요···.”
하지만 모든 게 뜻대로는 되지 않는 법.
아쉽게도 해당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아버지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으셨다.
혹시 계획이 한 가지가 아니셨던 건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잠깐의 휴식 후.
아버지는 진지하게 제안을 해왔다.
[일단 유인섬으로 이동하는 게 어떻겠니?]
“유인섬이요?”
예상치 못한 제안.
홀로 고립되어 있지 말고, 일단 사람들 속에 들어가란 의미 같다.
그런데 이 근처에 유인섬이 있던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의도라는 섬 알아?]
“알죠, 태안에 위치한 제법 큰 섬이잖아요? 그것도 육지랑도 꽤나 가까운.”
누가 지은 건진 몰라도 서해의 하와이란 별칭을 가진 섬이다.
인구는 많지 않지만, 두 개의 항구를 갖고 있고, 숙박시설도 제법 있는 데다가 관광객과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 매일 여객선이 들락날락하는 섬으로 알고 있다.
자세히는 아니어도 대충이나마 가의도를 알고 있는 이유는 월광도와 그 유명한 격렬비열도가 ‘가의도리’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의도에 안전지대와 웨이포인트가 존재하는 게 확인이 된 상태야.]
주민들이 거주하는 웨이포인트가 있는 섬.
확실히 이곳보단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니···.
월광도에서 가의도까지는 10km 이상 떨어진 꽤나 먼 거리란 점이다.
“하지만 어떻게 가죠? 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버지가 배를 보낸다면 애초에 가의도로 가지 않고 태안으로 바로 가면 된다.
이런 제안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비행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긴 배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배도 쓰기가 힘들어.]
아아, 하긴 비행 몬스터가 비행기만 공격하란 법은 없지.
아버지는 무게감 있는 톤으로 말했다.
[그러니, 너는 가의도까지 걸어서 가야 해.]
그런데 진지한 말투와 달리 이어진 이야기가 너무 황당해서 나는 벙찐 표정을 지어야 했다.
“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10km 넘게 떨어진 섬까지 걸어서 가라고?
내가 레벨을 많이 올려서 무협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내 반문에 아버지는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월광도와 가의도 사이에 웅도와 단도란 섬이 있어.]
“네, 알아요.”
[그런데 그 두 개의 섬이 간조 시간이 되면, 물이 빠지면서 가의도와 육로로 연결된다고 하더라.]
아버지가 대충 하고자 하는 말씀을 알겠다.
즉, 그 중간 섬에 닿기만 하면 간조 시간 때 가의도까지 걸어갈 수 있단 뜻이다.
그런데 가의도에 바닷길이 열리는 이벤트가 있었나?
‘뭐, 월광도도 몇 배가 커졌는데, 그깟 바닷길쯤이야 생길 수도 있지.’
워낙 이상 지형이 많으니, 간조 때 바닷길이 열리는 것쯤은 애교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주장엔 여전히 문제가 있다.
“그런데 월광도에서 가까운 웅도 역시 5km 이상 떨어져 있을 텐데요?”
5km면 수영으로 도전해볼 만한 거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신체가 크게 강화된 데다가 수영 실력도 준수한 편이니까.
하지만 가능할 것 같다고 해서 도전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자칫 방향을 잃으면 망망대해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는 게 바다수영이다.
[웅도 말고 가까운 섬이 또 있어.]
-띠링.
그때 아버지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뭔가 싶어서 열어보니, 위성 사진이 담겨 있었다.
딱 짚어 내 주변을 찍은 게 아니라, 충청남도의 사진이 찍혀 있었는데, 구석에 빼꼼하고 월광도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
별생각 없이 사진을 살핀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의도와 월광도 사이에 위치한 섬은 웅도와 단도.
그 두 개의 섬은 가의도쪽에 붙어 있어서 월광도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
그런데.
“설마 이상지형입니까?”
[맞아, 가의도에 바닷길이 길게 열리는 원인이 그 이상 지형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지도에는 가의도와 월광도 사이에 자리한 섬은 두 개가 아닌 세 개였다.
새로운 섬이 하나 솟아났다는 뜻이다.
[그 미상의 섬에 닿기만 하면 유인섬인 가의도까지 걸어갈 수 있어. 그 섬과 월광도의 거리는 1.5km다.]
거리가 확 줄었다.
이 정도 거리면 바다 위에서도 그 섬을 보면서 헤엄쳐 나아갈 수 있다.
“바닷속에 몬스터가 있는 건 아니죠?”
[해군이 계속 소나로 확인하고 있는데, 아직 바다 속에 몬스터가 확인된 적은 없어.]
당장 수중 몬스터가 없다고 쭉 없으란 법은 없다.
비행 몬스터도 갑자기 업데이트되듯 생겨났으니까.
시간을 끌다가 수중 몬스터가 생기면 월광도 탈출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일단 가의도에 갔다가 웨이포인트를 타고 다시 월광도로 돌아오자. 그곳의 웨이포인트만 활성화시키면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으니까. ’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가의도는 육지와 가깝지 않은가.
언제고 육지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되어 줄 것이다.
‘아마 아버지도 그걸 바라고 육지와 가까운 가의도로 나를 보내시려는 거겠지.’
생각이 정리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할게요.”
[내가 한 제안이지만, 정말 조심해야 한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인벤토리에 비상 상황을 대비한 물품들 꼭 챙겨가도록 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너라면 잘할 것 같아.]
바다만 잘 건너면 크게 위협이랄 것 없이 가의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많은 조사를 하셨다는 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인지라,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셨다.
*
간조에 의해 가의도의 바닷길이 열리는 건 하루 2번, 이동 가능한 상태는 2시간 정도가 유지 된다.
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나고 8시간 후에야 이동 가능한 상태가 되었기에 나는 한타임 더 몽마의 던전을 돌고 왔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레벨이 25다.
“설마 안 돌아오시는 건 아니죠?”
오늘 하루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몬스터와 드잡이질을 했기에 나는 피로를 해소하고자 안전구역을 찾았다.
내가 가진 ‘회복의 반지’만으로도 어느 정도 피곤함이 가시지만, 안전구역이 효과가 더 강력하고, 윌리아에게 힐을 받으면 완전히 쌩쌩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호감도: 28%]
나는 윌리아에게 잠시 월광도를 떠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크게 놀라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어쩐지 그런 모습도 연기처럼 보이지만, 내 말 하나, 내 행동 하나에 따라 호감도가 오르고 내릴 수도 있으니 예쁜 말만 해야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곳에 가더라도 웨이포인트만 찍어두고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 전 이 월광도가 마음에 들거든요. 윌리아 씨와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고요.”
“정말요? 다행이다.”
여자친구 눈치도 이렇게까진 안 살필 거다.
하지만 뭐···.
윌리아가 예뻐서인지 마주 보고 대화하면 재밌긴 하다.
‘서큐버스들도 예쁘지만, 느낌이 다르단 말이지.’
서큐버스들은 인공적인 느낌이라면 NPC인 윌리아는 정말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다.
윌리아는 대뜸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 보였다.
“머리가 부드러우시네요.”
역시 요물.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
“목욕탕 다녀왔거든요.”
정확하겐 씻는 것보다 수분섭취에 목적을 두고 들른 목욕탕이었다.
하지만 겸사겸사 씻길 잘한 것 같다.
[윌리아의 호감도가 2% 상승했습니다.]
[윌리아의 호감도가 30%를 달성했습니다.]
이렇게 보너스가 있으니까.
‘한 번에 5~10%씩 오르면 안 되나? 처음엔 잘 오르는 것 같더니만···.’
첫술에 어찌 배부르겠는가.
윌리아와의 호감도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한다.
“블레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월광도를 떠나기 전 윌리아에게 한 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를 20% 상승시켜 주는 버프를 받았다.
사용료는 20코인.
“별일 없으실 거예요. 이건 응원선물입니다.”
-쪽.
내게 힘을 내라며 뺨에 아주 살짝 입을 맞춰오는 윌리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호감도 30%에 볼 뽀뽀를 받았다.
그럼 50%는? 80%는? 100%?
흐뭇한 망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씩씩하게 월광도 안전구역을 나섰다.
*
바다와 일반 수영장에서의 수영은 차원이 다르다.
일반 수영장에선 내가 힘을 쓰는 만큼 앞으로 쭉쭉 나아간다면, 바다는 파도와 조류를 이겨야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간다 해도 수시로 방향을 잃을 것이다.
바다가 나를 이리 밀고 저리 밀어서 방해를 해올 테니까.
“스트레칭부터.”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블레스 효과까지 더해 일반인의 3배가 넘는 능력치를 보유한 상태이고.
[근력: 13(+4), 순발력: 15(+3), 마력: 11(+5)]
-블레스(능력치+20%)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회복의 반지와 꽤 많은 포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후웁, 후우···.”
무엇보다 인벤토리라는 필살기가 있다.
나는 수영을 하다가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상점 건축자재 코너에서 산 대형 스티로폼 단열재들을 꺼내 들 것이다.
하나하나가 뗏목 수준의 부력을 지닌 것들이니 올라가 휴식을 취하기 안성맞춤이다.
심지어 딸랑 하나만 산 게 아니라, 인벤토리 한 칸이 보관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인 100개를 사서 채워놨다.
이정도면 바다 위에 작은 섬을 만들 수 있을 정도.
이동 중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과잉 대응이 되어 버리지만, 나는 안전이 최고로 중요하기 때문에 모자란 것보다 과한 게 낫다고 생각한다.
“가자.”
1.5km의 거리.
공교롭게 올림픽 철인3종의 선수들이 수영하는 거리와 같다.
선수들은 보통 20분대의 기록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걸릴까?
-찰박. 찰박.
나는 아저씨들처럼 물로 심장마사지를 하며 바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예열하듯 천천히 헤엄치기 시작했다.
‘가자, 유인섬 가의도를 향해.’
아마도 ‘잠깐의 외출’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꽤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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