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탈출 (2)
*
오전 9시 즈음의 고요한 아침의 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파도를 조심조심 헤치며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최대한 물장구를 치지 않고, 중간중간 잠영으로 바닷속에 몸을 숨기며 월광도가 멀어질 때까지 조용히 헤엄쳤다.
그럼에도 전진 속도가 그리 느리지 않은 게 의외인 부분.
모두 능력치가 높은 덕분이다.
‘이제 조금씩 속도를 높여도 되겠지?’
내가 이리도 조심스레 헤엄을 치는 이유는 비행 몬스터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함이다.
비행 몬스터는 소음에 민감하고 눈도 좋은 편이라 들었다.
그래서 나는 검은색 옷으로 전신을 감싸고 조용히 헤엄을 치면서 최대한 이목을 끌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통했는지 점차 월광도와 멀어졌고, 조금씩 헤엄치는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우왁! 시팔 깜짝이야. 뭐야 저거?’
그렇게 1차 목적지인 미상의 섬에 절반 이상 도달했을 때.
나는 바다 속에서 보이는 몇몇 커다란 그림자를 발견했다.
상어나 고래인가 싶어 실루엣 고글을 꺼내 눈에 대봤더니···.
‘이, 이거 아무래도.’
누가 봐도 물고기의 형상이 아닌, 기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실루엣 고글은 인간과 NPC는 흰색, 몬스터는 붉은색으로 표시하며 그 외의 것은 회색으로 표시한다.
이형의 존재들은 방금까지 회색이었으나, 점차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파파파파파파!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고, 세상을 살다 보면 ‘공교롭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쉽게 말해 엿 됐다는 뜻이다.
‘시팔! 왜 하필 지금 수중 몬스터가!’
잔잔한 바닷속에 몬스터들이 스폰되기 시작했다.
비행 몬스터가 갑자기 업데이트되듯 나타났을 때, 언제고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타이밍이 최악일 줄은 몰랐다.
만약 사전에 이상을 알아챘다면 굳이 월광도를 벗어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절반 이상 온 상태여서 월광도로 돌아갈 수도 없다.
무조건 눈앞에 보이는 미상의 섬에 도달하는 수밖에.
-파파파팟!
다행히 아직은 수중 몬스터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수시로 꿈틀댈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느낌이지만, 머지않아 녀석들이 공격해올 것 같았다.
‘도망쳐야 돼.’
나는 이 잠깐의 여유를 허투루 쓰지 않고 전력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난 인간 모습을 한 돌고래.
피륙으로 이뤄진 모터보트다.
-키에에엑!
요란하게 솟구치는 물보라 덕분에 머지않아 월광도에 있던 와이번들에게 발각당하고 말았다.
비행 몬스터가 아무리 눈이 좋다고 해도 설마 이 거리까지 날아오겠나 싶었는데···.
‘어쩔 수 없어! 와이번보다 바닷속의 저것들이 훨씬 위험해 보이니까!’
일단 육지에 닿아야 뭐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뒤도 안 보고 전력으로 계속 헤엄쳤다.
‘젠장!’
그러다가 와이번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현재 미상의 섬과의 거리는 약 300미터.
내가 그 섬에 닿는 것보다 와이번이 내게 닿는 게 훨씬 빨라 보였다.
-키에에엑!
나는 결국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비상용으로 사온 2m*2m사이즈의 거대 스티로폼들을 꺼냈다.
-투투투투
핑크색의 스티로폼들이 따발총처럼 요란하게 허공에 떠올랐다가 하나씩 해수면 위로 착지했다.
상점에서 파는 수많은 물건 중 이 단열 스티로폼을 대량으로 챙겨온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높은 부력을 가진 만큼 어렵지 않게 위에 올라탈 수 있어서고.
다른 하나는 강렬한 핑크색의 색감으로 바다를 뒤덮으면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핑크빛 스티로폼으로 뒤덮인 바다 아래를 잠영으로 이동했다.
-키엑?
와이번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워했다.
웬 미친 인간이 요란하게 헤엄을 치고 있어서 잡아먹으러 왔더니, 핑크색 똥을 거하게 싸지른 것 아니겠는가.
녀석들은 스티로폼이 넘실대는 바다 위를 배회하며 나를 찾아다녔다.
“푸핫!”
-키아아!
그러다가 호흡을 위해 바다 위로 고개를 내밀 때면, 기세 좋게 덤벼들었으나, 곧바로 잠영으로 도망치니 쉽게 나를 잡지 못했다.
장거리의 바다 수영에선 호흡이 편한 자유형이 잠영보다 월등히 빠르다.
비록 이전만큼의 속도는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능력치가 높은 덕분에 잠영 한 번으로 수십 미터씩 이동할 수 있었다.
“푸핫!”
-키아아악!
“푸핫!”
-키아아악!
그렇게 두더지 게임을 하듯 핑크색으로 물든 바닷속을 헤엄쳤을까?
드디어 목적지인 섬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미친!’
그러나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였으니···.
-슈우우욱!
잠자코 있던 수중 몬스터들이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등 뒤로 느껴지는 기척이 하나하나 범상치 않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대형 몬스터들이 나를 쫓아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푸핫!”
결국, 나는 물 밖으로 도망쳤다.
-흠칫.
그리고 스티로폼을 밟고 서서 바닷속으로 시선을 옮기니···.
주변 공간을 잠식하며 다가오는 거대한 아가리들을 볼 수 있었다.
‘도약!’
나는 기겁하며 스티로폼 여러 개를 겹쳐 밟고 도약 스킬로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뒤이어 상어 몸에 아귀 얼굴을 붙여 놓은 듯한 거대 물고기와 바다공룡같은 몬스터가 나를 따라 솟구쳤다.
대체 크기가 얼마나 큰 걸까?
10미터? 20미터?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온몸에 소름 돋았다.
-텁!
다행히 녀석의 입은 내게 닿지 못했다.
도약 스킬에 마력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은 덕에 족히 30미터는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에 초거대 아귀와 공룡이 있었다면.
하늘엔 이 녀석들이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키에엑!
지금까지 내게 실컷 놀림을 당한 와이번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활강을 하고 있었다.
‘어? 각도 좋고?’
그런데 이때, 나는 하나의 도주로를 포착했다.
점프가 고점에 달해 슬슬 자유낙하를 시도할 때쯤, 눈앞으로 칼날과도 같은 발톱을 세운 와이번들이 날아들었다.
나는 그 녀석과 충돌하기 직전.
‘중급 방어막 생성!’
황금 고블린을 처치하고 얻었던 매직 로브의 내장 스킬을 사용했다.
-콰앙!
그러자 발톱이 살을 파고드는 소음이 아닌 망치로 철판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나는 포환처럼 날아갔다.
‘땡큐!’
포환이 된 나의 예상 낙하지점은 다름 아닌 오늘의 1차 목적지, 미상의 섬이다.
나는 그대로 수풀이 우거진 산에 추락했다.
“큭!”
방어막이 추락의 충격을 일부 흡수해주었지만, 그럼에도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상당했다.
“드디어 땅이네. 하하···.”
나는 회복의 반지에 내장된 스킬인 중급 회복으로 부상을 치료하곤 어서 더욱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몸을 숨겼다.
-키에에엑!
계속 나에게 끌려다니다가 끝내 이용까지 당한 와이번의 분노어린 외침이 울려 퍼졌다.
‘앞으로는 바닷속에 못 들어갈 것 같다.’
갑자기 수중 몬스터가 등장하는 바람에 정말 골로갈 뻔했다.
저런 위험한 바다를 무사히 빠져나온 내가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비록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해양 쓰레기를 만들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는 상점표 아이템이 꽤나 친환경 제품이기 때문이다.
[해당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원자재 상태로 방치할 경우 일주일 후, 자동 소멸됩니다.]
이렇게.
그래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걸음을 옮겼다.
*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이상 지형이라고 해서 반드시 의미 있는 사용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도 그런 걸까?
섬이 원체 작기도 했지만, 몬스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줄은 예상도 못 했다.
덕분에 나는 해당 섬을 빠져나와 갯벌이 드러난 바닷길을 걸을 때까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다.
[방금 해군에게 이야기를 전달 받고 어찌나 당황했는지···. 정말 괜찮은 거냐?]
“네, 괜찮았어요. 아무래도 아들이 악운이 강한 모양입니다.”
[미안하다. 아빠의 제안이 악수가 되어버렸어.]
“아뇨, 이렇게라도 나와서 다행이죠. 이번 타이밍마저 놓쳤다면 앞으로 영영 월광도를 나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해군은 수시로 소나를 이용해 수중 몬스터의 등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수중 몬스터가 등장해 버렸고, 이는 바닷길의 완전 봉쇄를 의미했기에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버지는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나셔야 했지만 말이다.
[후우, 장하네.]
아버지는 쓰게 웃으시며 한가지 전달사항을 알려왔다.
그건 바로.
[가의도에 뭔가 사고가 있는 것 같다. 몬스터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사람끼리의 마찰이.]
“그래요?”
[가의도 이장이 어촌계를 통해 경찰과 군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들었어.]
대재앙이 시작되고 112나 119 같은 신고 전화는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육지의 어촌계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소용없는 짓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는 모르고요?”
[마을주민들과 관광객들 사이에 파벌이 형성되어 있는데, 관광객들이 마을주민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터전을 빼앗았다고 해.]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한쪽의 말만 믿을 수는 없었다.
[요는 섬의 상황이 흉흉하니 최대한 조심하란 이야기야. 굳이 다른 사람들 일에 간섭하려 말고.]
“네, 알겠습니다.”
역시 가의도의 웨이포인트만 찍고 월광도로 돌아가야겠다.
사람들 간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골머리 썩일 필요 없으니까.
‘몬스터들로부터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인간끼리 싸우고 있다니.’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저게 웅도인가?”
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난 후, 미상의 섬을 벗어나 한참 동안 불편한 길을 걸어 웅도에 다다르고, 웅도에서 오크들과 드잡이질을 벌인 후 단도로 향하는 바닷길에 올랐다.
***
-키에에엑!
“뭐, 뭐야?”
가의도의 마을 주민 40대 김용근은 가의도의 새로운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와이번들이 갑자기 포효를 내지르자 기겁했다.
그는 얼른 건물 안에 몸을 숨겼고, 그건 다른 주민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와이번들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의문을 표해야 했다.
“뭐지? 저 새끼들 뭘 발견해서 저러는 거야?”
그런 김용근의 물음에 같은 장소에 몸을 숨긴 그의 아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 김에 그 모리배 녀석들이나 콱 물어가 버렸으면 좋겠구만.”
“아버지, 비행괴물들은 서쪽으로 갔고, 그 인간들은 동쪽에 있잖아요.”
“아, 그런가?”
어쨌든 와이번이 자신들을 발견하고 공격하는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조심조심 실내를 벗어나 마당 앞의 텃밭으로 이동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도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하기에 그들이 하는 일은 이전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아이고, 이 젤리 새끼들이 또 기어 나왔네.”
그러나 그의 텃밭엔 선객이 있었다.
녹색의 반투명한 몸체를 가진 몬스터.
슬라임이었다.
너무도 무해해 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히는 몬스터라 꽤나 위험했다.
[슬라임을 협동 토벌하여 경험치 3을 획득했습니다.]
[슬라임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김용근은 아들과 괭이를 휘두르며 슬라임을 처치했다.
그에 따라 조촐한 경험치와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뭐야, 슬라임 잡아 레벨업 해서 복수하시게?”
“음?”
슬슬 밭일을 시작하려는데.
20대의 한 사내가 두 사람에게 이죽거리며 다가왔다.
김용근은 그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고.
사내는 그런 김용근의 행동에 피식 실소를 흘리며 물었다.
“방금 도마뱀 새끼들 어디로 날아갔어?”
“몰라, 네놈을 물어 죽이려 갔나 보지.”
“이 아저씨 말본새 보소?”
김용근의 말에 사내는 발끈했고, 아들은 빠꾸 없는 아버지 행동을 만류해야 했다.
현재 가의도는 저 사내의 패거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상황.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이 사내의 물음에 답했다.
“그, 그 괴물들은 서쪽으로 갔습니다.”
그에 사내는 그렇냐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고.
김용근은 혀를 차며 텃밭에서 감자들을 캐기 시작했다.
“오, 감자? 줘봐.”
그리고 사내는 김용근으로부터 감자 한 보따리를 빼앗았다.
김용근은 속에서 솟구치는 화에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여기저기서 몬스터가 몰려들 테고, 아들도 위험에 빠질 수 있어서 참았다.
그런데 그때.
-철컥. 철컥.
서쪽 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사내라기보다 청년이라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은 2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에 말을 삼갔고, 낯선 청년은 세 사람을 스윽 한번 바라보곤 말없이 언덕길을 올랐다.
그런 청년의 허리춤엔 기다란 장검이 걸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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