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8화 (18/273)

던전 탐색 (2)

[윌리아의 시험 / 퀘스트 등급: 중]

-내용: 윌리아는 신전에 배치된 프리스트로 높은 잠재력을 가진 NPC이다.

일부 뛰어난 NPC 중엔 직접 파트너가 될 자를 선택하고, 자질을 시험해 보기도 한다.

윌리아의 시험에 통과하여 그녀의 인정을 받도록 하자.

-달성 조건: 몽마의 던전 타임어택 성공

-완료 보상: 윌리아와의 호감도 20% 상승, 최고급 장비 선택권 1장

윌리아가 건넨 퀘스트의 내용을 살핀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대량의 호감도도, 최고급 장비 선택권도 좋지만, 퀘스트의 내용에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파트너가 될 자를 선택하고 자질을 시험하는 NPC?’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나는 궁금한 점을 솔직하게 묻기로 했다.

내 물음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욕구가 있거든요. 더 강해지고 싶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고. 하지만 주어진 임무가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활동이 힘들죠. 그래서 함께할 파트너가 중요한 겁니다.”

인간처럼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말.

다른 거창한 이유보다 왜인지 그 말이 와 닿았다.

“혹시 다른 NPC의 파트너와 싸움 붙이고 그런 거 아니죠? 막 최강의 1인을 선별한 다던가.”

“흥미로운 아이디어군요.”

농담 삼아 한 말인데, 서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괜한 말을 한 것 같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퀘스트를 수락했다.

“어서 윌리아님과 파트너를 짜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뒤를 받쳐주는 힐러가 있다면 훨씬 안정적인 전투가 가능할 테고, 쓸쓸하게 혼잣말을 하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요.”

내 말에 윌리아는 한 걸음 다가와 힐끗 나를 올려 보며 말했다.

“과연 이유가 그것뿐일까요?”

이 요망한 NPC.

묘하게 사람의 심리를 잘 아는 느낌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에게 버프를 부탁했다.

“바로 도전하시려고요?”

주기적으로 힐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안전구역 때문인지, 그다지 피곤한 느낌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만 쉬려 한다.

모름지기 인간은 잠을 잘 자야 제 컨디션을 발휘하는 종족이니까.

“그럼 버프가 왜 필요하세요?”

“자기 전에 처리해놓을 일이 한 가지 있거든요.”

“일이요?”

나는 궁금한 게 많은 그녀를 향해 따봉을 날리며 답했다.

“개 한 마리 길들이려고요.”

당연히 윌리아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랑 다이어 울프.

덩치가 곰 만한 경험치 100을 주는 늑대형 몬스터.

순수 전투능력은 매혹 스킬이 차단된 하급 서큐버스와 비슷한 수준이며, 공격패턴이 단조로워서 그렇지, 피지컬만큼은 오히려 하급 서큐버스를 압도한다.

“옳지, 옳지. 이리 온.”

내가 갑자기 그랑 다이어 울프의 프로필을 읊은 이유.

그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개목걸이 / 고급]

-개 또는 늑대류의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길들이려 할 경우, 아이템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가의도 도박장에서 따온 테이밍 아이템이다.

나는 해당 아이템을 얻자마자 그랑 다이어 울프를 가장 먼저 떠올렸고, 마침 윌리아의 퀘스트도 받았으니 전력 강화의 수단으로 써먹기로 했다.

‘몽마의 던전에 그랑 다이어 울프를 데려가면 안전성이 높아지겠지.’

하지만 이 개목걸이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르르르릉!

“개목걸이 사용!”

“가라, 개목걸이!”

바로 사용법이 첨부되지 않은 불친절한 아이템이란 거다.

그래서 베이스 캠프 근처에서 단독으로 젠이 되는 그랑 다이어 울프와 대치하며 온갖 쌩쇼를 하고 있는 중이다.

명령어일 것 같은 말이란 말은 전부 내뱉어 보고, 몬스터볼을 던지듯 개목걸이도 던져봤다.

그러나 그랑 다이어 울프는 나를 비웃듯 공격해올 뿐이었다.

“직접 씌워야 하나?”

그건 난도가 너무 높아서 아닌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방법 저 방법 닥치는 대로 도전해 보는 수밖에.

나는 달려오며 칼날과도 같은 이빨을 들이미는 녀석의 공격을 타이밍에 맞춰 피했다.

그리고 그랑 다이어 울프의 주둥이가 아슬아슬 스치고 지나갈 때, 얼른 팔을 뻗어 헤드락을 걸었다.

-크르르릉!

그랑 다이어 울프와 이렇게 가까이 붙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털이 제법 뽀송뽀송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잊으면 안 되는 점이 있으니.

그랑 다이어 울프는 범처럼 앞발을 휘두르는 공격도 즐겨 사용한다는 거다.

헤드락으로 머리를 제압했다고 해서 안심하면 등이 난도질을 당할 것이다.

“읏챠!”

-콰앙!

나는 온 힘을 다해 레슬링을 하듯 녀석을 들어 올려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자자, 진정해. 목걸이 차보자.”

이후 녀석의 배에 올라타서 양 무릎으로 앞발을 봉인하고 왼팔로 턱을 짓눌렀다.

‘살다 살다 늑대를 상대로 그라운드 기술을 쓰다니.’

이어서 남는 오른손으로 개목걸이를 꺼내 그랑 다이어 울프의 목에 씌웠다.

“응?”

그런데 어째 반응이 없다.

“또 꽝이야?”

나는 바둥대는 그랑 다이어 울프를 강하게 압박하며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좀 패야 하나?”

어느 게임에서 몬스터를 길들일 때, 공격 후 체력을 뺐던 게 기억났다.

복잡하게 할 필요 없이, 나는 이 자세 그대로 파운딩을 하기로 했다.

-크르르르.

하지만 왜일까?

그랑 다이어 울프가 겁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덕분에 조금 미안해졌지만, 어차피 녀석은 사람을 죽이는 몬스터였기에 불필요한 동정심은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주먹으로 내려치는데···.

한발 늦게 테이밍 메시지가 떴다.

[그랑 다이어 울프를 테이밍 했습니다.]

“어?”

내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그랑 다이어 울프의 목덜미를 스치며 바닥을 꽂혔다.

-쾅!

나는 의문을 표했다.

타이밍이 조금 뜬금없어서.

“설마 몬스터를 굴복시켜야 한다든가 그런 건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어쨌든 성공했으면 됐다.

나는 바닥에 배를 드러낸 채 엎어져 있던 그랑 다이어 울프에게서 벗어났다.

“잘 지내자 멍멍아.”

테이밍 된 그랑 다이어 울프의 이름은 멍멍이로 정해졌다.

“이 정도면 타고 다닐 수도 있겠는데?”

나는 바로 길들여진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꽤나 안정감이 드는 탈것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잠들기 전까지 멍멍이를 타고 뛰어다녔고, 문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테이밍 목걸이로 와이번도 길들일 수 있다면 어찌 될까?’

흥미로운 궁금증이었다.

*

대재앙이 발생하고 4일째.

안전텐트의 온도조절 기능 덕에 쾌적하게 꿀잠을 잔 나는 부모님께 생존 신고를 했다.

언제 통신이 끊길지 모르는 상태다 보니, 통화의 순간은 각별할 수밖에 없고, 이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의 소중함을 곱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통화 시간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 전해 듣는 육지의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말씀은 주요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버리겠단 뜻인가요?”

[······. 그래, 그렇게 되는 거겠지.]

그동안 정부에선 군인들을 갈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국민의 구조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을 피난처로 데려가는 이송 과정에서 적지 않은 군인들이 희생되고 있어서 무식한 방식이라며 군 내부에 불만이 많다고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방식으로 구조된 국민이 많느냐 한다면 또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군대를 전국 9개 지역에 집중 배치하여 견고하게 방어 라인을 꾸리고, 해당 방어 라인을 중심으로 생존구역을 넓혀간다?’

즉, 선택받은 9곳을 제외한 지역의 군인들을 철수시킨다는 뜻이다.

군인들이 철수된 지역의 주민들은 정부에게 버림받은 것.

앞으로 각자도생해야 한다.

“극단적이네요.”

[전부를 살리긴 힘드니, 소수를 희생해서라도 다수를 보호하자는 거야.]

아버지도 내키진 않아 하시는 것 같지만, 이 이상 좋은 방법은 없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그만큼 육지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어쩌면 나와 가의도 주민들이 고립되어 있긴 하지만, 생활 환경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섬은 육지에 비해 몬스터의 밀집도도 낮고, 몬스터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정부에서도 레벨업을 적극 장려할 거야. 아예 사냥터나 몬스터의 정보 등을 제공해서 성장을 지원할 셈이지.]

그건 좋은 방법 같다.

살려 주는 게 아니라 살 방법을 알려주는 거니까.

“보면 볼수록 우리 가족은 운이 좋네요.”

[그래, 가족을 잃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월등히 많은 상황이니까.]

도시에는 방 한 칸을 벗어나지 못해 굶주리는 사람도 있고, 가족의 시체를 끌어안고 기약 없는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린 행복한 거다.

적어도 이 절망 속에서 미래를 그릴 수 있으니까.

이후 우린 각자가 가진 정보를 공유했다.

아버진 군에서 시범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적응군(레벨업 병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가장 레벨이 높은 사람이 이제 10을 넘겼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레벨 올리기가 힘들어요?”

[네가 이상한 거라니까? 현실은 게임이 아니잖아. 너만 게임 감성 그 자체야.]

내 반응에 아버지는 헛웃음을 흘리며 ‘네가 오면 부대장을 시켜 줄 수도 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셨다.

물론, 나는 다신 군대에 갈 생각이 없는지라 강하게 거부했고, 통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끄응!”

나는 기지개를 켜며 안전텐트를 나섰다.

그러자 길들어진 그랑 다이어 울프 멍멍이가 나를 반겨주었다.

“으악! 깜짝이야.”

그런데 멍멍이를 쓰다듬던 나는 깜짝 놀라야 했는데, 이유는 녀석의 옆에 거대한 멧돼지가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시체가 따끈한 게 사냥을 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설마 나 먹으라고 잡아 온 거냐?”

-컹!

테이밍의 효과일까?

지능이 생각보다 높은 느낌이다.

설마, 주인 먹으라고 사냥을 해올 줄이야.

“하하, 그래 고맙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나는 웃으며 녀석을 쓰다듬었다.

이래서 개를 키우는 모양이다.

뭐, 녀석은 개가 아니라 늑대형 몬스터긴 하지만, 기특한 건 기특한 것이다.

덕분에 아침부터 포식하게 생겼다.

*

멍멍이 덕에 든든하게 배를 채운 나는 본격적인 몽마의 던전 탐색에 나섰다.

[하급 서큐버스를 토벌하여 경험치 200을 획득했습니다.]

[하급 서큐버스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34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하급 서큐버스의 머리카락 1묶음을 획득했습니다.

비록 던전의 최초 발견 보너스 효과가 사라지면서 경험치와 보상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멍멍이의 보조 덕분에 매우 빠른 속도로 서큐버스를 토벌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시간대비 수익은 어제보다 늘어난 느낌이고, 동시에 두 마리의 서큐버스를 상대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나는 의외의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되었는데.

[테이밍 몬스터 멍멍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바로 테이밍 몬스터도 성장이 가능하단 사실이었다.

“오오! 멍멍이 대단한데?”

-컹!

비록 녀석은 이름과 달리 ‘멍멍’하고 짓진 않지만, 단 하루 만에 내 단짝이 되어 함께 던전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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