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색 (3)
*
던전이 무서운 이유는 근처에 접근한 인간을 집어삼켜서 몬스터가 있는 공간으로 강제 전송을 시킨다는 점이다.
던전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탈출구를 찾거나, 입장 가능 시간이 끝날 때까지 버티고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던전에 빠지면 다신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시스템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레벨업에 진심인 나라도 지나치게 난도가 높은 던전에 예고 없이 빠진다면 살아 나올 수 없을 거야.’
이건 던전이라기보다 함정이라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피할 방법은 신전이 있는 안전구역 주변을 가지 않는 것뿐인데,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법은 아니다.
레벨업과 능력치 상승, 아이템 파밍 등, 성장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람일수록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런 함정을 왜 만들었을까?
보면 볼수록 모순적이란 느낌을 받는다.
‘생각이 있다면 이런 모순을 타개할 시스템도 만들어 놨어야 돼.’
때문에 나는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을 뿐, 뭔가 해결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긍적적인 사고방식인 것 같지만, 아직 우린 바뀐 세상에 적응 중이고 모르는 게 더 많았으니 말이다.
*
“멍멍아 빠져!”
-커엉!
“이 새끼가.”
몽마의 던전 2층을 목전에 둔 1층 마지막 구역.
나와 멍멍이는 조금 특별한 서큐버스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의 서큐버스들이 손톱을 칼날처럼 강화하여 휘둘러 왔다면, 이번의 서큐버스는 레이피어와 스몰소드 중간의 세검을 들고 펜싱선수처럼 공격을 해왔다.
복장도 고급스럽고 단정하게 꾸민 모습이 마치 다른 서큐버스들과는 급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챙! 챙!
녀석의 가공할 찌르기 스피드와 긴 리치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
그래도 검도를 배워온 짬밥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몬스터와 여러 실전을 겪어왔기 때문일까?
처음 상대하는 부류의 적임에도 제법 전투를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
“큭!”
앞서 녀석의 공격을 맞고 뒤로 튕겨 나간 멍멍이의 상태가 신경 쓰였지만···.
뱀처럼 이리저리 빈틈을 노려오는 적의 세검 앞에서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여러 대전 스포츠를 배워온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건, 냉정히 상대를 탐색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방어 위주로 검을 펼치며 녀석의 공격에 익숙해지고자 노력했다.
‘이런 전투는 초조해하면 안 돼. 여유를 가지자.’
-챙! 챙! 챙!
격렬한 움직임으로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서큐버스와 심플 그 자체인 나의 검 놀림은 큰 대비를 이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녀석의 공격에 자잘한 생채기가 늘어갔다.
하지만 치명타는 없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나는 녀석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움찔.
그 덕분일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짓던 서큐버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대충 알겠어.’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서큐버스의 세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
‘발동작이다. 녀석은 나와 달리 발동작이 커.’
녀석의 발을 보면 어느 정도 다음 동작을 예측하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서큐버스의 특정 발동작이 나오길 기다렸고.
‘지금!’
녀석이 발을 크게 앞으로 내딛는 장면을 포착한 순간.
사선으로 몸을 날렸다.
탄환과도 같은 직선 찌르기가 날아들 것임을 예측한 움직임이었다.
-휘익!
직선거리에 더 이상 나는 없다.
이대로 검을 휘둘러 봤자 크게 빗나갈 뿐이니, 당황한 서큐버스가 재빨리 검의 경로를 바꿔왔지만.
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검로를 힘으로 돌려봤자, 속도만 떨어질 뿐이었다.
초승달처럼 휘어 들어오던 세검이 내 검에 의해 맥없이 올려 쳐졌다.
-챙!
결과는 나왔다.
나는 춤을 청하듯 녀석의 품에 파고들어 손으로 허리를 감쌌고, 근거리에서 얼굴을 마주한 서큐버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너무 바짝 붙어서 우린 서로에게 검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안녕.”
-아느?
느닷없는 인사에 서큐버스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고, 나는 싱긋 웃으면서 그대로···.
“으럇!”
저먼 스플렉스로 녀석의 대가리를 돌바닥에 찍어 버렸다.
-컥!
-빠각!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근력과 순발력이 더해지니, 서큐버스는 기절한 개구리처럼 사지를 꿈틀대다가 그대로 절명했다.
“좋았어. 이 개 같은 것.”
서큐버스는 하나하나가 남성을 홀리는 미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실루엣 고글을 쓴 내겐 몬스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고글 너머로도 미인이라는 게 뚜렷하게 보이긴 하지만, 실루엣 고글은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빨갛게 표시하기 때문에 피칠갑을 한 것처럼 흉측하게 느껴졌다.
“후우.”
이어서 실루엣 고글을 벗자 요란하게 떠오른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네임드 서큐버스 멜리아를 토벌하여 경험치 2,5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네임드 서큐버스 멜리아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55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하급 회복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탐색’을 획득했습니다.
뭔가 좀 특별한 녀석이란 걸 알긴 알았는데, 네임드 몬스터일 줄은 몰랐다.
네임드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경험치와 보상 모두 일반 서큐버스와 급이 달랐다.
하지만 나는 보상에 신경 쓰기보다 아까 칼침을 맞고, 뒤로 빠졌던 멍멍이의 상태부터 살폈다.
“괜찮아?”
-컹!
어깻죽지에 관통상을 입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하급 회복 물약을 꺼내 멍멍이를 치료해 주었다.
아직 던전 밖으로 나가려면 2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괜히 포션 아끼다가 멍멍이가 죽으면 더 큰 손해이기에 망설임 없이 사용했다.
-컹컹!
[멍멍의 부상이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부상을 회복한 녀석이 벌떡 일어나 내게 비비댔다.
덩치도 큰 녀석이 엉기니, 마치 이리저리 치이는 느낌이다.
나는 멍멍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비로소 네임드 서큐버스를 죽이고 얻은 보상 중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스킬북을 확인했다.
[탐색 / 상급 스킬북 / 패시브]
-사람의 이름과 레벨이 머리 위로 표기된다.
-NPC의 이름과 레벨이 머리 위로 표기된다.
-몬스터의 이름과 레벨이 머리 위로 표기된다.
-50미터 이내의 숨겨진 던전을 탐색한다.
-50미터 이내의 숨겨진 필드를 탐색한다.
-10미터 이내의 숨겨진 약초를 탐색한다.
-10미터 이내의 숨겨진 보물을 탐색한다.
“이건?”
그리고 그 내용을 살핀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처음으로 얻은 상급 스킬북이란 것도 놀랍지만, 내가 갖고 있던 의문을 해소시켜주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게 있어야 마음 놓고 필드를 돌아다닐 수 있지!’
이 스킬이 있어야 아무 이유 없이 던전에 빠져 개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사라질 것이다.
던전의 기습 납치에 대책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스킬이 존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탐색 스킬을 익힌 사람들이 미리 던전을 탐색해 놓으면 이전처럼 엉뚱하게 휘말리는 일도 없어질 테니까.
덤으로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도 레벨로 표기가 되니, 무리한 전투를 피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생존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약초와 보물을 탐색한다?’
또한 마지막 두 줄의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무래도 약초에 아버지가 말씀하신 영약 같은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숨겨진 보물도 그렇고 나중에 한 번 제대로 다뤄봐야겠다.
[탐색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스킬을 익힌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로써 내 생존능력이 더욱 향상되었다.
“멍멍아 가자.”
나는 네임드 서큐버스가 지키고 있던 던전 2층의 문으로 다가갔다.
[몽마의 던전 2층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ES/NO]
그리고 거리낌 없이 2층으로 향했다.
던전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게 무서운 점이지만, 적어도 이 문제는 내게 해당되지 않는다.
이미 던전의 지도를 갖고 있으니까.
‘지난번 메인 시나리오 11번째 조각을 얻었을 때, 획득한 그 지도 말이지.’
덕분에 던전 탐색은 순조롭고, 멍멍이가 적당히 어그로를 끌어주는 덕에 전투시 위험도가 크게 감소했다.
방금은 중간 보스 느낌의 네임드에게 쉽게 당하긴 했지만, 일반 서큐버스를 상대로는 멍멍이가 밀릴 이유가 없다.
“멍멍아!”
몽마의 던전 2층도 등장 몬스터의 숫자가 조금 많을 뿐, 상대하는 건 하급 서큐버스였기에 우린 큰 고비 없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
서백호의 아버지 서인호 대령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이 녀석 또 던전에 들어갔나 보네.”
이틀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당연히 겁이 없는 자식이 걱정이지만, 황당하게도 전화를 할 때마다 레벨이 팍팍 올라 있는 아들의 상황에 마냥 쓴소리를 하기도 힘들었다.
원체 신중하고 제 앞가림을 잘하는 녀석인지라, 적정 수준의 안전 대책은 갖고 있을 거라 믿었다.
‘검도나 격투기 실력 역시 뛰어난 녀석이기도 하고.’
자신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서인호 대령은 서백호가 매우 특별하단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운동 분야에서만큼은 가르치는 선생마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모두 선수 시켜야 한다고 말했을 만큼 천부적인 감각을 갖고 태어났다.
‘백호는 진짜입니다. 녀석이라면 일본의 신성이라 불리는 아키라조차 넘어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백호의 검도 스승이 했던 말을 떠올린 서인호 대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검도뿐만이 아니었다.
태권도, 이종격투기, 유도 등 다양한 종목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서인호 대령은 어쩌면 지금의 세상이 아들에겐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그건 너무 갔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지 못해 살고 있는데, 배가 불렀지.”
물론, 바로 부정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스마트폰을 빤히 바라보던 서인호 대령은 본부 회의에 참석할 시간이 되었단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 대령님!”
그런데 그때였다.
서인호 대령과 친한 최소령이 소란스레 달려오는 바람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무슨 일이야?”
“지금 전국의 통신이 다운됐습니다. 전기도 1시간을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뭐? 왜!?”
방금까지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서인호 대령은 깜짝 놀라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자 어느새 스마트폰의 통신이 끊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황한 서인호 대령의 물음에 최소령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몬스터들이 기반 시설들을 중점적으로 공격하고 있답니다. 심지어 해양 몬스터들도 해저 케이블을 끊고 있는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이런 미친.”
언젠가 기반 시설이 기능을 잃을 거라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식이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마치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몬스터들이라니.
서인호 대령은 마른 침을 삼켰다.
‘백호야.’
더불어 연락이 힘들어진 아들을 떠올리며 손톱을 깨물었다.
***
“잘하면 제한 시간 안에 깰 수 있겠는데?”
몽마의 던전 2층은 역시 1층보단 난도가 높았다.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가 1.5배 더 많았고.
[네임드 서큐버스 티에리를 토벌하여 경험치 2,500을 획득했습니다.]
[네임드 서큐버스 티에리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524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하급 회복물약 2개를 획득했습니다.
-티에리 소드를 획득했습니다.
네임드 몬스터도 2차례 튀어나오기도 했다.
1층에서는 최대한 스킬을 배제하고 검에 대한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체 능력으로만 싸웠다면, 2층부턴 스킬이고 뭐고 다 쏟아부어야 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사냥과 탐색을 이어가길, 약 2시간.
나와 멍멍이는 보스룸으로 보이는 공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음···.”
보스룸을 앞에 두고 짧게 고민을 했다.
들어갈지, 아니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볼지.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불리해지면 튄다는 마인드로 보스에게 도전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들어가지는 않고, 완벽하게 개인정비를 마치고 들어가기로 했다.
[티에리 소드 / 한손반 장검 / 등급: 최고급]
-네임드 서큐버스 티에리의 장검이다.
-모든 능력치 +1
이건 방금 네임드 서큐버스를 처치하고 얻은 장검이다.
네임드 서큐버스들은 모두 검을 사용했는데, 검의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녀석이 떨군 검이 손에 너무도 잘 맞았다.
드디어 늑대검을 대신할 장검을 손에 넣은 것이다.
추가옵션이 무려 모든 능력치를 1씩 높여 준다.
“보스룸에 들어가기 직전에 새로운 무기를 얻게 되다니.”
마치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하라는 뜻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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