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1화 (21/273)

정비 및 준비 (1)

***

일반 몬스터보다 네임드 몬스터가 압도적으로 강하고,

보스 몬스터는 그런 네임드 몬스터보다 월등히 강했다.

마지막 순간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의 우위도 가져가지 못한 전투였기에 서큐버스 칼리아에게 승리한 건 기쁨이 클 수밖에 없었다.

“으오오!”

나는 환호하며 멍멍이를 껴안았다.

[멍멍이(그랑 다이어 울프) / 레벨: 20]

보스를 토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인지 멍멍이는 한 번에 레벨이 5나 올라 있었고, 어느새 덩치도 훌쩍 커져서 고개를 들어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흐읍, 후···.”

그렇게 얼마나 멍멍이를 안고 호들갑을 떨었을까?

나는 슬슬 미뤄놨던 메시지들을 읽기로 했다.

[최초의 던전 클리어. 위대한 업적이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

명예의 전당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 건지는 몰라도, 최초라는 타이틀은 나쁜 기분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몽마의 던전 클리어,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몽마의 던전 최초 클리어,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던전 최초 클리어,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 최초라는 타이틀에 뒤에 붙은 추가 보상이 너무 달달했다.

보상은 이랬다.

-최고급 장비 뽑기권 1장(몽마의 던전 클리어)

-최고급 장비 선택권 1장(몽마의 던전 최초 클리어)

-희귀 등급 아이템 뽑기권 1장(던전 최초 클리어)

뽑기권 2장에 선택권 1장.

더구나 그중 하나는 무려 희귀 등급이다.

“희귀 등급이 장비 선택권이면 좋았을 텐데. 아이템 뽑기권이라니.”

아쉽지만 꽁으로 주는 보상이니 만족하기로 했다.

‘최고급 장비 선택권은 윌리아에게 퀘스트 보상을 받으면 1장이 더 생기니, 그때 가서 선택하기로 하자.’

나는 우선 두 개의 뽑기권을 사용하기로 했다.

먼저 ‘최고급 장비 뽑기권’부터.

-팟!

뽑기권을 사용하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빛이 모이더니, 이내 어떤 형상이 만들어졌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이펙트 모션.

왜일까?

K-게임의 뽑기가 떠오르는 이유는.

그리고 눈앞에 뽑힌 아이템의 설명이 떠올랐다.

[쉴드 스케일 건틀렛 / 최고급]

-탄소섬유에 와이번 비늘을 덧대 만든 방어형 건틀렛.

-뛰어난 강도와 높은 반발력을 지니고 있다.

-하루 3번 하급 방어막을 사용할 수 있다.

팔등에 유선형의 작은 방패가 달린 건틀렛 한쪽.

“가벼운데?”

딱 봐도 방어에 적극 활용하라는 디자인을 가진 장비다.

덤으로 하급 쉴드도 3번이나 사용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전투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추가 능력치가 붙지 않았다는 점인데, 그만큼 장비가 뛰어나서 그런 것 아니겠냐는 의미로 해석했다.

나는 건틀렛을 왼팔에 장착했다.

“좋네, 팔등까지 가려져서 안전해 보여.”

만족한 나는 다음 뽑기권을 눈에 담았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희귀 등급의 아이템 뽑기권을.

‘하나님, 부처님, 알라님, 행운의 탈리스만님! 장비아이템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미 희귀 등급의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 ‘행운의 탈리스만’이라는 물건을.

아무래도 내가 운이 좋은 게 이 물건의 영향이 아닐까 싶지만, 역시 이왕이면 전투에 도움이 되는 장비가 나오길 바랐다.

-팟!

그리고.

이런 나의 절실한 기도가 통했을까?

[빛을 엮어 만든 투구 / 희귀]

-보유자의 머리 전체를 보호하는 투구이며,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 장비.

-미스릴 합금 이상의 강도를 가지고 있어, 최상급 스킬로도 쉬이 파괴되지 않는다.

-물 속이나, 불 속에서도 사용자에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한다.

-빛 속성, 마력+6

“오?”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록 한 번 휘두르면 보스 몬스터의 뚝배기도 따버리는 오버스펙의 무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뚝배기만큼은 보호해줄 최고의 투구가 등장했다.

-스스스.

“진짜 안 쓴 것 같네?”

반투명한 형태의 투구를 얼른 뒤집어쓰자, 바람이 머리를 감싼 느낌이 들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착용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개념 장비라니.

이것이 바로 궁극의 방어구 아닐까?

혹시 다른 장비를 사용해도 방해가 되지 않는지 궁금해서 실루엣 고글을 써보니, 아무런 문제 없이 착용 되었다.

‘얼굴에 날아드는 공격을 굳이 피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그럼 전투에 엄청난 도움이 되겠는데?’

너무 아이템을 맹신해서 적의 공격에 대가리부터 들이미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중요한 순간 가능성 높은 도박수로 사용하기 좋아 보였다.

그리고 또 마음에 드는 건 높은 등급만큼, 마력을 무려 6이나 상승시켜 준다는 점이다.

현재 내 마력은 아이템 효과를 더해 14.

거기에 +6이 된다면 거의 50%가 상승하는 거다.

스킬의 사용횟수가 증가한다는 건 그만큼 전투력과 생존능력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추가 옵션인 빛 속성 부여의 효과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

-컹?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멍멍이와 춤을 췄다.

이런 내 모습에 녀석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일단 장비 뽑기는 끝.’

행운의 탈리스만의 효과인지, 아니면 원래 이 정도의 아이템이 나오게 되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뽑기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라 생각한다.

‘하지만 보상은 이게 끝이 아니지.’

내겐 아직 보스몬스터를 토벌하고 얻은 보상이 남았다.

나는 메시지 창을 조작해 보스 토벌 직후의 내용을 찾았다.

[던전 보스 칼리아를 토벌하여 경험치 12,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지금까지와 단위가 다른 토벌 경험치.

하지만 레벨이 오름에 따라 요구 경험치도 높아졌기에 보스 몬스터를 잡았다고 레벨이 몇 단계씩 오르는 일은 없었다.

‘이름을 가진 네임드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는 경험치를 많이 주는 대신 최초 토벌 보너스는 안 주는 모양이네.’

애초에 토벌 난이도가 다르기도 하지만, 네임드의 경험치가 일반몬스터의 12.5배, 보스몬스터는 일반몬스터의 60배인 걸 보면 틀리지 않은 추측인 것 같다.

물론, 칼리아 같은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일반 서큐버스 60마리를 잡는 편이 안전할 거다.

그러나 시간 대비 수익을 따지면, 특출난 한 개체를 잡는 게 훨씬 이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던전 보스 칼리아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3,2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검기’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4칸을 획득했습니다.

-칼리아의 전투복을 획득했습니다.

들인 노력에 비하면 짧은 네 줄의 보상.

하지만 칼리아가 사용했던 스킬과 인벤토리 4칸이 보상으로 딸려 온 것을 본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검기 스킬은 이미 몸소 체험했기에 얼마나 강력한 스킬인지 잘 알고 있다.

내심 칼리아와 싸우면서 그 스킬이 보상으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는데, 정말 나와주다니.

원거리의 마력탄과 더불어 근거리 전투를 책임져줄 스킬이 등장했다.

[검기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인벤토리 4칸이 확장됐습니다.]

더불어 인벤토리도 10칸에서 14칸으로 늘었는데, 이 역시 무시하지 못할 확장이다.

더 많은 물건을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있다는 건, 경우에 따른 전략의 선택권이 많아졌단 뜻이기도 했다.

바다에서도 그랬고 던전 보스 때도 그랬고, 핑크 스티로폼이 대활약을 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인벤토리 역시 전투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칼리아가 자꾸 어디서 단검을 꺼내 던지나 했는데, 인벤토리를 갖고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지?”

몬스터도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건···.”

나는 마지막 보상을 집어 들었다.

[칼리아의 전투복 / 최고급]

-활동성에 중점을 둔 초경량 전투복.

-얇은데도 질겨서 칼에 잘 베이지 않지만, 찌르는 공격엔 약하다.

-남성이 입으면 신체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다.

-순발력 +2

손 한 줌에 다 들어오는 천 쪼가리.

바로 칼리아가 입고 있던 전투복이다.

그 수영복같이 생긴···.

이딴 걸 어디에 쓰나 싶었지만.

순간 머릿속에 ‘띵’하고 윌리아의 존재가 스쳐 지나갔다.

“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챙겨는 둘까?”

나는 굳이 나온 아이템을 버려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고이 주머니에 챙겼다.

“좋아, 돌아가자.”

그렇게 보상 타임이 끝이 났다.

안전구역에서 윌리아에게 퀘스트 완료 보상을 받으면, 최고급 장비 선택권 2개가 남게 되지만, 그건 그때를 위한 재미로 남겨 놓기로 했다.

*

나는 던전을 빠져나온 직후, 바로 윌리아에게 퀘스트 완료를 보고했다.

당연히 그녀는 이렇게 빨리 깼냐며 놀랐고, 호감도 60%를 돌파한 기념으로 우린 멍멍이가 잡았던 멧돼지로 삼겹살 파티를 즐기려 했다.

“이제 호감도 80%까지 얼마 안 남았네요.”

“그때가 되면 동료가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하하, 기대되는군요. 나중에 제가 선물로 드릴 전투복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윌리아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불판을 세팅하던 도중.

“응?”

“왜, 그러세요?”

“스마트폰이···.”

나는 너무 조용한 스마트폰에 의아함을 느껴 확인했고, 뒤늦게 통신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잠깐 가의도 좀 다녀와 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천천히 볼일 보고 오세요.”

그래서 윌리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확인하고자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가의도로 날아갔다.

-팟!

“아저씨!”

“오, 자네 왔는가?”

마침 가의도 안전구역에서 쉬고 있었는지, 웨이포인트 근처에 평상을 놓고 앉아 있던 김용근과 몇몇 주민이 나를 반겨 주었다.

“어어? 자, 자네 뒤! 뒤!”

하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나를 따라 공간이동이 된 멍멍이를 발견하곤 기겁하며 평상에서 굴러떨어졌다.

가뜩이나 큰 그랑 다이어 울프가 더 커졌으니, 그 포스가 무시무시했다.

“아, 얜 제가 길들인 애라서 괜찮아요. 멍멍아 손.”

-턱!

“허어, 세상에···. 그, 그 늑대를 길들였다고?”

간단히 멍멍이의 무해함을 증명한 뒤에서야 그에게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우리 역시 통신이 끊겼어. 그나마 LT텔레콤이 늦게 끊겨서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고 있지.”

“어떤 상황입니까?”

“몬스터들이 기간시설을 파괴하고 다닌다는구만. 그래서 통신은 물론, 전기, 상하수도도 끊길 거라 들었어.”

몬스터들이 기간시설을 노렸다?

조직적으로?

갑자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몬스터들이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여기 상황은 어떤데요?”

“가의도도 기지국이 당하긴 했는데, 우리만 통신시설이 살아 있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야. 그나마 태양광 발전소는 건드리지 않아서 당장 전기 사용은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지.”

그나마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통화를 못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언제고 통신이 끊길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런 식이 될 거라곤 예상치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내 모습에 무언가 알아챘는지, 김용근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혹시 어디 전화하고 싶은데 있는가?”

“네?”

“마을 회관에 재난대비 위성전화가 설치되어 있거든. 혹시 그걸로 가능하면···.”

“정말요!?”

“그, 그래.”

하늘이 도운 걸까?

김용근의 이야기에 나는 크게 안도했다.

아버지와 연결할 수 있는 위성 전화의 번호는 몰라도 계룡대라면 건너 건너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 회관이 어딘데요?”

“이 길 따라서. 저기로.”

“멍멍아.”

-컹!

내 명령에 멍멍이가 돌연 김용근의 윗도리를 물더니 자신의 등 뒤로 던졌다.

얼떨결에 멍멍이에게 탑승한 그는 벙찐 표정을 지었고.

우린 전력으로 마을 회관을 향해 내달렸다.

“응?”

“엄마야!”

덕분에 원치 않게 마을 주민들에게 겁을 줬지만, 마을 회관까지는 30초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자네 왔는··· 으아아악!”

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나를 알아본 이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다가, 등 뒤의 멍멍이를 발견하곤 기겁했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멍멍이가 무해하단 사실을 설명한 뒤에야 위성전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20분 전쯤 계룡대에서 전화가 왔었어. 서 대령이란 사람이 자네의 아버지 아닌가?”

“맞습니다.”

“여기 그 사람이 자네 오면 건네주라면서 전화번호 남겼네.”

역시 아버지.

조치가 빠르시다.

나는 바로 그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고.

[백호니?]

“네, 아버지.”

[후우···.]

무사히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었다.

[적절하게 가의도 가는 길을 뚫어 놓은 게 신의 한 수가 되었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우린 얼굴을 보지 못해도 서로 쓰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내가 아무리 게임 감성으로 성장하고 있다지만, 지금 닥친 현실은 게임이 아니란 게 다시금 와 닿았다.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이야기에 나는 더욱 표정을 굳혀야 했다.

[몬스터를 부리는 고등 몬스터가 등장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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