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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2화 (22/273)

정비 및 준비 (2)

기본적으로 몬스터는 지정된 활동구역에서만 스폰되며 이 영역을 이탈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인간에게 어그로가 끌렸을 경우다.

몬스터가 인간을 발견할 경우, 정해진 활동영역을 이탈해 계속 쫓아온다.

내가 가의도로 헤엄쳐 갈 때, 와이번이 수백 미터나 날아와서 나를 공격했던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쫓아오는 몬스터를 피하는 방법은 두 가지.

그냥 죽여서 처치하거나, 숨어서 어그로를 푸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고등 몬스터는 달라, 녀석들은 정해진 활동영역 없이 자기들 멋대로 돌아다녀. 마치 개인의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런 녀석들이 몬스터들을 조종해서 끌고 다닌다는 거예요?”

[그래.]

고등 몬스터는 시스템 메시지가 알려준 호칭이 아니다.

정부에서 임시로 정한 호칭이다.

나는 처음 고등 몬스터를 ‘필드 보스’ 같은 게 아닐까 추측했다.

몽마의 던전에서 상대한 보스 몬스터 칼리아만 해도 말이 통하는 높은 지성의 몬스터였으니까.

하지만 추가 설명을 들으니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이라는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칼리아는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보스 몬스터와 또 다른 부류의 몬스터란 걸까?’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고등 몬스터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생존이 더욱 힘들어졌다는 거다.

세상이 격변하여 지상에 몬스터가 등장하고, 그다음 비행 몬스터가 등장하고, 또 그다음 해양 몬스터가 등장하더니, 이번엔 고등 몬스터라는 게 등장했다.

‘너무 적응할 틈도 없이 몰아붙이는 거 아닌가?’

사람들이 나만큼 레벨을 올리고 있다면 모를까, 생존 난도가 너무 높아 보인다.

[이러다가 내일은 용이 등장하는 거 아니냐며 다들 불안해하고 있어.]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그 정도로 아버지의 추론은 무섭지만 일리 있어 보였다.

“그 고등 몬스터들이, 다른 몬스터를 조종해서 기간시설들을 파괴했다는 거죠?”

[그래.]

“음, 자율 의지가 강하다는 것치고, 하는 행동이 똑같은 게 이상하지 않아요?”

[맞아, 하지만 기간시설의 공격이 끝나면 전부 제멋대로 움직이니, 이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어.]

“뭔데요?”

[그게 시스템의 지령이라고.]

시스템.

언젠가부터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다.

지금의 사달을 일으킨 정체 모를 존재를.

“거기 상황은 어때요?”

[말해 뭐해, 지옥이지.]

“레벨을 올리고, 안전구역을 이용하는 등의 시스템 활용이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쩌면 자꾸 사태가 심각해지는 게 인간들의 빠른 적응을 위해서일지도 몰라.]

“수많은 사람이 죽는 건 부수적인 결과고요?”

[인간의 목숨을 신경 썼으면, 이렇게 급진적인 사건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지.]

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나는 고등 몬스터에 대해 캐물었다.

“고등 몬스터는 얼마나 많은 부하를 끌고 다니던가요?”

[몇십 마리부터 몇천 마리까지, 다 달라. 주한미군의 이야기에 따르면 몇몇 나라에선 만 단위 이상의 이동도 목격되었다고 해.]

“고등 몬스터는 어떻게 상대하고 있어요? 현대 무기로 죽일 수 있어요?”

[공격에 적중되면 죽기야 죽지. 하지만 녀석들이 무기를 학습하고 있는지, 점점 잘 숨어다녀서 토벌하는 게 쉽지 않아.]

“외형은 어떤 형태예요?”

[다양해. 오크도 있고, 늑대인간도 있고, 인간 형태도 있어.]

“전투력 수준은요?”

[한 녀석에게 중대가 몰살당한 적도 있으니, 일반 몬스터완 급이 다르다고 봐야지. 보고에 따르면 마법을 사용하는 녀석도 있다더군.]

마법이 아니라, 마법형 스킬이라 보는 게 맞을 거다.

아버지의 말만 들어선 고등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감이 오지 않았다.

지금의 나도 지형지물과 스킬(방어막, 마력탄 등)을 잘 활용하면 개인화기로 무장한 중대 하나는 전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점점 제가 섬에 있는 게 다행인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지네요. 여기서 큰 고비 없이 성장을 하고 있으니.”

내 말에 아버지는 쓰게 웃으며 동의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생각지 못한 말을 해오셨다.

[참, 너 던전 클리어 그거 뭐냐?]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메시지 뜨던데? 한국인 서** 님이 최초로 던전을 클리어하여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된다고.]

“그, 그게, 사람들이 전부 볼 수 있게 떴어요?”

[그렇다니까? 그나마 이름이 가려져 있어서 다행이지. 공개되었으면···.]

“난리 났겠네요?”

[누군지 알았다면 국방부에서 특수 부대를 조직해 잡으러 갔을지도 몰라.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잡으려 한다고 쉽게 잡히지도 않겠지만, 이름이 가려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만약 지금 정부에 잡히면, 성장에 지장이 생기고, 활동에 여러 제약이 더해질 테니까.

정부의 눈에 띄는 건 내가 더 강해진 다음이어야 한다.

[일단 네 존재에 대해선 철저히 함구할 테니, 너도 가의도 주민들과 함께할 땐 조심해. 레벨 물어봐도 절반 정도로 낮춰 말해.]

“알겠어요.”

말 안 해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 내 레벨이 28인데, 14 정도로 낮춰 부르기만 해도 마을 사람들에겐 엄청 높아 보일 것이다.

“내륙이 점점 위험해져서 걱정이네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마. 아무리 강한 몬스터가 몰려온다고 해도 계룡대 방어라인을 뚫긴 힘드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너야말로 항상 조심하고. 빠른 성장도 좋지만, 나와 네 엄만 아들의 안전이 제일이란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네, 명심할게요.”

그리고 약 10분 정도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지다가 우린 비로소 통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적지 않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아버지는 누가 들을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으니, 다른 사람들은 통화 내용을 모를 것이다.

“무슨 일이세요?”

내 물음에 대부분 40대 이상 중년으로 이뤄진 마을 주민들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나를 반겨주었다.

“저번에 워낙 혼란스러워서 다들 감사 인사를 못 했잖나.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려고 온 거네.”

김용근의 말과 함께 사람들이 내게 몰려들며, 이것저것 쥐여주기 시작했다.

고구마, 감자, 김치, 된장 등.

나는 신경 쓰지 말라며 극구 사양했지만, 어찌나 강경한지, 양손 가득 쇼핑백이 들렸다.

세상이 난리가 난 상황 속에서 아마 이 만큼 평화로운 동네도 얼마 없을 거다.

‘마을 근처에서 나오는 몬스터라곤 슬라임뿐이니까.’

아버지와의 통화로 들었던 바깥의 긴박한 상황과 대비된다.

새삼 가의도의 환경이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뚱맞게 섬에 고등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이 평화가 깨질 일은 없겠지.’

*

“제안이 어떻습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군.”

나는 마을 이장과 김용근 등, 가의도의 주요 인물들을 모아 놓고, 곧 다가올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 마련 계획을 제안했다.

내가 비닐하우스 자재를 제공하고, 그들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겨우내 식량을 생산하기로 말이다.

확인 결과 약 50평의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데, 250코인이 필요했다.

그랑 다이어 울프 20마리 혹은 서큐버스 10마리를 잡으면 얻을 수 있는 비용이다.

“일단 비닐하우스는 50평 규모로 6개 동, 100평 규모 2개 동을 지으면 될 것 같네.”

우린 마을의 지도를 펼치고 이리저리 궁리한 결과 총 500평 면적의 비닐하우스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게 최대 면적인가요?”

“더 확장할 수는 있지. 다만 지금 지정한 장소처럼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어서 문제인 거야.”

나는 그들이 내민 지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을 곳곳에 붉게 칠해진 지역이 있었는데, 고블린이나 코볼트 등, 다소 위험한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할 수 있는 장소였다.

나는 그 지도에서 두 개 지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하고, 여기에 콘크리트 벽을 치면 50평짜리 2개 동은 더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말에 사람들은 순순히 수긍했다.

내가 말한 곳에 벽을 세우면 비닐하우스를 더 지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안전도도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괜찮겠나? 코인이 엄청 많이 들 텐데.”

“있는 거 없는 거 털어서 마련해야죠. 대신 식량은 확실히 챙겨갈 겁니다?”

“당연하지. 그리고 약소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모은 코인도 보태겠네. 자네의 지출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겠지만 말이야.”

“하하, 좋네요.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마을 사람은 28명.

이 중 노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24명이고, 3명은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 1명은 10살짜리 남자아이다.

우린 최종적으로 6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만들 게 되었는데, 50평 비닐하우스엔 2명, 100평 비닐하우스엔 4명을 배치하여 관리하기로 했다.

“인당 관리면적이 25평인데, 무리하는 건 아니죠?”

“당연하지. 더구나 손도 많이 가지 않는 고구마나 감자 위주로 심을 텐데. 그 정돈 소일거리 수준이니 신경 쓸 필요 없네.”

이야기는 원만히 끝났다.

이로써 가의도에서의 볼일이 끝나 월광도로 돌아가려 했는데.

“그, 자네 레벨이 몇이라 했지?”

“14입니다.”

“엄청 높구만.”

절반으로 낮춰 부른 건데도 그들은 높다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들은 작당을 하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내왔다.

“지난번 그 미친놈들 사건으로 확실히 안 사실이 있네.”

“그게 뭔데요?”

“약하면 먹힌다는 거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픈 걸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 3명과 여성 1명이 나타났다.

“지난번에 보니, 자넨 레벨이 높은 것뿐만 아니라, 싸우는 법을 전문으로 배운 사람 같았어. 맞나?”

“네, 뭐···.”

“혹시 청년들에게 싸우는 법을 알려 줄 수 없겠나?”

청년이라 말한 것치고 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나마 김용근의 아들과 이장의 딸이 20대 중반으로 나와 나이가 가까웠다.

“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긴 시간을 투자할 순 없지만, 하루 1시간씩 시간을 내서 가르치겠습니다.”

“오오!”

나는 큰 고민 없이 그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가의도는 식량 생산을 위한 주요 거점이니, 내가 없더라도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을 잘 키우면 언젠가 도움이 될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허락에 긴장하고 있던 가의도의 청년단이 표정을 풀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장담컨대, 내게 배우기 시작하면 웃음이 쏙 들어갈 거다.

나는 그리 친절한 타입의 선생은 되지 못할 것 같으니까.

“일단 네 분의 교육과 자재 공급은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괜찮겠죠?”

“그래, 편하게 하게.”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늦게 월광도 안전구역에서 삼겹살 파티를 위해 불판 앞에 앉아 있을 윌리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서백호가 가의도로 향하고, 불판 앞에 얌전히 대기하고 있던 윌리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웬 검은색의 뭉치가 서백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떨어져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게 뭐지?”

그녀는 서백호가 오면 돌려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주워들었다.

그 물건은 부드러운 재질의 천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한 손으로 움켜질 수 있을 정도로 부피가 작았다.

그래서 멋대로 ‘손수건 같은 건가 보다’라고 판단하며 별생각 없이 펼쳐보았는데···.

-펄럭!

전혀 예상치 못한 그 천의 정체에 그녀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

그건 누가 봐도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수영복이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지도 않고 작게 뭉쳐서 서백호가 있던 자리에 던져 놓았다.

덕분에 윌리아는 서백호가 돌아올 때까지 사색에 잠겨 있어야 했다.

다행인 건 그녀가 타인을 욕하고 무시하기보다 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부류란 점이다.

‘많이 외로우신가 보다. 하긴 갑갑한 섬이니, 그러실만하지.’

그리고 잠시 후.

가의도에 갔다가 돌아온 서백호가 바닥에 떨어진 수영복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 황급히 주머니에 챙기는 것을 보았다.

이어서 멋쩍게 웃으며 음식을 손질하는 그를 보며 윌리아는 생각했다.

‘앞으로 더 잘해드려야겠다.’

윌리아가 서백호를 측은하게 여기게 된 계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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