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및 준비 (3)
*
“후아···.”
삼겹살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비록 사육장에서 자란 돼지가 아니라 이전에 먹던 수준의 질은 아니지만, 최대한 좋은 부위를 선별해 고기를 얇게 썰고 코인 상점에서 산 돈가스 망치로 서너 번 두들긴 후 구워 먹었더니, 생각 이상으로 맛있었다.
덩치에 비해 의외로 어린 개체였을까?
고기도 그리 질기지 않고 누린내도 나지 않았다.
멧돼지라 하면 향도 강하고, 뭔가 뻣뻣할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만족하셨어요?”
“네,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특히, 그 쌈장이라 하셨나요? 그게 고기랑 엄청 잘 어울리네요.”
더구나 가의도에 간 김에 이런저런 조미료를 챙겨왔는데, 덕분에 더욱 맛있게 삼겹살을 즐겼고, 윌리아의 만족도 또한 매우 높았다.
특히 고기를 쌈장에 찍어 먹고 보인 윌리아의 외국인 수준의 리액션은 유튜브에 올린다면 꽤 많은 조회수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윌리아의 호감도가 2% 상승했습니다.]
[윌리아의 호감도가 70%를 달성했습니다.]
‘좋았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호감도가 80%가 되면 그녀를 동료로 영입할 수 있게 되고, 그럼 파티에 힐러 겸 버퍼가 생기게 되니 전투력과 생존율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호감도가 오르면 좋은 게 또 있으니···.
“그러고 보니, 육지에 이상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아, 엘더 몬스터 말씀하시는 거군요.”
“엘더 몬스터요?”
“네, 자율활동이 가능하고 일반 몬스터를 부하처럼 부리는 보스급 몬스터죠. 그걸 말씀하신 게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 몬스터를 엘더 몬스터라 부르는군요? 저흰 단순하게 고등 몬스터라 칭했거든요.”
호감도가 상승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아진다는 거다.
“엘더 몬스터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네,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최대한 알려드리죠.”
호감도 70%가 되니, 이전처럼 ‘답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딱 끊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의 답을 주려 했다.
나와 윌리아는 나란히 쪼그려 앉아서 열심히 멧돼지의 뼈를 뜯고 있는 멍멍이의 털찐 등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말했듯 엘더 몬스터는 자율활동이 가능하고, 일반 몬스터들을 부하로 부리는 특수 종입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중요한 특징이요?”
“일반 몬스터는 서로를 아군으로 인식하여 공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더 몬스터에겐 영역이란 개념이 존재해서, 다른 엘더 몬스터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서면 적으로 인식합니다.”
“그 말은 엘더 몬스터끼리 치고받고 싸울 수 있단 의미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엘더 몬스터를 처치하면 상대의 힘을 흡수하여 더욱 강해질 수 있죠.”
전혀 몰랐던 이야기.
이건 꼭 아버지에게 전해야겠다.
“엘더 몬스터의 스폰 조건이 따로 있나요?”
“뚜렷한 법칙은 없지만, 인간이나 몬스터가 많은 지역에서 등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확실치 않은 대답.
그만큼 엘더 몬스터의 등장은 랜덤 요소가 강하단 뜻인 걸까?
“무인도인 월광도에 등장할 확률은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0%는 아닙니다.”
불확실 요소가 포함된 몬스터란 점에서 꽤나 무서운 적이란 느낌이다.
그리고 엘더 몬스터의 전투력은 제각각인데, 기본적으로 레벨 20~50 사이라고 한다.
다만 엘더 몬스터는 다른 엘더 몬스터를 잡아먹을 수 있기에 많은 성장 가능성을 품은 몬스터였다.
“이게 제가 아는 엘더 몬스터의 모든 것입니다.”
“성장하는 몬스터라는 게 무섭네요.”
뭐, 인간도 성장할 수 있으니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할까?
나는 쓰게 웃으며 호감도 70%를 넘긴 기념으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당연히 그 안에는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나, 시스템을 운영하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윌리아는 이 점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며 이렇게 답했다.
“여러분은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법칙을 시스템이라 표현한다죠?”
“그렇습니다.”
“틀린 표현이 아닙니다. 저희도 비슷하게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우린 그걸 ‘세상의 의지’라 부릅니다.”
“세상의 의지?”
“세상의 의지 덕에 제가 탄생했고 이렇게 백호님과 마주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럼 이 신전이 숭배하는 대상도?”
“맞습니다. 실체를 가진 누군가가 아닌, 세상의 의지를 숭배하는 겁니다.”
결국, NPC는 어디선가 넘어온 다른 세계의 주민 같은 게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탄생된 존재란 뜻이다.
시스템의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 궁금증을 해결할 키워드는 이미 내가 갖고 있었으니···.
“사건의 근원, 해결책을 찾길 바란다면 메인 시나리오를 완성하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몽마의 던전에서 손에 넣은 메인 시나리오 조각이 그것이었다.
“백호님께서 지금처럼 계속 강해지시면, 자연히 나머지 시나리오 조각들도 접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윌리아는 친절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무인도란 폐쇄성 때문에 백호님께선 월광도가 답답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이곳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동안 레벨업에 몰두하시는 게 어떨까요?”
맞는 말이다.
그게 최선이겠지.
나는 윌리아의 제안에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마의 던전도 다시 한번 방문해 보세요. 아마 많은 게 바뀌어 있을 겁니다.”
“네?”
몽마의 던전이 바뀌어 있을 거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녀는 빙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여유가 되실 때 월광도 북부지역을 탐색해 보시는 것도 추천 드리겠습니다.”
거긴 또 뭐가 있길래?
호감도가 70%를 달성했더니, 마치 매니저가 된 듯한 윌리아였다.
*
“어?”
나는 윌리아의 말대로 바로 몽마의 던전으로 향했다.
그랬더니 내 눈앞에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몽마의 던전에 입장 하시겠습니까?]
-클리어된 던전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현재 던전 내에 네임드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가 없습니다.
-보스 몬스터는 토벌 후 일주일 뒤, 네임드 몬스터는 토벌 후 하루 뒤에 재등장합니다.
던전이 사람을 납치하던 방식을 버리고, 너무도 친절하게 입장할 거냐는 질문을 던져 온 것이다.
“오오.”
예상치 못했던 기능이기에 나는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멍멍아 들어가보자.”
-컹!
그래서 내부에 들어갔더니, 지난번처럼 던전 중간에 던져지는 게 아니라, 입구부터 차근차근 전진하여 언제든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일반적인 형태의 던전이 된 것이다.
‘던전 보스와 네임드는 한번 잡으면 일정 시간을 두고 재등장하나 보네.’
이거 나중에 변화한 세상에 적응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던전 보스를 독차지하려고 사람들끼리 다투게 될지도 모르겠네.
실제로 비슷한 시스템을 가진 게임에서 그러지 않던가.
‘그럼 나는 던전 하나를 독차지 하고 있는 거네?’
나는 피식 웃으며 무언가 또 바뀐 게 있나 천천히 던전을 돌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클리어까지 꽤나 고전을 한 던전이었는데, 한번 클리어한 경험 때문인지, 단순히 나와 멍멍이가 강해진 덕인지, 쭉쭉 전진할 수 있었다.
“던전 한 바퀴를 도는데 2시간밖에 안 걸리다니···.”
비록 던전 보스와 네임드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2시간 사이 벌린 경험치와 코인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아마도 한동안 몽마의 던전을 계속 돌게 될 것 같다.
‘덤으로 네임드와 보스가 등장할 때마다 따박따박 잡으면 아이템과 스킬 파밍에도 큰 득을 볼 수 있겠지.’
반복 사냥이 지루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안전하게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이 미친 세상에서 엄청난 이점이었다.
몽마의 던전에서의 레벨업과 윌리아가 이유 없이 제안하지 않았을 월광도 북부 탐험.
거기에 가의도의 일까지 처리하면 꽤나 바쁘게 지내야 할 것 같다.
‘겸사겸사 월광도 베이스 캠프도 꾸미고 말이지.’
***
가의도는 섬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뤄져 있다.
더구나 산의 규모도 작지 않아 실제 마을 주민들의 활동구역은 섬 면적의 1할도 되지 않았다.
그 1할의 땅에선 고작 슬라임 정도밖에 나오지 않으니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주민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엔 강력한 몬스터와 예상치 못한 이상 지형이 숨겨져 있기도 했다.
그런 가의도 남쪽의 직각에 가까운 해안 절벽을 낀 어느 산속.
-크륵.
오크의 영역이 위치한 그곳에 회색의 피부를 가진 근육질의 남성이 빛과 함께 등장했다.
남성의 머리엔 하나의 뿔이 길게 자라 있어서 누가 봐도 인간이 아니었지만···.
“여긴 어디?”
그의 입에선 너무도 자연스러운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작업복을 연상시키는 펑퍼짐한 바지가 복장의 전부인 그는 꿈틀거리는 자신의 상체 근육을 살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누구?”
하지만 혼란스러워 보이던 그의 행동은 잠깐뿐이었다.
“그래, 나는 빼앗는 자. 인간의 영토를 다스릴 선택받은 존재다.”
그는 언제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였냐는 듯, 오만한 표정으로 상체를 곧게 펴며 근처에서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오크들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자 오크들은 뭐에 홀린 것처럼 황급하게 달려와 회색의 남성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오늘부터 내가 너희들의 주인이다.”
-크룩!
서백호가 가정한 최악의 상황 중 하나.
그의 활동영역에 엘더 몬스터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
[상태창]
-레벨: 30
-칭호: 없음
-능력치
근력: 16(+1) 순발력: 17(+1) 마력: 11(+9)
잔여 능력치 포인트: 0
-보유 코인: 12,571
윌리아와 삼겹살 파티를 즐기고,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나는 드디어 레벨 30을 달성했다.
낮에 가의도에 가서 비닐하우스 자재를 전달해주고, 그곳의 청년단 4인방을 교육시키고 오느라 약 2시간 정도를 소모하긴 했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 종일 몽마의 던전에 처박혀있었다.
덕분에 해가 지기 전에 레벨 30을 달성할 수 있었고, 오늘 목표로 한 할당량을 채울 수 있었다.
“음... 결국 안전구역 근처가 최고네. 안에 화장실도 있고, 목욕탕도 있으니까.”
조금 더 빨리 레벨 30을 달성해서 해가 높게 떠 있었다면, 이후의 일과는 월광도 북부 탐색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 해가 넘어가는 상황인지라, 나는 활동구역을 어슬렁거렸고, 이내 어느 분지에서 걸음을 멈췄다.
“신혼집···. 아, 아니지. 숙소를 차린다면 여기가 낫겠네.”
뒤로는 안전구역을 접하고 앞으로는 광활한 바다뷰가 펼쳐진 장소.
-쿠엑! 컥!
-컹!
비록 오크의 영역과 접한다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그거야 벽을 치면 시선을 마주칠 일도 없으니 상관없다.
무엇보다 내겐 안전 텐트도 있고, 오크들 정돈 지금처럼 멍멍이가 알아서 처리해 주기도 하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바로 윌리아와 함께 묵을 숙소를 지을 공간을 알아보고 있다.
‘윌리아가 내 동료가 되면 묵을 곳까지 내가 제공해야 한다지? 흠흠.’
그녀가 나를 따라 다니게 되면 신전엔 새로운 NPC가 배정이 된다.
윌리아는 이제 신전 소속이 아니게 되는 거다.
즉,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하니, 이왕이면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이렇게 발품을 팔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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