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1)
“멍멍아, 여기 이 정도 깊이로 파줘.”
-컹!
나는 삽으로 집의 형태를 흙바닥에 그린 후, 멍멍이에게 땅을 파달라 지시했다.
개과 동물들은 생각보다 땅을 잘 판다.
그런데 덩치가 웬만한 불곰보다 커진 멍멍이가 마음먹고 땅을 파니, 흡사 포크레인에 버금갔다.
집은 그리 크지 않게 14평으로 지을 예정이다.
화장실이나 욕실은 안전지대의 것을 사용할 예정이기에, 잠잘 곳과 식사할 곳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집은 벽돌을 쌓아 조적으로 지을 생각이다.
아무리 조적조 집이라고 해도 실제 건축이라면 쉽지 않겠지만, 상점의 건축자재 코너엔 편의성을 더한 신박한 제품들이 많았다.
‘비싼 게 흠이지만.’
예를 들면 ‘매직 블록’이란 게 있는데, 이건 쌓기만 하면 중간중간 시멘트를 바르는 등의 공정 없이 하나의 통 콘크리트 벽이 된다.
심지어 철근을 넣은 것처럼 튼튼하며 단열에도 효과적이라고 하니, 매직 블록만으로 바닥을 채우고 벽을 쌓을 예정이다.
거기에 덮기만 하면 완성이 된다는 세라믹 판넬 지붕이란 게 있어서, 간단히 몇 시간만 투자하면 집의 외형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컹컹!
그때 땅을 다 팠다고 멍멍이가 신호를 보내왔다.
녀석은 50cm 정도 깊이로 땅을 제법 깔끔하게 파놨다.
나는 멍멍이의 일 처리를 칭찬하며, 땅을 다진 후 그 안에 매직블록을 차곡차곡 채웠다.
“정말 통짜 콘크리트가 되네?”
그랬더니 빈틈없이 말끔한 콘크리트 바닥이 만들어졌다.
자동으로 수평도 맞춰주는지, 바닥이 평평했다.
나는 바로 벽을 쌓았고, 그대로 약 2시간 정도가 지나 그럴싸한 집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아직은 바닥과 벽, 지붕의 형태만 갖추고 있을 뿐이지만, 급한 대로 당장 들어가 살아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게임하는 것 같네.”
건축이 쉬우니 꽤나 재미가 있다.
마X크래프트를 하는 느낌이랄까?
“가운데를 거실 겸 부엌으로 두고 양 끝에 파티션을 쳐서 나와 윌리아의 공간을 방처럼 나누면 되겠지.”
욕망 같아선 방이고 뭐고 중간에 킹사이즈 침대 하나만 놓고 싶지만, 그건 너무 노골적이다.
NPC도 감정이 있는 존재이니 순리에 따르는 게 맞겠지.
굳이 벽을 치지 않은 이유는 일말의 미련 같은 게 아니라, 가운데에 난로를 설치할 예정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곧 추워질 텐데 온돌을 설치할 능력이 안 되니, 난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난로로도 감당이 안 될 만큼 추울 땐 온도 조절 기능이 있는 안전 텐트 안에서 자야겠지.’
안전 텐트가 아늑하긴 하지만, 캠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아무리 텐트가 좋아도 침대에서 자는 것과 비교할 순 없다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샷시 달고 담을 설치하는 건 내일 하자.”
-컹!
간단히 1차 공사를 마친 나는 멀리 석양 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태양은 이내 바다에 완전히 잠겼고, 나는 씻기 위해 안전구역의 목욕탕으로 향했다.
오늘 일과는 이걸로 끝이다.
***
대재앙 발생 7일 차, 대한민국 서울.
[빠르게! 신속하게 이동합니다!]
-타타타탕! 탕탕!
[몬스터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앞만 보고 갑니다!]
수많은 군인이 포위한 공간에서 단 일주일 사이 완전한 거지꼴이 된 국민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 일주일 사이 지옥을 경험했기에 이렇게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이라 생각했다.
“젠장! 와이번이다!”
“괜찮아! 대공포 배치됐어! 그냥 신경 쓰지 말고 피난 유도 계속해!”
-두두두두두!
대규모 인원이 결집하여 이동하다 보니,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 떼와 군인들의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들 결연하게 제 할 일을 했다.
이번 계획이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무너진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시 방향 트롤 온다!”
-콰아앙!
몬스터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위기에 빠져 신음하고 있다.
그 상황 속에 대한민국은 전국 9개 대도시를 중심으로 방어라인을 꾸리는 결단을 내렸고, 현재 국민들의 피난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이 그 계획의 첫 번째 실행구역이다.
정부는 서울 시민들을 4개 장소로 나눠 배치하고 있었는데, 그 4개소는 용산공원과 현충원, 경복궁, 서울숲이었다.
해당 지역이 몬스터의 등장 빈도가 낮고, 터가 넓어 대피소로 사용하기 적합하다 판단했다.
현충원과 경복궁은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곳이지만, 당장은 생존이 우선이었기에 사용을 지시했다.
“얼마나 모였어?”
그렇게 서울 방위 작전을 지휘하게 된 수방사 사령관은 자신의 부관에게 시민들의 피난 상황을 물었다.
“85만 명입니다.”
“뭐? 100만 명도 안 된다고? 분명 주변 경기도 도시에서도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앞으로 수용인원이 계속 늘긴 하겠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잘해야 100만 명 전후로 끝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집계된 국민들의 피해현황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덕분에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표정을 굳혔다.
“설마 단 일주일 사이 9할 이상의 국민이 죽었단 뜻은 아니겠지?”
서울의 인구수가 1천만 정도이니, 단순 계산으로 9할이 죽은 것 아니냐고 계산하는 사령관의 행동은 오류라 볼 수 있지만, 부관은 답을 못했다.
워낙 변수가 많은 상황이라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령관은 입을 닫은 부관의 모습에 혀를 차며 화제를 바꿨다.
“괴물들의 공세는?”
“많이 약해졌습니다. 아무래도 고등 몬스터들이 집결된 군대에 달려들지 않고 있는 게 큰 것 같습니다.”
“그 녀석들 이틀 전에 기간시설 파괴하고 다녔잖아?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고등 몬스터는 지능이 굉장히 높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대군 앞에 나서봤자 싸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한 거 아닐까요?”
“참, 괴물 새끼들 주제에.”
그나마 고등 몬스터들이 끼어들어 사태가 커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며, 화마와 연기로 가득한 서울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종말의 도시를 그림으로 그린듯한 풍경.
“앞으로 어찌 될는지.”
힘겹게 생존자들을 모으는 데까지 성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했다.
급하게 확보한 식량만 하더라도 고작 보름 치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
-키에에엑!
“빌어먹을!”
월광도 북부, 미탐색 지역.
나는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에서 기세 좋게 달려오는 리저드맨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런 지형이 있을 줄은 몰랐다.
드론으로 봤을 땐 그냥 숲인 줄 알았는데···.
“멍멍아!”
-컹!
그나마 나보다 네발로 달리는 멍멍이가 늪지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움직였다.
물론, 평소보다 느린 건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나보단 나았다.
멍멍이가 달려드는 리저드맨 중 한 마리를 물고 늘어졌고, 덕분에 당장 내가 상대해야 하는 리저드맨은 세 마리에서 두 마리로 줄었다.
-키엑!
송곳 같은 이빨이 주렁주렁 달린 아가리.
오크를 상회하는 몸집과 전신을 뒤덮은 갑옷 같은 비늘.
더불어 무식하게 큰 포효까지 리저드맨의 기세는 오크 따위와 급을 달리했다.
‘검기.’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녀석들을 맞이했다.
-촥!
-키엑!
우선 선행한 리저드맨의 글레이브를 쉴드 건틀렛으로 쳐내고, 검기를 담아 단번에 목을 날렸다.
[리저드맨을 토벌하여 경험치 200을 획득했습니다.]
[리저드맨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4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리저드맨 가죽 2장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앞선 녀석이 아닌, 뒤따라오던 다른 리저드맨이다.
내가 다른 놈을 상대한 동안, 그 리저드맨은 영악하게 측면을 파고들었다.
발을 붙잡는 늪지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힘들었고, 녀석은 그런 나를 비웃듯 매섭게 글레이브를 찔러왔다.
-휘익!
하지만 나는 그 공격에 오히려 박치기하듯 머리를 가져다 댔다.
-콰아앙!
-키륵!
그러자 리저드맨의 글레이브는 내 두개골을 가르는 게 아닌, 강렬한 충격음과 함께 뒤로 튕겨져 나갔다.
“뚝배기!”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놀란 리저드맨의 목을 베었다.
이게 모두 형태가 드러나지 않은 희귀등급의 방어구, ‘빛을 엮어 만든 투구’ 덕이었다.
[리저드맨을 토벌하여 경험치 200을 획득했습니다.]
[리저드맨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39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리저드맨 가죽 1장을 획득했습니다.
이어서 멍멍이가 상대하던 리저드맨까지 함께 처리한 나는 근처의 온전한 땅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늪을 벗어나, 질퍽거리는 신발을 벗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급 서큐버스랑 보상이 거의 같네.”
하지만 상대하는 건 하급 서큐버스가 편하다.
거긴 이곳처럼 늪지도 아니고, 매혹 스킬만 파훼하면 서큐버스의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구나 최초 보상은 다른 누군가가 먹었고. 역시 꽤 시간이 흘러서 그런가?”
아마 앞으로는 정말 강력한 몬스터가 아니라면, 최초 보상을 차지하기 힘들 것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
운으로 잡든, 머리를 잘 써서 잡든, 다수가 협력해서 잡든, 방법은 다양하다.
굳이 나처럼 한 번에 목을 날리지 않아도 먼저 죽이기만 하면 보상을 가져가는 시스템이 최초 토벌 보너스 아닌가.
“일단 돌아가자. 늪지대를 탐색하려면 준비가 필요하겠어.”
-컹!
나는 굳이 무리하지 말고 멍멍이와 함께 안전구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만만치 않네. 월광도 북부.”
어제 북부지역의 탐색을 못 한지라, 오늘은 일정을 바꿨다.
북부 탐색은 밝을 때 하고, 어차피 몽마의 던전은 낮밤 구분 없는 곳이니 차라리 늦게 입장하기로 했다.
그래서 보무도 당당하게 북부지역 탐색에 나섰는데, 고작 한 시간 만에 복귀를 결정하고 말았다.
‘오늘 북부 탐색은 여기까지 하고, 씻은 다음 가의도나 다녀오자.’
아무런 소득 없이 윌리아를 마주할 생각을 하니 살짝 창피했지만, 무리하다가 다치면 나만 손해니 여유를 갖기로 했다.
뭐든 내 페이스로 하면 된다.
이곳엔 내 방식에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어? 벌써 오셨어요?”
“하하, 가려면 이것저것 준비가 필요하겠더라고요.”
나는 안전구역에서 윌리아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목욕탕에 향했다.
목욕탕에 비용을 지불하고 들어갔다가 나오기만 하면 입고 있던 복장이 알아서 깨끗한 상태가 돼 빨래방 대용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늪의 뻘을 털어낸 나는 다음 일과를 위해 가의도로 향했다.
*
북부 탐색이 예정보다 일찍 끝난 것도.
급똥 같은 것에 괜한 시간을 쏟지 않은 것도.
평소라면 윌리아와 수다를 떨며 여유를 부렸을 텐데, 바로 가의도로 향한 것도.
모두 이 상황을 예기했기 때문일까?
“어?”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가의도로 넘어온 나는 공간이동 효과인 빛이 걷힘과 동시에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이유는 불길에 휩싸인 마을의 풍경이 나를 반겨 주었기 때문이다.
“뭐, 뭐야?”
본래 사건 사고는 예고 없이 발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 아닐까?
예상치 못한 급전개에 뇌정지가 온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거금을 들여 마련한 비닐하우스와 집이 불타오르고, 마을 사람들이 오크들에 쫓겨 다니며 아우성을 치는 모습 보게 되자 정신을 차렸다.
‘분명 마을 주변에 오크 영역은 없는데?’
가장 먼저 그 의문이 들었지만.
언제까지 감상에 빠져 있을 수 없었기에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주민 구조가 우선이야.’
전력으로 내달리니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거기에 도약 스킬을 점프가 아닌 앞으로 튀어나가는 용도로 사용하자, 더욱 가속도가 붙어 제비가 된 듯 지면 가까이 날았다.
“사, 사람 살···.”
그리고 어느 아주머니를 붙잡고 돌도끼를 내려치려던 오크를 발견한 나는 빠르게 방향을 틀며 발검을 했고.
-꾸익?
[오크를 토벌하여 경험치 50을 획득했습니다.]
[오크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오크의 멍청한 목소리가 등 뒤로 울려 퍼지며, 보상 메시지가 떠올랐다.
몬스터가 반응하기도 전에 처리하고 지나친 것이다.
-촤악! 촥!
“어어?”
“자, 자네.”
이후로도 나는 매섭게 달려나가며 눈에 띄는 오크란 오크는 모조리 처리했다.
일 검에 정확하게 한 마리씩.
달리는 와중에서 흐트러짐이 없이 검격을 뿌렸다.
나도 스스로가 이렇게 잘 싸울 수 있었나 싶을 만큼, 달리고 베고를 반복했다.
당연히 이런 내 모습을 마을 주민들이 똑똑히 보게 되고, 공포에 질려 있던 표정들은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트롤?’
그리고 마을 회관 뒤쪽에서 트롤 한 마리가 몸을 일으켰다.
녀석의 손에는 내게 싸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마을 이장의 딸 김민희가 붙잡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모습.
겁에 질린 김민희의 표정이 크게 클로즈업돼 보였다.
“꺄아아악!”
트롤은 월광도에도 있지만, 아직 정면으로 붙은 적이 없다.
신장이 7~8미터에 달하는 녀석의 덩치 때문에 쉬이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탓!
나는 도약 스킬을 사용해 하늘 높이 뛰어오르며 검에 검기를 담아 휘둘렀다.
허공에 푸른 빛의 반달이 새겨지고.
트롤의 목이 맥없이 날아올랐다.
[트롤을 토벌하여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트롤을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2,500을 획득했습니다.]
.
.
.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경험치.
그동안 큰 덩치에 괜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이어서 쓰러지는 트롤의 몸에서 김민희를 떼어낸 나는 그녀를 대충 풀밭에 던져두었다.
“고, 고맙···.”
아직 할 일이 많다.
구해야 할 사람도 많고.
그래서 감사의 인사를 들을 틈도 없이, 마을을 습격한 나머지 몬스터들을 정리해 나갔다.
본래라면 하지 않을 다소 무리한 공격도 가의도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가감 없이 쏟아부으니, 나조차 놀랄 만큼 압도적인 무위를 발휘했다.
무아지경, 물아일체란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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