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3)
제르카의 검이라 이름 붙여진 장검의 정보는 이러했다.
[제르카의 검 / 한손반 장검 / 등급: 특수]
-엘더 몬스터 제르카가 사용하던 검으로 미스릴이 대량 포함된 합금검이다.
-검기 등 무기 스킬의 위력이 50% 상승한다.
-근력+2, 순발력+2
-자체 스킬: 거력참
그 검은 지금까지 갖고 다니던 무기들과 급을 달리했다.
능력치가 한 번에 4씩이나 오르는 것도 대단하고, 검기 등 무기 스킬의 위력이 50%씩이나 오르는 것도 대단하지만···.
“거력참.”
-후우웅! 콰아앙!
막강한 전투 스킬을 보유하고 있어서, 이 정도는 돼야 ‘특수’ 등급의 무기인가 싶을 만큼 감탄사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내장 스킬이 있는 아이템을 몇 번인가 구했었다.
하지만 해당 아이템들의 내장 스킬은 하나같이 ‘하루 2~3회 사용 가능’ 이런 식으로 제한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제르카의 검에 붙은 내장 스킬 거력참은 내가 가진 마력을 소비하여 발현되기에 횟수 제한이 없었다.
즉, 거력참이란 스킬을 새로 익힌 것이나 다름없단 소리다.
“와우···.”
거력참의 위력은 굉장했다.
단순 파괴력만 따지면 검기를 크게 상회하는 한방공격이다.
시험 삼아 근처의 나무 그루터기를 찾아 휘둘러 봤더니, 그루터기를 베는 게 아니라 터뜨리는 수준의 위력을 냈다.
“그야말로 일격 필살이네.”
어중간한 검으로 이 공격을 막으려 하면 100% 양단될 것이다.
검이 부러지지 않더라도 근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어깨나 팔이 부서질 테고.
비록 일격에 마력을 3이나 소모하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발휘되는 위력이 소모되는 마력 이상의 출력을 뽑아내니 불만 따윈 없었다.
“검기랑도 상성이 좋아 보이고.”
이후 내 전투에 날개를 달아줄 스킬이자, 검이었다.
‘칼날이 조금 길고, 이 전에 사용하던 검보다 살짝 무겁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야.’
나는 착용하고 있던 최고급 등급의 티에리 소드를 인벤토리에 던져 놓고, 새로 얻은 제르카의 검을 바로 허리에 채웠다.
그리고 계속해서 보상을 살폈다.
‘인벤토리가 3칸 추가되어 17칸이 되었고.’
인벤토리 공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전투력이 부족해도 인벤토리를 잘만 활용하면 불리함을 극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참고로 인벤토리엔 내가 직접 들 수 있는 물건만 넣을 수 있는데, 근력이 높아짐에 따라 인벤토리의 사용 폭이 넓어지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다음 보상은 상급 회복 물약? 상급 회복 물약은 처음이네.’
제르카 토벌 보상으로 상급 회복 물약도 3개나 얻었다.
상급 회복 물약은 신체가 뜯겨 나가도 단숨에 회복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이미 하루 1회 상급 회복이 가능한 회복의 반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안전장치는 많아서 나쁠 것 없으니, 기쁜 마음으로 물약을 챙겼다.
‘마지막 보상은 오크 테이밍 목걸이.’
나는 이름부터 멍멍이의 개목걸이를 연상시키는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오크 테이밍 목걸이 / 특수]
-레벨 30 이하 오크 류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다.
-길들인 후 레벨이 30을 넘는 경우 문제없이 효과가 유지된다.
-길들인 오크가 죽을 경우, 아이템을 수거해 다른 오크에게 재사용할 수 있다.
별 기대 없이 본 아이템 설명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레벨 30 이하 오크 류’ 몬스터에 사용 가능한 아이템이라니?
레벨 7짜리 오크밖에 본 적 없는 나로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크 따위가 뭐라고 아이템이 특수 등급이야?’
오크를 길들이는 아이템이 제르카의 검과 같은 급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추후 기존 몬스터들의 상위종이 등장하려나?’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비행 몬스터와 수중 몬스터, 엘더 몬스터가 차례로 업데이트되었듯, 오크 궁수나 오크 전사, 오크 족장 같은 게 또 나오지 말란 법 없다.
‘아니면 내가 모르고 있을 뿐, 특수한 오크가 이미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지. 던전 같은 형태로 말이야.’
던전이라면 네임드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가 등장할 테니, 이 역시 일리 있는 추론이었다.
즉, 이로 인해 얻어지는 결론은···.
“어쨌든 당장은 일반 오크에게 밖에 사용 못 한다는 거잖아.”
그나마 해당 아이템이 재활용이 가능하단 게 다행이다.
일단 아무 오크를 길들여서 써먹고, 나중에 더 강하고 뛰어난 오크를 발견했을 때, 다시 사용하면 되니까.
나는 테이밍 목걸이를 인벤토리에 때려 넣었다.
오크는 월광도에도 많으니, 굳이 가의도에서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어?”
그런데 그때.
한가지 가능성이 번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크 형태의 엘더 몬스터가 존재할 수도 있지 않나?”
만약 오크 형태의 엘더 몬스터를 길들이는데 성공한다면.
내겐 몬스터 대군이 생기는 거다.
물론, 예측이 적중한다는 보장도 없고, 오크 형태의 엘더 몬스터를 찾아도 길들이는 데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행복회로 돌리기 딱 좋은 아이템인 건 분명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져보니, 비로소 아이템 등급이 특수인 이유가 이해되었다.
‘육지로 나가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네.’
나중에 육지로 진출하면 오크형 엘더 몬스터를 꼭 찾아봐야겠다.
“좋아, 좋아.”
이걸로 엘더 몬스터 제르카의 토벌 보상을 모두 확인했다.
하지만 아직 남은 보상이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엘더 몬스터 토벌 보상]
-최상급 장비 선택권
[엘더 몬스터 최초 토벌 보상]
-상급 스킬북 뽑기권
최상급 장비 선택권은 사용하지 않고 묵혀 놓은 것까지 총 3개가 되었다.
딱히 아끼려고 아낀 건 아니다.
근시일 내로 날을 잡아서 아이템을 정비할 생각이라 잠시 선택을 미뤄놨을 뿐이다.
그동안 수집한 소재 아이템으로 공방에서 장비를 제작하고, 제작템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아이템을 선택할 예정이다.
‘이번에 얻은 것도 그때 사용하자.’
그래서 나는 상급 스킬 뽑기권만 사용하기로 했다.
‘전투 스킬 나와라!’
-팟!
뽑기권을 사용하자, 예전의 K-모바일 게임 특유의 뽑기 이펙트가 발생했다.
그리고 쥐어진 스킬북은 이것.
[디딤판 / 상급 스킬북 / 액티브]
-공중에 투명한 디딤판을 만들어 밟고 뛰거나 일시적으로 공중에 뜰 수 있다.
-디딤판 유지 시간 5초
“어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원하던 부류의 스킬이 아니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실용적이고, 활용법에 따라 전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긴 하다.
아쉬워하기에도 뭐하고 환호하기에도 뭐한, 딱 그 정도의 느낌이다.
“그동안 너무 좋은 것만 먹었나 보다. 이걸 아쉬워하네.”
나는 스스로를 훈계하며 디딤판 스킬을 익혔다.
“확인 끝.”
이로써 보상 타임이 완전히 끝났다.
예상치 못한 급전개에 당황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엘더 몬스터는 내게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가자 멍멍아. 너도 수고 많았어.”
-컹!
볼일이 끝났으니, 가의도의 피해 상황을 살펴봐야겠다.
“아까 보니까 내 코인으로 지어진 비닐하우스들도 불타고 있던데. 비닐만 갈면 되려나?”
나는 멍멍이와 함께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
마을로 가니, 주민들이 모두 안전구역에 모여 있었다.
나름 열심히 사람들을 구한다고 움직였으나, 부상당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안전구역에 머물면 부상이 조금씩 치료되기 때문에 이는 적절한 조치였다.
“애초에 안전구역으로 도망치면 피해가 적었을 텐데요.”
“그럴 여유가 어딨었겠나. 느닷없이 들이닥친걸.”
나는 김용근, 마을 이장과 함께 부상자들을 살폈다.
대부분 간단한 외상이었지만, 돌도끼에 연거푸 찍혀 온몸이 으스러지거나, 내장이 드러날 정도로 심한 열상을 입은 주민도 있었다.
나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주민에게 회복의 반지 내장 스킬인 상급 회복을 사용하고, 추가로 중상자를 위해 중급 회복 물약도 2개를 꺼내 사용했다.
하급 회복 물약으로 치료될 부상은 어차피 안전구역에 머물고 있으면 치료될 터이니,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지 않았다.
“미안하네. 자네에겐 도움만 받는군.”
감성적으로 판단하면 능력이 되는데도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들을 죽게 둘 수 없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그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노동력이었기에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아이템 내장 스킬이야 하루가 지나면 리셋되고, 중급 포션은 10개나 있으니 아까워할 필요 없었다.
“서로 돕는 거죠.”
하지만 물약을 쓴다고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망자는 혼자 살던 분들입니까? 딱히 가족 같아 보이는 사람이 없네요?”
“팬션을 운영하던 성씨는 혼자였는데, 박씨 할머니는 손주와 둘이 살고 있었지.”
“손주요?”
“저기 저 아이 말이야.”
이번 일로 가의도 주민 28명 중 2명이 죽었다.
죽은 사람 중 한 명은 독신의 팬션 사업가였고, 나머지 한 사람은 10살짜리 손주와 단둘이 살던 할머니였다.
‘그러고 보니, 섬에 어린아이가 한 명 있었지.’
나는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엘더 몬스터의 습격으로 인해 갑자기 고아가 되어버린 소년.
그 소년이 모습이 묘하게 눈에 밟혔다.
“혹시나 싶어 하는 말인데, 자네는 일말의 책임감도 느낄 필요 없어. 덕분에 26명이 살았고, 저 둘은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니까. 아이는 마을 차원에서 책임지고 키울 테니, 걱정 말게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보게 된 이상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빤히 소년을 바라보다가 품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들었다.
일전에 가의도 안전구역 도박장에서 뽑은 일반 등급의 단검이다.
단검치고 날이 꽤 긴 게 특징이다.
“뭐하려고?”
그리고 나는 캠핑 나이프를 추가로 꺼내 그 위에 검기를 씌웠고.
앞서 뽑은 단검의 날 부분을 슥슥 비볐다.
-사각. 사각.
덕분에 오래지 않아 단검은 가검이나 다름없이 날이 죽어버렸다.
손에 움켜쥐어도 베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걸 들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음?”
내가 접근하자 마을주민들이 알아서 비켜주었고, 방해 없이 아이 앞에 설 수 있었다.
“받아.”
그리고 날이 죽은 단검을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가 드니, 단검이 숏소드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단검을 받아든 소년은 그때서야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뒤로 물러났다.
“할머니를 잃었어도, 아이에겐 자네가 영웅으로 보일 거야.”
김용근은 그런 나를 보며 쓰게 웃었다.
“왜요?”
“기억 안 나나? 아이를 둘러싸고 있던 오크들의 목을 자네가 한 번에 날렸는데?”
그땐, 오크를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다녀서 누굴 구했는지 자각이 없다.
이 아저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후 우린 사망자들을 안전구역 근처에 묻어 주고 간단히 장례를 치렀다.
“잘 가시게. 아이 걱정은 말고.”
담담한 사람,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을 지켜보다가 김용근이 대뜸 내게 물어왔다.
“육지는 매일 매일이 이렇겠지?”
“······.”
가의도에서 이번 사건은 예외적인 일이다.
하지만 육지에선 이런 일이 빈번할 것이다.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는 와중에도, 나는 가의도 주민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다.
*
엘더 몬스터 사건으로부터 하루가 지났다.
가의도에서 사망자가 나왔다고 해서 내 일정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팍팍 밀어!”
-꾸익!
현재 내 레벨은 32.
어제 엘더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 레벨이 오르고, 이후 몽마의 던전에서 레벨 1을 또 올려 32가 되었다.
그리고 날이 바뀌고 해가 중천에 뜬 지금.
나는 다시 월광도 북부 탐색에 나섰다.
다만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나무판과 스티로폼을 덧대 만든 제법 튼튼한 뗏목을 타고 있으며, 웬 오크가 뒤에서 열심히 뗏목을 밀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는 발에 진흙 하나 묻지 않고 늪지대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키에엑!
그때.
어제처럼 리저드맨이 등장했다.
리저드맨 세 마리가 날카로운 기세를 뽐내며 달려들었고.
“멍멍아 한 마리 맡아!”
-컹!
어제처럼 멍멍이가 한 마리를 물고 늘어지며, 두 마리의 리저드맨이 달려들었다.
“이 도마뱀 새끼들, 오늘은 어제와 다를 거다.”
출렁이는 뗏목 위에서 나는 전투태세를 취했다.
뗏목을 밀던 오크는 리저드맨의 기세에 겁을 먹은 듯 보였고,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흔들이는 뗏목이 더욱 요동을 쳤다.
이대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디딤판.’
디딤판 스킬을 사용하자, 발아래 가로세로 2미터 크기의 투명하면서 튼튼한 발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촤악! 촥!
-켁! 큭!
덕분에 나는 지면을 딛고 싸우는 것처럼 흔들림 없는 편안함으로 리저드맨 두 마리를 썰어 버렸다.
이어서 멍멍이가 끌고 온 리저드맨까지 처리하니, 마침 디딤판의 유지시간인 5초가 지나면서, 나는 다시 출렁이는 뗏목 위에 섰다.
“최고구만.”
단 한 번도 늪에 들어서지 않고 전투에 승리했다.
깔끔하지 않은가.
“가자 뚱이야!”
그렇게 나는 새로 테이밍한 오크가 미는 뗏목을 타고 월광도 북부지역의 탐색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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