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행 단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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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월광도는 약 22만 평의 면적을 가진, 어중간한 크기의 섬이었다.
하지만 대재앙이 발생한 직후 ‘이상 지형’이 생기면서 월광도의 규모가 무식하게 커졌다.
이 정도면 울릉도나 백령도 같은 섬에 비견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월광도를 확장시킨 이상 지형을 통틀어 월광도 북부라 칭하고 있는데, 초입 부분인 늪지대를 시작으로 무엇하나 예측과 맞지 않는 ‘특이함’으로 이뤄진 장소였다.
“왜 이제야 나타났니···.”
[실풀 / 일반]
-실을 뽑을 수 있는 채집 소재, 천과 가죽 방어구 제작에 사용되는 필수 재료이다.
[회복초 / 고급]
-상처를 치료하는 약초, 트롤의 피와 조합하여 회복물약을 제작할 수 있다.
늪지를 빠져나오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
그건 그토록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채집 식물로 가득 채워진 숲이었다.
특히 실풀은 실을 뽑아낼 수 있는 채집 식물로 이게 있어야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데, 보이지 않아서 꽤나 찾아다니던 거였다.
그런데 그토록 보이지 않던 게 이렇게 널려있다니.
“뚱아, 뭐해? 전부 뜯자.”
-꾸익!
나와 뚱이는 봄이 되면 산등성이에서 자주 보이는 할머니들에 빙의하여 열심히 채집을 시작했다.
[회복초를 채집하여 경험치 2를 획득했습니다.]
[실풀을 채집하여 경험치 1을 획득했습니다.]
채집물을 캐니 조금이나마 경험치도 벌렸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게 모이고 모이면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니, 또 다른 레벨업 요소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반인이 채집으로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몬스터란 위험요소를 해결해야겠지만.
[실풀: 185개]
[회복초: 42개]
그렇게 풀 뜯는 머신이 되어 실풀과 회복초를 쓸어 담은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 지대 탐색을 이어갔다.
이 숲 지대는 사전에 드론으로 살펴봤던 지역이다.
-꾸익!
등장 몬스터는 이젠 눈 감고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뚱이의 친구 오크들.
문제는 이전과 달리 오크 열댓 마리가 떼거리로 몰려다닌다는 점이다.
-쉬익!
하지만 나는 당황한 기색 없이 침착하게 검을 휘둘렀다.
무광택의 회색 장검, 제르카의 검이 휘둘러 질 때마다 오크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스킬이고 뭐고 없이, 오로지 강화된 신체 능력만으로 오크들을 학살했다.
“벌써 다 죽였네?”
그리고 채 2분을 넘기지 않아, 열댓 마리의 오크를 모조리 쓰러뜨렸다.
“뭔가, 가의도 사건 이후 사냥이 쉬워진 느낌이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의도에서의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던 전투가 어떤 깨달음을 주었을까?
검을 다루는 나 자신에게 여유가 생겼음을 느꼈다.
더불어 무엇을 상대하든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도 함께.
‘오만은 사고의 지름길임을 알지만···.’
뭔가 다르다.
능력치에 큰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고, 검술 실력이 향상된 것도 아닌데, 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적의 움직임이 더 잘 보이게 되었다고 할지.
갑자기 하드모드로 플레이하던 게임의 난도가 노말모드로 낮아진 느낌이다.
‘뭐, 강해졌으면 그만이지. 길게 생각할 필요 없어.’
덕분에 위기다운 위기 없이 숲 지대를 돌파할 수 있었고.
나는 월광도 북부지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호수 지대에 다다랐다.
“물색이 뭐 이래?”
이상 지형과 함께 생긴 호수.
규모가 꽤나 크다.
그런데 물색이 사파이어나 에메랄드빛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시커멓다.
마치 마리아나 해구를 하늘에서 촬영한 것처럼.
“호수가 아니라, 싱크홀이라고 해야겠는데?”
내가 쓰고 있는 빛을 엮어 만든 투구는 어떤 환경에서도 투구를 쓴 사람에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한다.
즉, 물속에서도 유용한 아이템이란 건데, 시커먼 물의 색에 감히 직접 들어가서 투구의 성능을 확인해보겠노라는 허튼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안에 물고기는 있나?”
그래서 호수에 얼굴만 들이밀어 내부를 살펴보기로 했다.
만약 안에 물고기가 많다면 이 호수는 내 식량 창고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어둠 속에서도 사물 분간이 잘 되는 실루엣 고글을 쓰고 물속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스스스스.
그리고 찬찬히 깊고 어두운 호수를 살피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했다.
‘건물인가?’
수심 150미터 정도의 공간에서 건축물 같은 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물속에 잠겨 있는 시설이라니.’
너무도 신비로운 풍경이다.
나는 뭔가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모험심을 발휘하며 호수 여기저기를 살폈다.
“응?”
그런데 그때.
건축물보다 더 깊은 호수 바닥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게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스스스스.
나는 그게 뭔가 싶어 집중해서 살폈고.
복잡하게 뒤엉켜 꿈틀대는 뱀장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이크 서펜트 / 레벨: ???]
[레이크 서펜트 / 레벨: ???]
[레이크 서펜트 / 레벨: ???]
거리를 염두에 둬도 하나하나의 덩치가 족히 수십 미터는 달할 듯한 거대 뱀장어들을···.
‘레이크 서펜트?’
등 뒤를 오싹하게, 서늘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대로 스르르 물속에서 얼굴을 뺐고.
“튀어!”
-컹!
-꾸익!
이내 멍멍이, 뚱이와 함께 호수에서 도망쳤다.
알고 보니 저건 호수가 아니라 지옥의 입구였다.
탐색 스킬을 익힌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레벨: ???’ 몬스터가 족히 수십 마리는 되어 보였으니까.
‘대체 뭐가 있길래.’
한참이나 달려 호수에서 멀어진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까 했던 생각을 취소했다.
‘무엇을 상대하든 지지 않을 것 같다’란 속마음 말이다.
저건 못 이긴다.
덤비면 100% 죽는다.
“여긴?”
잠시 후, 우린 늪지대, 숲 지대, 호수 지대에 이어, 작은 정글 지대에 다다랐다.
빼곡하게 수풀이 우거진 장소.
드론으로도 살펴볼 수 없던 지형 중 하나이다.
아까 호수의 존재로 급격히 자신감을 잃은 나는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물속과 달리 땅 위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갈 수 있단 자신감이 있기에 조심히 발을 들였다.
“오?”
겨우 햇빛 몇 줄기가 들어올 뿐인 정글의 풍경.
살짝 어둡긴 하지만 묘하게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그런 장소였다.
어째서 묘한 분위기가 나나 했더니, 나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끼가 야광 물질처럼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네.”
[야광이끼 / 고급]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이끼. 병에 넣어 횃불 대용으로 쓸 수 있다.
-습도를 잘 유지하고 하루 3시간 이상 햇빛을 쬐게 해주면 제법 긴 수명을 가진다.
그 야광이끼도 채집물이었다.
챙겨가면 좋을 것 같아서 손으로 떼봤더니, 야광이끼는 손에 닿자마자 말라 빛을 잃었다.
그래서 검으로 긁자, 이번엔 아무 문제 없이 채집이 되었다.
아무래도 야광이끼를 채집하기 위해선 도구가 필요해 보인다.
“밤을 밝힐 수 있는 수단이 생기는 건 환영이지.”
세상이 변하고 지구의 밤은 빛을 잃었다.
만약 다른 곳에서도 야광이끼를 채집할 수 있다면, 이 야광이끼는 새로운 세상에서 밤을 밝혀줄 귀한 존재가 될 것이다.
‘나중에 육지에 가게 되면 교역 물품으로 써도 좋겠어.’
육지행을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 나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후로도 우린 정글 이곳저곳을 탐색했는데.
“신전?”
머지않아 수풀에 뒤덮인 낡은 신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앙코르와트를 연상시키는 그런 장소였다.
[숨겨진 필드, 정글 신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무심코 다가갔더니, 위의 메시지와 함께.
-크르르.
범상치 않은 기세를 뽐내는 검치호 3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치호 / 레벨: 25]
[검치호 / 레벨: 25]
[검치호 마르크 / 레벨: 30]
두 마리는 일반 몬스터였지만, 한 마리는 무려 이름을 가진 네임드 몬스터였다.
나는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전투태세를 갖췄고, 내 옆으로 멍멍이가, 등 뒤로 약하디약한 뚱이가 근처 나무 뒤로 숨으며 사태를 주시했다.
“멍멍아 한 마리 맡아.”
-컹!
그리고 전투가 개시됐다.
마침 멍멍이의 레벨이 27이어서, 레벨이 낮은 검치호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본적인 종족 값이 차이가 나는 걸까?
멍멍이는 쉬이 검치호 한 마리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그사이 나는 네임드 검치호 마르크와 일반 검치호 한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까앙!
“큭!”
마르크의 앞발 공격을 검으로 쳐냈다가 금속 마찰음과 함께 뒤로 크게 밀려 놀라고 말았다.
‘발이 완전 금속이네.’
게다가 일반 검치호는 네임드 검치호 마르크를 보조하며 영리하게 나를 견제했다.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며 다가올락 말락 하는 녀석의 모습이 신경 쓰여 마르크를 향한 대응이 늦었다.
-핏!
덕분에 나는 어깨에 제법 길고 깊은 상흔을 입고 말았다.
짐승 주제에 제법이다.
-크르르릉!
나는 즉시 하급 회복 물약을 꺼내 마셨다.
당연히 검치호들은 그런 나를 매섭게 압박해왔지만, 뒤로 몇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치료를 완료하고 다시 전투태세를 취할 수 있었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신중하게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기회를 노리는 식으로 싸웠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녀석들이 강하긴 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크와아앙!
그때, 마르크와 일반 검치호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치직!
나는 제르카의 검에 검기를 담으며, 일반 검치호에게서 신경을 끄고, 오로지 마르크만을 응시했다.
검 역시 그런 마르크를 겨눠, 일반 검치호는 없는 것 취급을 했다.
마르크와 검치호는 짐승이라 표정을 알 수 없지만, 아마 의아한 기색을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검기가 깃든 검을 크게 휘둘렀다.
‘거력참.’
제르카의 검에 깃든 자체 스킬.
마력을 3이나 잡아먹는 거력참이 검기를 머금고 휘둘러졌다.
-쉐에에엑!
가공할 기세에 두 짐승이 크게 움찔거렸지만, 이제 반응해봐야 늦었다.
스킬의 위력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에 정확하게 마르크의 앞발과 충돌했으니까.
-콰아아앙!
-크엉!
그로 인해 수류탄이 터진 것 같은 소음이 울려 퍼졌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 발 하나는 날아갈 거다.
아니면 그대로 죽어 버리거나.
-크왕!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것이 또 있었으니.
적은 마르크 하나가 아니었고, 일반 검치호가 동시에 달려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와 마르크가 충돌하는 순간, 녀석이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려왔다.
단숨에 목을 물어뜯겠다는 듯이.
칼날 같은 검치호의 이빨은 위협적이다.
녀석의 아가리가 피할 수 없는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짧게 한마디 내뱉었다.
“디딤판.”
-쾅!
그러자 투명한 디딤판이 내 눈앞에 생성되며, 검치호의 접근을 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검치호가 디딤판과 강하게 부딪히며 머리가 돌아갔다.
그리고 그 잠깐의 빈틈은 내가 검을 회수해서 한 차례 더 휘두를 여유를 제공했다.
[검치호를 토벌하여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검치호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2,500을 획득했습니다.]
[검치호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2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검치호 가죽 2장을 획득했습니다.
-검치호 이빨 1개를 획득했습니다.
[검치호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검치호 가죽 4장을 획득했습니다.
검기에 양단된 검치호가 보상을 토해냈다.
‘디딤판을 꼭 밟는 데만 쓰란 법은 없지.’
기본적으로 디딤판은 원하는 장소에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즉, 사용하기에 따라 적에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단 뜻이다.
비록 디딤판을 수직으로 세워서 방어막처럼 사용하진 못하지만, 이렇게 적절히 움직임을 막는 용도로 사용하기만 해도 내겐 여러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고, 이내 앞발을 잃고 낑낑대는 마르크를 볼 수 있었다.
“신전에 뭐가 있길래 파수꾼 역할을 부여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고생했다.”
아무리 네임드 검치호가 강하고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앞발을 잃은 상태론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네임드 검치호 마르크를 토벌하여 경험치 8,5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네임드 검치호 마르크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2,01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중급 회복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마르크의 이빨 단검을 획득했습니다.
[마르크의 이빨 단검 / 단검 / 등급: 최고급]
-마르크의 이빨로 만들어진 단검이다.
-면도날과 같은 예리함을 항상 유지한다.
-모든 능력치+1
이어서 멍멍이가 고전하고 있던 검치호까지 해치우는 데 성공한 나는 단검 하나를 제외하곤 소재 아이템뿐인 보상에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은 행운의 탈리스만이 일을 안 하네.”
이런 날도 있는 게 당연한 거다.
오히려 그동안 내가 너무 운이 좋았던 거지.
-꾸익!
나는 머쓱한 듯 다가오는 오크 뚱이를 향해 말했다.
“뚱아, 이제 네 차례다.”
-꾸익?
당연하지만 저 수상한 신전에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건물에 막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게임 같은 데서 보면 이런 건물에 함정이 깔려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나는 뚱이를 앞세웠다.
이름을 붙여준 펫을 실험에 써먹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내 목숨이 제일 소중하다.
더구나 멍멍이에 비하면 함께한 시간도 적고, 정감 안 가게 생긴 외모를 한 탓에 친밀함도 살짝 부족했다.
내 지시에 녀석은 무언가 결심한 듯 굳건히 고개를 끄덕이며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 일도 없네?”
-꾸익.
다행히 정체 모를 신전엔 함정 같은 게 설치되어 있지 않아 뚱이는 무사할 수 있었다.
신전 내부엔 넓은 광장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 중심엔 흙이 차 있었고.
그 흙 위로 한줄기의 햇빛이 핀포인트처럼 떨어지며 붉은 열매가 달린 식물 하나를 비추었다.
[천년삼 / 영약 / 희귀]
-섭취 시 일정량의 마력이 영구적으로 향상된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영약을 이런 곳에서 발견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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