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1)
***
해변을 끼고 있는 충남 만리포의 한 호텔.
중년의 남성이 스위트룸 집무실을 차지하고 앉아 이제 겨우 청년티를 벗은 사내에게 보고를 받았다.
“오늘 수익은 7,330코인입니다.”
“어제보다 적은 것 같은데?”
“그게, 오크 사냥팀 하나가 전멸하는 바람에 수익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뭐? 야. 오크 사냥팀이면 나름 유망한 놈들 아냐? 그런 놈들을 죽게 둬?”
“죄, 죄송합니다.”
“사격 대원 안 따라갔어? 사냥팀이 위험할 것 같으면 일단 총으로 몬스터를 처치해주라고 했잖아.”
“그게 워낙 복잡하게 엉켜서···. 사냥팀 5명 중 2명은 실수로 아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아주 지랄들을 하네.”
현재 만리포 안전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은 제법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만리포 안전구역엔 ‘식품, 무기, 방어구’ 3박자가 딱딱 맞는 상품을 파는 상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한 방에 전투력을 끌어올릴 가능성을 제공하는 도박장과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연금술 공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안정적으로 코인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해당 구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꾸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단 의미다.
“됐고, 일단 코인은 비율에 따라 분배하도록 해. 내게 배정되는 건 얼마지?”
“1,422코인입니다.”
“쯧, 1,500코인이 안 되나? 뭐 별수 없지.”
“그럼 간부와 대원들에게 나머지 5,908코인을 분배하겠습니다.”
“그래.”
현재 만리포를 점령하고 있는 단체는 태안 경찰서에서 떨어져 나온 이탈세력과 태안 해경이 합쳐져 만들어진 세력이다.
이들의 리더는 태안 해경 형사기동대 제대장.
비록 기동대 부하는 단 4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직급으로 보나, 직무로 보나, 그를 대신할 리더는 없었다.
그는 시민들로 몬스터 사냥팀을 꾸려 코인을 모으게 하고 그걸 경찰 동료와 앞잡이 역할을 하는 시민들과 나눠 가졌다.
“참. 죽은 사냥팀의 가족 중 도움이 되는 이들은 남기고,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은 추방해.”
“임신한 여성과 아이들이 대부분인데요?”
“어쩌라고. 그냥 하던 대로 해.”
“하, 하지만···. 지금까지 죽은 사냥팀 대원만 30명이 넘고, 추방당한 사람도 거의 100명 가까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조치가 계속 이어지면 아무도 위험한 사냥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뭘 새삼스레, 가족들에게 총 들이밀면 다들 하게 되어 있어.”
“······.”
당연히 이들이 시민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공포 정치다.
총기를 앞세워 지역을 장악하여, 도움이 되는 사람은 빨아먹고,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뱉어 버렸다.
만리포에서 이들은 귀족이자 왕이었으며, 거역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건 총질이었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우린 생존 싸움을 하고 있는 거란 걸 잊지 마. 약해지거나 도태되는 순간 세상에 잡아먹히는 거야. 잘 알면서 그래?”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제대장은 자기합리화를 하며 약한 모습을 보이는 부하를 다그쳤다.
이어서 부하가 나가자 그는 태양광 발전으로 가동 중인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를 꺼내 마셨다.
그리고 연례행사처럼 수중에 들어온 코인을 살폈다.
[보유코인: 10,203]
겨우 며칠 사이 1만 코인이 넘는 거액이 쌓인 상태.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이 코인은 십만, 백만 단위가 될 터이다.
즉, 멸망한 세상 속에 코인 재벌이 탄생하는 것이다.
비록 자신을 위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의 세상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나라가 망해도 잘살 사람은 잘산다.
오히려 제대장은 왕처럼 군림하며 모두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지금이 살기 좋은 세상 같다고 생각했다.
“대장님!”
“응?”
그렇게 얼마나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을까?
제대장은 갑자기 현실로 자신을 잡아끄는 외침에 미간을 찌푸렸다.
-쾅!
방금 나갔던 부하가 다급히 그의 객실 문을 열어젖히며 외쳤다.
“스, 습격입니다!”
“뭐? 그게 뭔 개소리야?”
제대장은 순간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황당하단 표정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빠악!
“컥!”
보고를 하던 부하가 무언가에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지고, 손에 칼을 쥔 남성이 성큼성큼 제대장의 객실에 들어왔다.
“어? 어어?”
그리고 그가 바보같이 ‘어어?’만 반복하고 있을 때, 사내의 검이 번뜩이며, 제대장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핏!
제대장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걸 지켜보면서도 갑작스런 급전개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죽어갔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연신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는 만리포 주민들의 인사를 받으며 손을 내저었다.
원랜 만리포의 일에 관여할 생각 따윈 없었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부모님이 계신 계룡대까지의 길을 뚫는 거고, 최단 루트로 웨이포인트를 저장하며 이동하는 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만리포를 점령하고 있는 세력이 안전구역까지 점거하고 있었단 거다.
‘잠깐 웨이포인트만 찍고 갈게요. 이건 약소하지만···.’
이번엔 정말 불필요하게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안전구역을 지키고 선 문지기 같은 놈들에게 코인을 건네며 살짝 들어갔다 오려 했는데···.
이 자식들이 대뜸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코인과 장비를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놨다.
새삼 이런 류의 인간들과는 흥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그들을 뚫고 강제로 안전구역에 입성했다.
그리고 웨이포인트를 찍고 나왔더니···.
아니나 다를까, 더욱 많은 사람이 나를 잡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다.
‘싸울 생각 없습니다. 그냥 보내 주시죠.’
그래도 한 번 더 인내심을 발휘해 대화를 시도했다.
‘쏴!’
-타타타탕!
하지만 그들은 통제가 되지 않은 개인을 극도로 싫어했다.
이로 인해 돌아오는 건, 문답무용 사격 지시였다.
당연히 그 순간 내 인내심도 끊기고, 살의에 가득 찬 적들의 바람대로 총탄 속에서 칼춤을 췄다.
다만 이번엔 파도리 때와 달리 전투가 어려웠는데, 이유는 부대를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지휘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끝내 이기긴 했지만, 총기란 무기의 무서움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해당 무리를 쓸어 버리는 걸 시민들이 지켜보게 되어, 결국 뒤탈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속전속결로 만리포의 고름을 도려내 버렸다.
“그래도 제가 얻은 물건이니, 총기를 그냥 드릴 순 없고, 여러분께 팔도록 할게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냥 달라고 할 만큼 염치없진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저희가 당장 지불할 금액이···.”
“할부로 하세요. 나중에 받으러 오겠습니다.”
“오오, 그래도 될까요?”
뒤처리는 파도리 때와 같았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장사.
솔직히 그냥 줘도 되지만···.
그건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싫다.
나는 딱히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자신이 제일 소중한 사람이다.
어쨌든 그들을 구해주고 득을 안겨줬으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챙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보유코인: 43,520]
상태창을 열어 보유 코인을 살폈다.
파도리 악당 놈들 쓸고 6,000코인을 챙겼고, 이번에 만리포 악당 놈들을 쓸고 25,000코인을 챙겼다.
심지어 만리포에선 대장으로 보이던 녀석에게서 이런 아이템도 얻었는데.
[매직 로프 브레슬릿 / 최고급]
-원하는 장소에 로프를 묶어 오르거나, 내려올 수 있다.
-물건이나 특정 타겟을 잡아당길 수 있다.
스파이더맨 놀이를 할 수 있는 꽤나 귀중한 아이템이었다.
이걸 잘만 활용하면 도약으로 소비되는 마력을 줄일 수 있을 터.
꽤나 풍족한 보상들에 자연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악당 새끼들 털어먹는 게 꽤나 쏠쏠하단 말이지?”
물론, 악당이란 존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행동은 단순한 학살에 도둑질에 지나지 않겠지만.
파도리와 만리포처럼 누가 봐도 쓰레기에 죽어주는 게 평화를 위한 존재들이라면 대신 청소해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솔솔 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악당들의 악당이라 해야 할까?
-피식.
나는 실소를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이 사건 사고에 계속 휘말리고 있긴 한데, 내 목적을 잊으면 안 된다.
‘만리포에 이은 다음은 목적지는 태안의 읍내, 태안 군청.’
만리포에서 약 15km 떨어진 곳.
적어도 내일까지 계룡대에 닿는 게 목표이니, 빨리빨리 다음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만리포는 두고두고 활용할 만하겠어. 가의도랑도 가깝고, 안전구역의 상점도 알차니까.’
나는 만리포에서 시선을 떼며 다음 목적지인 태안 군청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에 도약 스킬이 더해지니 십수 킬로미터 이동하는 건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잘 오고 있을까?’
서백호의 아버지 서인호 대령은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얼굴 한가득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유는 갑자기 아들로부터 바다를 건너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바다가 어떤 곳이던가, 그야말로 괴물의 보고였다.
더불어 해안엔 적지 않은 비행 몬스터가 존재하는지라 위험이 배가 되니, 아들의 도전이 너무도 무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호의 의지는 강경했고, 결국 그는 아들을 응원하며 육지에 닿은 후 계룡대까지의 이동 경로를 짜주어야 했다.
‘육지에 웨이포인트만 찍으면 수시로 월광도를 오갈 수 있으니, 급하게 계룡대까지 바로 올 필요 없잖아.’
현재 그의 아들은 연락 두절 상태인데, 이것이 뜻하는 바는 두 가지다.
무작정 계룡대로 오기 위해 육지를 탐험하고 있던가, 아니면 잘못되었거나.
‘재앙이 발생하고 녀석의 행보는 비범하기 그지없어. 쉽게 당하지 않을 거야.’
그는 아들이 무정하게 연락도 없이 육지를 탐험 중이라 믿으며 기도해야 했다.
하지만 몸은 솔직해서 그의 마음과 달리 불안에 떨고 있었다.
결국,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부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 청사를 나섰다.
-시끌시끌.
-하하하!
-흐어어엉!
그러자 그를 반겨준 것은 시장통 못지않게 시끌벅적한 너무도 낯선 계룡대의 모습이었다.
계룡대가 대전과 붙어 있는 곳이다 보니, 대전의 생존 구역을 꾸릴 때, 일정 수의 민간인을 수용하기로 했다.
계룡대는 자체가 요새나 다름없는 곳이고, 내부에 병원을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밀집되어있는 데다가 넓기까지 해서 피난 캠프를 꾸리기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당연히 꼬장꼬장한 3성, 4성 장군들은 보안을 위해 민간인을 들일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정부에선 모든 국가가 공평하게 몰락한 상황에서 그 보안이란 것도 전부 쓸모없는 게 되었으니 잠자코 받으라 압박하여 결국 이 풍경이 만들어진 거다.
-쿠웩! 꾸억!
다양한 사람들로 붐비는 넓은 광장 속에서, 서인호 대령의 눈에 길게 담이 쳐진 몬스터 스폰 구역이 보였다.
[접근 금지. 벽 너머에 몬스터 등장구역이 있음.]
처음 몬스터가 영내에 등장할 땐 계속 처치하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높게 담을 쌓고, 벽을 둘러 아예 몬스터 스폰구역과 일반구역을 구분 지어 놓았다.
덕분에 해당 장소는 군대에서 키우는 ‘적응군’ 소속 병사들이 레벨을 올리는 장소로 운영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서인호 대령은 알고 있다.
이렇게 온실 속 화초처럼 몬스터를 사냥하며 레벨을 올려봤자, 자신의 아들과 같은 특수한 부류 인간들에겐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군대에선 적응군이 만들어지고, 정부에서도 검도 선수 출신과 양궁 선수 출신 등 다양한 운동선수들을 엮어 사냥팀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엘리트 조직보다 서울 등지에서 활동이 감지된 민간 사냥팀의 수준이 높은 건 이미 상층부에 널리 알려져 있지.’
그리고 그런 민간 사냥팀들보다도 몇 단계 높은 레벨을 가진 게 돌연변이 같은 그의 아들이었다.
새삼 자신의 아들임에도 서백호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녀석이 탈 날 리 없어. 그치, 백호야?”
결국, 도돌이표처럼 돌고 돌아 아들을 걱정하는 서인호 대령이었다.
-지!
-지!
-버지!
그렇게 얼마나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시끌벅적한 계룡대의 광장을 거닐었을까.
“아버지!”
“으악!”
그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마주 보게 되었다.
“어어?”
너무 당혹스러워서 말이 안 나온다.
방금까지 그가 떠올리던 얼굴이 눈앞에 있었으니 말이다.
“배, 백호니?”
“네, 아버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