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36화 (36/273)

언데드 도시 (3)

***

나는 유튜버였다.

한국 채널명 빼코TV, 영문 채널명 PEKO TV.

구독자 수는 6,200명으로 하꼬 중에 하꼬다.

그래도 깔끔한 편집과 흥미를 끄는 컨텐츠로 나름 성장세를 타고 있었지만, 문제는 세상이 그대로 망해 버리는 바람에 나는 영원히 하꼬 유튜버로 남게 되었다.

“혹시 구독자님이세요?”

“네!”

그런데 그런 하꼬 유튜버의 구독자를 이런 곳에서 만나고 말았다.

“영상에 댓글 남기신 적 있으세요?”

“콩나물이란 닉네임으로 몇 번···.”

“콩나물님!?”

더구나 닉네임 콩나물이라면, 어그로 끄는 것 없이 순수하게 나를 응원해주는 댓글을 남기던 사람이다.

하꼬에게 큰 힘이 되어주던 찐 구독자.

덕분에 이들을 무시하던 마음을 싹 가셨다.

이젠 남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려던 부탁이 뭐죠?”

내 물음에 콩나물님이 다급하게 말했다.

“네임드 몬스터에게 동료들이 붙들려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하다.

대충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한 나는 뒤도 보지 않고, 바로 앞으로 내달렸다.

도약 스킬을 이용해 전력으로.

덕분에 열차가 터널 속을 지날 때 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걸으면 5분, 달리면 1분 정도의 거리.

그 거리를 단 10초도 걸리지 않아 주파한 나는 지나온 길과 달리 넓은 공동에 들어섰다.

그곳에선 피를 쏟으며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과 겁에 질려 무기도 내팽개치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핫! 그래, 더! 더! 비명을 질러라!]

[듀라한 크루더 / 레벨: 35]

그리고 중2병 대사를 읊고 있는 네임드 듀라한을 발견하곤 달리던 기세 그대로 검을 뽑았다.

-챙!

‘쾌격.’

이어진 내 공격은 녀석과 같은 네임드 듀라한을 처치하고 얻은 스킬이다.

[쾌격 / 상급 스킬 / 액티브]

-검기를 응축시켜 검을 내지르는 찌르기 공격.

-사정거리 3m.

-소모 마력: 3

근접 스킬임에도 사거리가 무려 3미터에 달하는 찌르기 공격.

섬전처럼 몸을 날려 적에게 접근한 나는 기습적으로 검을 뻗으며 쾌격을 사용했다.

그러자 검 끝에 푸른 빛이 모여 응축되더니, 번쩍하고 발사되었다.

-투웅!

[컥!]

나는 보았다.

공간을 가르는 그 일격에 듀라한의 가슴에 500원짜리 크기의 구멍이 생기는 것을.

마치 펀칭기로 종이를 뚫은 것처럼 직선거리의 모든 걸 깔끔하게 도려냈다.

듀라한의 썩은 살점뿐만 아니라 겉에 입고 있는 두꺼운 금속 갑주까지.

아마 직선 상에 녀석 외에 다른 것들이 있었어도 한 번에 꿰뚫었을 것이다.

쾌격은 그런 공격이었다.

‘검기.’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강력한 일격에 녀석은 죽지 않았다.

듀라한은 목이 잘린 기사.

녀석은 떨어진 자신의 머리를 품고 있었고, 나는 그 머리를 노리고 공격했는데, 운인지 피한 건지 머리 대신 가슴에 쾌격이 적중하고 말았다.

일반 생물형 몬스터라면 가슴에 관통상을 입어도 치명타였겠지만, 애석하게도 듀라한은 언데드 몬스터인 만큼, 치명상이라 볼 수 없었다.

[웬 놈이냐!?]

그래서 나는 호기롭게 소리치는 듀라한 크루더를 향해 곧바로 쾌격에 이은 2연격을 날렸다.

검기 스킬로 견제를 겸한 빠른 1격을 날리고.

-쿵!

녀석이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방어할 걸 예상하며, 빠르게 연결 동작으로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2격을 날렸다.

‘거력참.’

-콰아앙!

[컥!]

검기를 머금은 검으로 거력참을 사용하면 위력이 조금 더 증폭된다.

거기에 회전으로 인한 가속력까지 붙으니, 크루더는 폭탄이 터진 듯한 소음과 동시에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백호님!”

이어서 윌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녀에게 전투보다 부상자들의 치료를 우선 지시했다.

“다친 사람들부터 치료해주세요! 멍멍이는 윌리아님 지키고!”

“네!”

-컹!

아마 윌리아라면 부상자들을 살피면서도 전황을 주시할 거다.

때문에 나는 거침없이 쓰러진 크루더에게 걸음을 옮겼다.

[네 녀석은 뭐냐?]

“뭐긴 널 죽일 사신이지.”

[그건 내 대사···.]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이 크루더란 녀석은 중2병이 충만해 보였으니까.

이제 기습은 효과가 없다.

서로 레벨도 비슷하고, 네임드 듀라한도 검기를 포함해 여러 전투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앞선 공격으로 어느 정도 피해를 준 상태긴 하지만, 전투엔 큰 영향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즉, 눈앞의 적은 호적수란 뜻이다.

녀석과의 일대일 싸움은 전투 센스와 검을 다루는 능력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기습으로 날 죽였어야 할 거다.]

“그냥 지금부터 죽이면 되지.”

[하···.]

자리를 털고 일어난 크루더와 나는 눈싸움을 벌였다.

눈높이가 맞지 않아 느낌이 안 살지만···.

[흡!]

엇박자로 들어오는 녀석의 찌르기는 꽤나 일품이었다.

나는 핏빛 검기를 잔뜩 머금을 그 검을, 아슬아슬하게 푸른 검기가 깃든 제르카의 검으로 올려쳤다.

-쾅!

동시에 손목을 비틀어 머리를 노렸는데, 하필 크루더도 검이 튕긴 힘을 역이용해 내 목을 노려왔다.

우린 일시에 몸을 비틀며 물러나야 했다.

‘몬스터 주제에 쓸데없이 검을 잘 쓴다니까?’

지금까지 싸워본 적 중에 무기를 가장 잘 쓰던 상대는 몽마의 던전 보스인 칼리아였다.

하지만 네임드 듀라한들은 레벨이 더 높아서인지, 칼리아의 상위호환이란 느낌이다.

-쾅!

잠시 거리를 벌린 우리는 기회를 살피다가 다시금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이어진 건, 찌르고 막고, 치고 막고를 반복하는 치열한 검투였다.

삐끗하면 바로 머리를 노리며 검이 날아드는 살기 가득한 대결.

‘검기, 검기, 검기.’

그 과정에 검기 유지는 필수였다.

덕분에 녀석의 붉은 검기와 내 푸른 검기는 태극기의 문양처럼 엉키고 설켜 팽팽하게 균형을 이뤘다.

‘디딤판.’

하지만 변칙적인 움직임은 내가 한 수 위였다.

디딤판을 만들어 수시로 발밑을 방해해 크루더가 아래를 신경 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익!]

-콰앙!

디딤판에 당할 때마다 크루더도 네임드 듀라한의 스킬 중 하나인 발 구르기로 땅을 진동시켜 흐름을 끊으려 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디딤판을 딛고 올라섰기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다.

-쾅! 콰앙!

서서히 전투가 내 쪽으로 기운다고 생각했는지, 녀석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큰 공격을 사용하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대표 공격인 붉은 검기가 갈래갈래 나뉘며 상하좌우 네 방향에서 채찍처럼 날아드는 공격이었다.

‘거력참.’

물론, 그 공격마저 거력참에 상쇄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젠장!]

겉보기에 우리의 전투는 치열해 보일진 몰라도, 조금씩 내가 우위를 굳혀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다른 네임드 듀라한을 상대해봤지만, 크루더는 나를 상대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 모양이다.

“이런, 타임아웃인가 본데?”

[뭐?]

그리고 결정적으로 녀석에겐 없지만 나에겐 있는 게 있다.

“힐!”

바로 동료란 존재가.

부상자들의 수습을 마친 윌리아가 끼어든 순간.

[큭!]

-움찔.

나름 팽팽하게 유지되던 접전은 일방적 전투로 흘러갔다.

“잘 가시게. 이왕이면 좋은 검이나, 좋은 스킬 토하고.”

[이노오옴!]

이죽거리는 내 모습에 크루더는 기세 좋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후 전투는 5초를 넘기지 않았다.

-푹!

내 검이 듀라한에 머리에 꽂히자, 크루더는 전신이 푸른 불꽃에 휩싸였다.

[끄아아악!]

이내 크루더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네임드 듀라한 크루더를 토벌하여 경험치 18,000을 획득했습니다.]

[네임드 듀라한 크루더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6,65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1칸을 획득했습니다.

-크루더의 검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쾌격’을 획득했습니다.

‘오오!’

그리고 눈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나는 속으로 감탄사를 흘렸다.

인벤토리도 좋지만, 무려 쾌격 스킬이 하나 더 나온 데다가 좋아 보이던 네임드 듀라한의 검까지 획득했기 때문이다.

‘쾌격은 윌리아가 배우게 하면 되려나? 만약을 위한 공격 수단이 하나쯤 있으면 좋을 테니까.’

프리스트라 스킬을 배우는 데 제약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제약이 없다면 그녀에게 쾌격을 배우게 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쾌격은 원거리 공격에 가까운 스킬이고 위력도 강하니까.

이어서 나는 크루더의 검을 꺼내 살폈다.

[크루더의 검 / 한손 장검 / 등급: 특수]

-네임드 몬스터 크루더가 사용하던 검으로 흑철로 이뤄진 검이다.

-검기의 위력이 30% 상승한다.

-근력+2, 민첩+2

-자체 스킬: 분열검

[분열검 / 상급 스킬 / 액티브]

-검기를 네 방향으로 분열시켜 적을 포위하듯 공격한다.

-소모마력: 2

좋은 검이다.

등급도 무려 특수 등급이고.

하지만 자체 스킬의 특수함을 빼면, 지금 사용 중인 제르카의 검의 열화판이란 느낌이다.

크루더의 검은 검기 위력이 30% 상승한다고 쓰여 있지만, 제르카의 검은 검기 뿐만 아니라 모든 근접 스킬의 위력이 50% 상승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듀라한이 한 손으로밖에 검을 휘두르지 않아서인지, 검의 손잡이는 두 손으로도 쥘 수 있는 한손반 형태가 아닌, 한손용으로 짧았다.

그래서인지 검날 길이도 뭔가 애매했고.

‘분명 크루더가 휘두를 땐 더 길고 큰 검이었는데, 왜 이렇게 쪼그라들었냐.’

분열검이란 스킬이 쓸모 있어 보이는 만큼 지니고 다니긴 하겠지만···.

이건 보조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크루더의 검을 제르카의 검과 함께 나란히 허리에 채우고는 고개를 돌렸다.

선객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죽음에 내몰려 있을 때.

한 검사가 검은 코트를 펄럭이며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주었다.

그 공포스런 듀라한을 단신으로 날려버린 검사는 무시무시한 검 놀림으로 듀라한을 압박했고.

붉은 검기와 푸른 검기가 휘몰아치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듀라한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전투였다.

마치 영화나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세상이 게임처럼 변했다지만, 결국 싸우는 건 얼마 전까지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잖아.’

그런데 그런 사람이 듀라한을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다니, 어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분명 자신들도 열심히 싸워왔는데, 뭐지 이 차이는?

‘아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저분은 우릴 위해 싸우고 계신 분이니까.’

절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투.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끓어오르고, 입 밖으론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처음엔 평범해 보이던 검사의 외모마저 점점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넋이 빠진 채 듀라한과 검사의 대결을 지켜보던 홍성 대학사냥팀 생존자들은···.

[끄아아악!]

끝내 그 검사가 듀라한을 처치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러야 했다.

‘살았다. 살았어.’

하지만 이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곁에서 함께 기뻐해야 할 몇몇 친우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빼코님!”

“앗! 콩나물님!”

상황이 끝나고 타이밍 좋게 콩나물님과 나머지 일행들이 크루더가 위치했던 공동에 들어섰다.

“저, 정말 그 듀라한 잡으셨어요?”

“네.”

오고 가며 하루에도 둘 셋은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외모의 콩나물님.

그는 태연한 내 대답에 감탄사를 흘렸고, 뒤이어 다가온 일행의 리더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네왔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차갑게 내려보았다.

내가 친절할 사람은 구독자 콩나물님 외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는 입장의 인물이었다.

“감사 인사 나누기엔 상황이 좋지 않아 보이네요.”

“네?”

나는 턱짓으로 분위기가 묘한 생존자들을 가리켰다.

그때.

“너 이 새끼. 무책임하게 도망치란 말 한마디 남기고 사라지면 그만이야?”

생존자 중 몇몇이 달려와 일행의 리더인 남성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당연한 상황이다.

“17명 중, 5명이 사망하고, 생존자는 12명입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신이 되어 있었으니까.

솔직히 나는 12명이라도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생각했지만, 생존자들에겐 그게 아닐 터이다.

그들은 생명의 은인인 내게 고개 숙여 감사함을 표하면서도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쳤던 리더에겐 분노를 표출했다.

리더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과를 했다.

“미, 미안···.”

이내 던전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나는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며 끼어들었다.

“일단 나갑시다. 콩나물님을 봐서 탈출까지 도와드릴게요.”

어차피 선행팀 때문에 던전의 공략 시간이 절반으로 팍 줄어 있었다.

차라리 나도 재입장을 해서 제시간을 받고 공략을 다시 이어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내 말에 사람들은 침울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이들을 이끌고 출구로 향했다.

윌리아는 나와 함께 나란히 걸었다.

대신 멍멍이 위에는 콩나물님을 앉혀 드렸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캠프에서 뭐라도 대접해 드릴게요.”

“캠프가 멉니까?”

“아뇨, 저희가 들어온 출구로 나가면 근처입니다.”

모처럼 만난 콩나물님의 호의이니, 나는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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