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43화 (43/273)

< 징조 (1) -유료 시작 편- >

[한반도에 배정된 20개의 시나리오 중 2번째 조각의 주인이 등장했습니다.]

안전텐트 안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나는 예상치 못한 메시지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2번째 시나리오 조각 주인?”

그동안 나 이외에 시나리오 조각을 획득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

다른 누군가가 시나리오 조각을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과연 이 2번째 시나리오 조각의 주인이란 사람은 어떤 괴랄한 장소에서 조각을 얻었을지 궁금하다.

‘나의 경우 무인도에 있는 던전에서 얻었으니까.’

어쩌면 한국이 아닌 북한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시스템 메시지는 ‘한반도’에 배정된 시나리오 조각이라 표현했으니까.

‘이건 한반도에만 있는 건가?’

‘혹시 다른 나라에도 시나리오 조각이 있다면 우리와 같은 20조각일까?’

여러모로 의문투성이인 시스템이다.

‘그러고 보니, 지하무덤 히든 보스룸에서 시나리오 진행예정 일까지 대략 1년 정도 남았다는 메시지가 떴었지.’

당장은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어서 무엇 하나 예측할 수가 없다.

윌리아도 시나리오 조각에 대해선 모른다고 하니까.

“아, 몰라.”

나는 추론을 관뒀다.

지금 단계에서 시나리오에 대한 고민은 시기상조로 보였으니.

그런데 그때.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끼리 메시지 대화가 가능합니다. 2번 보유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시겠습니까?]

[직접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상, 철저한 익명이 보장이 됩니다.]

“뭐?”

의외의 시스템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그토록 기대하던 통신 반지를 구해서 기뻐했었는데, 시나리오 조각은 통신 시스템을 기본으로 제공한다는 것 아닌가?

흥미가 솟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상대도 나처럼 꽤나 열심히 활동 중인 사람일 테고, 그럼 정보 교환으로 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번 보유자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나처럼 상대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건 2번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바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2번 보유자]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신설 기관인 국가부흥처의 제1공략본부 본부장 강이솔이라 한다. 귀하의 소속과 성명을 밝혀 주길 바란다.

그런데 그 내용을 읽은 나는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뜬금없이 정부 기관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국군의 적응군처럼 정부에서도 검도나 양궁 등 전투에 도움이 되는 종목의 선출들을 모아 사냥팀을 만들었어. 아직 부서의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통령 직속 기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아버지가 말했던 정보가 떠오른다.

군대의 적응군(레벨업 병사)처럼 정부에서 키우는 엘리트 조직.

아무래도 그게 이번 메시지 상대가 아닐까 싶다.

“메시지 꼬라지 보니, 벌써 답하기 싫네.”

내가 최근 눈에 불을 켜며 찾고 있는 ‘웨이포인트 동반 이동 아이템’의 소유주가 정부 소속인 걸로 알고 있다.

어쩌면 그게 ‘강이솔 부장’이란 사람의 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명을 보장해준다는 시스템에서 굳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아랫사람 대하는 것 같은 행태를 보라.

문구만 봐도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싶었지만.

‘잘만하면 쓸만한 정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상식적인 판단이 고민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아!”

그러다가 정체를 밝히지 않고도 상대가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시스템이 철저히 익명을 보장해준다고 했지?’

나는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11번 보유자(나)]

-한국인 서** 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있는 현시점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바로 서**일 것이다.

[2번 보유자]

-당신이 세 번의 전 세계 최초업적을 띄운 그분 맞습니까?

이것 보라, 벌써 말투부터 겸손해졌다.

상대 쪽에서 짱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11번 보유자]

-맞습니다.

[2번 보유자]

-죄송하지만, 11번 님께서 서**님이란 증거를 제시해 줄 수 있습니까?

[11번 보유자]

-믿든 안 믿는 그쪽 자유입니다.

나는 아쉬울 게 없다는 듯 행동했다.

그에 애가 타는 건 저쪽이다.

[2번 보유자]

-실례했습니다. 선을 넘는 요구를 해버렸군요.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당신의 활약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11번 보유자]

-별말씀을.

[2번 보유자]

-이것도 인연이니, 종종 메시지를 보내도 되겠습니까? 서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교환하는 등 협력관계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그래, 내가 바라던 게 딱 이 정도의 관계다.

하지만 바로 답을 하기보단 한번 튕기고 애를 태우기로 했다.

[11번 보유자]

-고민해 보겠습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2번 보유자]

-답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이거 꽤 재밌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으면 얼마나 좋은가.

상대는 괜히 권위의식을 내비쳐서 본전도 못 찾은 느낌이다.

‘정부와 직접적인 접촉은 싫다. 하지만 철저히 익명이 보장된 곳에서 대화만 주고받을 수 있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런데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기능을 제공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나는 쓸데없는 고민에 시간을 쏟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윌리아를 깨워 함께 안전텐트를 벗어났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던전공략이다.

‘시력강화.’

안전텐트를 나서자 드러난 공간은 아치형으로 반듯하게 벽돌을 쌓아 만든 길이다.

그리고 그 끝엔 폭이 넓어지는 장소가 나타나고, 그곳에 중급 서큐버스들의 네임드가 있었다.

[네임드 서큐버스 엘리트 티아브 / 레벨: 35]

처음 보는 ‘서큐버스 엘리트’라는 종.

최초 토벌 보상 가능성이 높은 몬스터의 등장에 나는 기대하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맙소사.”

이유는 그녀의 무장이 몽마의 던전 보스인 칼리아와 너무 흡사하단 것이며.

원피스형 수영복을 전투복이라며 입고 있던 칼리아와 달리, 무려 투피스 수영복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윌리아를 바라보았다.

“백업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그런데 왜 갑자기 진지해지셨어요?”

“손에 넣어야 할 아이템을 발견했기 때문이죠.”

나야 시력 강화를 사용해 적의 동태를 살폈지만, 일반적인 시력을 가진 윌리아는 네임드 몬스터의 자세한 복장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내 말뜻을 알게 되면, 등짝을 때릴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몹시 진지했다.

“가죠!”

그렇게 힘차게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한국인 김**님께서 유물 아이템을 발굴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유물 아이템을 발굴한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

[모두 한국인 김**님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 참, 흐름 끊기게 시리.”

누군가의 최초업적 메시지가 떠올라 흐름을 끊었다.

“한국인 김씨?”

뭐, 한국인의 20%가 김씨니,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뒤에 붙는 유물 아이템이라는 게 묘하게 눈에 밟혔다.

‘에이, 아니겠지.’

이내 신경을 껐다.

눈앞의 네임드 몬스터에 집중할 필요가 있으니.

***

[최초의 유물 발굴. 당신의 위대한 업적이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

-최초 업적 달성의 보상으로 특수 등급 장비 뽑기권이 지급되었습니다.

땅속에서 막대기 유물을 구했던 순간 갑작스레 떠오른 업적 메시지였다.

덕분에 김씨는 더욱 신이 나서 땅을 팠다.

필요 이상으로.

“아니, 이 아저씨가 지형을 바꿔 버리네?”

덕분에 헤롤드가 그를 말려야 했고, 김씨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보상이 나오니까 재밌어서.”

김씨는 그제야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헤롤드는 그런 김씨가 저지른 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안전구역을 중심으로 남쪽엔 오크 스폰 구역이 있고, 북쪽엔 트롤 스폰 구역이 있다.

그런데 이 몬스터 스폰 구역의 형태가 바뀌었다.

김씨가 몬스터 스폰 구역에 구덩이를 깊게 파서 몬스터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기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최초업적 달성 보상으로 얻은 뽑기권에서 나온 아이템 덕이었다.

[몬스터 기피 목걸이 / 등급: 특수]

-해당 목걸이를 착용할 경우, 레벨 30이하 몬스터들이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다.

-단, 공격 의사를 비칠 경우엔 공격을 당할 수 있다.

덕분에 김씨는 안전구역 주변에서 더욱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해졌고, 결국 삽질로 몬스터들을 시야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몬스터 활동 구역을 지하에 만들고, 그 위에 뚜껑을 덮어 버리면 아래엔 이미 몬스터가 활동하고 있으니까, 지상에선 추가 스폰이 되지 않을까?”

“과연 뜻대로 될까요?”

“반응 보니 그건 안되나 보네? 뭐, 이대로만 둬도 불편한 건 없으니까.”

그뿐 아니라 안전구역을 끼고 있는 산도 깎아서 평평한 부지를 대폭 늘려버린 김씨였다.

이대로 몇 달만 있으면 월광도의 모양 자체가 바뀔지도 모르는 일.

헤롤드는 황당한 인간을 보았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헤롤드의 호감도가 5% 향상되었습니다.]

“응? 이게 뭔 말이야?”

참고로 헤롤드의 호감도 작업은 선임 NPC를 영입한 서백호만 불가능했다.

김씨가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에 의문을 표하자 헤롤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 더러운 유물 막대기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에 김씨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을 꺼내 살폈다.

“백호씨 줘야지. 대장장이 NPC를 찾거나 감정 스킬이 있어야 용도를 알 수 있다는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그러다가 엄청 좋은 거면 어쩌려고요?”

“솔직히 백호씨 삽으로 구한 건데 아까워할 필요가 있나. 더구나 생명의 은인에게 그 정도는 줄 수 있지.”

서백호가 달라고 하면 몬스터 기피 목걸이도 망설임 없이 내어줄 김씨였다.

서백호는 그의 생명을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행방까지 알아다 준 은인이었으니 말이다.

“호구시구만.”

[헤롤드의 호감도가 5% 하락했습니다.]

“이건 자꾸 뭐여? 기분 나쁘게 시리.”

김씨는 오르락내리락하는 헤롤드의 호감도 메시지에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

[네임드 서큐버스 엘리트 티아브를 토벌하여 경험치 25,000을 획득했습니다.]

[서큐버스 엘리트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10,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네임드 서큐버스 엘리트 티아브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8,55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2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1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정신력 강화’를 획득했습니다.

[서큐버스 엘리트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벽타기’를 획득했습니다.

“음···.”

스킬북이 두 개나 나왔다.

[정신력 강화 / 상급 스킬북 / 액티브]

-30분 동안 대상의 정신력을 강화시켜 상태 이상의 내성을 높여 준다.

-소모마력: 3

[벽타기 / 중급 스킬북 / 액티브]

-1분 동안 벽이나 천장을 땅처럼 딛고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소모마력: 1

정신력 강화는 딱 봐도 서포트 계열 스킬이다.

더구나 마력 소모량도 높아서, 마력 회복 스킬이 있는 윌리아에게 쥐여주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벽타기는 실내 전투 및 시가전에서 꽤나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악당을 처치하고 구했지만, 막상 쓸 일이 거의 없던 ‘매직 로프 브레슬릿’과 함께 사용하면, 완전체 스파이더맨 놀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직 로프 브레슬릿 / 최고급]

-원하는 장소에 로프를 묶어 오르거나, 내려올 수 있다.

-물건이나 특정 타겟을 잡아당길 수 있다.

요 아이템 말이다.

그래서 벽타기 스킬은 내가 갖기로 했다.

“여기요.”

내가 윌리아에게 정신력 강화 스킬북을 건네주자 그녀는 웃음을 흘렸다.

“뭔가 아쉬워 보이시네요? 원하시던 아이템이 안 나왔나 보죠?”

“아, 아닙니다.”

원하던 수영복, 아니 전투복이 안 나온 건 살짝 아쉽지만, 당장 전투 능력 향상에 영향을 주는 건 스킬북 쪽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쉬움을 떨쳐냈다.

뭐, 이번 전투가 마지막도 아니고, 앞으로도 얻을 기회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린 계속해서 몽마의 신전의 공략을 이어갔다.

“정신력 강화!”

[정신력이 크게 향상되어 상태 이상의 내성을 높여줍니다.]

[향상된 정신력이 중급 서큐버스의 매혹 스킬을 차단합니다.]

윌리아가 새롭게 배운 스킬의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이제 불필요하게 귀마개로 콧구멍을 막지 않아도 서큐버스의 매혹에 넘어가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실루엣 고글을 살짝 위로 올려보았고, 역시 매혹에 넘어가지 않는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오!”

실루엣 고글을 쓰면 사물은 회색으로 몬스터는 붉은색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신력 강화 스킬 덕에 서큐버스들을 올바른 컬러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긴 천국인가?’

눈 굴리기 바쁜 내 모습에 윌리아가 말했다.

“사냥속도가 더 느려진 것 같은데요?”

나는 그녀의 지적에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했다.

그리고 우린 머지않아 2층 입구에 다다랐다.

‘과연 2층은 얼마나 대단할까?’

기대감을 한껏 품은 나는 마른침을 삼치며 2층으로 향했고.

[중급 인큐버스 / 레벨: 35]

“······.”

마치 남자 아이돌의 탈의실에 뚝 떨어지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반나체나 다름없는 남탕을 보며 말을 잃었다.

“어멋!?”

남성형 서큐버스 무리를 본, 윌리아가 깜짝 놀라서 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런데 손 틈이 다 벌어져 있네?

여성형인 서큐버스보다 더욱 노골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인큐버스들.

그런 녀석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윌리아의 모습에 나는 부처와 같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랬으니까.’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겠지.

같은 남자가 봐도 멋진 놈들인걸.

“죽어! 죽엇!”

1층에서 윌리아의 전투력이 충만했던 것처럼, 2층에선 내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우린 1층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2층을 공략해 나갈 수 있었다.

이 속도면 보스룸에 금방 당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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