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3) >
나와 윌리아는 김씨 아저씨의 가족이 배식을 받고 돌아올 때까지 간이 텐트 앞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누구세요?”
그리고 잠시 후.
매우 지쳐 보이는 모습의 아주머니와 고등학생 정도 되는 것 같은 남자아이가 무언가가 든 위생봉투를 하나씩 들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김씨 아저씨의 스마트폰 안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의 주인공이 맞는 것 같았다.
“남편분과 관련하여 전해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디 대화를 나눌 조용한 곳 없을까요?”
“네? 저희 남편이요?”
내 말에 아주머니는 크게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투를 떨어뜨렸다.
거기엔 반찬 없이 흰 쌀죽만 들어 있었다.
‘보급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네.’
당연한 상황이다.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니까.
국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꾸준한 식량 보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로써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단이 코인 상점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코인 상점의 식료품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
목숨 걸고 고블린 한 마리를 잡아야 고작 2~3코인이 벌리는데, 이걸로는 감자 2~3알밖에 사지 못한다.
‘작물이라도 키울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지만, 문제는 이제 12월 겨울이란 거다. 가성비가 안 좋더라도 결국 코인 상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물론, 나처럼 더욱 강한 몬스터를 잡으면 코인은 자동으로 쌓이게 되어 있지만, 국민 중 싸우겠다고 나서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덕분에 정부에서 운영 중인 생존구역의 전망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나쁜 소식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저, 정말입니까?”
김씨 아저씨의 부인은 복잡한 표정으로 나와 윌리아를 어디론가 이끌었고.
옆에선 제법 똑똑하게 생긴 김씨 아저씨의 아들이 우리를 힐끔힐끔 관찰하며 말없이 따라왔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작은 숲이었다.
“여기면 조용할 겁니다.”
남편 이야기에 일단 우리를 이끌고 이곳에 오긴 했지만, 아주머니는 꽤나 긴장한 듯 보였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못 믿는 게 같은 인간이니, 이 역시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스마트폰?”
그건 스마트폰이었다.
통신이 죽었다고 스마트폰 자체를 못 쓰는 건 아니다.
충전할 방법만 있으면 여전히 사진과 동영상 촬영, 망원, 메모 등 쓸 기능이 많았으니까.
나야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된 가의도를 비롯해, 충전할 방법이 많으니, 문제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난 스마트폰으로 어느 동영상을 실행했고.
곧 영상에서 김씨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흠흠, 여보, 태식아. 어디 다친 데 없지?]
“어어?”
“아빠?”
[나 안 죽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곳에 계신 분이 죽기 직전에 구해주셨거든. 그래서 몸 건강히 잘 먹고 잘살고 있어.]
전혀 예상치 못한 영상 편지에 두 사람은 경악, 안도감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도 둘은 김씨 아저씨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도 그럴 게 대재앙이 발생한 날, 김씨 아저씨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고립된 상태였다.
바다엔 거대한 해양몬스터들이 득실대는데 거길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러니 죽었다고 여길 수밖에.
[걱정 끼쳐서 미안해. 내가 있는 곳이 섬이라 비록 마음대로 나갈 순 없지만, 거기 계신 분이 둘을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안심하도록 해.]
사실 두 사람에게 김씨 아저씨의 생존을 알리기로 마음먹었으면, 조금 더 빨리 알릴 수도 있었다.
아버지가 김씨 아저씨의 가족에 대해 조사할 때, 통화한 이곳의 담당자가 안면 있는 후배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김씨 아저씨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을 통해 전달하길 꺼려 하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봐도 죽었다고밖에 생각 못 할 상황에 놓인 인물이 구조되었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의아해할 테니.
즉, 제삼자가 궁금증을 표하며 끼어드는 걸 원천 차단한 것이다.
덕분에 김씨 아저씨 부인과 아들의 입장에선 더욱 급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남편은 지금 어딨습니까?”
“가의도란 인구 30명이 안 되는 섬에 있습니다. 식량의 자급자족도 가능하고 전기와 수도도 쓸 수 있는 꽤나 좋은 곳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굳이 월광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외부에 월광도가 노출되는 건 최대한 막을 생각이다.
‘추후 웨이포인트를 함께 이동할 수 있는 아이템이 나온다면, 그때 가서 김씨와 가족들을 안전한 가의도에 함께 살게 하면 되니까.’
두 사람은 내게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김씨 아저씨에게도 영상편지 하나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보고 힘내실 수 있게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스마트폰에 기록했다.
김씨 아저씨가 보면 많이 좋아할 것 같다.
“혹시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몸이 안 좋다거나?”
“어머니가 도망치다가 고블린에게 등을 베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무실 때 아직 똑바로 못 누우세요.”
“너도 어깨를 다쳤잖아.”
일단 겉으로 보이는 큰 부상은 없으니, 윌리아의 힐(중급 회복)이면 충분할 것 같다.
“리아씨.”
“네, 백호씨.”
원래 이름보단 조금이나마 한국 이름 같은 ‘리아’로 윌리아를 부르니, 그녀도 알아서 쿵짝을 맞춰주었다.
-팟!
이어서 윌리아가 두 사람에게 힐을 사용했다.
그러자 김씨 아저씨의 부인과 아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치료되었을 겁니다.”
“아···.”
두 사람은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더니, 이내 감탄사를 토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신비한 힘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엄청 신묘하네요.”
아무래도 김씨 아저씨의 아들이 10대라 그런지 이런 마법같은 힘에 관심은 많은 모양이다.
부인 쪽은 몰라도 아들은 한창때이니, 부상도 회복한 만큼 조금씩 레벨을 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기 생존구역에도 정부에서 임대 해주는 숙소가 있습니까?”
“네, 있긴 한데···.”
“가시죠. 방도 하나 구해드리겠습니다.”
“네? 아, 아닙니다. 엄청 비싸요.”
아무래도 두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신들의 남편과 아버지가 붙잡은 줄이 황금줄이란 사실을.
***
웨이포인트를 타고 청와대-경복궁 생존구역으로 돌아온 ‘대통령 직속기관 국가부흥처’의 제1공략본부 본부장 강이솔은 자신의 보고를 듣고 있는 남성을 천천히 살폈다.
[국가부흥처장 노성흠]
그런 남성의 앞엔 강이솔의 상사임을 나타내는 국가부흥처장 명패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녀석이 막타를 쏙 빼먹었다?”
“그렇습니다.”
국가부흥처장은 스마트폰으로 흐릿하게 찍힌 사진을 내려 놓으며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강이솔은 난 아무 잘못 없다는 태도로 사진을 바라보았다.
정체를 가늠하려야 할 수가 없는 남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강하던가?”
“제가 보기엔 윤시아보다 강해 보였습니다.”
윤시아의 이름이 거론되자, 국가부흥처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윤시아보다? 흠···. 하긴 그럴 수도 있겠어. 정부에서 관리하는 시설 외에도 민간 생존구역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니까. 오히려 열악한 환경이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도 있지.”
“서** 역시 그런 부류겠죠.”
“음, 그래서 이 사진 속 남자가 서**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제로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제로는 아닌데, 퍼센트를 매기기도 힘들다? 이거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구만.”
강이솔은 어깨를 으쓱였고, 그런 부하의 모습에 국가부흥처장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이내 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래서 급하게 전할 말이란 게 무엇인가?”
이유는 강이솔이 면담을 요청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전해왔기 때문이다.
그에 강이솔은 턱을 치켜들며 예상치 못한 발언을 내뱉었다.
“서울 중심에 엘더 몬스터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뭐?”
깜짝 놀란 국가부흥처장은 계속 설명하라며 손을 까딱였다.
“오늘 저희가 토벌한 크리쳐 보아는 수중 몬스터답게 강력하고 거대하긴 했지만, 네임드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 엘더 몬스터 같은 개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일반 몬스터는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않고, 예외인 경우는 오로지 인간을 발견했을 때뿐입니다.”
“크리쳐 보아는 다른 일반 몬스터들과 패턴이 달랐다?”
“네, 다리를 파괴한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움직인 게 걸립니다. 그래서 녀석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지성 높은 상위 개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수중 몬스터는 하나같이 거대하고 레벨이 높다.
그래서 크리쳐 보아의 돌발 행동을 수중 몬스터가 특별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육지, 수중, 공중이란 타이틀을 떼고.
몬스터를 일반, 네임드, 보스, 엘더로 분류를 한다면 오늘 상대한 크리쳐 보아도 결국 일반 몬스터라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 강이솔의 말대로 크리쳐 보아의 행동은 상당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만약 크리쳐 보아를 움직인 엘더 몬스터가 정말 있다면 레벨이 상당하겠군.”
“그럴 겁니다.”
“좋아, 그런 엘더 몬스터가 있다고 쳐. 그렇다면 이런 일을 계획한 덴 그만한 목적이 있겠지?”
“아마도 현충원 생존구역을 용산과 떼어 놓을 생각이 아니었을는지요.”
“잠깐, 그 말은?”
“해당 엘더몬스터가 현충원 생존구역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해되는 시나리오긴 합니다. 몇몇 사냥팀은 웨이포인트를 타고 오갈 수 있지만, 용산의 막강한 군 전력은 지원을 갈 수 없게 되는 것 아닙니까?”
냉정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강이솔은 한강대교에서 보인 얼빵한 모습과 전혀 달랐다.
강이솔의 그럴싸한 추측에 국가부흥처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추측이 만에 하나 맞는 거라면, 적어도 그 엘더 몬스터는 수십만이 모여 생활하고 있는 현충원 생존구역과 싸울 수 있는 수단과 능력을 보유했단 뜻이었으니 말이다.
***
용산 공원은 원래 2017년까지 미군기지가 위치해 있던 곳이다.
그래서 곳곳에 미군 주둔 시절의 시설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정부에선 그 시설들을 잘 관리하여 코인을 받고 민간인들에게 임대를 주고 있었다.
덕분인지 해당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엔 하나같이 10이상의 레벨이 띄워져 있었다.
“저런 건물들은 임대료가 얼맙니까?”
내 물음에 김씨 아저씨의 아들이 답했다.
“작은 방은 하루 30코인부터 아파트형은 50~100코인, 단독건물은 300~500코인 짜리도 있습니다.”
한 달을 기준으로 하면 작은 방은 900코인, 아파트형은 1,500~3,000코인, 단독건물 9,000~15,000코인이란 뜻.
확실히 가격이 꽤나 비싸다.
즉, 저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재앙 이후의 세계에 적응하고, 또 자본력까지 갖춘 신상류층이란 얘기다.
“꽤 잘 알고 계시네요?”
“옆 텐트에 계신 아주머니가 여기 시설 관리하면서 일당으로 코인을 받고 있거든요.”
상대를 오해하게 만드는 말투의 아주머니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관리 사무실이란 종이가 붙어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갔더니.
“어서오세! 요···.”
그러자 공무원인지 복덕방 아저씨인지 모를 머리숱이 많이 적은 중년인이 공손함에서 귀찮음으로 단번에 태도가 바뀌는 신박한 인사를 건네왔다.
눈에 띄기 싫어서 용산공원에 들어서기 전에 낡은 복장으로 갈아 입었더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언성 높이기 귀찮다.
그렇다고 그와 기 싸움하기도 싫고.
“보름 간격으로 잔금을 치르는 임대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보안 좋고 안전한 아파트형으로 하나 추천해 주세요.”
심플한 내 용건에 남성은 무시하는 태도에서 의심하는 태도로 표정을 바꾸며 답했다.
“아파트형이 보름이면 750코인에서 1,500코인이 필요합니다. 그중 보안 좋은 곳을 말씀하셨으니, 1,500코인 짜리로 가시는 게 낫겠죠. 거긴 윤시아 사냥팀의 활동 영역이라 깽판 부리는 간 큰 사람은 없습니다.”
윤시아?
아까 만났던 여성인가?
필요 이상으로 엮일 생각은 없지만, 그곳이 안전하다니 계약하기로 했다.
나는 바로 인벤토리에서 1,500코인을 동전 형태로 꺼내 남성의 앞에 내려놓았다.
“바로 입주 가능합니까?”
“······.”
남성은 잠시 말을 잃더니, 이내 더없이 공손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물론이죠!”
역시 어디서든 돈이 상전이구만.
“요 앞 건물이 윤시아 사냥팀의 본부 건물이고요. 오늘 들어가는 같은 건물에 윤시아 사냥팀의 주요 멤버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때문에 보안과 안전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죠.”
무슨 번견도 아니고, 만능 윤시아 사냥팀이다.
‘그만큼 이미지가 좋단 뜻이겠지.’
이어서 우린 간단히 계약서를 작성했다.
당연히 계약서는 김씨 아저씨의 부인이 작성했다.
세상이 미치면서 양도세니 뭐니, 복잡한 세금이 없어진 건 참 좋은 것 같다.
“저, 정말 여기서 우리가 생활해도 되는 겁니까?”
원랜 단독형 건물을 구해주려 했는데, 출입구가 외부에 있는 것보단 내부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파트 타입으로 숙소를 구한 거다.
나는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안 믿기는 듯한 김씨 아저씨의 부인과 아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 아니라 두 사람에게 각각 3천 코인과 하급 회복물약, 중급 회복물약을 쥐여주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이, 이건 너무 과한데요?”
현재 내 코인 보유량은 30만이 넘어서고 있는 상태.
그 정도 내어줘도 별로 티도 안 난다.
“갑자기 코인 많아졌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수원의 김현수 사냥팀과 아는 사이라 하세요. 말은 전해 놓겠습니다.”
윤시아와 레벨이 비슷한 김현수라면 서울에서도 유명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름을 팔기로 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는지, 김현수의 이름이 나오자 김씨 아저씨의 아들이 눈을 크게 떴다.
“수, 수원의 윤시아라 불리는 김현수 말입니까?”
김현수는 그런 식으로 불리고 있었나?
나는 헛웃음을 흘려야만 했다.
***
육상 몬스터, 공중 몬스터, 수중 몬스터.
사람들은 이 세 장소의 몬스터만 경계하며 관심을 소홀히 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바로.
지하다.
“어? 뭐지?”
동작구 현충원의 생존구역.
소규모 사냥팀에 소속된 한 사내가 우연히 얻은 소주를 소중히 품에 안고 자신의 거주구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골목에서 여성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그에게 손짓을 했고, 그는 흥미를 표하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실루엣이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그는 누군가가 사냥꾼인 자길 유혹하는 거라 판단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남성은 곧 여성이 서 있는 골목에 다다랐다.
“저기요?”
-스물스물.
그런데 여성에게 다가간 남성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눈앞의 형체가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배고파.]
“헉?”
이내 시야 가득 덮쳐오는 수많은 촉수를 보게 되었다.
“끄아아악!”
그리고 남성은 촉수에 붙들려 그대로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지름이 겨우 한 뼘이나 될 법한 하수구 구멍에.
-우두둑! 우둑!
몬스터는 지상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엘더 크림슨 로드 / 레벨: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