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 강화 (2) >
나와 윌리아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구멍을 향해 마력탄을 쐈다.
덕분에 하프리치는 눈에 2연발로 날아드는 마력탄을 맞고 신음했다.
[크윽! 이 비겁한···.]
“그러게 누가 구멍에 썩은 눈깔부터 들이밀래?”
[벽에 구멍을 뚫은 건, 네 녀석들이다. 비겁한 짓 말고 정정당당히 덤벼라.]
설마 던전의 보스몬스터와 구멍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설전을 벌이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한껏 화가 난 하프리치도 우리를 향해 마력탄을 날렸지만, 윌리아의 디바인 쉴드에 가볍게 막혔다.
덕분에 녀석을 바라보는 내 표정이 놀람에서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이거 잘하면. 어부지리로 던전 클리어하는 거 아닙니까?”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윌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윌리아 님!”
“네!”
긴 설명 따윈 필요 없다.
내 부름에 그녀는 바로 하프리치에게 힐을 사용했다.
[크윽!]
그리고 나는 녀석이 고통스러워하는 타이밍에 맞춰 마력탄에 불속성을 부여한 파이어샷을 날려 추가 타격을 입혔다.
물론, 모든 공격이 성공하는 건 아니었지만, 3번을 시도하면 한 번은 맞았기에 우린 신이 나서 구멍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쾅!
그에 하프리치를 보호하는 두 마리의 네임드 듀라한이 흥분하며 구멍에 검을 찔러왔지만, 어림도 없었다.
슬쩍 뒤로 피하니 놈들의 검날은 우리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게 듀라한들의 검이 빠질 때마다 하프리치 괴롭히기가 계속 이어졌고.
결국 녀석들은 작전을 바꿨다.
-팍! 팍!
좁은 구멍을 키우기로 한 것이다.
듀라한들은 검기를 두른 검으로 구멍을 부수며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금세 구멍은 사람의 몸통 하나 들어갈 정도로 커졌고, 우린 마치 네트를 중간에 두고 테니스를 하듯 공격을 주고받았다.
“어?”
하지만 오래지 않아 싸움은 끝났다.
우리가 광질을 하던 공간에 몬스터가 스폰함과 동시에.
“에이, 뭐야.”
파괴된 던전의 지형이 자동으로 수복되었기 때문이다.
즉, 벽의 구멍이 막혀서 보스의 모습이 가려졌단 뜻이다.
“왠지 이럴 것 같긴 했어.”
솔직히 싸우면서 큰 기대를 안 했다.
던전에 수복 기능이 없으면, 다들 꼼수만 생각하게 될 테니까.
우린 새롭게 리젠이 된 몬스터들을 빠르게 쓸어 버리곤 이야기를 나눴다.
“보스 공략을 이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금의 공방이 성과 없이 끝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유는 녀석들과 쪼잔한 전투를 이어가면서 넓어진 구멍 너머로 보스룸의 내부를 찬찬히 살필 수 있었고.
그 보스룸에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광물 채집물이 벽과 바닥, 천장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러니 우리의 목적이 광질에서 보스 토벌로 우선순위가 바뀌는 게 당연했다.
“우리가 많이 강해지긴 했어도, 레벨 35의 네임드 듀라한 2마리와 레벨 40의 보스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지가 문제네요.”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 부분이다.
이곳은 과거 우리가 보스 토벌을 목전에 두고 도망쳤던 던전.
그때보다 모두가 강해졌다곤 하지만, 역시 네임드 2마리와 보스 1마리의 전력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진화한 멍멍이라면, 네임드 듀라한 한 마리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윌리아의 말대로다.
지금의 멍멍이라면 그 정도 백업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윌리아의 호위는 방패를 지닌 뚱이가 해도 되고, 내겐 블링크란 공간이동 스킬이 있는 만큼, 윌리아에게 빠른 지원을 갈 수 있다.
이어서 윌리아는 우리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 이런 제안을 해왔다.
“보스는 저와 뚱이가 맡을게요.”
“위험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백호님께서 빠르게 네임드 한 마리를 처치해서 숫자를 줄이는 게 승률이 높다고 생각해서요.”
그녀는 사냥 성공을 위해 스스로 위험한 임무를 자진하고 나섰다.
나는 그런 윌리아를 보며 걱정이 되면서도 속으로 놀라움을 표해야 했다.
그만큼 윌리아가 우리 파티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단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만 봐도 그녀는 결코 짜여진 극본대로 움직이는 게임 속 NPC가 아니다.
우리와 다름없는 개성과 생각을 지닌 인간임을 증명했다.
“알겠습니다. 윌리아님의 계획대로 가죠.”
*
우린 정상적인 루트로 보스룸에 다다랐다.
[네임드 듀라한 알칸 / 레벨: 35]
[네임드 듀라한 제르더 / 레벨: 35]
[보스 하프리치 카르시아 / 레벨: 40]
그러자 던전 보스인 하프리치 카르시아가 이를 악물며 으르렁댔다.
[네 녀석들···.]
“아쉽네, 데미지는 시간이 지나면 치료되는구나?”
부상은 치료되어도, 기억은 죽지 않는 이상 그대로인 모양이다.
길게 시간 끌 것 없다.
우린 작전대로 움직였다.
나는 먼저 블링크를 사용해 보스인 카르시아의 등 뒤로 돌아갔고, 흠칫 놀란 녀석에게 거력참에 검기를 담아 쳐냈다.
-콰아앙!
[큭!]
이왕이면 보스가 그대로 죽어주면 좋겠지만, 던전 보스가 한 방에 죽길 바라는 건 역시 도둑놈 심보다.
하프리치 카르시아는 일반적인 원형쉴드가 아니라, 정면만 방어하는 쉴드를 펼쳐 내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워낙 강력한 공격인지라 데미지를 크게 입지 않아도 튕겨져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녀석이 떨어진 곳은 윌리아가 대기한 장소였다.
“마력탄, 워터.”
[뭣?]
윌리아는 녀석이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마력탄에 물속성을 담아 관통력을 가진 워터샷을 날렸다.
카르시아가 그녀의 공격을 알아챘을 땐 이미 워터샷이 코앞까지 쇄도한 상태였다.
미쳐 방어막을 펼칠 여유가 없던 녀석은 필사적으로 상체를 틀었고, 그대로 어깨가 뜯기며 한쪽 팔이 날아갔다.
성공적인 기습.
하프리치 카르시아를 윌리아가 묶어 놔야 하는 만큼 기습으로 최대한 데미지를 주려 했는데, 그 계획이 제대로 통했다.
[이, 이런.]
보스가 기습에 당하는 걸 지켜본 네임드 듀라한 둘이 당황하며 뒤늦게 카르시아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지만, 아쉽게도 녀석들에겐 이미 상대가 정해져 있었다.
“어딜 가려고.”
-콰아앙!
나는 다시금 거력참과 검기를 섞어 네임드 듀라한 하나를 멍멍이에게 날려 보낸 뒤, 어느새 혼자 남게 된 듀라한과 1대1 전투에 돌입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자.’
같은 레벨이라 해도 네임드와 보스 몬스터 쪽이 일반 몬스터보다 월등히 강하다.
눈앞의 네임드 듀라한이 나보다 레벨이 11이나 낮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방심과 자신감은 다른 법이다.
-쾅! 쾅! 서걱!
[크윽!]
거칠게 네임드 듀라한을 밀어붙이는 내 행동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나는 듀라한에게 검 한 번 휘두를 기회를 주지 않고 무차별 공격으로 대응했다.
‘더 빠르고, 더 강하고, 아예 내 쪽으로 검을 뻗지 못하게끔.’
그렇게 공격 일변도 속에 간간히 변초와 스킬을 섞으면서 빈틈을 이끌어냈다.
‘마력탄, 쾌격, 디딤판.’
그 순간, 정신없이 공격을 막아내기만 하던 듀라한이 한껏 흥분하여, 예상 밖의 수를 두었다.
[얕보지 마라!]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단 작전인지, 복부에 파고드는 내 공격을 막지 않고 오히려 오히려 검을 찔러 온 것이다.
언데드이기에 할 수 있는 물귀신 작전이었다.
-푹!
내 검이 녀석의 복부에 깊이 틀어박히고, 거의 동시에 듀라한의 검붉은 검기가 나를 덮쳐왔다.
그에 나는 미련 없이 듀라한의 복부에 꽂힌 검에서 손을 놓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블링크.’
시야 한가득 들어오는 듀라한의 등.
하지만 녀석은 이 패턴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어딜!]
때마침 검의 방향이 바뀌며 내 목을 노려온 것이다.
카르시아에게 기습을 가할 때 블링크를 썼던 걸 본 만큼,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다.
역시 네임드 이상 몬스터들의 지능은 무시 못 한다.
그러나 녀석은 스킬 하나에 너무 연연했다.
“상급 방어막.”
나는 크리쳐 보아의 막타를 먹고 얻은 망토의 내장 스킬을 펼쳤고.
-깡!
녀석의 필살 공격이 맥없이 막히며 보조검을 빼 든 내 횡베기에 그대로 당했다.
[네임드 듀라한 제르더를 토벌하여 경험치 18,000을 획득했습니다.]
[네임드 듀라한 제르더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6,55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중급 회복물약 4개를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검기’를 획득했습니다.
상체가 떨어져 나간 제르더의 하체가 무릎을 꿇더니, 이내 완전히 바닥에 고꾸라졌다.
전투 시작부터 토벌까지 채 1분이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곧장 윌리아와 멍멍이의 상황을 살폈다.
[이, 이년이?]
“뭐, 이놈아.”
상대가 언데드여서인지, 서포터임에도 하프리치 카르시아와 대등하게 싸우는 윌리아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안정적이었다.
‘역시 상황판단력하고 대응능력이 좋아.’
서울에 다녀오면서 윤시아란 인물의 전투 센스를 칭찬했었는데, 이제 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 보물이 있다는 걸 잠시 망각하고 말았다.
보스는 조금 더 윌리아에게 맡겨도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멍멍이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그럭저럭 상대가 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어깨를 당했는지, 피가 발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녀석, 애썼다.
“고마워 멍멍아. 이제 윌리아님 도와줘.”
-컹!
나는 회복의 반지를 이용해 멍멍이를 치료해주었다.
내 지시에 멍멍이는 하프리치에게 전광석화처럼 돌격 스킬로 달려가며 새로 얻은 절단 스킬을 이용해 다리를 물어 뜯었다.
윌리아 혼자서도 잘 싸우고 있던 만큼 멍멍이가 더해지면 더욱 안정감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나와 두 번째 네임드 듀라한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이건 앞선 싸움의 반복이었다.
[아, 안 돼!]
“얼른 뒈져.”
-팟!
아니, 시간상으론 더 단축됐다.
토벌까지 30~40초 정도 밖에 안 걸린 느낌이니까.
[네임드 듀라한 알칸을 토벌하여 경험치 18,000을 획득했습니다.]
[네임드 듀라한 알칸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6,72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물약 1개를 획득했습니다.
-스켈레톤 테이밍 목걸이를 획득했습니다.
‘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손에 넣은 스켈레톤 테이밍 목걸이.
덕분에 한껏 기분이 업된 나는 불안에 떨고 있는 하프리치에게 다가갔다.
[감히!]
이미 네임드 듀라한 둘이 사라진 순간 녀석의 패배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보스 하프리치 카르시아를 토벌하여 경험치 25,000을 획득했습니다.]
[하프리치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15,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그래도 보스는 제법 분투했다.
마력을 쥐어짜 스킬을 마구 난사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로 인해 마력은 오래지 않아 바닥이 났고, 분투에 비해 녀석의 끝은 허망했다.
“고생 많았다. 멍멍아, 뚱이야.”
-컹컹!
-꾸익!
나는 오늘 전투에 많은 도움이 된 두 펫을 칭찬하곤 보상 메시지로 시선을 옮겼다.
[보스 하프리치 카르시아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8,7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2칸을 획득했습니다.
-카르시아의 로브를 획득했습니다.
[하프리치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2,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조사방해’를 획득했습니다.
[카르시아의 로브 / 등급: 특수]
-와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로 마법이 걸려 있어 매우 가볍고, 방어력이 높다.
-체온 유지 기능
-상급방어막을 하루 3회 펼칠 수 있다.
-마력+4
카르시아의 로브는 어제 얻은 크리쳐 보아 로브와 거의 똑같은 옵션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카르시아의 로브는 윌리아의 몫이 되었고, 이로써 우리 두 사람은 상급 방어를 6번이나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수준에서 상급 방어막이면 웬만한 공격은 전부 막아줄 테니, 앞으로의 전투는 더욱 수월해 질 것 같다.
“디자인도 좋네요.”
“예뻐요. 그리고 따뜻해 보여서 더 좋아요.”
이어서 나는 새롭게 습득한 스킬북을 살폈다.
[조사방해 / 상급 스킬북 / 액티브]
-조사, 탐색 등 상대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스킬을 차단한다.
-유지시간: 30분
-소모마력: 3
스킬북의 정보를 본 나는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솔직히 사람 많은 도시에 갈 때마다 걱정한 게 나처럼 탐색 스킬을 가진 누군가를 만나는 거였다.
탐색 스킬은 상대의 이름과 레벨을 표시하는 만큼 누군가에게 내 정보가 보인다면 단번에 서**이란 걸 들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사방해 스킬은 도시에서의 활동을 더욱 자유롭게 만드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스킬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해당 스킬을 습득했고, 시험 삼아 윌리아에게 사용해 보았다.
[윌리아 / 레벨: 47]
그러자 이랬던 내용이.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변했다.
사실 이것도 수상하긴 마찬가진데, 정보가 대놓고 드러나는 것보다야 낫다.
여기에 네임드 듀라한을 잡고 검기 스킬과 스켈레톤 테이밍 목걸이도 얻었다.
너무도 만족스런 보상 타임이었다.
하지만 보상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으니.
던전의 클리어 보상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 무덤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하여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수 등급 아이템 뽑기권
최초 클리어를 통해 얻은 뽑기권은 그동안 모은 것까지 해서 오늘내일 중으로 한 번에 까볼 생각이니 일단 쟁여 두고.
[지하 무덤 던전을 클리어하여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대장장이 열쇠
이어진 일반 클리어 보상을 본 순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대장장이 열쇠!”
즉, 이곳에도 대장장이 NPC가 숨어 있단 뜻이다.
광산 던전이 대장장이 NPC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단 추측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열겠습니다.”
“네!”
나와 윌리아는 때깔부터 범상치 않은 크리쳐 보아 망토와 카르시아의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잊혀진 광산 입구에 섰다.
‘광물도 충분히 채광했으니 이제 남은 건 강화다.’
나는 성남의 최도겸이 그랬던 것처럼, 던전 입구에 열쇠를 찔러 넣었다.
-쿵!
그러자 검은 기운이 폴폴 풍기던 광산의 갱도 입구가 잘 다듬어진 문의 형태로 바뀌었다.
-끼익!
그리고 문을 여니 작은 오두막이 자리한 특수한 비밀 공간에 다다랐다.
[숨겨진 필드, 대장장이 토레프의 집을 발견했습니다.]
토레프가 확실한 드워프는 숨겨진 필드에 진입한 우리를 마중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오두막 앞에 서서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남자 역할은 못 해도 엄청 강한 사람을 세 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네?”
“정답은 고자세.”
뭐지? 이 이상한 드워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