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54화 (54/273)

< 레이드 (2) >

***

우린 지하미궁 2단계 던전의 네임드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방의 문을 열었다.

“보스도 아니고 네임드 몬스터가 방을 차지하고 있다면···.”

“적어도 보통의 난이도는 아니란 거겠죠.”

윌리아도 같은 생각인지, 내 말을 이어받았다.

일단 지하미궁 2단계는 우리가 지금까지 도전한 여러 던전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와 레벨이 높다.

일반 몬스터의 레벨만 해도 기본 40이고 45짜리도 나오고 있으니까.

즉, 여기서 나오는 네임드는 적어도 레벨이 50 이상이란 뜻이 된다.

그리고 네임드의 수준에 따라 보스 몬스터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으니, 이번 네임드 토벌전 결과에 따라 안전을 위해 던전 클리어는 뒤로 미뤄질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의 목적은 던전의 클리어가 아닌, 조사와 보물상자 찾기였으니까.

‘하지만, 뭐···. 지금의 우리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우리의 레벨이 48에 지나지 않지만, 장비 강화 덕분에 실제 전투력은 레벨 70에 근접한 수준이라 자체 평가하고 있다.

물론, 단순 능력치만 보면, 우리의 수준은 레벨 70 이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장비의 질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순리라 생각하고 있다.

레벨이 높으면 그에 맞는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터이고, 자연히 몬스터들의 레벨도 그걸 감안해 책정해야 정상 아닐까.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 / 레벨: 55]

일반 몬스터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네임드 이상의 몬스터는 내 예상이 맞을 거라 본다.

그 증거가 눈앞의 위치한 네임드 몬스터였다.

처음 보는 레벨 50이 넘는 네임드 몬스터.

날이 유독 긴 세이버를 든, 아칸이란 미라는 검은색의 기운을 온몸에 두르고, 핏빛 안광을 번뜩이고 있다.

장담컨대 지금까지 본 어떤 몬스터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

[살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은 검을 검집에 보관한 상태로 자세를 낮췄는데, 그 모습이 꼭 만화에서 자주 보던 발도술의 자세와 흡사했다.

‘한때 중2병 기질이 있던 시절, 나도 검도장에서 발도술을 연습하곤 했지.’

발도술은 많은 사람의 의견이 갈리는 기술이다.

실전성이 없다는 측과 있다는 측.

하지만 과거의 의론은 둘째치고, 판타지 설정이 실존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저런 자세를 취하는 것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갈 거면 이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지.”

[무모하군]

녀석은 코웃음을 흘렸다.

이어서 몸 여기저기에 붕대와 금장식을 두른 아칸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새빨간 검기가 레이저처럼 뻗어왔다.

지금까지 봐온 어떠한 공격보다 빠른 쾌검.

“디바인 쉴드.”

윌리아는 그런 아칸의 공격을 방해하기 위해, 진로 방향에 디바인 쉴드를 펼쳤다.

-깡!

그러나 윌리아의 쉴드는 조금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

붉은색의 선은 원래의 속도 그대로 나를 향해 날아올 뿐이었다.

‘중급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다니.’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충분한 파괴력을 머금고 있다는 뜻.

그 공격에 대해 나는 검막을 펼치는 것으로 대응했다.

-콰아앙!

-까앙!

애석하게도 검막 또한 여지없이 꿰뚫렸다.

하지만.

[제법이군.]

“후덜덜하네.”

아칸의 발도술은 끝내 검기가 둘러진 내 검에 가로막혔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심상치 않은 압력에 몸이 사정없이 뒤로 밀렸지만, 오래지 않아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쿵!

[큭! 미친놈, 무슨 힘이.]

그리고 검을 맞댄 상태에서 내가 힘껏 뿌리치자 네임드는 크게 뒤로 밀려났다.

뛰어난 기술과 강력한 한 방 스킬을 보유한 아칸.

하지만 능력치만큼은 내가 우위에 있는 듯했다.

“잘난 척했으니 한 대 맞아야지.”

나는 거리를 벌리기보다 녀석에게 바짝 붙었고.

“힐!”

윌리아는 언데드에게 특효약인 힐로 아칸의 행동을 방해했다.

중급 회복인 일반 힐로는 레벨 55의 네임드에겐 아주 잠깐 움찔하는 수준의 방해밖에 되지 않았지만, 콤마초 단위의 검격을 주고받는 입장에서 보자면 무시할 수 없는 빈틈이었다.

-푹!

내 검이 그대로 아칸의 쇄골을 갈랐다.

덕분에 깜짝 놀란 아칸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일진일퇴의 교환.

하지만 나는 데미지를 전혀 입지 않고, 상대만 데미지를 입었다.

[재밌군.]

그런데.

이 상황에 녀석이 익숙한 대사를 내뱉었다.

나는 참지 못해 아칸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전력을 다하겠다던가 그런 대사 내뱉는 거 아니지?”

[······. 이제 쉽지 않을 것이다.]

“진짜냐. 대사를 바꿔도 그게 그 뜻이지.”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사를 입에 담았다.

거기에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기까지.

[시간 길게 끌 생각 없다. 빠르게 네 목을 취하도록 하지. 만약 1분을 버텨낸다면 네놈의 승리다.]

쉽게 말해 이거 아닐까?

유지 시간이 1분밖에 되지 않는 전투력 강화 스킬을 사용하겠다는 거?

스킬이 끝나면 오히려 페널티가 발동해서 내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스킬 말이다.

나는 친절한 설명에 헛웃음을 흘리며, 얼마나 강해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팟!

잠시 후, 설명충 아칸의 풀풀 풍기던 검은 기운이 그의 안광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콰앙!

“큭!”

녀석의 그 호언장담이 허풍이 아님을 증명하듯, 붉은 기운이 잔상처럼 눈 앞에 펼쳐지며 믿기 힘든 속도로 공격을 가해 왔다.

첫 번째 공격을 막은 건 순전히 감이었다.

내가 예전에 검으로 총알을 쳐냈을 때와 비슷한 반사적인 행동.

당연히 아칸이 총알보다 느리다.

하지만 직선으로 날아드는 총알과 달리, 녀석은 공격 경로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총알을 검으로 쳐내는 것만큼이나 방어가 쉽지 않아 보였다.

-흠칫.

그리고 왼쪽 목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

나는 서둘러 목을 틀며 그곳에 검을 가져다 댔고, 붉은색의 검기가 내 검과 함께 얼굴을 훑었다.

-팅!

다행히 내 머리엔 빛을 엮어 만든 투구가 씌워져 있다.

손으로 만져도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 특수한 개념 장비가.

이 투구가 놈의 공격으로부터 얼굴을 지켜줬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같은 검을 쓰는 상대에게 끌려다니면서 제대로 반격다운 반격을 못 하는 건.

‘젠장.’

나도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

아예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블링크 스킬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전투에선 블링크는 함부로 사용하기 힘들어 보였다.

아칸이 워낙 전광석화 같은 데다가, 움직임도 불규칙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가질 만한 스킬이네.’

그런데 앞선 두 번의 공격이 연이어 실패했기 때문일까?

녀석은 꽤나 당황한 듯 보였다.

돌연 공격 대상을 나에서 윌리아로 바꾼 것이다.

붉은빛이 접근하자, 윌리아는 침착하게 외쳤다.

“상급 방어.”

바로 최근에 얻은 카르시아 로브의 내장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쾅!

현재 우리가 보유한 방어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상급 방어.

그러자 지금까지 한 번도 아칸의 움직임을 막지 못한 방어막이 처음으로 제 몫을 해냈다.

방어막 전체에 실금이 가긴 했지만, 붉은 검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찰나에 가까운 잠깐이나마 녀석의 움직임도 멈추는 데 성공했다.

“나이스, 윌리아님!”

처음 만들어진 완벽한 블링크 사용 타이밍.

나는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칸의 뒤쪽으로 블링크를 사용함과 동시에 참격을 날렸다.

‘거력참.’

-콰아앙!

[큭!]

강력한 스킬이 작렬하며 바닥이 산산조각 났다.

아쉽게도 아칸은 붉은 기운을 뿌리며 이미 사라진 상태였으나, 작게 울려 퍼진 신음소리를 들었기에 어느 정도 타격을 줬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보인다.’

다리에 데미지가 있는지, 아니면 눈이 적응을 한 건지, 약간이나마 아칸의 움직임이 눈에 포착되었다.

-핏!

물론, 보인다고 해도 아칸의 공격에 대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 대가로.

-팟!

[하하!]

내 왼팔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칸은 보았냐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계속 웃어보시지?”

하지만 나는 팔 하나를 잃은 대신, 녀석의 목을 가르는 데 성공했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공격.

아칸은 뒤늦게 이상함을 깨닫고 벙찐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의 머리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을 토벌하여 경험치 68,000을 획득했습니다.]

[미라 근위전사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25,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은 못했지만, 현재 경험치는 레벨업을 목전을 둔 상태다.

나는 경험치 메시지에 이어 녀석이 떨군 보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초 토벌인 만큼 스킬북이 나올 확률이 제법 높으니, 마지막에 아칸이 사용한 능력치를 극대화 시키는 스킬이 나오길 바랐다.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5,7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3칸을 획득했습니다.

-아칸의 세이버를 획득했습니다.

[미라 근위전사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4,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폭주를 획득했습니다.

한 줄씩 보상을 살핀 나는 쾌재를 불렀다.

“오오!”

[아칸의 세이버 / 한손반 곡도 / 등급: 특수]

-아칸이 사용하던 세이버로 속검에 특화되어 있다.

-순발력+4

-발도술을 사용할 경우 최대 검속이 30% 상승한다.

-자체 스킬: 일섬

[일섬 / 상급 스킬 / 액티브]

-횡베기 또는 발도술 중 검기를 머금은 강력한 쾌검으로 적을 공격한다.

-소모마력: 3

[폭주 / 최상급 스킬 / 액티브]

-1분간 모든 능력치를 50% 증가시킨다.

-폭주 스킬은 중첩되지 않는다.

-스킬이 종료되면 30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하는 페널티가 부여된다.

-소모마력: 5

이보다 좋을 순 없는 수준의 보상이 나왔다.

아칸의 세이버는 내가 기존에 사용하던 제르카의 검과 비슷한 능력치를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특색이 매우 강한 무기였다.

제르카의 검과 동급인 메인급 무기로 두 검을 번갈아가며 착용하면 될 것 같다.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특히나 이렇게 특색있는 검이면 더욱 환영이야.’

더불어 바라고 있던 그 스킬이 나왔다.

이름은 폭주.

무려 모든 능력치가 1분 동안 50%나 증가하는 스킬로, 블링크에 이은 두 번째 최상급 스킬이었다.

스킬을 1분간 사용하면 페널티가 무려 30분간 발생하기에 남발할 순 없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스킬이었다.

덕분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윌리아는 그런 나를 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보상이 마음에 들어도 부상부터 치료하셔야죠. 안 아프세요?”

“네?”

뒤늦게 내 시선이 뜯겨져 나간 왼팔로 향해지고.

“끄아아악!”

엔도르핀이 과다분비 돼서인지, 상처를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엄청난 통증이 밀려오며 바닥을 굴러야 했다.

“위, 윌리아님.”

절단 부상은 상급회복 이상의 치료수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윌리아를 불렀고, 그녀는 실소와 함께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내가 만약을 위해 분배해놓은 상급회복 물약을 꺼내 상처 부위에 뿌려 주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왼팔이 소생되었고, 타오르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 역시 싹 사라졌다.

“죽는 줄 알았네.”

“백호님이 순간 무통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하, 하하.”

이번 보상은 전부 내게 알맞은 것들이다.

그래서 윌리아를 슬쩍 바라보았더니.

“각자에게 맞는 보상이 있는 거죠. 이번 건 누가 봐도 백호님의 것이니,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 천사.”

“헷!”

나는 그녀가 사용한 상급회복 물약을 채워주고 아칸의 방을 살폈다.

혹시라도 보물상자가 따로 숨겨져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

그러다가 정말 보물상자가 숨겨져 있는 공간을 발견했고.

[안전텐트(특대)를 획득했습니다.]

[7,5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거기서 두 번째 안전텐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특대 사이즈 안전텐트?”

기존의 안전텐트의 실내 공간이 3m*2m*2m로 2~3인용 정도의 넓이라면.

이번 안전텐트(특대)는 5m*5m*3m로 6명은 무난히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넓이였다.

“기존 안전텐트는 어머님하고 아버님 드리면 되겠네요.”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야 안전텐트를 자주 사용하지만, 부모님은 진짜 비상상황이 아닌 이상 사용할 일이 없다.

그래서 자그마한 것을 준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안전텐트는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주는 만큼, 비상상황 시 부모님을 더욱 안전하게 지켜줄 터.

비록 바라던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은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스런 선물이었다.

‘그나저나 어머님, 아버님?’

윌리아의 말에 다시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나였다.

-띠익.

그런데 그때.

예상 밖의 메시지와 함께 알림음이 울리며 나를 망상 속에서 억지로 잡아끌었다.

[2번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가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이 있었지.’

2번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다.

굳이 익명이 보장되는 메시지임에도 자신의 정체를 떳떳하게 밝혔던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가부흥처의 강이솔 본부장.

첫 만남부터 몬스터의 뱃속에 들어가는 뻘짓을 보여주며 내겐 허당으로 인지되고 있는 남성이다.

나는 뭔가 싶어서 녀석의 글을 살폈다.

[2번 보유자]

-안녕하십니까, 서**님. 저는 국가부흥처 제1공략본부 본부장인 강이솔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레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언제든 한가하실 때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을는지요.

부디 답변 부탁드립니다.

너무도 정중한 메시지.

정부와 얽히기 싫은 나로선 그냥 무시할까 했지만, 이렇게까지 그를 저자세로 나오게 만드는 용건이 궁금해서 답을 해보기로 했다.

무시를 하더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 무시해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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