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차 (2) >
강이솔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사명감 아래, 정부와 함께 일하고 있다.
만약 그가 제 혼자 잘 먹고 잘살 거였으면, 마음 편하게 민간 사냥팀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선 울타리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당연히 그 울타리에 정부만 한 존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부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게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거라 생각했으니까.
때문에 그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정부에 대한 강이솔의 믿음이 깨졌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믿음이 안 가는 족속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한다고?’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단 전체 메시지가 전해졌으니, ‘강화도에 간사람들도 곧 돌아오지 않겠냐’는 보좌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이솔은 허탈한 표정으로 현충원 생존구역 본부를 나섰다.
정부 소속 사냥팀이란 타이틀이 처음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야?”
서울 대표 사냥팀의 리더인 윤시아의 물음에 상부에 보고하겠다며 생존구역 본부에 들렀던 강이솔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그리고 그는 윤시아에게 말했다.
“독립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뭐?”
생각지도 못한 강이솔의 발언에 윤시아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어쩌면 독립 수준이 아니라, 지금의 정부와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네.”
“무, 무슨 일인데 그래?”
대체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 윤시아는 혼란스런 표정을 지어야 했다.
***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를 잡고 레벨이 50에서 53이 되었다.
그래서 레벨업에 따라 능력치를 분배하려고 상태창을 열었는데···.
[상태창]
-레벨: 53
-칭호: 선구자(모든 능력치+2)
-능력치
근력: 29(+14) 순발력: 24(+21) 마력: 22(+22)
잔여 능력치 포인트: 6
뭔가 이것저것 바뀌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칭호다.
각성자(모든 능력치+1)에서 선구자(모든 능력치+2)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이번 루시엘라 토벌로 인해 생긴 것 같다.
어쨌든 능력치가 상승한 거니 기뻐하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잔여 능력치 포인트를 보며 미간을 좁혀야 했다.
분명 레벨은 3개가 올랐다.
그런데 능력치 포인트는 6개가 주어진 것 아니겠는가?
“음···.”
설마, 레벨 1~50까진 주는 능력치가 1이고.
레벨 51부터 주는 능력치는 2인 걸까?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레벨 1에 능력치를 고작 1개 주는 건 너무 적은 느낌이었으니까.’
레벨은 점점 올리기 힘들어지고, 아이템에 따른 능력치 상승 폭이 커지면서 이래선 레벨업에 의미가 있냐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차라리 장비를 더 좋은 걸로 바꾸는 편이 훨씬 체감이 크니까.
그런데 레벨이 오를수록 주는 능력치도 많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럼 혹시 레벨 101부턴 주는 능력치가 3이고, 151부턴 4인 건가?’
확실하지 않지만, 이로써 한가지 깨닫게 된 게 있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들도 레벨이 51을 넘지 않는 이상, 한동안 나와의 격차는 더 커진다는 뜻이네?’
이제부터 나는 레벨업을 할 때마다 능력치를 2개씩 받는데, 다른 사람들은 레벨업을 해도 능력치를 1개씩 밖에 못 받지 않는가?
초반에 벌려둔 격차가 좁혀지긴커녕 계속해서 벌어지게 생겼다.
‘거기에 이번에 얻은 내단도 있지.’
나는 루시엘라를 토벌하고 얻은 로드의 내단을 꺼내 들었다.
근력과 순발력을 높여 준다는 영약.
안전한 곳에서 섭취하기 위해 월광도로 돌아올 때까지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 놓고 있었다.
[로드의 내단을 섭취했습니다.]
[영약의 기운이 흡수될 때까지 적게는 수분에서 많게는 수십 분이 걸립니다.]
[안정을 취하십시오. 영약이 흡수되는 동안 불필요하게 움직이면, 흡수율이 낮아집니다.]
나는 조용히 월광도 침실에 누웠다.
그런 나를 윌리아가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리고 약 30분이 흘러···.
[영약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근력이 4 상승합니다.
-순발력이 3 상승합니다.
흡수가 끝이 났다.
그런데 두 개 합쳐서 오른 능력치는 7.
천년삼을 먹고 마력이 10이나 올랐던 걸 떠올리면, 같은 희귀 등급의 영약인데 내단은 상승치가 적어 아쉬운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영약을 섭취한 경험이 있어, 흡수율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곧 지난번과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영약은 구하기만 하면 대폭 능력치를 올려주는 만큼 제한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능력치가 7이라도 오른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레벨업으로 생긴 6개의 잔여 포인트도 근력과 순발력에 반씩 투자했다.
이것으로 루시엘라 토벌 보상의 수습이 모두 끝이 났다.
이번 레이드로 인해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한두 단계 더 도약을 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새삼스럽지만, 큰일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내 말에 맞은편에서 캔 커피를 홀짝이던 윌리아가 예쁜 미소를 띠며 답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럼 이제부터 한동안은 지하미궁 공략 이어가실 생각이죠?”
“네, 그래야죠.”
솔직히 지금은 무엇과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윌리아의 말대로 한동안은 지하미궁 공략이 주요 과제일 것이다.
“다른 던전의 네임드와 보스도 스폰이 될 때마다 꾸준히 사냥하고요. 아무래도 보상이 좋으니까.”
결론은 역시 사냥의 연속이다.
덤으로 대장장이 NPC호감도 작업도 하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으니, 겸사겸사 월광도와 주변을 구석구석 살필 예정이다.
‘더 바빠지겠네.’
무엇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부모님과의 연락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통신 반지를 이용해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안 그래도 지금쯤이면 월광도에 도착했을 것 같아서 연락하려 했는데.]
이미 아버지에게 엘더 몬스터와의 전투를 치를 예정이라 알려놨기 때문에 아마 걱정이 많으셨을 거다.
그리고 아버지는 의외로 전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잘 알고 계셨는데, 알고 보니 계룡대에서 수원의 지작사 병력을 지원 보냈었다고 한다.
내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한 아버지는 이어서 질린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우리 아드님, 아주 전설을 쓰고 왔더라?]
“하하···. 그냥 열심히 싸웠습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있던 상황에서 본 실력을 드러내며 홀로 엘더 몬스터를 처치해낸 서**. 이렇게 토벌전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던데?]
“칭송이라니···. 무슨 오글거리는 말씀을.”
[몇몇 사람들이 떠드는 거 보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냐. 수원의 김현수는 너를 인류의 희망이라 표현하고, 서울의 윤시아는 너를 두고 뭐라 했더라? 아, ‘전신’이라더라.]
왜들 그러는 거야.
창피하게시리.
하지만 장난기가 서려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내 진지해졌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다.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몰라. 무려 고레벨의 사냥꾼 50여 명이 죽었다니까.]
확실히 희생당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냥 웃고 떠들 수만은 없는 큰 사건이었다는 게 실감된다.
나는 아버지에게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은 아버지는 나를 칭찬하셨다.
[고생 많았다. 네가 내 아들이라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나는 뺨을 긁적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연 한숨을 내쉬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뭔가 굉장히 답답할 때 내쉬는 그런 한숨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그래서 물었더니, 상상치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실은 대통령하고 국가부흥처장, 국정원장 등 주요 인사들이 토벌전이 불리하게 흘러가자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을 사용해 강화도로 도망쳤었다고 하더라.]
“네?”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웃음이 나온다는 게 맞는 거 같다.
나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지금 난리 났어. 수방사 사령관도 뒤늦게 상황을 알아채서 상황이 아주 곤란해졌거든. 그런데 대통령과 그 일파는 도망친 게 아니었다며 딱 잡아떼고 있어. 인천 시장과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그게 통해요?”
[웃기게도 통하더라. 인천과는 이미 말을 맞춰 놓았더라고.]
나는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했다.
뭐, 이런 미친 인간들이 다 있지?
“왜, 굳이 인천까지 갔대요? 숨을 곳은 많잖아요. 안전구역이나 지하벙커처럼.”
[레이드가 실패하면 서울에 남아 있어 봐야 시민들 학살당하는 모습밖에 더 보겠어? 결국엔 책임 회피인 거지. 그게 더 안전하기도 하고.]
“허···.”
[소문이지만, 강이솔 본부장이 국가부흥처장을 흠씬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도 있어.]
“잘했네요.”
그럴 만하다.
누군 목숨 걸고 싸우고 돌아왔는데, 그 상부는 도망이나 쳤으니 말이다.
솔직히 강이솔의 행동은 속이 시원하지만, 뒷일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이솔 본부장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래요?”
[윤시아를 포함한 서울의 주요 사냥팀들이 강이솔 본부장의 독립을 도우려는 것 같아. 아무리 정부여도 그들 전부를 건드리기는 부담스럽겠지.]
정나미가 심하게 떨어진 모양이다.
바로 독립이 이야기가 나오는 거 보니.
“대통령이 자리에서 쫓겨나진 않았지만, 힘이 약화 되겠네요.”
[잘하면 수방사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군인이 없다고 해도 대통령에겐 아직 경찰이란 전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부하를 버리고 도망친 대통령을 순순히 따를지는 모르는 일이다.
당장은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진 몰라도 대통령의 몰락은 시간문제란 뜻이다.
“만약 정부가 기능을 잃으면 빈자리를 계룡대가 대신하는 건가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적어도 정부보단 나을 수도 있다.
계룡대라면 대통령처럼 불리해진다 해도 냅다 튀는 뻘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군인들이 나라를 움직인다는 게 뭔가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잘하면 아빠가 서울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네?”
[계룡대에서 수방사와 화해를 하고 싶어 하거든. 그래서 수방사가 다시 계룡대를 따르게 되면, 내가 거기 참모장으로 가게 될 수도 있어.]
수방사 참모장?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진급하신다는 거예요?”
[아마도?]
나라가 난리가 나도 진급할 군인은 진급을 한다는 건가?
나는 감탄사를 흘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려요. 그토록 바라던 별을 다는 거잖아요?”
[여기저기 눈치를 보지 않게 되는 거 빼곤, 사실 그다지 기쁘지도 않아. 나라 꼴도 말이 아닌데.]
아무튼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아버지가 수방사 참모장이 된다면 내게 더욱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어? 그럼 그건 어떡하죠?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을 구하게 되면 두 분을 모시고 올 생각이었는데요?”
[고민해봐야지.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편이 네게도 좋지 않겠냐?]
장점이 크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다.
아버지의 말대로 이건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이후 나는 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약 5분 후, 통화를 끊었다.
그런 내 머릿속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홍성의 대학팀에 대해선 조사를 하고 있어. 내일 중으로 정보가 들어올 거야. 문제는 상황이 썩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홍성 대학팀은 내 구독자 콩나물 님이 소속된 곳이다.
그들이 행방불명되어 아버지가 조사를 대신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관련 정보가 내일 들어올 예정이라 한다.
아버지는 부정적인 투로 말씀하셨지만, 부디 콩나물 님이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인연이니 말이다.
“오늘 식사는 새집에서 해요.”
“네, 좋아요!”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윌리아에게 김씨가 지어준 새 보금자리에서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
작은 오두막과 같은 집을 나서자 코앞에 웅장하단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저택이 등장했다.
코인 상점에서 판매하는 간편 자재를 이용해 지은 집이지만, 규모가 크고 이런저런 요구가 더해지는 바람에 예정보다 이틀 늦게 완공이 되었다.
물론, 고작 며칠 만에 집이 완성된 거니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지만, 코인 상점의 간편 자재들은 이를 가능케 했다.
“아, 백호씨 나왔어? 새로 지은 집을 소개해 줄까?”
“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김씨 아저씨와 펫인 ‘콩쥐, 팥쥐, 감자’가 나와 윌리아를 반겨주었다.
콩쥐, 팥쥐는 홉고블린이고, 감자는 스켈레톤이다.
감자의 경우 얼마 전 잊혀진 광산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스켈레톤 테이밍 목걸이로 길들인 새로운 펫이다.
녀석은 다른 펫들과 달리, 언데드 몬스터라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마구 부려먹기 참 좋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이뤄진 이 집은 12kw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웬만한 전자 제품은 모두 이용할 수 있고, 주택의 난방은 요구대로 화목 난로 시스템을 넣었네.”
감자에게 부여된 역할은 가정부다.
겨울의 서해 섬 날씨는 몹시 추우니 화목 난로에 땔감을 주기적으로 넣어주고, 나와 윌리아가 필요한 게 있으면 대령하는 존재.
참고로 녀석의 이름이 감자인 이유는 심플하다.
그냥 스켈레톤의 뼈다귀를 보니까, 뼈다귀 감자탕이 생각나서 감자라 지었다.
김씨 아저씨는 내 작명 센스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셨지만, 부르기 편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와, 너무 멋지네요. 역시 전문가는 달라.”
오가며 볼 때마다 놀랐지만, 이건 내가 지은 허접한 집과는 차원이 다르다.
잘 정돈된 고급 저택 그 자체였다.
김씨는 저택뿐만 아니라, 주변의 조경도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 놨는데, 겨울이 지나고 풀들이 자라나는 시기가 되면 어찌 변할지 너무 기대되었다.
“방은 총 4개고 화장실은 5개네. 각 방에 개인 화장실이 있고, 1층에 공용 화장실을 만들어 뒀지.”
“오오.”
150평의 저택에 방이 4개인 건 방을 하나같이 크게 뺐기 때문이다.
나와 윌리아의 방은 2층에 작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다.
1층의 방은 부모님의 방 또는 게스트룸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지하엔 부탁한 대로, 파티풀이란 걸 만들어봤네만, 이걸로 될까?”
그리고 저택 지하엔 제법 큰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하 수영장이라니, 곰팡이 생기기 딱 좋은 조건이지만,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져서 이런 현실적인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집 구경은 오래지 않아서 끝났다.
참 넓고 아름다운 집이지만···.
“음···.”
딱 하나, 아쉬운 점이 뒤늦게 드러났다.
“왜, 마음에 들지 않나?”
“너무 마음에 듭니다. 정말 감사해요. 다만 가구랑 전자제품이 아직 없어서 휑해 보여서 그래요.”
“그건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이 육지에 가면 마트 같은 거라도 털어서 채워 넣는 수밖에.”
인테리어의 완성은 가구와 가전이란 말이 있다.
그걸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아무래도 해야 할 일에 쇼핑도 추가해야겠네요.”
“좋아요, 마트는 언제가도 즐겁죠!”
내 계획 수정에 마트를 좋아하는 윌리아도 기대감에 들떠서 소리쳤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김씨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이 쓰던 집기들은 옮겨 놓도록 하겠네. 그리고 그 집은 내가 쓰도록 하지.”
“네? 여기 같이 묵으시면 되잖아요?”
내 물음에 김씨 아저씨는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눈치란 게 있네. 연인 사이에 끼어서 뭐하겠나, 빠질 땐 적당히 빠져줘야지.”
너무도 합당한 이유.
연인은 아직 아니지만,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강이솔이 국가부흥처장을 죽기 직전까지 팼다는 이야기는 정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강이솔을 건드리지 못했다.
강이솔이 국가부흥처 소속의 사냥팀을 모조리 끌고 나갔음에도 말리기만 할 뿐, 힘으로 어쩌지 못했다.
이제 법보다 힘이 우선인 시대다.
그걸 모두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어쩌게? 그냥 사냥팀으로 활동하게?”
강이솔은 독립 후 가장 먼저 루시엘라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함께 싸운 전우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하나의 단체를 이끌고 있는 리더거나 그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이솔이 국가부흥처장을 참교육했다는 이야기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통쾌하다면서.
그래서인지 강이솔을 바라보는 시선엔 하나같이 호의와 관심이 담겨 있었다.
그런 강이솔을 향해 가장 친한 윤시아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생각해 둔 게 있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면 쉽게 해결되는 일이야.”
그에 강이솔은 진지하게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고, 다들 곤란한 부탁이면 거절하겠지만, 일단은 들어보겠단 제스처를 취했다.
“게임이나 만화를 보면 많이 나오잖아. 모험가 길드, 혹은 용병 길드라 불리는 단체.”
“그렇지.”
“그런 거 만들어 보려고.”
“뭐?”
“정부나 군대에 휘둘리지 않는 사냥팀들이 모인 강력한 독립단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