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66화 (66/273)

< 검술스승 (2) >

***

경로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에 희귀등급으로 추측되는 성능 좋은 방패가 더해지니, 이지우는 그야말로 철벽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방어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방어력이 좋으면 뭐하겠는가.

내 공격을 막기에 급급해 공격할 여유가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단단한 벽이어도, 계속해서 두들기면 뚫리게 되어 있으니까.

“어?”

“이제 그만 가라.”

이지우는 겨우 한 번 뚫렸을 뿐이다.

그러나 그 한 번으로 인해 이지우의 머리는 허공을 날고.

몸통은 붉은 피를 사방으로 뿜어댔다.

“와, 와아아아!”

“이, 이겼어?”

“진짜로?”

“그 막강했던 이지우가 방어만 하다가 죽다니.”

감옥 안에 갇혀 있던 납치 피해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는 기뻐하는 그들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는 윌리아에게 클린 스킬을 부탁했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뜨뜻미지근한 피가 여기저기 묻었기 때문이다.

“고생하셨어요.”

윌리아가 싱긋 웃어 보이며 클린 스킬을 사용하자, 몸의 이물질들이 싹 씻겨 나갔다.

“끼어들려다가 왠지 즐기시는 것 같아서 참았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이지우의 처치는 윌리아를 활용하면 더 쉽고 빠르게 마무리 지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 공격을 이렇게까지 막아낸 상대를 처음 만났다.

모처럼의 귀중한 경험이니, 나는 신이 나서 녀석을 두들겼고, 윌리아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끼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방패란 장비가 사용자에 따라 얼마나 효율적인지 깨닫는 기회가 되었네요.”

오늘의 경험은 추후 뛰어난 방패 사용자를 상대하게 될 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경로 예측 능력을 가진 방패수를 또 만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아, 맞다.”

나는 이지우의 사체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래도 시신들로부터 아이템을 수습하려고 했는데, 녀석들이 말했던 검술 스승 아이템이란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지우의 시신에 손을 얹었고, 녀석의 소지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유 코인: 121,042]

[착용 장비]

-검술 선생 오티스 (희귀)

-철벽의 방패 (희귀)

-익스퍼트 한손검 (특수)

-익스퍼트 플레이트 아머 상의 (특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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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벤토리 보유 아이템]

-5단계 교환권 5장

-4단계 교환권 21장

-3단계 교환권 15장

.

.

.

몬스터와 달리 사람을 죽이면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더불어 그 사람이 배운 스킬 역시 습득할 수 없는데, 현실에서도 개인의 기술을 빼앗을 수는 없는 만큼, 이는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다만 시신에서 코인과 소지품은 수습할 수 있기에, 같은 사람을 사냥하고 아이템을 강탈하는 도둑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이곳의 인간들처럼.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잘 가져가마.’

하지만 녀석들도 끝내 내게 목숨을 잃고 이렇게 아이템을 빼앗기게 되었다.

결국엔 자업자득이란 뜻이다.

‘있네, 검술 선생 오티스.’

그리고 나는 검술 선생 아이템을 주워 들었다.

그건 남자가 착용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메달 목걸이였다.

메달에는 검 모양이 음각되어 있고, 줄은 가죽끈이라 꽤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로 아이템의 정보를 살폈다.

[검술 선생 오티스(에고) / 목걸이 / 등급: 희귀]

-소유주의 검술 능력 향상을 위한 조언자이다.

-트레이닝 모드와 전투보조 모드를 지원하며, 검이 아닌 다른 병기를 쥐고 있을 경우 해당 기능은 작동되지 않는다.

-트레이닝 모드: 가상의 적과의 전투를 벌인다. 실전에 가까운 경험을 통해 검술 능력을 향상시킨다.

-전투보조 모드: 실전에서 적의 공격 경로를 예측하여, 시각적 정보로 알려준다.

역시 예상대로다.

공격 경로를 예측하여 알려주는 기능이 있었다.

희귀등급치고 능력치가 하나도 안 붙어 아쉽긴 했지만,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는 희귀등급 장비 중에서도 매우 특별하다 볼 수 있다.

‘트레이닝 모드도 수련에 써먹기 좋아 보이네.’

나는 만족하며 검술 선생 오티스를 바로 목에 채웠다.

그런데 그때.

[내 이름은 오티스. 그대가 나의 새로운 제자인가?]

갑자기 의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야 했다.

하지만 이내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챘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을 오티스라 소개했으니 말이다.

‘과연. 아이템 이름 옆에 붙어 있던 (에고)라는 게 이걸 뜻하는 거였나?’

[이해가 빨라서 좋군.]

나는 속으로 생각했을 뿐인데, 바로 답이 돌아오자,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아이템이라지만 말을 하는 상대와 생각을 공유하는 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아를 가진 에고 장비. 기뻐하라. 그대는 기연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목걸이를 풀어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어? 자, 잠···.]

그에 녀석이 당황하며 뭔가 말하려는 거 같았는데,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왠지 검술 스승 오티스란 아이템의 말투가 거슬려서.

‘아이템이면 아이템답게 제 기능만 잘하면 되지, 에고는 왜 박아 놓은 거지? 귀찮게시리.’

이어서 나와 윌리아는 나머지 시신에서도 아이템과 코인을 수습했고, 한참 뒤에서야 감옥에 갇힌 콩나물님에게 시선을 옮겼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시신부터 벗겨 먹는 내 모습에도 그들은 얌전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감옥안의 모두가 일제히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들을 옭아매고 공포나 다름없던 단체를 단둘이서, 부상 하나 없이 쓸어버렸으니까.

한껏 긴장한 채 눈치를 살피는 그들에게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윌리아는 그들 중 부상자를 찾아 치료해 주고, 나는 대표격인 인물들을 모았다.

“제가 저들에게서 수습한 코인과 아이템을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돌려 드릴 예정입니다. 그걸 받으면 당장의 생활엔 문제가 없을 거예요.”

“가, 감사합니다.”

감히 보상을 요구하려야 할 수가 없던 이들은 내가 먼저 보상을 거론하니 송구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다들 여기서 노예 생활을 하며 비굴함이 몸에 밴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바란 건 이미 충분히 들은 감사 인사가 아니다.

이후 그들의 활동 방향이지.

“돌아갈 곳들 있습니까?”

내 물음에 대부분 안색이 어두워졌다.

콩나물님 일행이 이곳에 납치되었을 때, 홍성의 생존구역은 파괴되고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한 걸 봤다.

아마 다른 이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터.

“저희는 청양에서 납치되어 왔는데, 다행히 생존구역 사람들을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었습니다. 그래서 청양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청양에 웨이포인트 저장되어 있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여러분은 돌아가시는 데 문제없으실 테고. 나머지 분들은요?”

“······.”

돌아갈 곳이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누구도 내 말에 답을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제안했다.

“그럼 나머지 분들은 여기서 사시면 되시겠네요.”

“네?”

자신들이 부려지던 장소에서 살라니, 그들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이어진 내 이야기에 그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곳 사냥팀이 사용하던 시설을 그대로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놈들 성향을 생각해보면 분명 식량이며 물자며 부족함 없이 갖춰 놓았을 테니까요.”

“아아···.”

“그리고 안정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성장의 탑이란 멋진 시설도 있죠. 전이라면 모를까. 자유를 되찾은 여러분께 이곳은 여러모로 좋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때서야 사람들도 냉정하게 이곳의 시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오래 끌지 않고 결정했다.

현재 이곳에 모여 있는 노예팀의 수는 총 64명.

그중 18명이 다른 곳으로 떠나고, 46명은 남기로 했다.

“아직 탑 안에 사냥 중인 사람들이 더 있는 거죠?”

“네, 그리고 지상에도 몇 팀이 있을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뒷정리까지 확실하게 해야겠다.

겸사겸사 아이템도 챙기고.

*

잔당 처리와 납치 피해자들의 수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령 사냥팀에 소속되어 있던 인간은 철저히 처리하고, 피해자들에겐 그들이 재기할 수 있게 보령 사냥팀에게서 강탈한 코인과 아이템을 분배해 주었다.

‘물론, 특수 등급 이상의 아이템과 보상으로 바꿀 수 있는 교환권은 내가 가져가고.’

이곳에서 획득한 코인이 무려 70만이 넘는다.

덕분에 나는 추가로 구조된 인원까지 더한 피해자 152명에게 약 5천 코인씩 나눠줄 수 있었다.

코인은 따로 내 몫을 챙기지 않았는데, 이유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특수 등급 이상의 아이템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템에도 이들의 핏값이 포함되어 있을 테니. 구해준 값으론 충분히 챙겼어.’

다행히 아무도 내가 준 보상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이는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3~5코인이면 상점에서 한 끼를 배불리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매우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생긴 거액에 그들은 적응을 못 했고, 나는 콩나물님을 불러 말했다.

“앞으로 이곳은 콩나물님이 관리하도록 하세요.”

“네?”

“새로운 보령팀의 리더를 맡으시란 겁니다.”

“새, 새로운 보령팀이요?”

이곳에 남기로 한 인원만 120명이 넘는다.

난데없이 규모가 큰 사냥팀의 리더 역할을 맡으라고 해서인지, 콩나물은 몹시 부담스러워 했다.

“빡세게 굴려진 만큼, 이곳 분들은 빠른 성장이 가능할 겁니다. 사냥팀으로의 자리는 금세 잡을 테죠.”

이곳 이상지형에 숨겨진 탑의 이름이 괜히 ‘성장의 탑’이 아니다.

내 입장에선 성장의 탑이 다른 던전들보다 좋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지만, 그건 내가 NPC인 윌리아와 둘이, 클리어되지 않은 신규 던전들을 깨고 다녀서 그런 거다.

즉, 우린 예외적인 입장이란 뜻.

하지만 다른 사냥팀들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기본 5명 또는 10명이 파티를 이룬 단체 사냥이 기본이다.

보상은 인원에 따라 나눠 가지게 되니, 각자에게 분배되는 아이템의 수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원하는 보상을 고를 수 있고, 때론 보상을 몰아주는 등, 전략적인 선택이 가능한 성장의 탑은 파티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상적인 장소다.’

더구나 성장의 탑은 입장 대기 시간이 있긴 해도 하루에 몇 번이고 재입장을 할 수 있다.

반면 던전은 한 번 클리어하면 네임드는 하루, 보스는 일주일 뒤에 리젠되다 보니, 보상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 나처럼 던전을 최초 클리어를 하면서 다니는 게 아닌 이상 성장의 탑에 처박혀 있는 게 나았다.

“저, 그···.”

“저그요?”

“그, 왜 저인가요?”

콩나물님의 물음에 나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식으로 답했다.

“저랑 아는 사이니까요.”

내 즉답에 콩나물님은 끙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잘 생각했다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다른 사람들은 이번에도 내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나와 친해서 그를 골랐다는 간단한 설명에 모두가 수긍했다.

애초에 이곳에 콩나물이 없었다면 그들이 구조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그래야죠.”

일단 월광도로 돌아가서 오늘 얻은 보상을 정리해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내 결정에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아무래도 내게서 두려움과 안전함을 동시에 느끼는 모양이다.

“내일 아침에도 잠깐 들를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모처럼의 휴식 편안하게 만끽하세요.”

내 말에 다들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실히 나를 따르는 세력이 있으면 좋지만, 의존도가 너무 심한 건 그리 좋지 않다.

이런 정신적인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한다.

“빼코님에게만 벌써 두 번이나 목숨을 빚졌습니다. 앞으로 원하시는 게 있으면 뭐든 말씀해 주세요. 평생 은혜를 갚아나가겠습니다.”

그건 콩나물님과 홍성 대학팀 멤버들의 다짐이었다.

*

마치 주군을 향한 맹세와 같던 홍성 대학팀 멤버들의 다짐을 뒤로하고, 월광도로 돌아온 나는 두 손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며 참고 있던 감정을 분출했다.

“대박이야!!!!”

그에 윌리아는 옆에서 좋다고 짝짝짝 박수를 치고, 저택 본채에 이어 별채를 멋들어지게 짓고 있던 김씨 아저씨가 콩쥐, 팥쥐, 감자(펫)와 함께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라 튀어나왔다.

멍멍이와 뚱이는 현재 가의도에서 그곳 청년단의 레벨업을 도와주고 있는 상태라 월광도에 없다.

“아, 하하, 좋은 아이템 먹어서요.”

“그렇구만.”

김씨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다시 일하러 가셨고, 나는 공터에 오늘 회수한 아이템들을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했다.

[검술 선생 오티스 / 등급: 희귀]

[철벽의 방패 / 등급: 희귀]

[현자의 지팡이 / 등급: 희귀]

[야수의 건틀렛 / 등급: 특수]

[미스릴 각반 / 등급: 특수]

[정령의 활 / 등급: 특수]

[익스퍼트 한손검 / 등급: 특수]

[익스퍼트 플레이트 아머 상의 / 등급: 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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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등급 장비 3개, 특수 등급 장비 15개.

진짜 대박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저기 선생님? 인벤토리 안은 너무 어둡거든요. 이제 거기에 넣지 않아 주셨으면···.]

그리고 그 안엔 잠깐 사이 제법 고분고분해진 검술 선생 아이템도 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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