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검술스승 (3) >
나는 검술 스승 오티스를 집어 들었다.
자아를 가진 목걸이 형태의 아이템으로 기능은 더할 나위 없지만, 말투가 영 거슬려서 바로 인벤토리에 처박아 뒀었다.
“말투가 이제야 마음에 드네.”
[아아, 말투가 마음에 안 드셨구나···. 그럼 미리 말씀하시지.]
녀석의 반응을 보아하니, 인벤토리 안은 썩 유쾌한 곳이 아닌가 보다.
별생각 없이 인벤토리에 처박은 건데, 앞으로도 녀석이 건방지게 굴면 인벤토리에 넣어 두면 될 것 같다.
나는 검술 스승 오티스를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물었다.
“네게 트레이닝 모드와 전투보조 모드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 하지만 그 두 개의 기능만 제공할 거였다면 굳이 에고 기능을 넣지 않았겠지.”
[하하, 예리하십니다. 검술 스승 아이템의 가장 큰 기능이 에고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성장을 위한 조언과 지도로 실력을 키우는 거죠. 트레이닝 모드와 전투보조 모드는 이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라 볼 수 있습니다. 뭐, 이전 주인은 수준이 워낙 떨어져서 전투보조 모드의 공격 예측 기능에 크게 의존했지만, 백호 님이라면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은근히 날 떠받들며 전 주인 이지우에 대한 디스까지.
완벽한 처세술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세술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저도 백호님의 검을 보고 처음에 검술 스승 아이템 소유자인 줄 알았으니까요.]
녀석의 진지한 음성에 나는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내 실력이 실제 어떤 수준인지를.
[일단 백호님은 제대로 검을 배운 적이 있으신 분 같습니다. 더불어 검술 외에도 이런저런 무술도 익히셨을 테고요.]
‘내 생각을 읽은 건 아니지?’
[무의식 속의 정보까지 찾아볼 순 없습니다. 그저 당장 하고 계신 생각을 읽는 것뿐이죠.]
‘그래도 역시 속마음이 새어나가는 건, 썩 유쾌하지 않단 말이야.’
[아, 앞으로 저를 부르시기 전까지 먼저 생각을 읽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비로소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오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백호님의 검은 실전용으로 상당히 완성되어 있습니다. 이지우의 곁에서 여러 사람을 보았지만, 누구도 백호님과 비교할 수 없죠.]
‘그래?’
[하지만 백호님의 가장 뛰어난 점은 문제를 파악하고 수정하는 능력입니다. 그게 매우 빠르게 적용되죠. 심지어 전투 중에도요. 그런 점에서 백호님은 동등한 상대와 싸워 패배할 일이 거의 없을 겁니다. 1분 후의 백호님은 지금의 백호님보다 더 발전한 상태일 테니까요.]
꽤나 금칠에 능숙하지 않은가.
하지만 오티스는 금칠 같은 게 아니라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적지만 분명 있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오성을 가진 사람들이. 때문에 백호님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변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크게 빛을 볼 일이 없었을 능력이니까요.]
아니, 그전에 세상이 엉망이 되었는데,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지금 가진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호님의 그 재능에 저의 도움이 더해지게 된다면 더욱 빨리, 더욱 압도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 테지요. 저희가 만난 건 그야말로 운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망조차 느껴지는 선언과도 같은 말.
어쨌든 검술 스승에게 후한 평가를 들으니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앞으로 뭘 하면 되는데?’
[하루 두세 시간, 편한 시간에 저와 함께 트레이닝 모드에서 수련을 하면 됩니다.]
겨우 그거?
물론,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것만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지.
나는 아이템과 레벨에만 의존하며 싸우는 게임 캐릭터가 될 생각이 없다.
그도 그럴 게, 게임은 HP가 0이 되어야 죽지만, 현실은 아무리 고렙이어도 목이 베이면 단번에 죽지 않는가.
아이템과 레벨은 일종의 지표일 뿐, 절대적 강함을 뜻하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검술을 포함한 기본 전투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 알았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는 실력 평가를 겸해 트레이닝 방침을 정하고자 짧게 싸워보기로 했다.
그러자 5미터 정도 앞에 바스타드 소드를 쥔 마네킹이 등장했다.
[백호님과 동일한 능력치, 동일한 스킬을 가진 상대입니다. 검술 수준은 초보, 일반, 고급, 심화, 극한 다섯 단계이며 현재 적용된 건 일반 수준이에요. 아마 이 정돈 무리 없이 승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마네킹은 필요에 따라 숫자를 더 늘릴 수도 있고, 덩치와 무기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엔 맛보기이니, 오스틴이 준비한 그대로 상대하기로 했다.
[마네킹의 공격은 실제 데미지를 주지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처음엔 전투보조 기능의 적응을 겸해 이를 활성화 시켜서 싸우고, 그다음엔 전투보조 기능을 끄고 싸워보기로 하죠.]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다가 얼떨결에 벌어진 대련.
그에 윌리아가 뒤로 물러나고, 근처 안전구역에서 신전NPC 해롤드가 쟤네 뭐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체 없이 마네킹과 전투를 시작했다.
-핏!
그러자 예고 없이 우상단에 빨간색의 선이 표시되는 게 보였다.
나는 그곳에 검을 가져다 댔고.
-챙!
도약 스킬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마네킹이 내 검을 때렸다.
공격 경로를 예측하여 시각적으로 알려준 것이 바로 그 붉은 선이었다.
‘눈앞에 표시되는 붉은 선에 검을 가져다 댔을 뿐인데, 진짜 거기로 공격이 들어오다니.’
꽤나 편리하면서도 신기했다.
이어서 마네킹이 크게 몸을 회전시키며 일섬 스킬을 사용했다.
일섬은 발도술 또는 횡베기 자세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나는 대부분 발도용으로 쓰기에 잘 활용하지 않는 자세에서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검강이 깃든 검으로 이를 막아냈고, 곧이어 마네킹은 쾌격과 파이어샷(마력탄+파이어)을 동시에 날리며 정신없이 공격을 가해왔다.
-빠각.
하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냈다.
이후 몇 번 더 공격을 받아주다가.
틈이 보이자마자 카운터를 날렸다.
이에 마네킹은 같은 능력치, 같은 스킬을 갖고 있다는 것치곤 너무도 쉽게 목이 뜯겨나갔다.
[오오, 대단하시네요. 아무리 예상 공격 경로를 표시해주는 전투보조 모드를 사용했다지만, 1분을 넘기지 않다니. 역시 이전 주인과는 급이 다르십니다.]
‘그런가?’
[네, 이전 주인은 첫 승리까지 2시간이 걸렸거든요. 웃긴 건 저도 그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고요.]
죽어서도 오티스에게 열심히 능욕당하는 이지우였다.
[그럼 바로 또 갈까요?]
“오케이.”
이번엔 공격 경로를 표시해주는 전투보조 모드를 끄고 싸웠다.
-쾅! 콰앙!
“큭!”
확실히 전투보조 모드가 좋긴 좋은 것 같다.
공격 경로 표시가 없어지자 오롯이 눈과 감각에 의지해서 싸워야 했는데, 적의 빠른 공격 속도에 당황하며 아슬아슬하게 방어를 해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결과로만 따지면···.
-빠각.
한번 싸워봐서일까?
전투보조 모드를 끄고 오히려 더 빨리 해치웠다.
두 번째는 약 40초 만에 마네킹을 깨부쉈다.
[······. 대, 대단하시군요. 솔직히 조금은 고전할 줄 알았는데.]
‘같은 능력치 맞아?’
[맞습니다. 그래도 역시 검술 수준을 더 올려야겠네요. 처음이라 일반 등급을 선택한 건데 백호님의 수준에 맞지 않는 것 같군요.]
그래서 오티스는 검술을 5단계 중, 딱 중간인 고급 수준으로 올렸다.
이번에도 처음엔 전투보조 모드를 켰고, 그다음에는 전투보조 모드를 껐다.
확실히 등급을 올리니 이전보다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같은 능력치와 스킬이 갖고 있다고 해도, 검술 실력에 따라 이렇게 상대하기 어려워지다니.
나는 감탄하며.
처음엔 1분 20초, 다음엔 1분 만에 마네킹을 부숴버렸다.
“오오, 확실히 수련이 되는 느낌이네.”
[······. 고급 단계를 이렇게 쉽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단 반응을 보이는 오티스.
덕분에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검술 스승이잖아? 그런데 내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거야? 앞서 말한 건 뭔데?’
[아닙니다. 그건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적응력이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그런 것뿐입니다.]
‘확실해?’
내 의심 어린 물음에 오티스는 단호하게 답했다.
[네, 이젠 같은 실수는 없을 겁니다. 더욱 자세히 백호님을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아마 백호님이라 하셔도 심화 등급의 상대에겐 이기시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훈련은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검술 수준을 5단계 중, 4단계인 심화 등급의 마네킹과 싸웠다.
그리고 그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 진짜 이건 이길 수가 없네.”
[그, 그렇죠?]
전투보조 모드를 켠 상태에서 10분 동안 싸웠지만, 승패를 가르지 못했고.
바로 이어진 전투보조 모드를 끈 상태에서의 대련도 10분을 버텼지만, 역시 승패가 나지 않았다.
[전투보조 모드를 켰을 때는 공격 경로를 보면서 적을 상대하니, 더욱 빠르게 패턴을 분석해 내신 느낌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전투에선 모드를 끄고도 전투 시간이 줄어드는 거죠.]
‘확실히 그런 거 같기도 하네.’
[그게 맞습니다.]
‘어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보인 녀석의 반응이 못 미더웠지만, 확신에 찬 마지막 대답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하루만 시간을 주시죠. 훈련 방침을 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이템이라고 해서 계산기처럼 바로바로 향후 계획이 나오는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알겠다며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곧 오티스는 조용히 침묵에 잠겼다.
“끝났어요?”
오티스가 조용해진 덕분에 실컷 싸워 놓고, 그 끝은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과연 오티스의 존재가 나를 얼마나 더 성장시킬 수 있을까?
중간중간 못 미더운 반응을 보여 기대해도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템의 기능이니 도움이 되긴 되겠지라며 생각을 정리한 나는 윌리아의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괜찮아요. 백호님의 전투는 속도감이 있고 화려해서 재밌게 구경했거든요.”
그럼 다행이고.
우린 정리를 위해 깔아 놓은 아이템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령에서 획득한 아이템은 희귀등급 장비 3개, 특수등급 장비 15개.
이 중 내가 희귀등급 2개, 특수등급 장비 2개를 챙기기로 했다.
[검술 스승 오티스(에고) / 등급: 희귀]
-트레이닝 모드
-전투보조 모드
[철벽의 방패 / 등급: 희귀]
-근력+3, 순발력+3
-내장스킬: 철벽의 방패술(액티브)
마력 2를 소모하여, 사각으로 날아드는 적의 공격을 막아낸다.
[야수의 건틀렛 / 등급: 특수]
-근력+4
-내장스킬: 완력상승(액티브)
마력2를 소모하여 양손의 완력을 높여 준다.
[미스릴 각반 / 등급: 특수]
-순발력+4
-이동계열 스킬의 이동 거리와 속도를 30% 향상시킨다.
그리고 윌리아는 희귀등급 1개, 특수등급 장비 2개를 챙겼다.
[현자의 지팡이 / 등급: 희귀]
-원거리 공격 스킬의 위력 50% 상승
-마력+7
[저주 내성 팔찌 / 등급: 특수]
-저주 및 환각 계열 스킬에 강한 내성을 부여하는 팔지.
[마력 반지 / 등급: 특수]
-마력 +3
검이나 갑옷 등 각자에게 맞는 특수등급의 장비가 더 있긴 하지만, 기존 장비의 하위 호환이라 굳이 욕심부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능력치가 떨어지는 특수등급의 장비들은 성장의 탑에서 교환권으로 얻을 수 있는 장비들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래도 최고급 장비보단 월등히 좋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윌리아는 내가 방패를 인벤토리에 넣는 걸 보며 물었다.
“방패 쓰시려고요?”
“아뇨, 만약을 위해 챙긴 거예요. 방패술 스킬이 붙어 있어서 초보가 써도 괜찮아 보여서요.”
방패는 전략의 폭을 늘리기 위해 챙긴 거다.
무려 방패술 스킬이 붙은 희귀등급의 물건이었으니까.
“챙길 거 다 챙기고도 특수등급 아이템이 11개나 남았네요.”
“그건 어떡하시게요?”
팔아도 되긴 하는데, 당장 돈이 궁하진 않았다.
그래서 콩나물 님이나 가의도 멤버 등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줄까 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이런 걸 공짜로 뿌리긴 좀 그렇고, 고민을 해봐야겠다.
‘일단 갑옷하고 검은 뚱이 줄까?’
펫에게 특수등급 장비를 입힐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나밖에 없을 것이다.
*
원래 오늘 일정은 성남에 갔다가 지하미궁을 공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하미궁 공략을 앞두고, 콩나물님의 행방을 알게 되면서 일정이 인명 구조로 바뀌었다.
그렇게 급히 보령으로 가서 콩나물님의 구조에 성공하고, 월광도에 돌아와 이것저것 하다 보니 금세 밤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지하 미궁의 공략은 내일로 미뤄졌다.
‘그리고 지하 미궁뿐만 아니라 성장의 탑도 공략해보긴 해야 하는데···.’
어째, 할 일이 점점 쌓여 가는 느낌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과 강이솔이 제안한 협회 대표직에 대해 알릴 겸 통신 반지로 연락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한 달 생존에 성공하셨습니다.]
[지난 한 달간의 생존 점수를 정산합니다.]
[점수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며, 보상은 인벤토리를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눈앞에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