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생존 정산 (1) >
대재앙 이후 생겨난 게임과도 같은 시스템.
하지만 나는 이 시스템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템 정보를 제외한 시스템의 설정 대부분은 사람들이 직접 조사하고 사용법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수중몬스터나 비행몬스터, 엘더몬스터 등, 무언가가 새롭게 등장해도 공지 같은 알림은 전혀 없고.
재앙이 발생하고 벌써 한 달이 지났음에도 아직 확인이 안 된 시스템이 너무 많아 정보는 곧 힘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한 달간의 생존 점수를 정산하여 보상을 준다?’
그런 점에서 한 달간 생존했다고 시스템이 보상을 주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은 꽤나 뜬금없었다.
‘뭐든 공짜로 주면 좋은 거지.’
그래도 뭔가를 준다고 하니, 잠자코 이어질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새롭게 갱신된 메시지 내용을 본 나는 표정을 굳혔다.
[지난 한 달간 전 세계 인구 79억 5,395만 2,577명 중]
[52억 3,450만 1,371명이 사망했으며]
[27억 1,945만 1,206명이 생존했습니다.]
보상을 준다는 메시지로 운을 떼놓고,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게 사망자 수 집계였으니 말이다.
겨우 한 달 만에 전 세계 인구의 약 66%가 증발했다.
그래도 34%의 숫자가 살아남았다는 거니, 의외로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수십억 단위의 목숨값이 거론되는 게 너무도 현실감이 없었다.
한국의 생존자를 같은 비율로 계산한다면 대략 1,700만 명이 살아 있단 뜻인데,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9개 도시의 모든 생존구역 생존자 수를 합쳐야 1천 만이 겨우 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럼 무려 700만의 사람들이 정부에서 지정한 생존구역 밖에서 살고 있다는 걸까?
‘물론, 단순 계산이니 속단하면 안 되지만.’
무시하기 힘든 숫자임은 분명했다.
이후로도 메시지는 계속됐다.
가장 먼저 거론한 생존 점수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서백호 님의 생존 점수는 114,350점으로 상위 0.000001%인 1등급에 속하며, 전체 순위는···.]
그리고 거창한 수치가 떴다.
성적표마냥 백분위까지 뜨며 등급이 매겨지고.
최종적으로 순위까지 표시되었다.
그런데 순위를 본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1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앞선 수치보다 더욱 요란한 성적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축하한다는 듯, 금색으로 표기된 1위 표시.
더불어 순위표도 확인할 수 있었다.
[10,000위 이내의 순위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위표에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시겠습니까?]
[정보 공개 시 생존자들의 순위표가 실시간으로 갱신됩니다.]
다행히 순위표는 실명을 숨길 수 있었고, 나는 굳이 정체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익명을 지켰다.
[전세계 순위표]
1위. **** / 레벨: - / 114,350점
2위. **** / 레벨: - / 81,012점
3위. **** / 레벨: - / 70,778점
4위. **** / 레벨: - / 61,425점
5위. **** / 레벨: - / 60,560점
6위. **** / 레벨: - / 57,020점
7위. **** / 레벨: - / 56,192점
8위. **** / 레벨: - / 26,838점
9위. 리우 웨이 (중국) / 레벨: 45 / 24,525점
10위. **** / 레벨: - / 24,302점
그리고 본 순위표에서 10위 이내엔 중국인 한 명을 제외하고 자신의 이름을 알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의외인 건, 점수 차이다.
1등인 나와 2등의 점수는 꽤 차이가 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격차는 아니었다.
또 그 2위는 3위와 차이가 얼마 나지 않고, 3위는 4위~7위와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격차가 확 벌어지는 게 8위부터였다.
8위 이후로는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아, 50위까지는 1만대의 점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실명을 드러낸 이들의 정보를 보니, 50위까진 레벨이 40대로 보였다.
어쩌면 보령팀이 내 손에 몰살을 당하지 않았다면, 최상위권에 한국인이 5명은 더 포함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생존 점수라는 게 레벨로 매겨지는 건 아니겠지만.’
게다가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건지 나 이외에 100위 안에 한국인은 없었으며, 152위에 수원의 김현수의 이름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잘하면 서울의 윤시아는 100위 안에 턱걸이했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순위표를 닫았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메시지창 위로 작게 아이콘이 생겨 그것을 열면 언제든 순위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 같았다.
[1위를 위한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보상을 확인했다.
거기엔 ‘1위를 위한 보상’이라며 선물 상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상자를 터치하니.
[1등급 휘장]
-상위 27명(일억분의 일)의 1등급 징표
[희귀등급 장비 선택권 1장을 획득했습니다.]
-1위 보상
[설치형 웨이포인트 1개를 획득했습니다.]
-1~100위 보상
[114,35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점수 보상
[1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전체 보상
보상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일단 한 달을 살아남은 것만으로 모든 사람에게 100코인을 주는 건 마음에 들었다.
현재 생존자가 27억이니, 무려 2,700억 코인을 전세계에 고루 뿌린 것 아닌가.
그 100코인을 식량 사는 데 소비해도 좋고, 다른 일을 시도해 더욱 불리려 노력해 보는 것도 좋을 터이다.
‘공공비축미 회수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하던데, 당분간 식량 걱정은 덜겠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내 개인의 보상이다.
10만 코인에 대한 감상은 ‘나이스 꽁돈!’이란 느낌 정도고.
1등급 휘장, 희귀등급 장비선택권 1장, 설치형 웨이포인트가 특히 흥미를 끌었다.
[1등급 휘장 / 브로치 / 등급: 희귀]
-오리하르콘 1등급 휘장으로 파괴 및 디자인 변경을 할 수 없다.
-착용 시 동료(NPC)에게 2등급 휘장이 부여된다.
“아무 옵션이 없네?”
유리처럼 투명한 휘장.
휘장에는 숫자 1이 새겨져 있었다.
그게 뭔가 싶어 외투 가슴팍에 착용해 보니.
“어? 저도 뭔가 생겼어요!”
윌리아의 외투에도 숫자 2가 쓰인 검은색의 휘장이 생겨났다.
“메달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되려나?”
“일종의 상징적 아이템이란 뜻이죠?”
“네.”
내 대답에 윌리아도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괜히 관심만 끌게 되지.
나는 휘장을 풀어 인벤토리에 처박고는 다음 보상을 보았다.
[희귀등급 장비 선택권]
-무기
-방어구
-악세서리
무려 희귀등급의 장비 선택권이다.
나는 아이템을 하나씩 살폈다.
전사형 장비는 모두 ‘무왕의 ***’이고, 마법형 장비에는 ‘현자의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윌리아의 현자의 지팡이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뭘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검을 선택했다.
[무왕의 보검 / 한손반 장검 / 등급: 희귀]
-미스릴로 만들어낸 마법검으로 무왕을 향한 진상품이다.
-근접전투 스킬 공격력 50% 증가
-모든 능력치+2
-자체 스킬: 난격
[난격 / 상급스킬 / 액티브]
-강력한 기운을 머금은 검을 매우 빠르게 4회 휘두른다.
-소모마력: 4
군더더기 없는 무기.
나는 내장 스킬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 바로 허공에 공격을 퍼부었다.
‘난격.’
난격은 아칸의 세이버 내장 스킬인 일섬을 4번 연속 휘두르는 느낌이다.
적을 당황시키기 매우 좋은 스킬.
비록 하나하나의 파괴력은 거력참이나 일섬보다 떨어질지는 몰라도, 이 4연격을 개인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무기는 등급도 무시할 수 없다.
자체 강도는 이전 검들보다 월등히 뛰어날 터이니, 한동안 내 허리엔 무왕의 보검이 주 무기로 걸쳐져 있을 것이다.
‘좋아. 좋아.’
다만 기존 장비들도 특색이 뚜렷하고 스킬이 좋아서 상황에 따라 교체해가며 쓰게 될 것 같다.
어서 지하 미궁 던전에 가서 이번에 업그레이드된 장비들을 사용해 보고 싶다.
‘갑자기 생존 한 달이 됐다며 알아서 주머니에 선물을 넣어주네.’
앞선 사망자 집계를 보고 마음이 안 좋았지만···.
결국엔 그것도 잠깐이었다.
솔직히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설치형 웨이포인트 / 등급: 희귀]
-원하는 장소에 웨이포인트를 설치할 수 있다.
-웨이포인트가 설치되면, 근처에 직경 100m의 편의시설 없는 안전구역이 생성된다.
-안전구역의 사용료는 일반 안전구역과 같다.
-비밀번호를 설정하여, 아무나 해당 웨이포인트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최초 설치 후, 해체하여 2회 설치 장소를 옮길 수 있다.
그리고 희귀등급의 무기도 무기인데, 다음 보상을 본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감탄사를 흘렸다.
“이, 이건?”
웨이포인트를 내가 설치할 수 있다?
더구나 근처에 직경 100미터의 안전구역도 생기고?
이건 사용법에 따라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지닌 특수 아이템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예고 없는 엄청난 소매 넣기에 나는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
“정신 사납게 시계 좀 그만 봐!”
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강이솔과 함께 사냥꾼 협회 본부로 쓸 건물을 물색하던 윤시아는 계속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강이솔을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서아 님이 언제 연락하실지 모르잖아.”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랐다며? 그럼 내일 주시겠지. 무슨 여친 전화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거야?”
“솔직히 여친보다 더하지. 상대는 서아 님인걸?”
“그건 아는데, 사무실 찾는 거 도와달라고 바쁜 사람 불러놓고선 왜 네가 집중을 안 하냐고. 나 그냥 확 간다?”
“아, 아냐. 알았어. 집중!”
강이솔은 서백호에게 협회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에 서백호는 하루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강이솔은 행여 하루까진 안 걸려 일찍 연락을 주실 수도 있다는 희망 사항에 하염없이 시계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윤시아는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아까부터 그녀 혼자만 다가오는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으니까.
결국, 핀잔은 들은 강이솔이 이후부턴 윤시아를 대신해 검을 휘둘러야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강이솔은 한탄하듯 말했다.
“마땅한 건물이 안 보이네.”
“쉽게는 못 찾겠지. 쓸만한 건물은 모두 정부와 군대가 선점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조건에 충족하는 건물을 못 찾았고,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생존구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 달 생존에 성공하셨습니다.]
[한 달간의 생존 점수를 정산합니다.]
그런 두 사람이 생존구역에 막 들어섰을 때.
예고 없이 정산 메시지가 떴다.
“허, 이런 게 있었네. 서땡땡 님은 몇 등일까?”
윤시아의 물음에 강이솔은 당연한 거 아니냐며 오른손 검지를 펼쳤다.
“서아 님은 무조건 1등이지.”
“그걸 어떻게 알아? 정보를 공개한 것도 아닌데.”
“솔직히 서아 님 같은 분이 또 있을 거라 생각해?”
“으음···.”
확신할 수 없다.
세계는 넓으니까.
하지만 쉬이 그렇다며 답변할 수 없었다.
그만큼 서백호가 엘더 크림슨 로드 토벌전에서 보여준 위용이 엄청났으니까.
그래서 윤시아는 강이솔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화제를 전환했다.
“난 105위인데. 넌 몇 위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지만, 둘은 정보 공유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데 윤시아는 자신이 순위를 밝혔음에도 강이솔이 입 닫고 가만히 있자 의아함을 표했다.
“너, 몇 위냐고.”
그리고 잠시 후.
강이솔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 99위.”
“뭐지? 나보다 레벨이 4가 낮은 네가 왜 순위가 더 높아?”
강이솔은 자신의 순위가 높은 게 시나리오 조각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레벨도 점수에 포함되어 있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생존 점수 순위지, 단순한 강함의 순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엄청난 아이템을 얻었네.”
“그래? 뭔데?”
“내가 원하는 장소에 사냥꾼 협회를 세울 수 있게 해줄 아이템.”
그리고 강이솔은 설치형 웨이포인트에 대해 알려 주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윤시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야! 대박이네!”
“그치?”
강이솔은 기분 좋게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순간, 불청객이 찾아왔다.
“강이솔씨.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누구세요?”
갑자기 요원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다가와 강이솔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경찰 신분증을 들이민 것이다.
“저흰 경찰청 경비국 소속 전투과 형사들입니다.”
경비국 전투과라면 국가부흥처처럼 경찰청 산하의 사냥팀을 뜻했다.
뜬금없는 이의 등장에 강이솔은 의문을 표했다.
경찰에서 무슨 용무란 말인가?
“네, 형사님들. 제게 무슨 볼일이세요?”
“저희와 함께 가주셨으면 합니다.”
그에 강이솔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두 사람이 무척 정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건···.
“지금 저를 체포하시겠단 겁니까?”
체포하겠단 의미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강이솔은 물론, 그의 곁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윤시아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강이솔의 물음에 형사들은 지금의 상황을 포장할 생각이 전혀 없는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현재 경찰은 대통령만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다.
때문에 강이솔은 대통령이 어떤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하는데.
옆에서 윤시아가 길게 고민할 게 있냐는 듯 무기를 꺼내 드는 게 보였다.
강이솔은 급히 그녀를 제지하며 침착하게 물었다.
“죄목은요?”
하지만 이어진 죄목은 강이솔의 침착함을 깨뜨리고, 곁에 있던 윤시아 경악게 하기 충분했다.
“대통령 살해 용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