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69화 (69/273)

< 69.생존 정산 (2) >

*

서울의 4대 생존구역 중 하나인 청와대는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 서울정부청사, 세종문화회관 등을 끼고 있다.

청와대 생존구역은 대한민국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생존자들을 관리하는 행정의 중추다.

그런 청와대 생존구역에서 서울정부청사 별관이 경찰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질라게도 몰려왔네.’

한 경찰이 별관 내부에서 창문 밖의 상황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유는 별관 앞 세종로 공원에 200명이 넘는 고레벨의 사냥꾼들이 집결해 있었기 때문이다.

옛 국가부흥처 소속 사냥꾼 80여 명과 서울 3대 민간 사냥팀 120여 명.

그들은 금방이라도 돌격할 것처럼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런 사냥꾼들 앞에는 경찰청 소속 사냥팀과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대치를 하고 있었는데, 실제 전투가 시작되면 경찰 쪽이 속절없이 밀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솔아, 저 친구들 분위기가 너무 흉흉한데?”

“설마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란 걸 몰랐습니까?”

경찰은 조사실에 앉아 태연하게 컵라면을 먹고 있는 강이솔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이래서야 누가 경찰이고 누가 용의자란 말인가.

공권력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증명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강이솔이 난리를 치면 막을 도리가 없지. 그나마 녀석이 같은 경찰 출신이라고 많이 봐주고 있는 거야.’

경찰은 한숨을 내쉬며 강이솔 맞은 편에 앉았다.

강이솔은 유도 국가대표 출신이자 경찰 출신이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경찰 역시 얼굴을 아는 인물로, 한때 같은 팀에서 근무를 했었다.

“너라면 체포를 뿌리칠 수 있었잖아. 그런데 왜 얌전히 잡혀 온 거야?”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도망칩니까? 그리고 김 경위님의 말씀은 마치 제가 도망치길 바랐다는 말투네요?”

“그런 게 아니라···.”

눈앞의 김 경위란 인물이 아무리 아는 사이라 해도 강이솔은 필요 이상으로 휘둘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단호하게 물었다.

“김 경위님.”

“어?”

“대통령, 죽긴 죽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야?”

“그 양반들 절 견제하려고 쇼 벌이는 거 아니냔 말입니다.”

자작극이 아니냐는 물음.

강이솔의 입장에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김 경위라 불린 남성이 꺼내든 스마트폰의 사진과 영상을 본 강이솔은 자신의 추측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진짜 죽었네.”

거기엔 대통령의 시신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대통령의 미간과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누가 봐도 총이 아닌 칼에 당한 상처였다.

“이 양반이 그냥 죽기만 했으면 너를 불러오지도 않았어. 실은 대통령이 죽으면서 한 아이템이 함께 사라졌거든.”

“아이템이라뇨?”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 사라졌어.”

“아···.”

그에 강이솔은 미간을 좁혔다.

어째서 본인이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어제 국가부흥처장에게 사람을 보내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하더라?”

김 경위가 쪽지를 건넸다.

그 쪽지에는 어제 강이솔이 국가부흥처장에게 보낸 전언이 쓰여 있었다.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은 제가 구한 겁니다. 순순히 아이템을 내놓지 않으면 유혈사태가 일어날 겁니다.]

완전한 협박 메시지.

모 게임의 간디 대사를 패러디한 말이었다.

“넌 정부와 사이가 최악인 데다가, 대통령이 죽으면서 분실된 아이템을 원하고 있었어. 더구나 경호병력을 피해 대통령을 암살할 수 있을 만한 힘과 세력도 있고. 이 정도면 용의 선상에 넣을 만하지 않아?”

강이솔은 나름 이치에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은 짓을 했다고 할 순 없다.

더불어 그와의 대화로 무언가 알게 되면서 표정에 짜증이 서렸다.

“노성흠 처장이 끼어 있네요?”

강이솔의 입에서 노성흠 차장의 이름이 나오자 김 경위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 전언을 들었던 그 사람 입장에선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이솔의 상관이었던 노성흠 처장은 일전에 대통령과 함께 강화도로 도망쳤다가, 강이솔이 정부를 나올 때 흠씬 두들겨 팬 인물이다.

그라면 자신에게 앙심을 품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개인의 앙심에 의한 범행이라 여기기엔 스케일 너무 크지.’

노성흠이 연루되어 있을지언정 사건의 배후는 더욱 강성한 세력 또는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뭔 상황일까?’

강이솔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김 경위는 그런 그를 향해 조사를 위한 질문 몇 가지를 던졌지만, 강이솔은 되레 조용히 하라고 면박을 줬다.

“좀 조용히 해봐요. 생각 중인 거 안 보입니까?”

“아니, 조사하는 경찰 보고 조용하라니···.”

그렇게 얼마나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마치 머릿속에 번개가 치듯, 한가지 시나리오가 강이솔의 머릿속에서 완성 되었다.

“설마, 신뢰를 잃은 대통령을 쳐내고 새로운 대통령을 앉히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겁니까? 자신들의 안정적인 권력 유지를 위해서?”

“엉?”

“저를 범인으로 만들면 겸사겸사 신정부에 걸림돌이 될, 사냥꾼협회 설립도 방해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겠군요.”

“너 누구랑 대화하냐?”

강이솔의 추측이 맞다면, 이 역시 자작극의 일종이 된다.

당한 대통령만 피해자인 거고, 기존 권력자들은 자리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이솔은 불쾌함을 표했다.

‘결국, 정치쇼란 건가?’

강이솔은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편한 곳에 앉아서 남의 등골이나 빨아 먹는 새끼들이.’

그의 행동에 아까까지 먹고 있던 컵라면이 뒤집히고, 김 경위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이, 이솔아?”

“아무래도 노성흠부터 만나봐야겠네요. 전 갑니다.”

“뭐? 아직 조사 안 끝났는데?”

“어차피 정황 증거뿐이잖아요. 제대로 된 증거를 가져오면 재수사를 받을 테니, 준비해 놓으세요.”

“하지만, 그래도 절차라는 게.”

“배려는 여기까지입니다.”

더구나 조사관으로 강이솔과 안면이 있는 경찰을 배치한 것만 봐도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이 난리가 나도 제 잇속만 생각하다니, 정치인이란 족속들에게 환멸감을 느끼게 된 강이솔이었다.

‘차라리 기존 기득권들을 싹 갈아엎어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의 머릿속에 거친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

[11번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강이솔의 화를 단번에 누그러뜨리게 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던 강이솔이 언제 그랬냐는 듯, 털썩 의자에 다시 앉으며 허공에 손짓을 했다.

“대, 대체 뭐야?”

김 경위는 그런 강이솔의 모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

아버지와 통신 반지를 통한 연락을 마쳤다.

나는 아버지에게 콩나물님 일행의 구조와 보령에서 있었던 일을 알리고, 강이솔이 제안해온 사냥꾼협회 협회장 자리를 받을지 말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수락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사냥꾼은 새로운 권력의 핵심이잖아. 그런 단체의 우두머리가 된다면 추후 엄청난 권세를 누릴 거야. 정부와 군대도 어쩌지 못할 만큼.’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그 말과 동시에 협회장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난 직후, 강이솔에게 확답을 주려 했는데···.

[나]

-대통령이 죽고, 용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요?

그에게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2번 보유자]

-그렇습니다.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나]

-죄송할 게 뭐 있습니까. 누가 봐도 누명을 씌운 거고, 겸사겸사 사냥꾼협회 설립을 방해하려는 수작 같은데.

그리고 강이솔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자신의 추측을 밝혔다.

‘신뢰를 잃은 기존 대통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킨다?’

나쁘지 않은 그럴싸한 계획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강이솔이 폭주해서 동료들과 함께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대면 어쩌려고 이런 어설픈 계획을?’

강이솔의 추측은 타당해 보이지만, 조금 단순하단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이익이 보는 곳이 어디지?’

보통 이럴 땐 얻을 게 많은 사람이 범인이니 말이다.

“음···?”

그러다가 문뜩 한 세력이 떠올랐다.

바로 아버지가 몸담고 계신 그곳 말이다.

‘현 대통령이 죽으면 가장 이익이 큰 곳은 새 정부를 출범시킬 정치인들이 아니라, 계룡대 아닌가?’

강이솔이 나서서 칼춤을 쳐주면 더 좋고.

그렇지 않아도 손해 볼 게 없다.

강이솔을 대통령 살인범으로 몰아 신흥 세력이 될 사냥꾼협회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도 있으니까.

‘그럼 계룡대와 수방사가 다시 붙었을지도 모르겠네.’

계룡대는 서울에 이렇다 할 전력이 없다.

때문에 이 사건의 배후에 계룡대가 있다면 대통령을 죽인 건 수방사일 가능성이 컸다.

원래 수방사는 정부쪽에 줄을 대고 있었지만, 지난번 대통령이 말없이 강화도로 도주하는 바람에 수방사와 정부의 사이가 틀어졌고.

계룡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방사를 다시 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계룡대는 다시금 품은 수방사를 이용해 대통령을 제거하고, 아예 군부정권을 들어서게 만들 셈인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나는 이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강이솔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버지에게 다시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금시초문이라며 당황하셨다.

[대통령이 죽어!? 이, 일단 확인해 보마. 계룡대가 수방사와 손을 잡았는지 정돈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잠시 후, 아버지는 오래 걸리지 않아 관련 정보를 알아 오셨다.

[정말, 수방사와 계룡대가 다시 손을 잡았더구나.]

“그렇다면?”

[네 추측대로, 대통령을 죽인 게 계룡대의 지시를 받은 수방사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여.]

이걸 어찌한다?

대통령 암살 건과 관련하여 강이솔을 붙드는 것을 보면, 계룡대에선 사냥꾼협회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냥 이 상황을 방관해도 내게 큰 피해는 없겠지만···.

그래도 협회장을 맡기로 한 이상 무슨 액션이라도 취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버지, 제 존재는 군대에서 어떤 식으로 인지하고 있습니까?”

[엄청난 위협이지, 적으로 돌리면 잠 편히 잘 수 없는 생체 미사일 느낌.]

생체 미사일이라니.

하지만 뭐, 그만큼 존재감이 크단 뜻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하하!”

김 경위는 강이솔이 허공에 손짓을 하며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소리 내어 웃자 당황했다.

그래서 김 경위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무섭게 왜 그르냐 너?”

“지금 사냥꾼협회 협회장님께서 직접 오신다네요.”

그리고 이어진 강이솔의 대사에 김 경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강이솔은 협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자랑하듯 말했다.

“사냥꾼협회 대표는 네가 맡기로 한 거 아녔어?”

“저 따위가 어떻게 대표를 합니까? 훨씬 대단한 분이 계신데요.”

“나도 아는 사람이야?”

“물론이죠. 서땡땡님이 바로 우리 사냥꾼협회의 협회장님이십니다.”

김 경위는 서땡땡이란 말에 처음엔 이해를 못 하고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이내 그게 누구를 뜻하는지 알게 되며 헛바람을 삼켰다.

“혹시 그 업적 어쩌고 메시지에 자주 뜨고, 레벨 81의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거의 단독으로 잡았다는 사람?”

“네, 맞습니다.”

“허···.”

“협회장님께선 이 상황을 협회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응을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 암살 건을 정부의 일부 배신자와 군부의 합작 시나리오라 생각하시는 것 같더군요. 이 역시 직접 조사에 나서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하겠다고 하십니다.”

더불어 강이솔의 설명이 더해지자 김 경위의 표정은 더없이 심각해졌다.

“나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뭐?”

“서땡땡님이 오신다니까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관련자들 불러와 사태를 수습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김 경위님 윗선도 우리 협회장님과 척을 지긴 싫을 것 아닙니까?”

이건 명백한 위협과 협박이다.

하지만 서**의 존재가 서두에 붙는다면 그 발언의 무게는 차원이 달라진다.

강이솔의 말대로 김 경위는 급히 조사실을 나섰다.

서**이 진짜로 올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 온다면 이 사건은 자신의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쯧, 내가 말한 땐, 약한 척 웃어넘기려 하더니. 협회장님 거론하니 재깍 움직이는 거 보소?”

새삼 서**의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건물 내에 있었는지, 노성흠 처장이 등장하는 것을 본 강이솔은 표정을 일그러 뜨렸다.

노성흠 처장은 강이솔의 시선을 피하며 자신을 불러온 경찰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진짜로 서땡땡 그 사람이 온대? 얘 하나 때문에?”

“저흰 처장님께서 강이솔이 대통령을 죽였다고 확언해서 어렵게 데려왔는데, 상황 돌아가는 게 영 이상하네요. 확실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이솔이가 범인이에요?”

“엄, 유력하다는 거지. 내가 언제 범인이라고···.”

“그러셨잖아요?”

그리고 노성흠 처장과 경찰들의 대화를 들어 보니, 강이솔은 자신이 붙잡힌 배경에 그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강이솔은 당장 화를 내지 않았다.

곧 등장할 서**을 기다렸다가 화를 내도 늦지 않으니 말이다.

잠시 후.

-쿠우웅!

건물이 크게 한번 흔들렸다.

“뭐, 뭐야?”

이어서 조사실의 문을 열리고 두 사람이 태연하게 등장했다.

커다란 고글을 낀 남성과 얼굴을 베일로 가린 여성.

서**이 대한민국 사냥꾼협회 협회장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모인 관계자는 이게 답니까? 군인들도 몇 명 있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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