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드디어 나왔다 (1) >
“모인 관계자는 이게 답니까? 군인들도 몇 명 있을 줄 알았는데.”
서**의 물음에 일순 주변이 조용해졌다.
경찰들은 노성흠 처장을 바라보고, 그는 서**의 입에서 군인이란 단어가 당연하다는 듯 흘러나오자 헛기침을 했다.
국가부흥처의 기관장인 노성흠 처장은 국회의원 출신이다.
뼛속까지 정치인인 그는 서**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대통령 살해 건에 대해선 아직 조사 중입니다. 누가 범인이라 밝혀지지 않은 상태죠.”
하지만 상대는 정치인이 아니다.
더불어 지금의 세상도 예전과 다르고.
정치인의 감성으로 접근해봤자 돌아오는 건···.
-퍽!
-쿠당탕탕.
폭력뿐이었다.
서**의 휘둘러진 손에 뺨을 맞은 노성흠 처장의 고개가 거칠게 돌아가다 못해 몸이 공중에 붕 떠서 조사실 한구석에 처박혔다.
“끄어···.”
불곰이 발톱을 세워 휘두른 앞발에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그리 강하게 때린 것 같지도 않은데, 얼굴의 한쪽이 마치 뜯겨 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성흠 처장은 고통에 신음을 하면서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을 흔들리는 눈동자로 올려 보아야 했다.
“어, 어쩌죠?”
“그냥 잠자코 있어.”
대놓고 벌어진 폭행에 경찰들 모두가 당황했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눈앞의 인물은 그들이 막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아니, 막아선 안 되는 존재라는 걸.
그는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라면 뭐든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내가 바보로 보입니까?”
“으어니요···.”
엄청난 고통에 순간적으로 숨이 멎고,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입안은 엉망이 되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에 혀를 찬 서**은 태연하게 함께 온 여성을 바라보았고.
“힐.”
여성은 눈빛만으로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노성흠 처장을 치료해 주었다.
서**도 무서운 인물이지만,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여인도 무시해선 안 된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이 건물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엘더 크림슨 로드 토벌 건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비로소 자신이 큰 위기에 빠졌음을 이해하게 된 노성흠 처장은 품에서 위성전화를 꺼내 들며 비굴하게 웃어 보였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게 된 노성흠 처장의 모습에 서**은 피식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사이 강이솔이 급히 의자 두 개를 꺼내와 대령했다.
“협회장님 앉으시죠.”
“고맙습니다.”
“바쁘실 텐데,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잘되었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의 활동을 방해하는 자들을 청소해버리면 앞으로가 편할 테니까요.”
그리고 강이솔에겐 노성흠 처장과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서**의 모습에 경찰들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노성흠 처장의 말에 따라 강이솔을 체포해 온 건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잠시 후, 누군가와 설전에 가까운 통화를 마친 노성흠이 조심히 다가왔다.
“책임자가 곧 온다고 합니다.”
그 말은 곧 대통령이 죽은 건,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음을 자백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에 강이솔이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나는 누명을 썼다는 뜻이군.”
“······.”
지금 노성흠 처장의 머릿속엔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자존심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앙숙인 강이솔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네.”
강이솔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번에도 참았다.
협회장이 결론을 내릴 때까지 나서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경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혐의는 풀린 것 같네. 미안하다. 우리도 자세한 사정은 몰랐어.”
김 경위가 상사의 눈치를 살살 보며 답을 했다.
서**이 노성흠 처장의 뺨 한번을 때리니, 자신에게 걸린 혐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건 결국 힘 있는 자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건 똑같았다.
이 사건은 이제 대통령의 살해 배후와 서**이 이끄는 사냥꾼협회의 대결 구도로 변했다.
때문에 강이솔의 혐의가 풀렸다고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다.
조사실에 자리한 사람들 모두가 긴장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피바람이 불 수도 있으니까.
“아,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노성흠 처장이 부른 인물의 등장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대는 중령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30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중령은 보통 40대에 달게 된다.
때문에 계급에 비해 너무 어려 보였으나.
[주영우 / 레벨: 30]
그의 정보가 군에서 키우는 엘리트 집단, 적응군 소속임을 알려 주니, 나이에 비해 높아 보이는 계급장이 이해되었다.
“어? 당신은?”
새로 나타난 상대를 마주한 순간 강이솔은 미간을 좁혔다.
이유는 그 남성이 엘더 크림슨 로드 토벌전 당시, 계룡대에서 지원군으로 보냈던 수원의 지작사 소속 지휘관이란 걸 알아봤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지상작전사령부 특수전투단 1대대장 주영우 중령입니다.”
그는 서**에게 깍듯이 경례를 올렸다.
그의 등장은 이번 일이 서**의 추측대로 군대가 끼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계룡대에서 수방사와 짜고 대통령을 처리한 게 맞군요?”
서**의 확인사살에 주영우 중령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없어지는 게 나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겐 계룡대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미래겠죠.”
팩트를 짚는 서**의 발언에 주영우 중령은 잠시 말을 잃었지만, 이내 차근차근 답을 이어갔다.
“지금 같은 재난 상황에선 군대에 더 많은 권한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무능한 대통령은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까, 여러 무리수를 두더군요. 그래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저희가 업보를 짊어지기로 했습니다.”
“글쎄요.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끝이 좋은 적이 별로 없어서.”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에는 사냥꾼협회라는 훌륭한 견제 세력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서**님이 사냥꾼협회의 협회장으로 계시는 한 문제 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은 그게 너희가 할 말이냐며 냉소를 보였다.
“하지만 벌써부터 견제가 들어오는 거 보니, 군에선 우리를 쳐내고 싶어 하는 거 아닙니까?”
“그 점에 대해선 오해를 풀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해란 말에 주영우 중령의 시선이 노성흠 처장에게 옮겨졌다.
“강이솔 씨를 공격한 건, 노성흠 처장의 독단입니다. 솔직히 저흰 사냥꾼협회의 성장을 막기 힘들 거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굳이 적대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꼬리 자르기 아니고요?”
“정말 저희가 아닙니다. 만약 저희가 강이솔 씨를 어찌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느슨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게 저흰 군인이니까요. 대통령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
그와 함께 서**과 강이솔의 시선이 노성흠 처장에게 고정되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주영우 중령의 말이 사실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강이솔을 사건의 용의자로 끼워 넣으면 복수도 하고, 사냥꾼협회의 설립도 방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그는 더 이상 용의주도한 정치꾼이 아니었다.
그저 살고자 몸부림치는 중년인일 뿐이지.
“이걸로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계룡대는 대통령을 죽인 건 사실이지만, 사냥꾼협회를 공격한 것은 아니란 의미다.
사냥꾼협회와 강이솔 관련으로 군에는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찌 보면 저자를 포섭한 우리 군대가 헛짓거리를 막지 못했으니···. 저희 선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타앙!
주영우 중령은 품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당연히 타겟은 자칫 서**과 군부를 싸움 붙일 뻔한 노성흠 처장이었다.
-팅!
하지만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주영우 중령이 권총을 뽑아 듦과 동시에 서**이 공간이동을 하고.
방아쇠가 당겨질 때, 발검을 하여 총알을 쳐냈기 때문이다.
설마 총알이 쳐내질 거라 생각지 못했기에 모두가 경악했다.
“누구 마음대로 마무리 지으려 합니까? 노성흠 처장은 우리가 처리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검을 뽑아 휘두른 건 알겠는데, 고레벨의 사냥꾼인 주영우 중령과 강이솔은 섬전 같은 그의 검격을 눈으로 좇지 못했다.
더불어 공간이동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게 처음인 주영우 중령은 그 귀신과도 같은 모습에 헛바람을 삼켰다.
‘만약 저자가 계룡대에 쳐들어온다면 아무도 못 막을 거다. 절대 적대해선 안 돼.’
괜히 계룡대에서 서**을 생체 미사일로 분류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마주하니, 실력의 격차를 더욱 상세히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 사망에 강이솔 씨를 엮으러 한 건 노성흠 처장의 독단이라 하니, 우리가 데려가겠습니다. 앞으로 군과 얼굴을 붉힐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저흰 사냥꾼협회의 출범을 지지합니다.”
중령은 깍듯하게 인사했다.
서**은 노성흠 처장을 강이솔에게 선물로 줬다.
“경찰들 일 똑바로 하시고요.”
“네, 넵!”
그리고 주먹질로 조사실 벽을 날려 버리며 경찰에게도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럼 이솔 씨, 뒷마무리 부탁합니다.”
“네, 맡겨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저 때문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이 둥실 허공에 떠오르고, 이어서 베일을 쓴 여인 또한 고개를 숙여 보이곤 뒤따라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곧 웨이포인트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공간이동에 하늘을 나는 것까지.
마치 두 사람만 다른 세계관에서 살아가는 듯했다.
“확실히 격이 다른 분들이라는 게 체감되는군요.”
주영우 중령의 반응에 노성흠 차장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나가던 강이솔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자랑스레 답했다.
“저 두 분의 전투를 직접 보면 겨우 그 정도 표현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야말로 전투의 신 그 자체니까요.”
주영우 중령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급히 화제를 바꿨다.
저 둘에겐 다가가기 힘들지만, 강이솔은 달랐으니 말이다.
“아! 오늘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주영우 중령은 강이솔에게 악수를 건넸으나, 그는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하는 거 봐서요.”
그리고 강이솔은 악수를 받지 않고 노성흠 처장만 끌고 경찰청 임시 본부를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강이솔에게 시나리오 조각을 통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11번 소유자]
-노성흠을 통해 군의 말이 전부 사실인지, 한 번 더 확인해 보시고, 그 다음 깨끗하게 처리하세요.
빈틈없는 협회장의 지시에 강이솔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하루가 지났다.
강이솔은 노성흠을 끌고 가서 한 번 더 자체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 강이솔을 잡아넣는 계획을 짠 건 노성흠 처장이 맞고, 경찰청장이 지역 후배라 도왔다고 한다.
그 후 내 지시대로 군이 숨기는 게 없는지 이것저것 물었으나 주영우가 말했다시피 정권 교체 외엔 이렇다 할 게 없었다.
덕분에 강이솔은 미련 없이 노성흠을 처리했고, 이번 대통령 살인 사건에 관여한 정부 측 인사 명단을 작성해 내게 보내왔다.
‘경호처장, 비서실장, 국정원장 등.’
청와대의 주요 인사들이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쯤 되니, 죽은 대통령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측근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배신에 맥없이 골로 간 것이니 말이다.
물론, 대통령이 불만족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사냥꾼협회는 새롭게 들어설 정부의 나라 운영을 지켜보고 마땅치 않으면 적극적으로 태클을 거는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어제 사건으로 인해 사냥꾼협회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단체라고 군부에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당장은 충돌보단 회유와 친선으로 관계를 이어가기로 했다나?
어제의 쇼가 제법 먹혔단 뜻이니 다행이다.
-촤차착!
[크윽! 무, 무슨?]
아무튼 대통령 사망 사건이 대충 정리되고, 나와 윌리아는 예정했던 일정을 수행 중이다.
사건 사고에 의해 밀리고 밀렸던 지하미궁의 재탐색을 시작한 것이다.
웨이포인트 단체이동 아이템이 나왔다는 그곳 말이다.
여기서 아이템 파밍을 꾸준히 이어가고···.
그래도 영 안 나오면 대통령이 죽은 뒤 그 아이템이 현재 수방사 사령관의 수중에 있다고 하니, 강탈 또는 매입을 고려할 생각이다.
[괴물이냐!?]
“괴물은 너잖아.”
현재 나는 지하미궁의 제1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과 검을 맞대고 있는 중이다.
이 몬스터는 내게 폭주 스킬을 주었던 녀석인데, 지난번과 완전히 다른 전투 양상에 아칸은 미라 주제에 경악성을 토하며 나를 짓누르기 위해 미친 듯이 공격해왔다.
하지만 검술 스승 오티스란 아이템을 손에 넣은 내겐 녀석의 공격 경로가 모조리 시각 정보로 표시되었고.
힘들이지 않고 압도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쉽게 당하다니···. 넌 대체···?]
결국, 폭주 스킬까지 완전히 상쇄된 아칸은 뻔한 대사와 함께 푸른빛 가루로 변하며 사라졌다.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을 토벌하여 경험치 68,000을 획득했습니다.]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5,7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1칸을 획득했습니다.
-아칸의 투구를 획득했습니다.
그러자 눈앞에 왠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보상 메시지가 줄줄이 떠올랐다.
“투구?”
[아칸의 가면 / 투구 / 등급: 특수]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아칸의 가면.
-머리 전체를 보호하는 형태로 가면이지만, 투구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루 3회 적의 공격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상급 오토쉴드가 내장되어 있다.
-모든 능력치 +1
옵션은 꽤나 좋다.
하지만 가면의 생김새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희귀 등급인 빛을 엮어 만든 투구가 있고, 윌리아도 순백의 베일이란 특수 등급의 예쁜 장비가 있어서 당장은 쓸데가 없었다.
“쓰지 않는 특수등급 장비가 계속 늘어나네.”
이걸 어찌 처리해야 할지, 그것도 고민이다.
“계속 가죠.”
“네!”
그리고 나와 윌리아는 아칸의 방에서 나서며 이전과는 다른 길로 나아갔다.
그렇게 걷고 또 걷던 중.
“오!”
보물상자가 나왔다.
“이것도 미믹은 아니겠지?”
탐색 스킬을 써보니 몬스터는 아니었다.
평범한 보물상자였다.
“기도라도 할까요?”
윌리아는 꼭 구하려는 아이템이 나왔으면 한다며 양손을 맞붙였다.
“저도 기도부터 하고 열어볼게요. 하나님, 부처님, 행운의 탈리스만님···.”
이제 나올 때 되지 않았을까?
나는 단체 이동 아이템을 떠올리며 한참을 빌고 또 빈 다음.
상자를 열었다.
-끼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