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71화 (71/273)

< 71.드디어 나왔다 (2) >

-끼익.

기도가 통했을까?

낡은 경첩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파앗!

“어?”

보물 상자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처음 보는 이펙트.

지금까지 여러 던전을 공략하면서 보물상자를 제법 많이 까봤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이런 건 처음 본다.

이건, 누가 봐도 당첨 이펙트 아닌가?

그런데 빛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해서 뿜어지고 있다.

눈이 부셔서인지, 윌리아는 일전에 백화점에서 득템한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하고.

“저, 정말 나온 건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보물상자 안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7,500코인]

[상급 회복포션 2개]

[브륀힐드의 눈물]

[스킬북 진실의 눈]

하지만 그 안엔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 들어 있지 않았다.

“······.”

그렇게 기대했건만.

나는 대체 이 휘황찬란한 이팩트가 뭐 때문에 발생한 건가 싶어서, 처음 보는 이름의 아이템들을 살폈다.

[브륀힐드의 눈물 / 등급: 희귀]

-극상의 맛을 자랑한다는 술이다.

-여러 과일을 숙성한 다음 증류한 60도 술에 특별한 재료를 더해 향을 입혔다.

-용량 1.7리터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나는 황당함을 표했다.

“술? 단순한 술에 희귀등급이 붙어 있다고? 먹고 능력치가 오르는 것도 아닌 그냥 술에?”

좋은 날 기분 내는 용도로 술을 마시긴 하지만, 그래 봤자 소주와 맥주다.

아무리 귀한 술을 준다고 해도 맛을 모른다.

물론, 술 중엔 매우 비싼 술도 있다는 걸 알지만···.

내가 미묘한 반응을 보이자, 윌리아가 곁에서 예상치 못한 답을 주었다.

“술에 해박한 전문가가 있잖아요. 그에게 보여주는 게 어떨까요?”

“술의 전문가요?”

처음엔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내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는 바로 토레프.

홍성에 위치한 대장장이 NPC다.

나는 주기적으로 토레프의 집을 방문해 장비를 강화하고 있는데, 그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그와의 호감도는 25%.

무기를 강화할 때 3강과 4강은 호감도 50%를 달성해야 의뢰할 수 있고, 예전에 김씨 아저씨가 구한 정체 모를 유물을 감정하기 위해선 호감도 30%를 달성해야 한다.

어쩌면 드워프의 특성상 특별한 술을 가져다주면 호감도가 크게 오르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호감도 아이템 같은 걸지도 모르겠네.’

일단 이 술에 내가 모르는 효과가 있는지 물어보고, 단순히 술일 뿐이라면 맛만 좀 보고 토레프에게 줘버려도 될 것 같다.

나는 브륀힐드의 눈물을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의 스킬북을 꺼내 들었다.

[진실의 눈 / 극상급 스킬북 / 패시브]

-상대가 거짓말을 하면 붉은색의 기운이 눈에 보인다.

-상대의 악의가 강할수록 거짓말을 할 때 붉은색의 기운이 더욱 진하게 보이며, ON/OFF가 가능한 패시브 스킬이다.

거창한 스킬명.

하지만 그 스킬의 등급을 본 나는 헛바람을 삼키고, 그 놀라운 기능에 또 한 번 헛바람을 삼켰다.

‘그, 극상 등급의 스킬북?’

아이템의 등급은 일반-고급-최고급-특수-희귀이며.

스킬의 등급은 하급-중급-상급-최상급이다.

이게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등급체계인데, 최상급 다음 등급의 스킬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블링크와 폭주, 검강 등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최상급의 스킬이다.

이것들만 해도 확실히 급이 다르다는 느낌인데, 극상급 스킬이 등장한 것이다.

아무래도 보물 상자를 열었을 때 발생했던 당첨 이펙트는 이 극상급 스킬의 등장을 의미한 모양이다.

‘더구나 거짓말을 간파하는 스킬이라면···.’

누군가와 중요한 대화를 나눌 때 너무도 유리한 스킬이었다.

물론, 이로 인해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거나 인간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로 인해 틀어질 관계라면 그냥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게 있으면 사기당할 일은 없겠네.’

확실히 극상급이란 등급이 붙은 만큼 범상치 않았다.

나는 그 스킬북을 들고 윌리아를 바라보았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시는 만큼, 그건 백호님이 배우셔야죠.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꺼릴 게 없다는 태도.

당연하다는 듯한 그녀의 허락에 나는 고맙다고 답을 하며 스킬을 습득했다.

[진실의 눈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축하드립니다. 최초로 극상급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이 위대한 업적이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

[업적 보상으로 최상급 스킬 뽑기권을 획득했습니다.]

모처럼 오랜만에 단독 업적이 떴다.

최근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잡고 업적이 뜨긴 했었지만, 그 업적은 내 단독이 아닌···.

‘대한민국이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단체 업적으로 기록되었었다.

때문에 단독 업적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루 이틀 간격으로 업적을 띄우고 있는 와중에 오랜만에 서**이 업적을 띄웠으니, 꽤나 화제가 될 듯하다.

사냥꾼협회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고.

나는 만족하며 보상으로 받은 최상급 스킬북 뽑기권을 바로 사용했다.

[블링크 스킬북을 획득했습니다.]

“오오?”

그리고 이번엔 윌리아에게 줄 스킬북을 획득할 수 있었다.

“둘 다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다니, 이건 꽤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윌리아에게 블링크 스킬북을 건넸다.

윌리아도 기뻐하며 스킬을 습득했다.

“비록 원하던 아이템은 아니지만···.”

“당첨 중에 당첨인 보물 상자였네요.”

“하하.”

그 후로도 나와 윌리아는 미로 형태의 지하미궁 탐색을 이어갔고, 중간중간 진실의 눈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윌리아에게 거짓말을 시켰다.

나는 그 과정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구나.”

윌리아가 거짓말을 하면 마치 연기처럼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심한 거짓말일수록 연기가 짙고 더욱 붉다는 점과.

“넌 개똥이야!”

윌리아는 거짓말을 엄청 못한다는 것이다.

‘귀여워라.’

*

이후 우린 다른 길로 탐색을 이어가서인지, 예전처럼 두 번째 네임드와 만나지 못하고, 3시간째 미로를 헤집고 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한반도에 배정된 20개의 시나리오 조각 중 7번 조각의 소유자가 등장했습니다.]

새로운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가 등장한 것이다.

참고로 내가 11번 조각 보유자고, 강이솔이 2번 조각 보유자다.

그리고 새 등장인물은 7번 조각의 보유자였다.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끼리 메시지 대화가 가능하며, 3명 이상의 단체 메시지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가 새롭게 등장하자 단체 메시지방 기능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7번 조각의 소유자가 단체 메시지방에 11번 조각 소유자님을 초대했습니다. 참여하시겠습니까?]

나는 큰 고민 없이 이를 수락했다.

이왕이면 내가 아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아마 그럴 가능성을 극히 낮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7번 조각 소유자의 말을 기다렸다.

[7번 보유자]

-Hi guys.

그런데 이어진 메시지에 나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워야 했다.

[2번 보유자]

-외국인임? foreigner?

아니나 다를까.

7번의 영문 메시지에 강이솔도 의문을 표했다.

[7번 보유자]

-Yeah, I'm American.

이어진 내용에 나는 말을 잃어야 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시나리오 조각을 발견한 사람이 미국인이란 사실이 너무도 황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그의 답변에 나는 대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7번 보유자]

I’m in the military. USAG humphreys. you guys know Pyeongtaek?

그는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이었던 것이다.

‘하늘길, 바닷길이 막히면서 한국에 고립된 그들이 기지의 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그런데 상황을 보니, 한국에서 사냥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굳이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강이솔에게 대응을 맡겼다.

앞으로 이런 게 그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될 테니 말이다.

강이솔과 주한미군은 꽤나 길게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서로 간만 볼 뿐, 중요한 정보는 오고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외국인이고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어 신뢰를 못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실속 없는 대화가 오고 가다가 주한미군은 언제든 평택에 오거든 환영할 테니, 기지에 방문해달라는 말을 끝으로 메시지를 종료했다.

‘한반도의 시나리오 조각을 손에 넣은 주한미군이라.’

흥미로웠지만, 당장은 시나리오 조각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어떤 평가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강이솔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메시지창을 닫았다.

‘1년 뒤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거지?’

예전에 어느 던전에서 보스를 해치운 뒤,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만 이동되는 숨겨진 방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나리오 시작까지 1년이 남았다는 문구를 봤었다.

이제 한 달이 지나 11개월이 남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제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사냥꾼협회가 탄생하면 이런저런 정보가 모일 테니, 시나리오에 대해서 알게 될지 모르지.’

아무래도 사냥꾼협회가 자리를 잡으면 정보 수집에도 공을 들여야겠다.

*

지하 미궁의 분위가 바뀌었다.

나오던 몬스터들이 미라에서 상반신은 여성, 하반신은 뱀인 레벨 50의 라미아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라미아를 토벌해 최초 보상을 챙겼고, 그 과정에서 특수 등급의 창을 얻었다.

창은 언월도처럼 날 부분이 휘어 있어서 투척용으론 맞지 않아 사용처를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남들은 하나 얻기 힘든 게 특수 등급인데, 이제 나는 장비가 나왔다 하면 무조건 특수 등급이다.

아마 내가 남는 장비들로 어느 사냥팀 한 곳을 지원해 주면 그들은 금방 성장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윤시아, 김현수 등 주요 사냥팀의 뛰어난 실력자들을 모은 정예 파티를 구성하게 해볼까?’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사냥꾼협회 소속의 엘리트 집단을 만들어 보는 것도.

강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협회는 힘을 얻을 테니.

‘제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후로도 나는 라미아를 처치하며 지하 미궁 공략을 이어갔고.

“어?”

“저건?”

잠시 후.

딱 봐도 보스룸으로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클리어할까요?”

윌리아가 내게 물어왔다.

그 물음은 지하미궁이 워낙 거대해서 아직 탐색하지 못한 구역에 보물상자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이곳을 공략하는 가장 큰 이유가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남은 시간을 보았다.

[던전 클리어까지 남은 시간: 25분 21초]

이제 겨우 25분밖에 안 남았다.

그래서 긴 고민 없이 보스룸을 보며 답했다.

“클리어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윌리아님의 말대로 보물상자들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 말에 윌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딱 좋게 남았으니 들어가서 보스 패턴만 숙지하고 나오죠?”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25분.

대충 간만 보고 빠져나오면 될 것 같다.

그렇게 우린 마력을 채운 뒤, 보스룸에 입장 했고.

[보스 라미아 신관 암네리스 / 레벨: 60]

이집트 신화 속에 등장할 법한 복장을 입은 라미아가 나와 윌리아를 향해 강력한 포효를 내질렀다.

-끼아아아아악!

“큭.”

“윽.”

나와 윌리아는 듣기 거북한 날카로운 포효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식의 포효엔 보통 디버프가 붙기 마련이지만, 이미 우린 밖에서 정신력 강화 스킬을 사용한 다음 마력까지 풀로 채워서 왔다.

그래서인지 아무런 이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어? 백호님, 저기요.”

“네?”

그런데 그때.

윌리아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이내 보스 몬스터가 지키듯, 뒤에 숨기고 있는 화려한 보물 상자를 발견했다.

“뭔가 있어 보이는 보물 상자네요.”

“그렇죠?”

확신하면 안 되겠지만.

왜일까?

나는 저곳에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 들어있을 것 같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성남의 최도겸 파티는 동쪽에 관심이 많았다.

대재앙이 발생하고, 몬스터 떼에 몰락한 강원도에.

때문에 그들은 여유가 될 때마다 동쪽으로 진출했고, 경기도 광주를 넘어 이천, 여주까지 웨이포인트를 찍어가며 활동 범위를 넓혀 갔다.

그렇게 그들은 여주 다음의 목표지를 원주로 잡고 천천히 나아갔는데···.

“전부 숙여!”

갑자기 최도겸이 기겁하며 고개를 숙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에 모두 의문을 표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숙인 다음 상황을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처음 보는 거대 몬스터야.”

최도겸의 대답에 또다시 동료들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대체 어떤 몬스터가 우리 리더를 기겁하게 했나 궁금해진 오민영이 빼꼼 얼굴을 들어 전방을 주시했는데.

“헙!”

필드는커녕, 이들이 다녀간 던전에서도 저런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다.

덩치가 지금까지 본 어느 몬스터보다 거대했다.

덕분에 오민영은 또 고개를 든다는 오기를 부리지 않고 푹 숙인 채 질문했다.

“아직 이쪽은 못 본 거 같은데 돌아갈까?”

그녀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최도겸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번에 백호 님한테 클리어 안 된 던전 알려주니까 엄청 좋아하셨잖아.”

“미쳤어! 그 사람한테 첨 보는 보스급 몬스터 나왔다고 알려주려고 좀 더 조사하자는 거야?”

“이 앞까지만 갔다 올게. 너흰 물러나.”

“아니, 이 오빠 진짜. 왜 무리를 하려고 해? 그러다가 걸리면?”

“그러니까 안 걸리게 움직여야지.”

파티원들이 막을 새도 없이 최도겸은 낮춘 몸으로 수풀을 헤치며 전진했다.

그 순간, 눈 앞에 메시지가 주르륵 떴다.

최도겸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볼 수 있는 메시지였다.

[한 달간의 생존을 기념하며 이벤트 몬스터가 생성되었습니다.]

[이벤트 몬스터를 처치할 시 순위에 따라 특별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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