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72화 (72/273)

<72. 드디어 나왔다 (3) >

‘이벤트 몬스터?’

최도겸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게임 속에서 이벤트 몬스터라 하면 사람들이 서로 잡겠다며 경쟁심을 불태우는 그런 부류로 알고 있는데···.

-크르르륵.

저건 ‘덤빌 테면 덤벼봐, 찢어 줄 테니.’란 포스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그 몬스터는 전체적으로 사자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입이 귀까지 찢어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등엔 새의 날개가, 엉덩이엔 전갈의 꼬리가 달려 있다.

덩치는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높이가 20미터 정도 돼 보이고, 머리부터 엉덩이까지가 약 40미터, 전갈 꼬리는 딱 봐도 휘두르는 용도인지 길이가 30미터는 넘어 보였다.

성남을 포함해 내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로선 처음 보는 초거대 몬스터였기에, 최도겸은 숨을 죽이며, 탐색의 하위호환 스킬인 ‘조사’를 사용했다.

[만티코어 / ??]

그러자 적의 정보가 표기되긴 했으나, 레벨이 나오지 않았다.

조사 스킬이 이런저런 제약이 많다지만, 이 경우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너의 수준으론 감히 덤빌 생각 말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최도겸은 입술을 씹으며, 더는 무리하지 않고 몬스터의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담은 뒤 물러났다.

“그런데 이 정보를 전해줘도 그 사람이 저런 말도 안 되는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까?”

크기에서 오는 압도감에 질려 저런 몬스터에게 인간이 검을 들고 대항한다는 게 오미연은 쉬이 상상되지 않았다.

“그걸 결정하는 건 백호님이지, 우리가 아니야.”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이 정보는 어떻게 전해 주게?”

도망치듯 달리다 보니, 그들은 빠르게 여주 안전구역에 다다랐다.

최도겸은 인벤토리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거기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얼굴을 들이밀어 메모를 확인한 오민영이 물었다.

“웬 전화번호?”

“백호님이 지난번에 주고 간 거야.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들르는 곳의 위성 전화번호래.”

“근데 우린 위성 전화가 없잖아.”

“찾아봐야지. 이 기회에 우리도 위성 전화를 갖춰 놓으면 좋으니까.”

“대재앙 전에도 실제로 본 적이 없던 걸 쉽게 찾을 수 있으려나?”

“시청이나 구청에 있지 않을까? 없으면, 뭐···. 수원 가는 거고.”

수원을 간다는 건 생존구역을 찾아간다는 뜻.

정부에서 관리하는 생존구역엔 위성 전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범죄자 출신인 최도겸으로선 꺼려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단 자체적으로 해결해보고 안 되면 수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

[보스 라미아 신관 암네리스 / 레벨: 60]

보스 뒤에 위치한 화려한 보물 상자.

그곳에 왠지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느낌이지, 확신은 아니다.

그래서 일단 상자부터 열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가죠.”

“네.”

나와 윌리아는 동시에 블링크를 사용해 녀석의 뒤로 돌아갔다.

‘검강, 난격.’

그대로 나는 이번에 얻은 무왕의 보검을 휘둘렀다.

무왕의 보검은 +2강이 되어 있는 상태였고.

섬전과도 같이 휘둘러지는 무기의 내장 스킬 난격은 하나하나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진 4연속 베기 공격이었다.

[어딜!]

라미아 신관 암네리스는 방어막을 펼치며 내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원래 우리가 서 있던 출입구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덕분에 녀석의 상태는 가히 좋지 않았는데, 가슴에 깊은 자상을 입고, 왼팔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처음 난격은 써봤을 땐 조금 애매하단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강화로 스킬의 위력이 올라간 데다가 검강까지 섞어 사용하니, 지금처럼 생각 없이 방어막으로 막으려 하다간 치명타를 입기 딱 좋은 스킬이 되었다.

“윌리아 님?”

어쨌든 작전은 성공이다.

우리의 목적은 보스의 목을 단번에 따는 게 아닌 튕겨내는 거였으니까.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눈에 보인 장면은 예상과 달랐다.

계획으로는 내가 보스를 밀쳐낼 동안 윌리아는 보물상자를 열었어야 했는데, 뚜껑을 잡고 낑낑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안 열려요.”

“상급 방어막 펼치죠.”

“네.”

내 지시에 윌리아가 외투의 내장 스킬인 상급 방어막을 사용하고, 나도 망토의 내장 스킬인 상급 방어막을 사용해 2중으로 펼쳤다.

[무슨 수작이냐!?]

그에 한껏 화가 난 라미아 신관 암네리스가 목소리를 높이며 아공간에서 지팡이를 꺼내 바닥을 쾅 찍었다.

그러자 지면이 흔들리고, 보스룸 안의 그림자들이 한데 뭉쳐 살아 있는 것처럼 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림자들은 마치 기관총처럼 발사되었다.

-투투투투퉁!

-티티티팅! 쩌적!

연사되는 그림자 탄환으로 인해 상급 방어막은 금세 균열이 생겼지만.

나와 윌리아는 둘 다 보물상자 뚜껑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새끼들이?]

덕분에 암네리스는 등을 보인 채 상자에만 매달려 있는 우리의 모습에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냥은 안 열리는 모양이네요.”

“보스를 잡아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그래야 열리는 상자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와 윌리아는 몸을 일으키며 돌아섰고.

때마침 내 시야에 한가득 붉은색의 점들이 찍히기 시작했다.

바로 검술 스승 오티스의 공격 경로 예측(전투보조 모드)이었다.

-쿵!

끝내 두 겹의 상급 방어막이 깨지고.

새까만 그림자들이 날아들었다.

이런 빠른 공격에는 속검에 특화된 아칸의 세이버를 뽑아 드는 게 낫지만···.

공격 경로 예측 기능도 있겠다, 굳이 검을 바꾸지 않고 그 공격들을 쳐냈다.

-타타타타탕!

오티스는 내게 맞는 훈련법을 궁리하겠다며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해놓고 아직도 조용하다.

하지만 목걸이의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이것만으로도 내 전투력은 한 단계 높아진 느낌을 들게 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내가 힘들이지 않고, 그 공격들을 쳐내자, 암네리스의 표정이 굳어지고, 윌리아는 그런 녀석을 향해 폭발 스킬을 날렸다.

-콰아아앙!

-키아아악!

곧 짐승과도 같은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며, 보스 몬스터가 맥없이 튕겨나갔다.

“사냥은 어렵지 않겠는데요?”

“그러게요.”

최근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전투력은 급증했다.

레벨이 아직 50대임에도 레벨 60의 보스몬스터를 압도할 만큼.

이어서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암네리스는 발악하듯 그림자를 동그랗게 뭉쳐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가시를 사방으로 쏘아 보냈다.

-타타탁!

일시에 날아드는 가시 공격에 이번엔 무리하게 검으로 쳐내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음, 저 녀석.”

전투력과 별개로 사냥이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윌리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어렵지 않게 이유를 깨달았다.

“엘더 크림슨 로드?”

“맞아요. 패턴이 비슷해요.”

암네리스의 패턴은 크림슨 로드의 1페이즈와 전투 방식이 너무 흡사했다.

아니, 오히려 이 녀석은 열화판이라 표현할 수 있다.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이긴 하지만, 크림슨 로드와 비교하면 공격력도, 속도도 한 끗발 떨어져 하위호환이란 느낌이었다.

“어쩐지, 처음 싸워 보는데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난다 했더니.”

하지만 크림슨 로드와 다른 점도 있었으니.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스르륵.

암네리스가 그림자에 동화되더니, 돌연 모습을 감춘 것이다.

“오? 은신?”

은신을 쓰는 몬스터는 처음이었다.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머리 위에 얹혀져 있는 실루엣 고글을 내렸다.

그러자 시야가 회색에 물들고, 마치 적외선 카메라처럼 몬스터의 모습을 붉게 표시했다.

즉, 은신을 감지해낸다는 것이다.

-콰아앙!

나는 검에 검강을 담아 측면으로 파고드는 암네리스를 향해 찌르기 공격인 쾌격을 날렸다.

반쯤 원거리 공격이나 다름없는 재빠른 찌르기 스킬에 녀석은 짐승 같은 움직임으로 몸을 틀어 피해냈지만···.

“같은 방향 20미터 거리입니다.”

“폭발.”

내 설명에 윌리아가 다시 폭발을 사용하자, 은신이 허무하게 깨지며 이번에도 암네리스가 튕겨 나갔다.

“탱탱볼도 아니고 계속 튕겨 나가네.”

상성이 최악이다.

우리가 녀석에게 그렇다는 게 아니라, 녀석이 우리에게 말이다.

뭘 하든 완벽하게 대비가 되어 있으니, 암네리스 입장에선 벽을 마주한 느낌이 아닐까?

“어떡하죠?”

“음···.”

원래 예정은 탈출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보스 패턴만 확인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아직 미궁 안에는 미탐색 지역이 있고, 그곳에 보물 상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직 까보지 않은 보물 상자에서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나, 진실의 눈과 같은 스킬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보물 상자를 버리긴 아깝지. 이곳의 보물 상자들은 특별한 걸 뱉어내니까.’

보스룸 안에 있는 보물 상자가 눈에 밟혔지만···.

“그냥 나갔다가 재입장하죠.”

“네.”

뭐든 확실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린 예정대로 보스를 죽이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타임아웃이 되어 던전에서 쫓겨났다.

“금방 다시 올 테니까, 또 보자.”

[······.]

덕분에 만신창이가 된 보스몬스터 암네리스는 또 보자는 내 인사에 질린다는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나와 윌리아는 타임아웃으로 던전에서 쫓겨나자마자 다시 재입장을 했다.

지하미궁(2단계) 던전은 국가부흥처에서 관리하던 곳으로 원래는 수방사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강이솔에 의해 국가부흥처가 해산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고, 수방사도 정부에 지시에 따르지 않게 되면서, 지금에 와선 입장을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보물 상자!”

던전에 재입장한 후, 우린 미탐색 지역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 보물 상자 2개를 추가로 발견했는데···.

[안전 텐트(특대) / 특수]

-5m*5m*3m크기의 안전텐트.

[자유의 활 / 등급: 특수]

-시위를 가볍게 당길 수 있고, 사거리와 위력이 매우 뛰어나다.

-인벤토리에 화살이 저장된 상태면 별도의 준비 과정 없이, 시위를 당기는 것만으로 화살이 걸려 바로 쏠 수 있게 된다.

-순발력+4

-자체 스킬: 관통 (마력 소모: 3)

거기서 추가로 안전 텐트(특대)를 하나 더 얻고, 궁수라면 누구나가 탐낼 것 같은 멋진 활도 얻었다.

미믹이랑 섞여 있어서 짜증 난다는 점만 빼면, 미궁 안의 보물 상자는 역시 꽤나 당첨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우린 앞서 사냥하지 못했던 두 번째 네임드 미라 워메이지 비악스도 사냥했다.

전에 윌리아에게 폭발 스킬을 주었던 녀석인데···.

[비악스의 팔찌 / 등급: 특수]

-비악스가 사용하던 미스릴 팔찌다.

-원거리 공격 스킬의 시전 속도와 발사 속도가 50% 증가한다.

-원소계열 공격 스킬의 위력이 10% 향상된다.

이번에도 상당히 좋은 아이템을 떨궈 주었다.

당연히 해당 팔찌는 윌리아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마력탄을 사용해보니.

“마력탄.”

일반 마력탄과 확실히 달라졌다는 게 체감이 될 정도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기존 마력탄의 탄속은 총알에 비할 바가 아니었는데, 이젠 진짜 총알에 밀리지 않는 스피드를 보였다.

팔찌의 옵션인 원소계열 공격 스킬의 위력 10% 증가도 증가인데, 발사 속도 자체가 빨라져서 실제 위력은 더욱 상승한 느낌이 들었다.

“안녕.”

[크윽, 이놈들···.]

그렇게 우린 미탐색 지역을 제법 꼼꼼히 돌아본 후, 다시 보스룸에 다다랐고.

[빌어먹을!]

-콰아아앙!

보스 공략 개시 5분 만에 암네리스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다.

[보스 라미아 신관 암네리스를 토벌하여 경험치 85,000을 획득했습니다.]

[라미아 신관을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40,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보스 라미아 신관 암네리스를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25,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4칸을 획득했습니다.

-암네리스의 열쇠를 획득했습니다.

[라미아 신관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8,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은신을 획득했습니다.

장비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은신 스킬 하나만 나왔다.

[은신 / 최상급 / 액티브]

-은신하여 5분간 모습을 숨긴다.

-완전히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발소리나 흙 뿌리기 등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간파, 탐지 계열 스킬에 발각당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당한다면 은신이 풀린다.

-소모마력: 5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진짜 보상은 이게 아니라.

암네리스가 드랍한 열쇠와 보스룸 구석에 놓인 화려한 보물 상자라는 것을.

“많이 기다렸겠네. 우리의 특별한 보물 상자.”

나는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상자에 다가갔다.

그리고 열쇠를 상자에 가져다 대자.

[설치형 보물 상자를 열겠습니까?]

위와 같은 메시지가 떴다.

물어 뭐하겠는가.

당연히 나는 상자를 개봉했다.

[50,000 코인]

[마력 물약 2개]

[상급 회복 물약 4개]

[웨이포인트 점퍼]

[뇌력참 스킬북]

[웨이포인트 점퍼 / 팔찌 / 등급: 희귀]

-웨이포인트를 이용할 때, 추가 비용을 내지 않고 최대 50명의 인원과 함께 이동할 수 있다.

-이동지역의 웨이포인트를 등록하지 않은 사람도 함께 이동할 수 있다.

-웨이포인트 점퍼는 하루 10회 사용할 수 있다.

-모든 능력치 +1

[뇌력참 / 최상급 / 액티브]

-무기에 뇌전의 힘을 담아 휘두른다.

-직경 5미터 이내에 감전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사용 시 주의가 필요하다.

-소모마력: 5

“떴다!”

드디어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 나왔다.

거기에 상당히 강력해 보이는 스킬까지.

그토록 바라던 아이템의 등장이었기에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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