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73화 (73/273)

< 73.이벤트 몬스터 (1) >

나는 보상으로 나온 은신 스킬북, 뇌력참 스킬북, 웨이포인트 점퍼를 보며 한참을 기뻐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알아채곤,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곧 무안함에 뒷목을 긁적여야 했다.

하나같이 엄청난 보상들.

하지만 스킬도 그렇고, 웨이포인트 점퍼도 그렇고, 윌리아가 쓸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결국, 전부 내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내 모습에 윌리아는 뭐가 좋은지 호호 웃었다.

“점점 많은 NPC들이 저희처럼 동료의 관계를 맺고 모험에 나서게 되겠죠. 그들도 백호 님처럼 상대를 진짜 동료, 인간으로 대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요.”

“이게 당연한 거죠.”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음···.”

하긴, 그녀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같은 인간끼리도 서로를 공격하는 시대인데, NPC라는 정체 모를 존재에겐 더욱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다.

전략상 접근은 하되, 정을 주진 않고 이용하려고만 할 수도 있고.

NPC들을 게임 속 프로그램처럼 가볍게 여기며 막 대하는 부류도 분명 있을 것이다.

“월광도에서 처음 마주한 사람이 백호 님인 걸, 항상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거로 미안해하지 마세요. 오늘 저도 팔찌를 얻었잖아요.”

그러면서 윌리아는 2번째 네임드를 잡고 얻었던, 원거리 공격 스킬을 더욱 빠르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비악스의 팔찌를 자랑하듯 흔들었다.

덕분에 나는 피식 웃으며 보상들을 수습했다.

[은신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뇌력참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스킬을 익히고 나니, 윌리아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무엇보다 백호 님은 맛있는 것도 주시니까.”

“혹시라도 누가 맛있는 거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마세요. 유명한 납치수법이거든요.”

“제가 어딜 가겠어요?”

윌리아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듯 배시시 웃으며 내게 팔짱을 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거, 평생 내 옆에 있겠다는 뜻이지? 그럼 관계를 더 발전시켜 보자고 말해야 하는 타이밍인가?’

하지만 이런 나의 뇌절을 새로운 메시지가 적절히 끊어줬다.

[곧 지하미궁 2단계가 폐쇄됩니다. 빠르게 던전을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던전에서 나가시겠습니까?]

“던전 클리어 보상은 안 주나 보네?”

지하미궁은 보스를 처치할 때마다 등급이 오르는 특수 던전이다.

강이솔 일행이 클리어 한 지하미궁은 1단계.

우리가 클리어한 지하미궁이 2단계다.

아마도 이곳을 나서면, 지하미궁은 3단계로 진화할 터이다.

몇 단계가 끝인지는 몰라도, 어쩌면 모든 단계를 공략해야지만 클리어 보상이 주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예 클리어 보상이 없을 수도 있고, 보물 상자로 보상을 왕창 뿌리니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미 충분히 얻을 걸 얻은 만큼 이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나가죠.”

“네.”

나는 윌리아와 함께 지하미궁을 나섰다.

[지하미궁 2단계가 지하미궁 3단계로 재구축되고 있습니다.]

[24시간 동안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역시나 짐작한 대로였다.

지하미궁 3단계는 어느 수준일지 궁금하다.

바로 입장 가능하면 난이도만 확인해 보려 했는데, 하루 이틀 뒤에나 다시 와야겠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러 갈 생각인가요?”

윌리아의 물음에 나는 고민했다.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 나오면 가장 먼저 부모님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짜고짜 찾아가기보다 일단 이 사실을 알리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부터 하자.’

현재 시간이 오후 7시, 원래대로라면 아버지가 퇴근하실 시간이지만, 요즘 시대에 정시 퇴근이 어딨겠는가.

운이 좋으면 집에 어머니와 함께 계실 테고, 운이 나쁘면 아직 근무 중일 수도 있다.

나와 윌리아는 근처 건물 옥상에 올라 그곳에 테이블과 의자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앉았다.

윌리아는 과자와 음료수를 알아서 꺼내먹으며 허기를 해소하고, 나도 커피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마시며 아버지에게 연락을 넣었다.

“아버지.”

[어,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디세요?”

[잠깐 집에 들어왔어. 하지만 곧 나가야 돼.]

운이 좋다.

그럼 단번에 어머니에게도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니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 구했습니다.”

그에 아버지에게서 헛바람을 들이키시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으셨다.

[하하! 대단하구나! 정말 구해내다니!]

“어떻게 할까요?”

그건 지금 바로 계룡대를 나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겠냐는 물음이었다.

[음, 그게 말이지.]

이제 고생하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 웃었냐는 듯 입을 닫고 바로 답을 못하셨다.

솔직히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버지는 대재앙 이후,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군에서 앞길이 창창한 분이시다.

현재 준장 진급과 함께 수방사의 참모장에 내정된 상태이니, 조만간 서울에서 강력한 파워를 갖게 되신다.

‘그런 자리를 내팽개치고 아들에게 부양받으며 사는 삶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

나는 아버지께서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할 생각이다.

아버지가 이대로 군을 벗어나신다면 나는 마음이 편해서 좋고, 아버지가 계속 군에 계셔도 내게 이런저런 정보들을 계속 알려 주실 테니,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단순하게 내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면 아버지가 군에 그대로 남으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실질적으로 아버지가 군의 핵심 계층에 계셔서 본 이득이 적지 않다.

내가 이렇게 독보적인 성장을 거듭한 건 아버지께서 규율을 어겨가며 정보를 퍼준 덕분이기도 하니까.

[이런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서 이미 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어.]

미리 생각을 정리해 두셨다니 다행이다.

이어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계획은 이랬다.

[일단 서울로 가기 전까진, 네 엄마와 계룡대에 그대로 있을 생각이다.]

[그리고 서울 수방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그곳은 계룡대와 달리 본부가 안전구역을 끼고 있는 만큼 가의도에 터를 잡고, 웨이포인트로 출퇴근할 생각이야. 네 엄마는 가의도에서 상주하게 하고.]

결국, 아버지는 군에 남기로 정하셨다.

[서울행까지 오래 안 걸릴 거야. 아마 주중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알겠어요. 대신 월광도와 가의도를 비롯해 웨이포인트 몇 군데를 미리 찍어 놓도록 하죠. 무슨 일이 생길 때, 피할 곳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요.”

나는 군말 없이 부모님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 경우를 대비한 계획도 미리 준비해 놓긴 했지.’

일단 그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여러 안전구역의 웨이포인트를 미리 등록해두게 할 예정이다.

[그래, 그러도록 하마. 지금 올 생각이냐?]

“지금 바로 움직일 수 있으세요?”

[본부에 다녀와야 돼서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그럼 저도 잠깐 다른 일 볼게요.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을 사용할 곳이 또 있거든요.”

[그래? 잘 됐네.]

그렇게 부모님을 찾아가는 건 1시간 뒤로 미뤄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과 의자는 다시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우린 인근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용산으로 향했다.

*

“김씨 아저씨!”

“응? 백호씨, 나 여깄어!”

잠시 용산에 들렀던 나는 월광도로 돌아왔다.

목적은 김씨 아저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나는 김씨 아저씨를 보자마자 말했다.

“아저씨 짐 싸세요.”

“무, 무슨 일인데?”

뜬금없는 내 말에 김씨 아저씨는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고, 아저씨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자신의 물품을 챙겼다.

“침대랑 가구는 제가 챙길게요.”

“어? 침대랑 가구도?”

나는 아저씨를 이끌고 안전구역으로 향했다.

내가 입을 꾹 닫고, 가만히 있음에도 아저씨는 나를 믿는지 군말 없이 따라왔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웨이포인트 앞.

거대한 푸른 수정이 둥둥 떠 있는 웨이포인트는 언제 봐도 신비롭고 몽환적이다.

나는 벙찐 표정으로 웨이포인트를 바라보는 아저씨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월광도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저는 이 섬이 되도록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지금도 부모님과 김씨 아저씨 외엔 아무도 월광도에 대해 모릅니다.”

“어?”

그제야 아저씨도 내가 왜 이러는지를 눈치챘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웨이포인트 점프 사용. 이동 장소 가의도.’

내 명령어에 눈부신 푸른 빛이 나와 김씨 아저씨를 감쌌다.

김씨 아저씨는 가의도에 가보지 않아 웨이포인트를 저장하지 못했음에도 나를 따라 이동되었다.

곧이어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

“아빠!”

“여보!”

“어어!?”

서프라이즈.

내가 용산에 들렀다가 미리 가의도로 이동시켰던 김씨 아저씨의 부인과 아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죽은 줄 알았던 가장에게 달려와 안겼다.

“하, 하하!”

비로소 내 행동을 이해한 김씨 아저씨는 목청껏 웃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가의도에 안 쓰는 펜션이 많거든요. 깨끗하게 정리해놨으니, 거기서 가족분들과 함께 생활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가의도는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시설이 크게 설치되어있는 데다가 지하수까지 뚫려 있어서 전기와 수도 모두 넉넉하게 쓰실 수 있어요.”

“고맙네, 정말 고마워.”

가족을 부둥켜안은 채, 김씨 아저씨는 연신 내게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 역시 김씨 아저씨를 보며 잘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겠지만, 제가 가의도는 매일 오니까 작별은 아니에요.”

“나야말로 백호씨랑은 작별하고 싶지 않아. 앞으로도 일손 필요해지면 불러줘. 기쁜 마음으로 돕겠네.”

나는 그들을 이끌고 가의도 중심에 위치한 마을로 향했다.

이미 사전에 가의도에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외부인들을 들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놨었다.

주민들은 내 지인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며, 섬에 인구가 늘면 좋은 일이라고 만장일치로 찬성했었다.

때문에 거부감 없이 김씨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 마을 주민들도 내게 목숨을 빚진 사람들이니 말이다.

“와, 엄청나네요.”

가의도는 그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우선 몬스터들이 침입할 수 있는 경로마다 벽이 세워져 마치 성곽 마을을 보는 듯했다.

그만큼 생활 구역이 더욱 안전해졌단 뜻이다.

“여기랑 저기서 가끔 슬라임이 튀어나오니까, 그것만 조심하면 됩니다.”

슬라임 정도야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괭이만 휘둘러도 죽는 녀석이니,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비닐하우스에선 농사를 짓고 있고요. 안전하게 바다낚시를 할 수 있는 포인트도 많아 이곳은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마을 곳곳엔 내가 월광도에서 가져온 야광 이끼들이 담긴 병이 가로등처럼 걸려 있어서 가의도의 밤은 어둡지 않았다.

“솔직히 이만큼 완벽한 생존구역은 없을 거예요.”

가의도는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 부모님이 이곳에 들어와 사실 예정이니까.

나는 지속적인 투자로 가의도를 더욱 아늑하고 안전하게 만들 생각이다.

“반갑습니다. 김이장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신세 지겠습니다. 김씨입니다.”

김씨 아저씨가 쓰게 될 펜션에 도착하자 마을 주민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 이장님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그에 김씨 아저씨도 쑥스럽게 답했다.

나는 두 사람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웃음을 흘려야 했다.

“김씨 아저씨는 뛰어난 건축기술 소유자입니다. 아마 마을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에요.”

“오오오! 그거 기쁜 소식이군.”

그리고 이어진 내 말에 김씨 아저씨는 바로 마을의 중요 인사가 되었다.

*

이후 나는 윌리아와 함께 계룡대로 향했다.

그리고 한밤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몰래 담을 넘어 인근 안전구역으로 향했다.

계룡대의 가장 큰 단점이 이거다.

안전구역이 영내에 없고, 떨어져 있다는 것.

“몬스터가 제법 많네요.”

“그나마 낮에는 계룡대 영내의 사냥꾼들이 나와 주변 몬스터들을 쓸어 버리기 때문에 이만큼 많지는 않아.”

“그래요?”

“그보다 나는 몬스터보다 네가 무서운데?”

“네?”

계룡대 주변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주로 오크와 고블린이었다.

하지만 나는 뭐가 등장하든 스킬조차 쓰지 않고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으로 달려나가 몬스터들을 짚단 베듯 썰어 버렸다.

더불어 오크 궁수가 쏜 화살과 고블린의 독침을 손쉽게 검으로 튕겨내니, 아버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무슨 묘기를 보는 것 같네. 레벨 20이 넘는 사냥꾼들도 화살과 독침이 무서워서 방패가 필수인데, 넌 죄다 검으로 쳐내네?”

“이게 편하더라고요.”

“설마 총알도 쳐내는 거 아니냐?”

“네, 뭐···.”

“진짜?”

“별로 어렵지 않던데요? 능력치가 높아서 그런가?”

“허···.”

황당해하는 아버지의 반응이 꽤나 웃겼다.

“아니,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지? 아들, 이런 미인을 가리키는 말이 베이글녀 맞지?”

“언제적 신조어에요?”

그런데 어머니는 싸우는 나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면서도 한가할 땐, 윌리아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다.

의외인 건 그런 어머니의 행동에 윌리아는 낯설어하는 기색 없이 너무도 살갑게 어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어머니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 입꼬리가 승천해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으셨다.

“안전구역이네요.”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몬스터가 득실대는 필드를 돌파한 우린 머지않아 안전구역에 다다랐다.

그리고 우린 지체 없이 웨이포인트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총 일곱 지역을 돌며 웨이포인트를 찍었다.

우선 네 곳이 수도권인 청와대, 용산, 현충원, 수원이고.

나머지 세 곳은 나의 세력인 보령과 가의도, 월광도이다.

“이야, 여기서 산다고? 으리으리하구만.”

“하하.”

월광도에 도착해서는 부모님께 사는 집을 소개해 드렸는데, 무인도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멋들어진 대저택의 등장에 두 분은 감탄하며 여기저기 살피고 다니셨다.

“으악!”

그러다가 아버지는 펫들이 사는 별관의 문을 열었고, 예상치 못한 몬스터들의 등장에 기겁하셨다.

멍멍이와 뚱이 외에도 콩쥐, 팥쥐, 감자까지 내 펫만 총 다섯이다.

모르는 사람이 문을 열면 던전으로 보일 법한 공간이 바로 펫들의 숙소였다.

“대단하구나, 이렇게까지 시설을 갖춰 놓다니.”

30분에 걸쳐 저택 구경을 끝낸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셨다.

“하지만 역시 우린 가의도 쪽이 맞을 것 같아. 멋지긴 하지만, 여긴 사람 내음이 부족해.”

“그래요?”

나는 두 분이 이곳에 살고 싶어지면 그러라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두 분은 무인도는 싫으신 모양이다.

“한때 네가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어서 어찌 되나 했는데, 이렇게 이뤄 놓은 것들을 보니 참 대단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아.”

아버지는 뿌듯하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부모님의 칭찬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잠깐의 정적.

“아들.”

잠시 후, 아버지가 월광도의 하늘을 올려보시더니, 잔잔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네?”

“넌 목표가 뭐니?”

뜬금 없는 물음.

그럼에도 내 입에선 즉답이 흘러나왔다.

“그야, 생존이죠. 저와 제 가족, 주변 사람들이 안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드는 거요.”

“그러면 이미 이룬 거 아니냐? 너한텐, 외부인들이 쉽게 침입할 수 없는 땅과 몬스터들을 쉽게 토벌할 수 있는 강함이 있잖아.”

갑자기 왜 이런 걸 묻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이미 최악의 재앙이 발생한 만큼,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건 그렇지.”

“때문에 지금의 수준에 만족할 생각 없습니다. 추후 지금의 저 정돈 아무렇지 않게 짓이길 괴물들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요.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강함을 손에 넣을 때까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바라는 대로 하렴.”

나는 아버지가 갑자기 한 질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를 밝히셨다.

“나는 군에서 톱이 되고 싶다. 원하는 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너처럼 최선을 다해 앞으로 달려갈 생각이야.”

“······.”

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지금 군에서 톱이 된다는 건 이 나라에서 톱이 된다는 뜻과 같았으니 말이다.

위험한 목표다.

굳이 지금처럼 혼란스런 상황에서 왜 그걸 목표로 할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태클을 걸지 않았다.

내가 성장에 목을 메는 것처럼, 아버지는 군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에 목을 메고 있다.

어쩌면 이 두 가지가 비슷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목표가 그렇다면 나는 응원할 따름이다.

*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계룡대로 모시고 한숨을 자고 나니 날이 밝았다.

어제 아버지가 충격적인 발표를 하셨지만, 당장 바뀌는 건 없다.

언제나처럼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고, 안전구역에서 신전 NPC인 헤롤드와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멍멍이와 뚱이를 이끌고 가의도로 넘어갔다.

“아, 마침 잘 왔어. 방금 꽤나 긴박해 보이는 목소리로 연락이 왔거든.”

“누구한테요?”

“성남 사냥팀이란 곳에서.”

그랬더니, 가의도의 이장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성남 사냥팀이란 곳에서 이벤트 몬스터라 불리는 거대한 몬스터를 발견했대. 그래서 한 번 와보는 게 어떻겠냐던데?”

“그래요?”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흥미를 표해야 했다.

이벤트 몬스터라고?

그래서 나는 가의도 청년단 교육을 패스하곤, 뚱이와 함께 사냥하며 레벨을 올리라 지시한 다음, 모처럼 멍멍이를 이끌고 성남으로 날아갔다.

-컹컹!

윌리아를 등에 태운 멍멍이는 이제야 제 포지션으로 돌아왔다는 듯 뿌듯해했다.

“아, 오셨군요? 저희가 왜 연락했냐면···.”

그리고 잠시 후, 성남의 웨이포인트에서 최도겸 파티를 만날 수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들은 즉각 본론을 꺼냈다.

“오오?”

그들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에 나는 큰 흥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보상을 주는 이벤트 몬스터라니···.

이걸 어찌 놓치겠는가.

해당 몬스터는 여주에 있다고 해서, 난 웨이포인트 점퍼(단체 이동 아이템)를 최도겸에게 인도해서 사용케 했다.

나는 아직 여주의 웨이포인트를 찍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이런 아이템도 있군요? 대단하십니다.”

“안 그래도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은 장소가 있거든요. 오늘 일과 끝나고 함께 가죠.”

“네!”

여주로 넘어간 뒤, 웨이포인트 점퍼를 다시 건네받은 나는 최도겸 일행과 함께 이벤트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 잠깐. 여긴 우리가 선점하고 있으니, 돌아가도록 해.”

여주의 사냥팀으로 보이는 꽤나 큰 무리가 우리를 제지했다.

[표태호 / 레벨: 25]

[강지안 / 레벨: 24]

[오우식 / 레벨: 23]

하지만 그들의 레벨을 스윽 살펴본 나는 미간을 좁혔다.

레벨 30이 넘는 최도겸 파티도 도망친 몬스터를 이들이 잡겠다고 나서고 있었으니 말이다.

‘신종 자살법인가?’

그러나 나는 사냥꾼협회의 협회장.

추후 이들도 협회 소속이 될 수 있으니, 성질대로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단독 비행 스킬을 사용했다.

제자리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이벤트 몬스터를 찾았고.

[만티코어 / 레벨: 80]

금세 거대 몬스터를 발견했다.

그리고 몬스터의 정보를 눈에 담자.

[한 달간의 생존을 기념하며 이벤트 몬스터가 생성되었습니다.]

[이벤트 몬스터를 처치할 시 순위에 따라 특별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벤트 종료까지 9시간 25분 남았습니다.]

새로운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레벨 80!?’

엘더 크림슨 로드 이후, 레벨 80대의 육상 몬스터는 처음 본다.

이름이 따로 없는 것을 보면 네임드나 보스는 아닌 것 같은데, 녀석의 살벌한 덩치와 이벤트 몬스터란 특수성이 더해지니, 얼마나 강할지 쉬이 감이 오지 않았다.

“레벨 80짜리 몬스터네요. 정말 여러분이 잡을 수 있습니까?”

몬스터의 정보를 살피고 지상으로 내려온 나는 길을 막아섰던, 여주 사냥팀의 멤버를 보며 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만하기 그지없던 그는 내가 하늘을 날아 몬스터의 레벨을 파악하고 오자 빠르게 공손해졌다.

“평범하게 뚜까패면 힘들겠죠. 하, 하지만! 몬스터와 싸우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머리를 굴려 고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해내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일단 물러나야 했다.

몬스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칼부림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자 순순히 물러나는 나를 향해 최도겸이 걱정스러운 듯 질문했다.

“저들이 진짜 잡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들의 행동은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몬스터 스틸 금지는 현실에서도 암묵적인 룰로 여겨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저 몬스터를 잡으려면 그 암묵적인 룰을 무시하던가, 저들이 공략에 실패한 다음에나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

“잡을 확률은 0%에 가깝겠죠. 아무리 특별한 보상이란 거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최도겸에게 양해를 청했다.

“저흰 이벤트 몬스터 근처에서 은밀하게 숨어 상황 지켜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길 지키고 계시다가 제가 부르면 도와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최도겸은 내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 곁에 멍멍이를 두고, 윌리아와 함께 블링크로 공간이동을 하며 목적지에 접근했다.

“백호님, 저게 뭐죠?”

“아무래도 땅속에 숨어서 원거리 공격을 이용해 몬스터를 잡을 생각인 모양이네요.”

잠시 후, 나는 땅속에 반쯤 처박혀 있는 토치카를 발견했다.

토치카는 유명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X프트에서 테란의 방어 건물인 벙커 형태의 진지를 뜻한다.

그런 토치카가 여기저기 10기 정도가 눈에 띄었다.

“제법 공을 들였네?”

그냥 목숨 아까운 걸 모르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겉보기엔 나쁘지 않은 전략으로 보였다.

저 토치카가 매직블록으로 지어졌다면 방어력도 상당할 테니까.

하지만 방어력이 상당한 거지, 파괴 불가시설은 아니다.

과연 저 방법이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싸우려는 모양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저기서 만티코어를 상대하고 있을 터인 나는 선행팀의 사냥 솜씨를 구경하기로 했다.

-투투투퉁!

석궁(쇠뇌)을 쏘는 건지 화살의 길이가 짧은 볼트 수십 개가 만티코어를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투퉁!

그리고 해당 공격은 의외로 만티코어에게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는 것처럼 보였다.

-크오오오오!

만티코어가 지면이 울릴 만큼 강력한 포효를 내질렀으니 말이다.

동시에 디버프가 발생했지만, 내겐 윌리아의 정신력 강화 스킬로 인해 바로 풀렸다.

-촤촤촤촤촥!

연이어 날아드는 화살 공격.

만티코어 입장에선 이쑤시개들이 연이어 날아오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지만, 그것도 많이 맞으면 아플 수밖에 없다.

피를 많이 흘리면 과다출혈이 되고.

하지만···.

-콰아아앙!

“아···. 그럼 그렇지.”

세상일이란 건 뭐든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만티코어는 토치카에서 공격이 날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날개를 펄럭이며 제법 재빠르게 달려가 앞발로 힘껏 내리찍었다.

그러자 세상이 뒤흔들리는 느낌이 들 만큼 강한 충격이 발생했다.

-콰아아앙!

한 방, 두 방.

토치카는 제법 잘 버텼지만.

3번째 공격에 여지없이 붕괴됐다.

만티코어는 그런 식으로 토치카를 하나씩 파괴해 나갔으며, 결국 4번째 토치카가 파괴될 때까지 여주의 사냥팀은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러자···.

[후퇴!]

어디선가 확성기를 통해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토치카 아래에 탈출로를 미리 만들어 뒀나 보네요.”

“그러게요. 죽은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나는 토치카가 만티코어에게 붕괴되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납작하게 쥐포가 되어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후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파괴된 토치카에서도 사람들이 기어 나오니, 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조금 어설프긴 한데, 저런 시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도주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거네요.”

윌리아의 말대로 도주하는 모습이 몹시 위험해 보였다.

[숨어!]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참호가 나타나고.

그들은 그 안으로 몸을 던지며 참호를 따라 이동했다.

덕분에 허무하게 만티코어에 밟혀 죽는 사람은 없었다.

“오오, 재밌네.”

아무래도 여주팀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참호형태의 도주로까지 꽤나 신경 쓴 모습을 보니, 동료들의 목숨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게 느껴졌다.

***

여주엔 적은 생존자와 대비되는 제법 큰 사냥팀이 존재한다.

사냥팀의 리더는 여성이었으며, 게임방송으로 100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했던 유명 유튜버였다.

한때 그녀는 AOS 게임 프로팀에 속해 있었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고, 무엇보다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 오더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그녀와 편을 먹고 오더에만 순순히 따르면 웬만해선 게임에 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만큼.

‘그럼 뭐해, 이젠 게임도 못 하게 됐는데.’

구독자도 많고, 라이브 후원과 광고 수익 또한 제법 액수가 컸다.

그래서 이제 영&리치의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면서, 당장은 일에 집중하고 돈은 나중에나 펑펑 쓰자는 마인드였는데 세상이 이 따위로 변한 것이다.

그래도 자포자기만 할 순 없으니 먹고살려 또래들이 사냥을 나갈 때 따라 나갔던 게 그녀가 리더가 된 계기였다,

남다른 감각이 몇 번이고 동료들의 목숨을 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그녀도 제 목숨의 보전을 장담치 못했다.

“저걸 어떻게 이겨?”

레벨이 표기가 안 되긴 했으나.

그래도 이벤트 몬스터라길래 일단 도전해 보자란 마음으로 전투에 임한 게 화근이었다.

아니, 작전은 통하는 거였다.

단지 자신들에겐 절대적으로 한 가지가 부족했다.

바로 만티코어의 이목을 분산시켜 줄 키플레이어가.

-콰아아앙!

그런데 그때.

꿈인가 싶은 상황이 펼쳐졌다.

바로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키플레이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