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이벤트 몬스터 (2) >
한 사내가 등장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얇은 가죽망토에 꽤나 등급이 높아 보이는 멋들어진 경갑옷으로 무장을 갖춘 사내가.
그런 그가 만티코어 앞에 순간 이동하듯 등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쿠릉! 콰콰콰!
-크아아악!
검의 형태를 한 푸른빛의 기운이 뇌전을 머금으며 만티코어에게 작렬했다.
인간을 벌레로 보이게 만드는 거대 괴물 만티코어.
놀랍게도 그런 괴물이 단 일격에 밀려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만티코어는 커다란 비명을 내지르고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허···.”
프로게이머 출신의 100만 유튜버인 조유나는 모든 상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터라 일련의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방금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눈을 비비고 또 비비며 바라보았다.
“위험해 보이니, 난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죠?”
그리고 그때.
머리 위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고개를 들었더니, 그곳에 웬 여자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허공에 떠 있었다.
낯선 여성은 그대로 여주 사냥팀 지휘부를 향해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디딤판 스킬? 아니, 저런 움직임은 비행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여주 사냥팀의 지휘부 멤버들은 낯선 인물의 등장에 긴장하며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상대의 수준을 직감한 조유나는 일행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저분과 동료십니까?”
“네, 저흰 2인 파티입니다. 마침 지인에게 이벤트 몬스터의 등장 소식을 전해 듣고 방문했으나, 여러분이 먼저 사냥을 개시하여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죠.”
그러고 보니, 만티코어를 튕겨낸 저 남자는 공간이동을 하듯 등장했다.
겨우 2인 파티면서 자신들의 앞선 사냥 실패를 보고도 개입할 생각을 하다니.
조유나는 조사 스킬로 상대의 레벨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참았다.
상대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저희들의 사냥은 끝났습니다. 오히려 시선을 끌어 주신다면 안전하게 몸을 피할 수 있으니, 감사할 뿐이죠.”
조유나의 대답에 얼굴을 베일로 가렸음에도 미녀인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여성이 눈웃음을 흘리며, 다시 허공을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마법사형?’
하지만 이어진 상황에 조유나는 입을 쩍 벌려야 했다.
베일의 여자가 원거리 스킬을 연거푸 날리자 금방 몸을 일으킨 만티코어가 사정없이 뒤로 밀려난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강렬한 폭발 스킬이 작렬할 때마다 지면이 흔들리고 공기가 울렸다.
원거리 공격 스킬이라고 해봐야 마력탄을 최고로 치던 조유나와 여주 사냥팀으로선 경악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크아아아악!
충격이 상당한지 만티코어가 다시금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며 발악했다.
하지만 뇌전을 다루던 남성은 만티코어의 반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동료의 폭격이나 다름없는 공격을 예상했다는 듯, 어느새 턱밑에서 뛰어오른 그가 만티코어의 양쪽 눈을 단번에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게···.”
여주 사냥팀은 이번 사냥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많은 자금을 투입했고.
이벤트 몬스터라면 분명 엄청난 보상을 줄 테니까,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일단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둘은 그럴 필요 없었다.
본인의 강함으로 그저 몬스터를 때려잡을 뿐이니.
-서걱!
광분한 만티코어가 전갈 꼬리를 미친 듯이 사방으로 휘저었다.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불규칙적인 그 꼬리 공격을 검을 든 남성은 너무도 여유롭게 피해내며, 무기를 교체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여성의 폭격에 만티코어가 움찔한 틈을 놓치지 않고.
사내는 유려한 곡선을 가진 세이버를 발도하며 단칼에 승합차 두께를 가진 꼬리를 베어 버렸다.
-쿠우웅!
지면에 떨어진 전갈 꼬리가 마치 잘린 낙지 다리처럼 요란하게 꿈틀댔다.
이어서 남성과 여성이 만티코어가 날지 못하게 날개를 하나씩 맡아 걸레로 만들었다.
압도적인 무력과 그에 비례하는 여유로움, 더불어 보지 않고도 서로의 다음 움직임을 예상해내는 판단력까지.
겨우 2인임에도 너무도 완벽한 파티였다.
‘특히 저 검사. 저 검사의 전투센스가 엄청나. 저건 레벨로 커버되는 게 아니라, 그냥 타고난 거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어.’
조유나는 생각했다.
자신의 사냥팀에 저 정도 센스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아니, 반의반 정도만 저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시선을 분산시킬 정예팀을 만들 수 있을 테고, 그럼 오늘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전부 소용없는 망상이지.’
여주 사냥팀은 규모가 제법 크다.
소속 인원이 100명이 넘었으니 말이다.
특징은 대부분의 레벨이 고루 높으며, 밸런스가 좋다는 거지만···.
단점은 특출한 한 명, 조커가 없다는 거였다.
그나마 지금까진 머릿수로 어떻게든 돌발 상황에 대응해왔지만, 정말 막강한 적을 상대하게 되니, 전략에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때문에 조유나는 상대의 강함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거나, 경계심을 품기보단 강렬한 소유욕을 느꼈다.
‘저 사람이 우리 팀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최소한 서로 도울 수 있는 협력자 관계만 되어도···.’
하지만 조유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저쪽에 비해 자신들이 가진 패가 너무도 보잘것없었으니 말이다.
그때, 여주팀의 현장 지휘관 중 한 명이 다가와 그녀를 불렀다.
“유나야, 후퇴 끝났어.”
“사망자는?”
“저 사람들 덕분에 사망자는 없어.”
“그렇구나.”
“그런데, 전할 말이 있어.”
“뭔데?”
“아무래도 표태호가 실수한 거 같아.”
“태호?”
“저 사람들이 이벤트 보스에게 향하려 하자 막으면서 내쫓으려 했다고 하네? 그리고 저 몬스터의 레벨이 80이란 것까지 알려 줬었는데, 바로 사냥이 시작돼서 그걸 보고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
“······.”
저기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조유나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으나,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니 이내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 전투에 앞서 사냥터 통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몬스터를 잡을 때 끼어들지 않는 건 사냥팀 간의 불문율이었으니 말이다.
‘겸사겸사 일행의 무례를 사과하기 위해 다가갈 명분도 되지.’
때문에 조유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금 전투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방 잡겠어.’
전투는 거의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레벨이 무려 80이라는 만티코어는 눈을 잃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도 잃고, 사방을 난타할 꼬리도 잃었다.
더구나.
-촤아아악!
그 남성에 의해 다리의 주요 근육들이 끊어지기 시작하니, 머지않아 녀석은 그저 덩치 큰 샌드백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무시무시하군.”
일행의 발언에 조유나는 동의한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야 저게?”
그런데···.
만티코어의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허공을 향해 난데없이 포효를 내질렀기 때문이다.
-치치칙!
그리고 그런 만티코어의 머리 위로 스파크가 튀는 푸른빛의 기운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무시할 수 없는 기운.
문제는 그런 빛의 기운이 하나가 아니라 족히 백여 개는 될 것 같다는 거였다.
조유나 게임을 전문으로 하던 유튜버.
그런 그녀에게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설마, 전멸기는 아니겠지?”
현실이 게임도 아니고 전멸기는 선 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선 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난데없이 발생한 대재앙도 그렇고, 이벤트 몬스터라 써 붙이고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을 출현시킨 것만 봐도 그렇고.
“지금부터 하늘에 떠 있는 구체를 공격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향해 공격을 지시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외침에 지휘부 멤버들이 깜짝 놀랐다가, 이내 석궁이나 활, 마법형 스킬을 쏠 준비를 했다.
조유나는 상대가 이해하길 바라며 부대를 지휘할 때 쓰던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머리 위의 구체 먼저 공격하세요!]
자신의 지시가 맞다는 보장은 없다.
더구나 그 공격이 자신들이 있는 곳까지 피해를 준다는 보장도 없고.
하지만 그녀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공격이 온전히 지상에 떨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그리고 그런 조유나의 외침이 통한 듯.
베일의 여성과 만티코어를 압도하던 남성이 구체부터 공격하기 시작했고,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꽤나 레벨이 높아 보이는 5명으로 이뤄진 사냥팀도 함께 그 구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
나와 윌리아는 여주 사냥팀에서 날아든 요청에 따라 허공에 떠 있는 구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구체들은 일정 충격을 주면 푸른 안개처럼 주변으로 흩어졌는데, 수가 많아서 빠르게 제거하는 게 쉽지 않았다.
윌리아는 폭발 스킬로 한데 뭉쳐진 구체를 공격하고, 나는 마력탄을 날리거나 하늘을 날며 그 구체들을 베었다.
또한 여주팀에서도 화살과 석궁의 볼트와 마력탄을 발사했고, 지금까지 숨어 있던 성남팀도 나와 가세했다.
하지만 우린 모든 구체를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남은 구체는 겨우 다섯개.
-구구구구궁! 콰아아아아앙!
그 구체들이 터지며 사방으로 전기를 방출했다.
전기가 마치 파도처럼 일대를 잠식해가고, 범위에 속한 풀과 나무를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 범위가 어찌나 크고 강력한지, 상급 방어막을 펼쳐 방어해낸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괜찮으세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지막 순간 범위공격이 터질 걸 예상한 나는 성남팀을 보호하며 상급 방어막을 펼치고, 윌리아도 아까 이야기를 나눴다는 여주팀 쪽으로 블링크를 시도해 상급 방어막을 펼쳤다.
“네···.”
겨우 다섯 개의 구체만 터졌는데도 이 정도인데, 처음에 등장했던 100개가 넘는 구체가 한 번에 터졌으면 어찌 되었을까?
방심하고 있었다면 위험할 뻔했던 상황이다.
‘이딴 게 무슨 이벤트 몬스터야. 전부 죽일 생각인가?’
하지만 나는 이어지는 다음 상황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터뜨린 구체에서 흘러나온 푸른 안개들이 한데 뭉쳐지면서.
-쿠릉! 콰아아아앙!
강력한 뇌전이 되어 만티코어를 때렸기 때문이다.
[이벤트 몬스터 사냥에 성공하셨습니다.]
[한반도에 남은 이벤트 몬스터 19/20]
[이벤트 몬스터 공략 점수가 정산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갑자기 죽어 버린 만티코어를 보며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제시간에 구체를 모두 터뜨리기만 했다면, 공격을 받지 않고 만티코어를 죽일 수 있던 건가 보네요.”
“의외로 쉽게 놈을 토벌할 승리 패턴이 있었다는 거군요.”
이런 엔딩은 이벤트 몬스터답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저걸 못 알아채면 공략에 나섰던 사람들 모두가 죽는 거였으니 말이다.
나와 성남팀은 새까맣게 탄 초원을 거닐며, 윌리아가 이쪽으로 데려오고 있는 여주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마주했다.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신장보다도 10cm는 작아 보이는 아담한 키.
희고 귀여운 얼굴에 목까지 내려오는 똑단발.
더불어 외꺼풀임에도 상당히 큰 눈까지.
그런데 난 이 여자를 알 것 같았다.
“혹시 유튜버 아니세요?”
“아, 맞는데. 저 아세요?”
“알다마다요! 그, 채널명에 비속어가 들어가신···.”
“···비속어가 아니라 파리할 망이라고, 핏기가 없다, 작다라는 뜻의 한자예요.”
“그러셨구나! 여태 잘못 알고 있었네.”
“본명은 조유나입니다.”
그녀는 하꼬였던 나와 달리, 전투력(구독자)이 무려 100만이 넘는 유튜버계의 대선배님이었다.
채널명은 奀겜 유나(망겜 유나).
여태 맨 앞글자를 한자가 아닌 욕인 줄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녀를 실제로 보면 대부분 두 개의 감상을 내놓는다.
하나는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더 예쁘다는 감상이고.
다른 하나는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더 작아 보인다는 감상이다.
그 말이 딱이다.
정말 작고 예뻐서 같은 인간이 아니라, 작은 동물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신기해 하자, 조유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동료들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옆으로 조용히 다가와 옆구리를 찌르는 윌리아의 행동에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엔 저희도 도움을 받은 걸요.”
하지만 그녀는 감사 뒤에 사과를 건네왔다.
“그리고 일행이 사냥 전에 무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정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니까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음에도 그녀는 겸손하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재차 숙여 보였다.
인터넷으로 봤을 땐 조금 더 당돌하고 대찬 느낌이었는데, 의외로 진중했다.
[이벤트 몬스터 토벌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벤트 몬스터 만티코어 토벌전의 점수를 표기합니다.]
[축하드립니다. 100점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등장한 메시지.
모두의 눈앞에 같은 메시지가 등장했는지, 하던 행동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했다.
‘100점? 이게 뭐지? 따로 보상은 안 주나?’
이런 내 궁금증에 답을 하듯.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점수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어? 2점이라는데?”
“난 3점.”
“나도 3점.”
여주팀은 대체로 1~3점의 점수를 획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성남팀 멤버들은 마지막에 구슬 깨기 빼곤 한 게 없음에도 각각 2~3점을 얻었다.
[점수를 이용해 이벤트 상점에서 원하시는 물건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이벤트 상점을 이용하시겠습니까?]
추가로 이어진 메시지.
그 메시지를 본 나는 비로소 이벤트 몬스터의 보상체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이건?”
상점을 이용하겠냐는 메시지의 물음에 그렇다고 체크를 하니 눈앞에 사진과 정보가 들어간 리스트가 생겨났다.
이벤트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특수하기 그지없어서, 이벤트 몬스터 주제에 필요 이상으로 위험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중 가장 윗줄에 위치한 아이템이 바로 이거였다.
[귀환 스크롤 / 가격: 3점]
-스크롤을 찢으면 마지막에 방문한 웨이포인트로 즉시 이동된다.
내 가족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어 줄 아이템이 예상 밖의 장소에서 등장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흥미를 잡아끄는 아이템이 많아서 나와 성남팀, 여주팀의 인원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저마다 상점창을 들여다보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