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화 강화 3단계 (1)
오염된 계곡은 꽤나 규모가 컸다.
물줄기의 폭은 30미터 이상 되어 보이고 계곡의 지형을 보면 깊이도 상당할 것 같았다.
계곡 주변으론 자갈과 바위가 빼곡하게 깔려있고, 안쪽에는 절벽이 거대한 계단처럼 층이 나뉘어 있었다.
자연히 그런 절벽을 타고 계곡물이 흘러 폭포를 이루고 있었는데···.
“웁!”
“내, 냄새.”
-멍.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피부병과 폐병에 걸릴 것 같은 고약한 냄새 때문에 폭포는 멋져 보이긴커녕 똥물을 뿌리는 분무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검은 물질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의 바위와 자갈에도 기름때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지난번 엘더 크림슨 로드도 하수구에서 튀어나오더니, 고레벨의 엘더들이 숨어 있는 장소는 하나같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나는 바위에 붙은 검은 덩어리를 인벤토리에서 꺼낸 단검으로 살짝 뗀 다음 파이어 스킬로 불을 붙여 봤다.
만약 이곳이 인화 물질로 가득 찬 곳이라면 스킬 사용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 불이 붙진 않네요.”
아무래도 단순한 오물이었던 모양이다.
인벤토리에서 휴지를 꺼내 단검을 닦은 다음 휴지를 태워버린 나는 윌리아와 함께 시력 강화로 주변을 구석구석 살피며 우선 지형부터 파악했다.
머지않아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지도를 완성한 우린 추가로 몬스터 배치 상황을 파악했다.
“타락한 정령은 하급 이상만 길들였네.”
“숫자가 상당해요. 엘더의 부하들 전력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겠는데요?”
아무래도 타락한 최하급 정령은 너무 약해서 쓸모없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최하급 정령의 레벨조차 30~40대 정도임을 생각하면 이곳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었다.
“대략 하급 150마리, 중급이 10마리 정도 되네요.”
내 말에 윌리아가 센 숫자도 비슷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락한 하급 정령의 레벨은 60~70대, 중급은 90~100대다.
그런데 타락한 중급 정령의 레벨이 90~92까지만 있는 것을 보면 엘더몬스터의 레벨이 시에나에게 들었던 것보다 조금 더 높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일반 몬스터보다 엘더몬스터가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해도,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길들이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엘더는 보이지가 않네요.”
“음···.”
몬스터들의 배치 현황은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중요한 엘더몬스터의 위치를 모르겠다는 사실이었다.
어딘가에 숨어 있긴 할 텐데···.
우린 머리를 모으고 고민을 해야 했다.
“원거리에서 폭발 스킬로 하급 정령들 날려 버리고 반응을 보는 게 어떨까요?”
그건 윌리아의 제안이었다.
여차하면 도망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서 내뱉은 제안.
폭발 스킬이 요란한 만큼, 엘더도 깜짝 놀라 튀어나오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일단 엘더의 모습을 눈에만 담아도 성공이다. 적어도 외형을 보면 어느 정도 전투 스타일을 예상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윌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도주용으로 마력 좀 남겨 두고 전부 쏟아부어 버리세요.”
“네!”
인벤토리에서 희귀등급의 장비인 현자의 지팡이를 꺼내는 윌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힐러인 그녀에게 딜러를 겸하게 해도 될지 고민이 많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본인의 성향도 프리스트보다 이쪽이 더 맞는 듯했다.
폭발 스킬을 쓸 때, 저 상쾌해 보이는 미소를 보라.
“폭발, 폭발, 폭발.”
-콰아아아아앙!
-콰아앙! 콰아아앙!
막강한 화력의 공격이 펑펑 터지는 게 상당히 기분 좋은 모양이다.
하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속이 다 시원한데 본인은 오죽하겠는가.
폭발을 정면으로 맞으면 하급 정령은 단번에 골로 가고, 빗맞아도 꽤나 큰 타격을 준다.
더구나 윌리아의 마력은 내 두 배에 달한다.
마력 수치가 100을 가볍게 넘어 마력을 5나 먹는 폭발 스킬을 20번 넘게 사용할 수 있단 뜻이다.
그런 그녀가 마음 놓고 폭발을 난사하니, 오염된 계곡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타락한 정령들은 우왕좌왕 댔다.
-쉐에에엑!
그렇게 윌리아의 폭발 스킬의 연사 횟수가 20번에 가까워졌을 때.
검붉은 빛의 무언가가 윌리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아앙!
나와 멍멍이가 동시에 나섰으나, 내가 한발 빨랐다.
이어서 그 정체 모를 공격을 검으로 쳐냈다.
총탄까지 검으로 쳐내는 게 나다.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찌릿.
손에 남아 있는 강렬한 반발력에 나는 굳은 표정으로 이 공격을 날린 대상을 바라보았다.
[엘더 이블 스피릿 크리프 / 레벨: 93]
그리고 깜짝 놀랐다.
시에나와 똑 닮은 엘프가 그곳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닮긴 닮았는데, 살짝 다르다.
아까 만난 시에나가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은 생김새였다.
거기에 검붉은 기운을 전신에서 줄기줄기 뿜어대고, 검은 혈관이 뺨과 목, 팔다리에 도드라져 있어서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처럼 보였다.
또한 다른 정령들은 유령처럼 신체가 반투명한 반면 녀석은 피륙으로 이뤄진 엘프, 정확히는 타락한 엘프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엘더답게 특수개체란 분위기를 팍팍 풍겼다.
“녀석에게 폭발 스킬 써주세요.”
“네.”
윌리아의 마력도 얼마 남지 않아 일단 물러났다가 마력을 채운 뒤에 다시 올 생각이다.
하지만 가기 전에 녀석의 공격을 몇 차례 더 경험하고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리아는 내 지시대로 엘더 몬스터를 노렸는데.
“어?”
“은신?”
엘더 몬스터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윌리아는 공격을 하려다 대상을 놓쳐 당황했고, 이런 우리를 보고 비웃듯.
-쉐에에엑! 쉐에엑!
검붉은 오러 공격이 예상밖의 위치에서 연이어 날아들었다.
“폭발!”
공격과 동시에 은신이 풀리기는 녀석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크리프가 절벽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윌리아는 녀석에게 재빠르게 타깃포인트 스킬을 사용한 후 폭발 스킬을 사용했다.
아주 현명한 대처.
타킷포인트는 원거리 공격 스킬이 적을 따라가게 만드는 유도탄 기능을 부여한다.
때문에 폭발 스킬이 깃든 압축 마력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날아가며 크리프를 노렸다.
“어?”
-푹!
그 사이, 나는 검을 휘둘러 다시금 녀석의 원거리 공격을 상쇄하려 했다.
이번엔 4개의 공격이 날아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총알조차 튕겨내던 내가 4개의 공격 중 2개를 막고, 2개를 놓쳤다.
그 대가로 오른쪽 어깨와 왼쪽 가슴에 공격이 틀어박혔다.
“큭!”
내가 그 공격을 놓칠 거라 예상하지 못한 윌리아와 멍멍이가 깜짝 놀랐다.
“백호님!”
-멍멍!
내 방어구의 성능이 좋은 덕인지, 아니면 엘더 몬스터 크리프가 의도한 건지 관통상을 입진 않았다.
하지만 부상 수준이 결코 적지 않았는데.
이유는 녀석의 공격이 마법계 스킬이 아닌, 화살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꽤나 악랄한 촉이 달린 화살이었다.
‘차라리 관통상을 입는 게 나았겠어.’
치료를 위해선 화살을 빼야 하는데, 당장 조치하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부상 정도가 심하더라도 관통상을 입었으면 바로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
“일단 물러나죠.”
내 말에 윌리아와 멍멍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린 동시에 도주를 시작했다.
[전투 상황이 해제되었습니다. 안전텐트의 설치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어그로가 풀리면서 안전텐트를 설치할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화살이 갑옷을 뚫은 탓에 조심스럽게 장비들을 해제했다.
나는 상급회복물약을 꺼내 놓고.
-뚜두둑!
“끄윽!”
힘으로 화살을 뜯어냈다.
그러자 살이 뭉텅이 떨어져 나가 몸에 흉측한 구멍이 생겼다.
이 화살은 근력 수치가 낮으면 아예 뜯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유는 갈고리에 미늘이 더해진 낚시바늘 형태의 날개가 화살촉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회복 물약은 나머지 화살까지 떼어내고 써야 한다.
아직 화살이 박힌 상태에서 회복 물약을 사용하면, 몸속에 남은 화살과 회복한 살이 뒤엉켜 더욱 단단히 파고들게 될 테니까.
-뚜두둑!
“여기요!”
이어서 내가 두 번째 화살까지 뜯어내자, 윌리아가 급히 상급 회복 물약을 열어 내 상처에 부었다.
그러자 부상이 빠르게 아물며 금세 깔끔하게 회복되었다.
“어휴, 죽겠네.”
팔이 잘리고 몸이 꿰뚫리는 등의 부상을 입어봤지만, 고통으로만 치면 단연코 오늘이 탑이었다.
“총알까지 튕겨내던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히 화살을 쳐내실 거라 생각했어요.”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엘더는 엘더네요.”
윌리아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타올을 꺼내 내가 흘린 땀을 닦아 주었고, 나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엘더 몬스터 크리프의 공격을 쳐내지 못한 이유는 화살이 공중에서 방향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고도 쳐내기 힘들 만큼 빠르게 휘어져 들어왔다.
덕분에 찌르기 공격은 ‘점’으로, 베기 공격은 ‘선’으로 표시하는 검술 스승의 경로 예측 기능이 처음엔 점으로 표시했다가 이내 선으로 바뀌었다.
‘야 오티스, 전투보조 기능을 그런 식으로 보여주면 어떡해? 점이었다가 선으로 바뀌면 헷갈리잖아.’
내 물음에 지금껏 잠자코 있던 오티스가 당황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화살임에도 공중에서 휘둘러지듯 방향을 바꾸는데, 결국 점을 이동경로에 따라 표시하다 보니 선이 된 거죠.]
점을 이으니 선이 되었다?
하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미리 엘더의 공격을 봐서 다행이에요. 이렇게 강한 궁수는 처음 상대해 보는 거잖아요.”
윌리아의 말대로다.
그나마 빠르게 주무기와 공격방식을 보고 물러난 덕에 공략법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작전회의가 시작되었다.
[공격 경로가 변하는 화살은 칼날로 쳐내기가 힘드니, 폭이 넓은 검면을 활용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오티스의 제안은 제법 합리적이었다.
“아, 그거 있잖아요.”
“그거요?”
더불어 윌리아도 최선의 제안을 했다.
“예전에 검술스승 아이템 소유주가 쓰던 아이템이요.”
“아···.”
나는 한손반 장검을 주로 사용한다.
이유는 별것 없다.
그냥 검도를 배우던 시절부터 그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내 근력이면 한손반 검은 물론, 양손검조차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다.
즉, 지금의 무장을 지키면서 추가 장비를 활용할 여유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윌리아에게 좋은 생각이라며 따봉을 날려 주었다.
***
“과연 그들이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평택 고등산 이상 지형은 매우 규모가 크다.
그 안엔 강화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넓은 사냥터와 한쪽에는 엘프들이 생활하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엘프 마을의 인구는 총 30명.
그런 30명의 엘프 중에서도 서열 1위에 해당되는 시에나는 꼰대 기질 다분한 엘프 중에서도 호기심이 왕성한 특이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서백호에게 임무를 주면서도 과연 그가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자 몰래 오염된 계곡으로 향했다.
-콰아앙! 콰아앙!
그리고 머지않아 시에나는 서백호 일행과 엘더 몬스터와의 전투를 볼 수 있었다.
정확하겐 서백호 일행이 엘더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며 부하들부터 쓸어버리는 모습이었다.
“그 검은 강아지는 안 보이네? 어디 갔지?”
그들의 작전은 심플했다.
서백호가 엘더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며 가까이 다가오는 몬스터를 베고, 윌리아가 폭발 스킬로 멀리 떨어진 적을 처치했다.
말은 쉬운 것 같아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오염된 계곡에 자리한 엘더 몬스터는 매우 귀찮은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대단한걸?”
그런데 서백호는 너무도 단단하게 엘더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냈다.
바로 방패를 이용해서.
“안정적이야.”
앞선 미군과의 전투에선 서백호가 방패를 들지 않아 검만 쓰는 줄 알았던 시에나였다.
그러니 서백호 일행의 안정감 있는 실력에 감탄해야 했다.
덕분에 서백호가 모르는 곳에서 그에 대한 시에나의 호감도가 더 올랐다.
“아, 블링크를 이용한 치고빠지기로 엘더의 부하들을 줄이는 건가? 과연 그래서 강아지를 두고 온 거였어.”
서백호 일행은 무리하지 않고, 마력이 떨어지면 뒤도 보지 않고 블링크로 도망쳤다.
화가 잔뜩 난 엘더 몬스터는 난동을 부렸지만, 시에나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남의 얼굴을 베낀 짝퉁이···. 꼴 좋네.”
이 이상지형을 벗어나 외부를 둘러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시에나로선 서백호야말로 최고의 파트너라 여겨졌다.
“???”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뭐야? 마력만 채워서 돌아오는 거 아니었나?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서백호 일행을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전투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도망간 건? 에이 아니겠지.”
서백호 일행을 기다리는 건 시에나뿐만이 아니었다.
엘더 몬스터 크리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한참을 기다려도 서백호 일행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
윌리아의 작전은 바로 방패를 드는 거였다.
검술스승 오티스의 전 소유주가 들고 있던 희귀등급의 방패이며, 방패 자체에 철벽의 방패술이란 액티브 스킬이 달려 있다.
이 스킬을 이용하면 사각에 날아드는 공격조차 막아낼 수 있다.
심지어 아이템의 기본 방어력도 매우 뛰어나서 이전처럼 허무하게 일격을 허용하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우린 효과적으로 엘더몬스터의 부하들을 줄여나갈 수 있었고.
머지않아 엘더 몬스터와 타락한 중급 정령밖에 남지 않았다.
우린 잠시 후퇴하여 정비를 이어갔다.
“하하, 정령석 대박!”
그런데 지금 나는 앞선 전투만으로도 만족할만한 보상을 얻어 기분이 업된 상태였다.
바로 대량의 하급 정령을 잡고 30개가 넘는 정령석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정령석은 무기 강화에도 쓰이지만, 자체적으로 큰 전력을 머금은 배터리이자, 열기를 내뿜는 온풍기다.
이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선물해주면 받는 사람들 누구나 좋아할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내가 인벤토리에 쌓인 정령석을 보면서 얼마나 좋아했을까?
[문제는 지금부터인 거 아닙니까?]
“그건 그래. 이제 남은 건 레벨 93의 엘더와 레벨 90대의 중급 정령 10마리니까. 지금부터가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지.”
“저희가 성장의 탑 공략이 10층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레벨 90이 넘는 몬스터가 떼 지어 나와서였으니까요.”
나를 현실로 잡아끄는 오티스와 윌리아의 이야기에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둘의 말대로 지금부터가 관건이었다.
이제부턴 레벨 90이상의 고렙 몬스터 사이에서 싸워야만 했으니까.
‘엘더의 화살을 막아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게 녀석의 전력은 아닐 거야. 무슨 비장의 수가 또 있을지 알 수 없어.’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상황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이끌 확실한 타개책을 마련해야 했다.
“음···.”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나는 손에 들려 있던 정령석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고.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굳이 바로 이어서 싸울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요?”
“네?”
내 말에 윌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다른 제안을 했다.
“강화부터 하고 오는 게 어때요?”
“아!”
강화를 한다면 크리프를 상대하기도 더 수월해질 테고, 애초에 성장의 탑을 나왔던 것도 강화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의해서였었다.
계획이 세워지자 우린 곧장 홍성으로 떠났다.
*
잠시 후, 홍성에 도착한 우린 대장장이 NPC 토레프로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 겸 재차 들을 수 있었다.
“오, 나의 오랜 벗. 서벗호 왔는가?”
사람을 무슨 셔벗(샤베트)처럼 부른다.
“안녕하세요. 3강에 도전하려고 왔습니다.”
“3강부턴 정령석이 필요한데?”
그리 묻는 토레프에게 정령석을 몽땅 꺼내 보여줬더니 눈을 빛냈다.
“오오, 정령석을 벌써 이렇게나 많이 구해오다니!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하네. 3강부터는 실패시 장비가 파괴될 수도 있다는 걸.”
3강의 강화 성공률은 50%.
만약 강화에 실패하면 장비는 파괴되고 만다.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강화 성공시 아이템 등급이 오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요?”
“그건 그렇지.”
“그럼 도전해 봐야죠.”
“좋아, 자네 뜻이 그러하다면 내 기꺼이 솜씨를 발휘해보지.”
그전에 잠깐.
혹시 몰라 나는 토레프에게 정령석 하나를 선물로 주기로 했다.
행여 호감도가 오르지 않을까 해서.
인간에게도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쓰일 정령석인데, NPC에게도 쓰임새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는 토 부장님한테 드리고 싶어요.”
“저, 정말인가? 구하기 쉽지 않은 물건일 텐데.”
“친구잖아요.”
“허허.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냉큼 정령석 하나를 받아든 토레프의 얼굴이 싱글벙글해졌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모양이었다.
[토레프의 호감도가 60%를 달성했습니다.]
호감도가 강화에 영향을 주리란 보장은 없다.
어디까지나 이건 만에 하나를 위한 대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겐 강화에 영향을 줄 확실한 대비도 되어 있으니···.
바로 이것이다.
[마법의 가루]
-3강 이상의 장비 강화 시 성공확률을 20% 향상시켜준다.
[축복의 가루]
-3강 이상의 장비 강화 실패 시, 50% 확률로 장비가 파괴되지 않는다.
이벤트 몬스터를 잡고 얻은 점수로 구매한 아이템들.
이 두 아이템을 사용하면 3강의 강화 성공률은 70%가 되고, 강화 실패 시 장비 파괴 확률은 100%가 아닌 50%가 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도전할 만하지 않은가.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아니, 미끄러지면 안 되잖아?
황당해서 따지려 하니, 토레프가 짓궂게 웃는다.
“농담일세! 하하!”
사람 식겁하게 만드는 농담을 하고 있다.
그후, 토레프는 내가 건넨 장비를 두들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