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화 강화 3단계 (2)
이벤트 상점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쟁여 놓은 마법의 가루와 축복의 가루 덕분에 강화 성공률 70%에 실패 시 파괴확률 50%가 되었다.
이 정도면 상당히 높은 확률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쨌든 100% 성공확률인 건 아니란 것.
그렇기에 무턱대고 장비를 강화하기보다, 만약 없어져도 크게 문제 되지 않거나.
기존의 장비로 어느 정도 대체가 가능한 아이템부터 강화를 하려 한다.
가장 먼저 강화할 건 무기다.
내 무왕의 보검과 윌리아의 현자의 지팡이, 두 개 모두 희귀등급의 장비다.
나의 경우 희귀등급에 미치진 못하더라도 그에 비견되는 무기가 있고, 윌리아의 지팡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강화 성공 시 가장 크게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장비인 만큼, 우선 무기부터 강화하기로 했다.
‘강화 성공률 70%? 아니 실제로는 그보다 더 높을 거야.’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아이템 때문이다.
[행운의 탈리스만 / 등급: 희귀]
-소유자에게 행운을 더해주는 아이템.
-인벤토리에 보관해 두면 효과가 적용된다.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그 운은 ‘행운의 탈리스만’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나는 인벤토리를 열고, 행운의 탈리스만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하나님! 부처님! 행운의 탈리스만님! 깨지지 않게 해주세요!’
강화 성공률이 단 10%여도 단번에 성공할 수도 있는 게 확률의 세계이다.
70%의 확률에 행운의 탈리스만이 더해지면, 충분히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두구 두구 두구 구구.
마치 귀에서 게임의 웅장한 BGM이 들리는 기분이다. 가챠를 돌릴 때처럼.
제발 성공해라, 꽉 다문 입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그 순간.
“휴, 일단 두 개.”
토레프도 덩달아 긴장을 했었는지, 이마에 땀을 훔친다.
난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의 보호자처럼 조마조마해진 채 결과를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직접 봐.”
토레프가 나와 윌리아에게 무기들을 돌려주었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강화는?
[무왕의 보검이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현자의 지팡이가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좋아!”
무사히 무기 강화에 성공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윌리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뒤이어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발생했다.
[축하드립니다. 최초로 강화 3단계에 성공하셨습니다. 위대한 업적이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됩니다.]
[보상으로 특수~희귀 등급 장비 뽑기권을 획득했습니다.]
바로 최초업적 달성 메시지였다.
최초 강화 업적 보상은 어느 미국인이 받았다.
내가 왕창 2강을 했을 때도 업적 보상이 뜨지 않더니, 난데없이 3강에서 업적 보상을 준다?
정말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3강부턴 이런저런 조건이 필요한 만큼, 난이도가 높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일단 대장장이 NPC의 호감도 50%를 달성해야 하고, 정령석이란 귀한 특수 아이템을 추가로 구해와야 하며, 강화의 실패 확률도 제법 높다.
‘마법의 가루와 축복의 가루가 없다면 3강 성공률은 50%, 강화 실패 시 장비 파괴확률 100%니까.’
즉, 3강부턴 이전의 강화와 여러모로 의미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뭐, 나야 보상을 주면 땡큐지.’
더구나 아이템 뽑기권이 아닌, 장비 뽑기권이다.
적어도 특수 등급은 보장이 되는 장비 뽑기권.
어쨌든 뽑기권은 강화가 모두 끝난 다음 쓰기로 하고, 나와 윌리아는 이어서 방어구 강화를 이어갔다.
“정령석도 정령석이지만, 미스릴도 이만한 양을 용케 모았군?”
“운이 좋았죠.”
3강에 필요한 재료는 정령석만 있는 게 아니다.
한 번 강화하는 데 미스릴 주괴도 3개씩 소모된다.
미스릴은 대장장이 토레프가 숨어 있는 이곳 ‘잊혀진 광산 던전’을 털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수량인데, 날 잡고 종일 광산 던전에 처박혀 있어도 원하는 만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날마다 곡괭이질을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나는 이 점에 대해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가만히 있어도 지속적으로 미스릴이 수중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게 모두 가의도 멤버들과 뚱이 덕분이지.’
나는 지금도 열심히 뺑이 치고 있을 가의도 멤버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토레프는 방어구들도 강화를 끝마쳤다.
[네빌의 가죽갑옷(상의)이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루시엘라의 원피스가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가이더의 전투복 하의가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바람의 부츠가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익스퍼트의 부츠가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
.
.
[크리쳐 보아 망토 로브가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카르시아의 로브가 강화 3단계를 달성했습니다.]
성공의 연속.
당연히 나와 윌리아의 표정도 계속해서 밝아졌다.
하지만···.
[미스릴 각반의 강화 3단계가 실패했습니다.]
[매지션 팔토시의 강화 3단계가 실패했습니다.]
[아칸의 세이버의 강화 3단계가 실패했습니다.]
3개의 장비가 연속으로 실패하고.
[미스릴 각반이 파괴되었습니다.]
그중 내가 착용하고 있던 각반은 아예 파괴가 되었다.
“끄악.”
뼈아픈 손실이다.
그래도 괜히 강화를 시도했나 하며 후회가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거야.’
미스릴 각반은 이동계열 스킬의 효과를 높여 주는데, 아깝긴 해도 전투력에 아주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고 예전에 보령팀을 처치하고 얻은 아이템이라 원래 사용하던 장비도 그대로 남아있다.
원래 장비의 성능도 나쁘지 않아서 충분히 대체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각반보다 아칸의 세이버가 파괴되었다면 더욱 큰일이었을 거다.
아칸의 세이버는 무왕의 보검에 밀리긴 했지만, 아직도 속도 위주의 전투를 할 땐 자주 사용하는 무기였으니 말이다.
강화에 실패했으나 살아남은 아칸의 세이버와 매지션 팔토시는 다행히 재강화에 성공했다.
“총 18개 장비를 강화해서 17개 강화 성공 완전파괴 1개라니. 자넨 운이 참 좋구만? 하하!”
확실히 이 정도면 대성공이라 할 수 있다.
역시 행운의 탈리스만의 덕인 걸까?
“그런데 그 장비 3개는 강화하지 않는 건가?”
나는 대장장이 토레프가 가리키는 장비들을 보았다.
오른쪽 허리춤에 채워진 성검과 춤추는 단검.
머리 위에 씌워져 있는 투명한 투구, 바로 빛을 엮어 만든 투구까지 3개다.
빛을 엮어 만든 투구는 남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 장비인데, 역시 토레프에겐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것들은 대체할 장비가 없어서요.”
“하긴, 그것도 그렇지. 성검은 유일 등급이고, 나머지 두 개 역시 희귀등급 장비 중에서 유일 등급에 가까운 물건들이니.”
토레프는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당 장비들은 당분간 2강에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다만 각반은 예전에 사용하던 걸 가져다 임시로 쓰고, 나중에 사냥꾼 협회 경매장에서 특수등급 이상의 각반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아, 그전에 업적 보상으로 받은 뽑기권을 쓰자.’
나는 별생각 없이 뽑기권을 사용했다.
그런데.
[빛을 엮어 만든 장갑 / 등급: 희귀]
-보유자의 양손을 보호하는 장갑이며,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 장비.
-미스릴 합금 이상의 강도를 가지고 있어, 최상급 스킬로도 쉬이 파괴되지 않는다.
-검기와 검강의 유지 시간을 2배로 늘린다.
-마력+6
“어?”
특수~희귀라면 특수 등급이 나올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데 ‘희귀등급’의.
그것도 투구와 짝을 이루는 장비가 나오다니.
나는 얼떨떨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옵션이 미쳤다.
‘검기와 검강의 유지 시간이 2배로 늘어난다는 건, 마력소모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뜻과 같잖아?’
검기와 검강의 유지 시간은 고작 1초.
그러나 이 장갑을 끼면 2초로 늘어난다.
더 적은 마력을 소모하고, 검기와 검강에 더 긴 유지 시간을 부여한다는 거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난 새 아이템을 사랑스럽게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곧장 토레프에게 내밀었다.
“응? 장갑? 그것도 강화하려고?”
“네, 일단 2강까지만요.”
3강까지 했다가 깨지기라도 하면 참사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딱 2강까지만 부탁했고, 토레프는 빠르게 강화를 마치고 내게 돌려주었다.
난 기존의 장갑을 벗어 빛을 엮어 만든 장갑을 착용했다.
그러자 반투명한 실크 느낌의 장갑이 이내 투명하게 변해 존재감이 아예 없어지며, 장갑을 낀 채 사물을 만져도 맨손으로 만지는 것 같은 촉감이 느껴졌다.
매우 방어력이 높은 장갑임에도 손에 아무런 이질감이 들지 않으니, 실제 검을 쓸 때도 꽤나 유리할 것 같았다.
검법에선 손끝 감각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마도 ‘빛을 엮어 만든’ 시리즈가 희귀등급 중에서도 최상위 장비인 게 아닐까.
‘제대로 업그레이드하고 가네.’
역시 아이템 강화를 하기 위해 오는 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강화로 인해 나는 능력치가 8, 윌리아는 9가 올랐다.
하지만 능력치는 어디까지나 부수 효과다.
-후웅! 후웅!
-팅. 팅.
3강으로 강화된 검을 휘둘러 보고, 방어구를 손가락으로 튕겨 보니, 이전과 전혀 다른 소리가 났다.
장비의 질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검은 더욱 예리하고 단단하게, 방어구는 더욱 견고하고 튼튼하게.
더구나 가벼운 데다가 움직이기도 훨씬 편해지고, 무기의 질이 좋아져서인지 스킬의 위력 또한 상승한 느낌이 들었다.
3강부턴 마치 등급이 하나 오른 것과 같다는 게, 이 때문이었다.
‘전체적으로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정도면 이전보다 수월한 전투가 가능할 터.
때문에 나와 윌리아는 만족감을 드러내고, 동시에 사냥을 잠시 멈추게 한 엘더 몬스터 크리프를 생각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이 정도면 싸울 준비는 된 것 같죠?”
“네!”
그렇게 우린 대장장이 토레프의 배웅을 받으며 홍성을 벗어났고, 다시 평택의 고등산 엘프 영역으로 향했다.
*
평택의 오염된 계곡으로 돌아오니, 대략 1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그사이 엘더 몬스터 크리프는 놀지 않고 자신의 부하를 늘려 놓았다.
비록 이전처럼 하급(레벨: 60~70) 이상의 타락한 정령이 아니라 최하급(레벨: 30~40)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장비 효과 실험하기 딱이네.”
오염된 계곡에 다가가니 타락한 최하급 정령들이 즉시 달려 들었고, 나는 예리한 검명을 흘리는 무왕의 보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무런 스킬도 쓰지 않았음에도 최하급 정령들이 반듯하게 찢겨 나갔다.
‘최곤데?’
그야말로 보검.
나는 신이 나서 검무를 추듯 연속으로 검을 휘둘렀다.
최하급 정령들은 다가오는 족족 속수무책으로 베어지고, 몬스터를 처치하면 발생하는 푸른 빛 가루가 봄 날의 벚꽃잎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좋은 검을 장비하니, 마치 도구를 든 게 아니라 내 손이 길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훨씬 빨라진 사냥 속도는 덤이고.
잡몹 정리는 이전처럼 했다.
엘더 몬스터나 타락한 중급 정령의 공격은 최대한 피하거나 방어하고 잡몹부터 쓸어 버린 것이다.
“오래 기다렸지?”
[빌어먹을 인간들이.]
그리고 잡몹의 정리가 끝나니, 다시금 엘더 몬스터와 레벨 90대의 중급 정령 10마리만이 남게 되었다.
내 칼질을 기준으로 최하급은 한 번.
하급은 두세 번.
중급은 못해도 열 번 이상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즉, 지금부터 상대할 놈들에겐 이전처럼 치고빠지기 전법이 통하지 않는단 뜻이다.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건 익숙하다.’
문제는 엘더가 포함된 고레벨의 적 다수와 싸우는 건 처음이란 거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힘과 경험, 동료를 믿기로 했다.
더구나 장비도 충분히 강화된 상태니까.
뭐, 그러다 정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치면 되겠지.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윌리아 님!’
내 텔레파시에 윌리아는 엘더가 아닌, 타락한 중급 정령 한 마리에게 타깃포인트 스킬을 사용했다.
확실하게 하나씩 숫자를 줄여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멍멍이의 역할이다.
내가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며 싸우다 보면, 자연스레 윌리아의 방비가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럴 때 윌리아를 보호해줘야 하는 게 멍멍이이기 때문이다.
섀도우 울프로 진화한 후로 멍멍이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을 시킨 적이 없기에 알아서 잘해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무왕의 보검 +3강을 뽑아 든 채로.
전력을 다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쿵!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 도약스킬을 사용함으로써 가속력을 더하고,
새 장갑 덕에 유지 시간이 길어진 검강을 무기에 씌워 적들을 압박했다.
-콰아아앙!
그때, 윌리아가 타깃포인트로 지정한 몬스터의 머리 위로 폭발 스킬이 연이어 떨어졌다.
윌리아가 노린 타겟은 무리 정중앙에 위치한 몬스터.
때문에 스킬을 피해 녀석들이 이리저리 흩어졌고, 덕분에 나는 다른 몬스터들의 방해 없이 한 놈을 베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공격의 깊이가 얕았다.
레벨 90쯤 되니 일반 몬스터도 움직임이 기민하기 그지없고, 내 일격을 몸을 비틀어 피해냈다.
온몸이 근육질로 이뤄진 아재부터, 아리따운 여성과 철없어 보이는 꼬마까지, 타락한 중급 정령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공통된 점이 있으니, 모두 대응이 신속하단 것이다.
[죽여!]
엘더의 외침에 중급 녀석들이 눈에 불을 켜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 또한 예상한 상황이기에 당황할 것 없이, 나는 바로 다음 동작으로 들어갔다.
‘뇌력참’
-콰앙!
내가 가진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스킬.
뇌전의 힘을 머금을 참격이 뻗어 나가며, 앞서 내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낸 녀석의 머리를 장작처럼 쪼개 버렸다.
동시에 검에서 폭발하듯 비산된 전류가 접근하던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를 위해 있는 게 성검이지.’
그렇게 나는 성검을 뽑으며 크게 휘둘렀는데···.
-쿵!
성검을 휘두르던 나의 손을 노리며 엘더 몬스터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화살은 정확하게 내 손등을 때렸다.
이전이라면 맥없이 손에 구멍이 생겼겠지만···.
“땡큐, 검에 가속도를 더해주네.”
바로 직전에 희귀등급의 빛을 엮어 만든 장갑으로 방어구를 교체한 덕분에 손은 멀쩡했고, 검은 더욱 빠른 속도로 휘둘러졌다.
-후웅!
-키에에엑!
덕분에 앞서 머리를 쪼갠 녀석에 이어 추가로 두 마리를 처치할 수 있었다.
중급 정령이 죽임을 당할 때마다 시에나를 닮은 크리프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다음은 네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