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87화 (87/273)

087화 인천 제주 부산 (1)

“고생한 만큼 좋은 보상 기대하마.”

-쿠쿵!

뇌전의 기운을 품은 검이 제대로 꽂히자 엘더몬스터 크리프의 머리가 터져 나가고, 사방으로 전류가 흩어지며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하지만 녀석의 본체를 알게 된 나는 이걸로 죽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강으로 녀석을 난도질하고 또 난도질했다.

점점 손에 들린 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중간중간 무왕의 보검 내장 스킬인 난격을 섞으며, 크리프를 잘게 쪼갰다.

그런데.

-스스스.

좀처럼 토벌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고 했더니, 흑갈색의 진흙 덩어리가 땅속으로 스며드는 게 보였다.

‘윌리아 님!’

나는 바로 텔레파시로 윌리아를 불렀고, 그녀는 즉시 폭발 스킬을 날려왔다.

그리고 나는 폭발스킬을 머금은 압축된 마력이 날아오는 동안, 다시금 땅속에 검을 꽂아 넣으며 뇌력참을 사용했다.

‘블링크.’

-콰아아앙!

이어서 곧바로 블링크를 사용하니, 강렬한 폭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끼아아아아!]

“윽!”

귓가에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

그에 윌리아가 인상을 찌푸리고, 나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잠시 머리 위에 씌워놨던 실루엣 고글을 다시 내렸다.

이번에도 실루엣 고글에 잡히는 게 없다.

아까처럼 땅속에 숨었단 뜻이다.

몇 대만 더 때리면 끝날 것 같긴 한데, 참 귀찮게 군다.

그런데 그때.

“도와줄까?”

우리의 뒤쪽으로 펼쳐진 숲에서 한 여성이 걸어 나오며 말을 걸어왔다.

금발 포니테일에 앳된 외형과 그에 어울리는 작은 체구를 가진 엘프.

바로 엘더 몬스터 크리프의 토벌을 우리에게 의뢰한 당사자의 등장이었다.

“시에나 님?”

“녀석이 땅속에 기어들어가서 문제인 거잖아? 내가 꺼내 줄게.”

퀘스트를 준 NPC가 직접 상황에 개입하다니?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아야 했다.

비록 이곳이 이상지형 내부라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활동할 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일 월광도란 무인도의 안전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헤롤드가 보면 부러워할 모습이다.

“함께 싸워주시는 겁니까?”

내 물음에 시에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싸우진 않아.”

“그럼 어떻게?”

“녀석의 얼굴 봤잖아. 그 녀석이 생각보다 내게 집착이 강하더라고.”

“네?”

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보라며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시에나?]

놀랍게도 엘더몬스터 크리프가 반응하며 목소리를 냈다.

나는 이게 뭔 상황인지 몰라 의문을 표하면서도.

잘하면 그녀가 말한 대로 크리프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스스스.

그리고 곧이어.

땅속에서 흑갈색의 진흙이 꿀렁거리며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지금!”

그에 시에나가 외치고.

나는 즉시 블링크로 공간이동을 하며 검을 휘둘렀다.

내 손에 들려 있는 검은 무왕의 보검이 아닌, 아칸의 세이버.

‘일섬.’

나는 쏜살같이 일도양단의 스킬인 일섬을 사용했다.

검집을 거칠게 벗어난 세이버가 자색의 빛을 발하며 공간을 갈랐다.

내가 가른 공간은 지면과 크리프가 맞닿은 곳이다.

덕분에 녀석은 순간적으로 땅과 분리가 되었고.

‘디딤판.’

나는 그런 크리프의 본체와 지면 사이에 디딤판 스킬을 사용해 또다시 땅속에 스며들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콰아앙! 콰아앙! 콰앙!

어느새 바로 내 뒤에 근접한 폭발스킬을 피해 몸을 날리니, 강렬한 폭음이 연이어 터지며 일대를 진동시켰다.

[엘더 이븐 스피릿 크리프를 토벌하여 경험치 2,100,000을 획득했습니다.]

[타락한 흉내 내기 정령을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500,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드디어 떠오른 토벌 메시지.

나는 녀석이 ‘타락한 중급 정령’과 토대가 같아 최초 토벌 보너스는 뜨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최초 토벌 보너스는 단독 개체가 아닌 종류에 부여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크리프는 일반 정령과 다른 흉내 정령이란 개체였고, 덕분에 최초 토벌 보너스가 더해져 2번의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엘더를 토벌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부하들을 처치하며 이미 레벨이 1이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덕분에 나는 ‘레벨 80’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아, 세상이 우리의 사랑을 허락지 않는구나.]

엘더 몬스터 크리프가 푸른빛으로 산화해 사라지는 와중에 마지막 대사를 남겼다.

이미 토벌 완료 메시지가 떴음에도 이렇게 대사를 치는 몬스터를 처음 보았다.

또한 녀석의 미련 가득한 대사에 나는 놀라며 시에나를 바라보아야 했고.

“뭐래, 스토커 새끼가.”

시에나는 얼굴 가득 불쾌함을 드러냈다.

나는 무슨 상황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스토커요?”

“처음 엘더 몬스터가 생겼을 때 호기심에 몇 번 말을 걸긴 했는데, 갑자기 사랑이니 뭐니 이딴 소리 하잖아. 어찌나 소름 돋던지.”

“그럼 외형이 시에나 님과 비슷한 것도?”

“그래, 어떻게든 내 관심 끌어 보겠다고 저 지랄한 거야.”

이곳에서 나는 변화한 세상의 새로운 면모를 많이 보게 되었다.

NPC가 사람(미군)을 공격하기도 하고, NPC가 호기심으로 엘더 몬스터에게 말을 걸기도 하며, 엘더 몬스터는 NPC에게 반해 스토커질까지 한다.

‘하긴, 중국에는 사람들을 부하로 부리는 엘더 몬스터도 있다고 했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여전히 나는 이 세상의 변화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것 같다.

멍멍이도 힘들게 한 크리프가 죽어 속이 시원한지, 빛 가루가 흩어진 자리에 영역 표시를 했다.

소변을 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창을 내려 보상으로 어떤 게 주어졌는지 확인했다.

[엘더 이븐 스피릿 크리프의 토벌 보상을 지급합니다.]

-152,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12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10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레이저 샷’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스네이크 샷’을 획득했습니다.

-저격수의 정밀한 장갑을 획득했습니다.

-저격수의 은밀한 부츠를 획득했습니다.

[타락한 흉내 정령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40,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정령 계약’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백스텝’을 획득했습니다.

무려 최상급 스킬 3개에 상급 스킬 1개, 희귀등급의 장비 2개가 함께 나왔다.

엄청난 보상에 나는 솔직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레이저샷과 스네이크샷은 궁수 전용 스킬이고, 장비들도 궁수용이네.’

아무래도 이 아이템들 모두 시에나를 영입하면 그녀에게 주라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와 윌리아가 사용할 만한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는데.

[정령 계약 스킬북 / 등급: 최상급 / 액티브]

-자신의 레벨과 같거나 낮은 정령과 계약을 하여 소환할 수 있다.

-소모 마력: 10

-정령 유지시간: 30분

-정령 재소환 대기 시간: 1시간

[백스텝 스킬북 / 등급: 상급 / 액티브]

-위급상황에서 빠르게 후방으로 후퇴한다.

-이동 거리: 5미터

-소모 마력: 1

정령 계약은 마력통이 큰 윌리아가 배우고, 백스텝은 근접 전투를 주로 하는 내가 배우면 될 것 같다.

회피기는 블링크가 있다지만, 소모 마력이 1이라는 점에서 메리트가 컸다.

“정령 계약? 좋은 스킬이지. 정령은 한 번 타겟을 지정해 놓으면 자동으로 적을 공격하고. 필요에 따라 몸빵을 시킬 수도 있으니까. 대신 정령은 일정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소멸하고, 재소환까지 1시간의 대기시간이 있다는 게 단점이야.”

혹시나 해서 시에나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자세하게도 정령소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에나 님도 정령소환 스킬 갖고 계신가요?”

“물론이지.”

나중에 시에나까지 합류하게 되면, 강력한 궁수에 정령 2마리가 추가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상상만 해도 멋진 것 같다.’

아무튼 보상의 질과 양 모두 고생한 만큼은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그 대부분은 추후 동료가 될 시에나의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참, 내 의뢰 보상도 받아야지.”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에나의 호감도가 50% 상승합니다.

-엘프 마을의 입장이 허가되었습니다.

-보상으로 희귀등급의 악세서리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시에나 / 호감도: 75%]

아무래도 오래지 않아 시에나를 동료로 영입할 수 있을 것 같다.

호감도를 보니, 어느새 더 올라 있는 게 아니겠는가.

분명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벌써 영입 직전의 호감도를 달성하다니.

이런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내가 그녀를 택했다기보다, 그녀에게 간택 당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나로선 나쁠 게 없다.

그래서 헛웃음을 흘리며 퀘스트 보상인 악세서리 3종을 살폈다.

악세서리는 이렇게 준비되어 있었다.

근거리 전투 스킬 위력 30% 증가 반지.

원거리 전투 스킬 위력 30% 증가 귀걸이.

상급 오토 쉴드 하루 5회 사용 목걸이.

[정렬의 반지 / 등급: 희귀]

-근접 전투 스킬의 위력이 30% 향상된다.

-근력+3

나는 그 세 개 중에 내가 직접 사용할 근접 전투용 반지를 택했다.

윌리아는 적과 가장 많은 공격을 주고받는 게 나인 만큼, 당연한 선택이라며 고민을 도왔다.

“이제 어떡할 거야?”

이로써 평택 고등산 이상지형 내에서의 활동은 일단락되었다.

이후의 일정을 묻는 시에나의 모습에서 우리와 바로 헤어지기 아쉽다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엘프 마을에 입장할 자격을 얻은 이 기회에 한 번 방문이나 해볼까 한다.

“그래? 좋아. 가자 내가 안내해 줄게.”

그리고 시에나를 따라 들어간 엘프 마을.

밖은 추워서 맨살을 내놓고 다니기 힘든 날씨인데도 이곳은 신기하리만치 포근함이 느껴졌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게 할 정도로.

“뭐예요? 여긴 왜 따뜻해요?”

덥다기보단 딱 알맞은 온도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봄과 가을처럼.

“응? 저 나무들 때문일걸.”

시에나는 마을 중심과 외곽에 담처럼 둘러진 나무들을 가리켰다.

은은한 푸른 빛을 내는 나무들.

엘프 마을은 모든 게 신비해 보였다.

동시에 상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상점을 지키는 NPC들까지.

“저도 상점 이용할 수 있어요?”

“물론이지.”

“그런데 저야 시에나님 퀘스트 덕에 들어오게 됐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떡해요? 매번 엘더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일반적인 출입을 위해선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드들의 의뢰를 수행하면 될 거야. 넌 내 개인 의뢰라 특히 난이도가 어려웠던 거고.”

누구나 나처럼 고생해서 엘더를 잡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왠지 손해 본 기분인데.

그러던 중 시에나는 내게 한 상점을 소개해주었다.

“장비들 보니까 대장장이한테 강화한 거 같던데, 그럼 아마 여기를 자주 이용하게 될 거야.”

“여기요?”

“장비에 내장 된 스킬은 다른 스킬과 다르게 강화에 성공할 때마다 위력이 상승하잖아?”

“네, 그렇죠.”

“스킬북만 가져와. 아이템에 스킬을 이식시켜주는 게 바로 여기니까. 반대로 아이템 내장 스킬을 빼내는 것도 가능해.”

손해 본 기분이라 생각했던 것 취소.

한동안은 나를 제외하고 엘프 마을에 입장을 할 수 있는 사냥꾼들이 없을 텐데, 말도 안 나오게 이득이었다.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니 윌리아가 친절히 턱을 올려주었다.

“침 나와요.”

***

인천을 대표하는 사냥팀인 부평팀의 리더 양이태는 자신에게 망신을 주었던 서**으로 인해 사냥꾼협회를 매우 싫어한다.

그런데 자신들에 밀려 2인자 취급을 받던 구월동팀이 최근 사냥꾼협회를 등에 업고 빠르게 세를 확장해나가니, 그 모습이 심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양이태를 비롯한 부평팀의 주요 멤버들 상당수가 건달 생활을 해본 양아치들이기에 자신들의 영역이 침범당하는 것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금 확실히 눌러놔야 한다. 그래야 인천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어. 우리가 하려는 건 미래의 주도권을 건 싸움이다.’

그래서 양이태는 이 기회에 구월동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사냥꾼협회라는 건 주축 멤버들이 힘을 잃으면 자연히 약화되는 법이니, 그들은 구월동팀의 머리를 치기로 했다.

만약 계획대로 구월동팀이 머리를 잃게 되면 그때 가서 부평팀으로 흡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천엔 경쟁자 자체가 사라지게 되니까.

“이런 방법이 통할까?”

“원래 계획은 심플할수록 좋은 거야. 사냥꾼은 애초에 몬스터와 싸우는 존재들이잖아. 던전에 들어가서 일이 생기더라도 이상할 게 없지.”

“하긴···.”

그래서 양이태와 동료들은 구월동팀을 사냥에 끌어들였다.

“모처럼 합동 사냥이니, 열심히 해봅시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모르고, 구월동팀의 리더가 의욕을 돋우었다.

사냥터는 연수구에 위치한 던전.

특히 보스룸의 난이도가 괴랄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도 인천의 양대 사냥팀이 합세하니 던전은 빠르게도 공략되었고, 생각보다도 빨리 보스룸에 도달하게 되었다.

[해당 보스룸은 입장하면 클리어하기 전까지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정말 입장하시겠습니까?]

부평팀의 계획은 보스룸에 구월동팀들을 가둬두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게 어찌 가능하냐면···.

[긴급 탈출 반지]

-사용 시 가까운 웨이포인트로 이동한다.

-최대 4명의 인원을 추가로 데리고 이동할 수 있다.

-1일 1회 사용 가능.

바로 이들에겐 긴급 탈출 반지라는 귀한 아이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양이태 파티뿐이다.

그래서 구월동팀은 양이태 팀의 도주 계획을 알아챌 수가 없었고, 결국 이들의 계획은 성공하고 말았다.

구월동팀만 보스룸에 던져 놓고 도주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하! 멍청한 놈들, 꼴 좋네!”

“그런데, 괜찮을까? 분명 사냥꾼협회에서 조사를 할 텐데.”

“괜찮아. 사냥 중 구월동팀은 죽고 우리만 겨우 도망쳤다고 하면 자기들이 어떻게 확인할 거야? 이 아이템에 대해 모르는 이상 우리의 혐의를 입증할 방법은 없어.”

“음, 하긴 그렇지.”

이대로 구월동팀이 보스룸에서 죽어주면 증거도 남지 않고 던전은 리셋되고, 자신들의 행위는 완전범죄가 될 터이다.

*

한편 그 시각.

“이 양아치 새끼들이!”

보스룸에 남게 된 구월동팀은 문이 닫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양이태의 부평팀을 욕했다.

우발적으로 이런 짓을 벌였을 리가 없다.

이 모든 과정은 자신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 분명했다.

평소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다니.

구월동팀 멤버들의 상식으론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는 사고 방식이었다.

“수작을 부리더라도 이런 식일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어. 설마 던전 탈출 아이템 같은 걸 갖고 있었다니.”

하지만 지금 와서 전부 무슨 소용이겠는가.

너무 늦어 버린걸.

“어, 어떡하지?”

오늘 이곳에 온 구월동팀은 총 6명.

사냥꾼협회에 가입한 뒤 물심양면 정보며, 장비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도움을 받아오며 30대 후반까지 레벨을 올린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리더는 레벨이 40이다.

하지만 연수구의 던전 보스인 하프리치와 두 마리의 듀라한을 상대하기엔 부족한 전력이었다.

물론, 모른다.

가진 수를 총동원하면 살아나갈 수 있을지도.

그런데 분명한 건, 이들이 모두 살아나갈 가능성은 0%에 가깝단 것이었다.

리더가 닫힌 문을 주먹으로 내려치고는 말했다.

“저 언데드들과 술래잡기를 한다고 해서 제한시간까지 버틴다는 보장은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죽기 살기로 싸우는 방법뿐이야. 소모템 아끼지 말고 전부 써버려. 죽으면 말짱 꽝이니까.”

그래서 리더는 무기를 고쳐잡으며 앞장을 섰고.

[클클, 어리석은 인간들이 스스로 제물이 되려고 왔구나.]

보스 몬스터의 텅 빈 두개골 안의 푸른빛으로 타오르는 안구가 일렁였다.

얼굴 가죽이 없어 표정을 읽을 순 없지만, 마치 만찬을 기대하듯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인천 구월동팀의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약 2시간 정도가 지나···.

[지, 지독하군.]

구월동팀 리더는 끝내 보스 몬스터의 숨통을 끊었다.

던전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하아, 하아···.”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내몰린 전투는 처음이었다.

덕분에 구월동팀의 리더는 자신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컸다.

6명의 동료 중 3명이 사망한 것이다.

더는 부상을 치료할 포션 따윈 남지도 않았다.

정말 모든 걸 쏟아붓고 겨우 이긴 거였으니까.

“젠장!”

구월동팀의 리더가 악에 받친 표정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그 양아치 새끼들을 상식으로 대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 모든 게 그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한반도에 배정된 20개의 시나리오 조각 중 15번 조각을 손에 넣었습니다.]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끼리 메시지 대화가 가능하며, 3명 이상의 단체 메시지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메시지는 자신의 정체를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익명이 보호됩니다.]

‘조각? 메시지? 단체?’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금 구월동팀의 리더에겐 부평팀에 대한 복수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 밖을 나간다 해도 놈들이 매복이라도 했다간 남은 동료들마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보상 메시지가 알려준 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조각 보유자들을 단체 메시지방에 초대하시겠습니까? YES/NO]

YES를 선택하자 메신저 대화창 같은 게 생겨났고.

[15번 보유자(신규)]

-누구 없습니까!? 여기는 인천입니다! 지금 다른 사람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는 다짜고짜 누가 있을지 모르는 메시지방에 도움을 요청했다.

[10번 보유자]

-오늘 구조요청이 연이어 발생하는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부산이라 빠른 도움을 못 드릴 것 같아요. 15번님을 돕기 위해 쉬지 않고 이동한다고 해도 한나절은 걸릴 것 같습니다.

[2번 보유자]

-인천이면 제가 빠르게 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인천 어디십니까?

예의 바르지만 아쉽게도 당장 도움이 안 되는 10번 보유자와 달리, 2번 보유자는 빠르게 도울 수 있다며 나섰다.

이미 배신을 당한 와중에 누군지도 모를 상대를 믿어도 될까 싶었지만, 자신들에게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상황을 알렸다.

[2번 보유자]

-서, 설마 인천 김팀장님?

그런데 자초지종을 듣던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에 구월동 팀장은 움찔 놀라며, 수긍했고.

곧 그에게 단독 메시지가 날아왔다.

[2번 보유자가 1:1 메시지를 요청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은밀히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뜻.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2번 보유자]

-접니다. 서울 강이솔이요.

너무도 든든한 아군에 등장에 그는 왈칵 눈물이 났다.

[2번 보유자]

-바로 가겠습니다. 윤시아를 포함해 정예들과 갈게요.

[15번 보유자(신규)]

-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몇 초 후.

[2번 보유자]

-실은 방금 있던 단체 채팅방에 협회장님도 계셨습니다. 늦어도 10분 이내에 도착하신다고 하니 참고해 주세요. 저희 서울팀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강이솔 뿐만 아니라 그 막강한 협회장까지 온단다.

팀장은 연신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존한 구월동팀은 몇 분 더 던전 안에서 대기하다가 시간에 맞춰 던전을 빠져나왔다.

“이 개자식들!”

역시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양이태가 파티원들과 밖에 있었고 구월동팀을 발견하곤 크게 당황했다.

“뭐, 뭐야? 어떻게?”

양이태의 물음에 구월동팀 리더는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던전을 클리어했으니 나왔지. 개새끼들아.”

그러나 양이태 일행이 당황하는 건 잠깐뿐.

양이태를 비롯한 그의 파티원들이 주변을 스윽 둘러 보며 물어왔다.

“그런데 너희 3명이 다야? 나머지 셋은?”

그건 마치 지금 여기서 너희만 제거하면 완전범죄 아니냐는 물음 같았다.

그럼에도 구월동 팀장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보스를 잡고 나니까 아주 좋은 걸 주더라. 시나리오 조각이라나?”

“갑자기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머리 다쳤냐?”

“시나리오 조각엔 아주 좋은 기능이 있더라고. 같은 시나리오 조각 소유자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양이태가 동료들과 위협적으로 어깨를 풀며 다가와도, 구월동팀은 물러서지 않고 죽일 듯이 노려볼 뿐이었다.

“사냥꾼협회의 서땡땡님과 강이솔님이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시더라고.”

“···뭐?”

“니 새끼들 만행 다 얘기했거든.”

“야, 야 잠깐. 우리 대화를.”

“두 분 오고 계시다고 하니까. 그분들과 대화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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