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화 인천 제주 부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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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에 스킬을 이식시키거나, 장비에서 스킬을 추출할 수 있다?
이건 강화를 더욱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과 같다.
강화는 아이템 내장 스킬의 위력을 단계별로 증가시키지 않는가?
이번에 3강을 달성하고 분명 더 강해졌지만, 이전처럼 극적인 변화는 조금 적은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숨어 있었다니.
새삼 엘프 마을이라는 게 왜 존재하는지,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장비의 스킬 이식과 추출의 성공률은 30%. 드는 비용은 일정하게 정령석 5개와 마력석 5개, 5만 코인이 소모되지.”
“······. 뭡니까? 그 말도 안 되는 가격은?”
너무 비싼 비용에 절로 미간이 좁혀진다는 거다.
3단계 강화에 사용되는 정령석은 겨우 하나인데, 이건 스킬을 더하고 빼는 데에만 정령석이 무려 5개가 필요하다.
거기에 아직까진 구경도 못 해본 마력석이란 물건도 5개, 5만 코인이란 추가금액까지.
‘그래놓고 성공확률도 3할밖에 안 되잖아.’
아마 눈앞에 있는 사람이 곧 동료가 될 시에나가 아니었다면, 바가지라고 욕했을 것 같다.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내 반응에 시에나는 말했다.
“뭐긴, 개나 소나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가격 책정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양심 없는 드워프 새끼들과 달리 우린 실패 시 장비가 깨지는 일도 없고.”
그나마 그건 좋네.
가격을 저리 받아놓고 장비가 깨지기까지 하면 진짜 이 시스템은 고인물을 위한 것밖에 안 될 것이다.
‘아니, 이 정도만 돼도 이미 충분히 고인물용 아닌가?’
지금 당장 정령석은 커녕, 5만 코인을 실패 확률이 큰 시스템에 지를 능력이 되는 사람은 나 이외엔 없을 거다.
물론, 세계는 넓으니 해외엔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기 3단계 강화도 1회에 5천 코인이었는데···.’
엄청 좋은 시스템임은 알겠지만, 당장은 그림의 떡이었다.
무엇보다 마력석이란 건 어디서 구하는지도 모른다.
정령석에 이어 이번엔 마력석이라니.
“그런데 마력석은 어디서 구합니까?”
드워프 토레프도 정령석이 정령형 몬스터를 잡으면 나온다는 힌트를 줬었다.
그래서 호감도가 더 높은 시에나라면 그 정돈 그냥 알려 주지 않을까 싶어서 물었다.
“마력석은 채집물이야. 어딘가 땅속 마력석 광맥에 숨겨져 있겠지?”
“······.”
당장은 스킬의 이식과 추출을 시도하지 말란 뜻으로 받아들여야겠다.
땅속에 숨겨져 있는 걸 어떻게 찾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 후로도 우린 시에나의 안내에 따라 엘프마을을 둘러보았다.
엘프 마을에는 ‘부여 상점’이라 불리는 스킬 관련 상점 외에도 차와 담배 같은 기호식품을 파는 상점과 일시적으로 능력치 1~3 정도를 올려주는 과일을 파는 상점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마을에 엘프가 직접 상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마치 판타지 세상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는 역시.
[엘프 담배 / 소비아이템 / 등급: 최고급]
-엘프 담배는 향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격: 1,000코인
[엘프차 100g / 소비아이템 / 등급: 최고급]
-엘프차는 향과 깊은 맛이 일품이며 두통을 덜어준다.
-가격: 1,000코인
이 미친 가격이다.
그냥 여긴 다 비쌌다.
천 코인이면 정부가 운영하는 임대 주거지의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런 걸 어느 호구가 사나 싶었는데.
“차 다섯 병, 담배 다섯 갑 주세요.”
“네.”
그 호구가 바로 나였다.
내가 쓸 건 아니고, 부모님을 비롯해 친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관광객에 빙의해 기념품으로 사봤다.
이후 우린 시에나의 집에 초대되어 그곳으로 향했는데···.
[한반도에 배정된 20개의 시나리오 조각 중 15번 조각의 소유자가 등장했습니다.]
[15번 조각의 소유자가 단체 메시지방에 11번 조각 소유자님을 초대했습니다. 참여하시겠습니까?]
하필 그때 시나리오 조각 관련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15번 조각 소유자의 빠른 단체 메시지방 개설에 이은.
[15번 소유자(신규)]
-누구 없습니까!? 여기는 인천입니다! 지금 다른 사람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갑작스런 구조 요청을 보내왔다.
‘데자뷰인가? 어디서 본 상황인데?’
생각해 보면 오늘 이곳에 있게 된 것도 주한미군에 소속된 시나리오 조각 소유자가 구조요청을 보내서였다.
결국, 그가 시에나에게 죽게 되면서 주한미군의 시나리오 조각은 어부지리로 내게 흡수되었지만 말이다.
‘구조요청에 따라 움직여서 손해 보기는커녕 종일 이득만 봤네.’
나는 쓰게 웃으며 도움을 요청한 15번 소유자와의 대화 진행을 강이솔에게 맡겼다.
[2번 소유자]
-협회장님, 15번 조각 소유자가 우리 사냥꾼협회 소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강이솔이 전해온 이야기에 결국 나는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협회의 일은 강이솔에게 전적으로 일임했지만, 그래도 대표는 내가 아니던가.
한창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협회 입장을 생각하면 긴급한 사건 사고에는 내가 직접 개입하는 게 소속 사냥꾼들에게도 믿음을 줄 터이다.
“아무래도, 초대는 나중에 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어진 자세한 상황 설명에 시에나는 생동감 넘치던 좀 전과 달리 금세 맥이 빠진 채 우릴 배웅했다.
“그런가. 마음 같아선 함께 가고 싶지만, 단 하루 만에 누군가의 동료가 될 순 없거든.”
현재 시에나의 호감도는 75%.
이제 5%만 올리면 동료로 맞이할 수 있다.
거의 퍼주다시피 호감도가 수직 상승했지만, 그래도 제약이 아주 없는 건 아닌지, 단 하루 만에 동료가 될 순 없다는 말을 전해왔다.
나는 악수를 건네며 아쉬움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덩달아 아쉬워하듯 답했다.
“저도 시에나 님께서 어서 동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사정이 어떠하든 운 좋게 능력이 빼어난 엘프 NPC를 동료로 들일 기회인데 놓칠 수는 없었다.
비록 옆에서 윌리아가 눈은 안 웃고 입만 웃고 있어서 서늘했지만 말이다.
*
잠시 후, 우린 인천에 도착했다.
나와 윌리아는 둘 다 비행스킬 보유자인 데다가 함께하는 멍멍이도 날개가 있어서 빠른 이동이 가능했다.
“날이 점점 더 추워지네.”
그런데 나는 회색의 하늘을 날며, 포근했던 엘프마을과 너무도 대비되는 발아래 풍경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인천 생존구역의 풍경은 전쟁터 그 자체였다.
정부에서 운영 중인 생존구역은 계룡대 같은 특수한 장소가 아니고선 대부분 안전구역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살기 위해, 수시로 안전구역에 들어가 치유기능을 이용해 몸을 녹였다.
‘안전구역에 5분 정도 있으면, 하급 회복물약을 먹은 것과 같은 치유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
안전구역은 하루 30분간 무료로 이용 가능하며, 30분 이후부턴 10분당 1코인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입장할 수 있다.
그러니 코인이 많지 않은 시민들은 무료로 입장 가능한 30분을 잘게 쪼개서 몇 시간을 추위와 싸우다가 안전구역에 들어가 몇 분 동안 몸을 녹이고 나오는 식의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점점 더 추워질 것이다.
이런 식의 생활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예전엔 그저 눈을 보면 예쁘다고 좋아했는데, 이젠 감히 그런 감상도 못 하겠네.’
그나마 텐트를 가지고 있거나, 천막을 보급받은 사람들은 상황이 났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노숙자처럼 박스나 비닐, 스티로폼 등을 주워다가 잠자리를 꾸렸다.
올겨울, 생존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적은 어쩌면 몬스터가 아니라 추위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자포자기하며 사느냐, 아니면 코인 벌이를 위해 몬스터 사냥에 나서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겠네요.”
윌리아의 말에 나는 동의했다.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고 새로운 법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 추운 겨울을 그럭저럭 잘 나고 있으니 말이다.
왠지 이번 겨울을 기점으로 사냥꾼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날기를 3분여.
곧 우린 목적지에 다다랐다.
[양이태 / 레벨: 39]
[김진욱 / 레벨: 40]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모 던전 앞.
나는 그곳에서 3:5로 패가 나뉘어 대치 중인 사냥꾼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
나와 윌리아, 멍멍이는 더욱 속도 높여 날아가며.
-쿵!
요란하게 지면에 착지했다.
‘슈퍼히어로 랜딩. 짝짝.’
그러자 양측 인원들이 움찔거리며 거리를 벌리고.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레벨 40을 달성한 김진욱이란 이름의 인물이 나를 발견하곤 얼굴을 활짝 폈다.
“협회장님!”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
그는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너무도 반갑게 맞이했다.
‘아, 이렇게 요란하게 등장하면 모를 수가 없겠구나.’
하지만 그것도 잠깐.
김진욱이란 사내는 동료들이 사망했단 사실이 떠올랐는지,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일러바치듯 침통함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의 수작질에 저희 팀의 주축 멤버 셋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자세한 사정은 강이솔에게 조각 메시지를 통해 들은 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양이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양이태라.’
기억에 있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게 엘데 크림슨 로드 공략 회의 때, 거들먹거리던 그의 손을 악수로 부숴버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난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지만, 나와 대면한 적이 있던 양이태는 전체적인 외형과 분위기로 내가 서**임을 알아챘다.
그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인사를 건네왔다.
“바, 반갑습니다. 서아 님.”
질질 끄는 건 딱 질색이다.
그렇다고 한쪽의 말만 듣고 사실 확인도 없이 상대의 목을 날려 버릴 수는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짜, 구월동팀을 함정에 빠뜨려 몰살시키려 했습니까?”
내 물음에 부평팀 멤버들의 눈빛이 착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들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아닙니다! 모두 오해입니다! 저희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협회장님! 저 자식들 저거 거짓말하고 있는 겁니다!”
“오해라니까? 너희 동료가 죽은 건 애석하지만···. 우린 그걸 바란 적 없어.”
“이, 이 자식들이 협회장님이 무서우니까, 이제 와서 발뺌을!”
양이태의 주장에 같은 부평팀 소속 멤버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구월동팀은 발끈했다.
하지만···.
-스멀. 스멀.
굳이 옆에서 열 내며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
내가 가진 ‘진실의 눈’ 스킬로 양이태에게 붉은 기운이 짙게 풍겨 나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이는 악의를 담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왜 그랬어?”
내 말투에서 존댓말이 사라졌다.
이미 사실 확인을 마쳐 그들을 존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확연히 차가워진 내 말투에 양이태와 동료들이 움찔거린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반론을 내가 믿지 않는단 느낌이라 당황한 모양이다.
“저, 정말 아닙니다. 저희가 큰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결코 저들을 해하려던 의도는 없었습니다. 전투 전에 장비를 교체하려다 조작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행동을 없던 걸로 할 수 없으니, 전부 실수로 몰아가려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극상급 스킬인 진실의 눈은 이번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 알려주고 있는데.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핏!
내 왼쪽 허리춤에 걸쳐져 있던 춤추는 검이 총알처럼 튀어 나가며 검강을 뿌렸다.
“어?”
그러자 양이태를 비롯한 부평팀의 5명이 기우뚱 중심을 잃으며 바닥에 고꾸라지고, 춤추는 검은 다시 검집으로 되돌아왔다.
“어어?”
“아아악! 내 다리!”
그때서야 자신들의 양다리가 잘려나갔다는 것을 인지한 그들의 얼굴이 고통에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직접 복수하실래요?”
나는 구월동팀의 팀장인 김진욱에게 물었다.
설마, 내가 저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거 아닐까 걱정하던 구월동팀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김진욱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네, 제가 처리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그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양이태와 부평팀은 고래고래 억울하다 소리쳤다.
“어, 억울합니다! 어떻게 저 새끼들 말만 믿고 이렇게 사람을 심판할 수 있습니까!?”
“끄으윽, 정말로 실수였다니까요!”
“제대로 법에 맞게 일을 처리해 주십시오! 이렇게 졸속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개소리.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논리가 통하겠는가.
하지만 이에 흔들리는 건 진실의 눈을 가진 내가 아니라 김진욱 팀장과 구월동팀의 멤버들이었다.
방금까지 거짓말하지 말라며 열을 내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막상 그들이 절규하듯 바득바득 우기자 긴가민가하단 반응을 보였다.
“아니, 속지 마. 우리가 던전에 나왔을 때 이 새끼들 반응 봤잖아. 빼박이야.”
그러나 김진욱 팀장은 마음을 바로잡으며 자신의 검을 스릉 뽑아 들었고, 동료들도 확실히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김진욱 팀장이 검을 내려치려 하자.
“사람 살려! 이 새끼들이 사람 죽인다!”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양이태 팀 멤버들이 동네 떠내려가라 외쳤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런 외침에 무슨일이냐며 건물 창가에서 골목 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다는 거였다.
덕분에 김진욱 팀장은 다시금 멈칫했다.
보는 눈이 많은데, 괜찮겠냐며 나를 바라보길래, 나는 상관없으니 진행하라 지시했다.
“컥!”
“끄아악!”
“자, 잘못···.”
결국, 김진욱 팀장은 그들 모두를 처치하며 피를 뒤집어썼다.
“맙소사 죽인 거야? 진짜?”
“어째서?”
“서로 도와도 모자랄 상황에···.”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양이태가 죽기 직전 뿌린 똥은 그대로 작용했다.
처형을 지켜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반감을 표한 거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그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 입장인 김진욱 팀장과 멤버들이 면목 없다며 사과를 해왔고, 나는 괜찮다며 손을 젓고는 몸을 돌렸다.
“제가 해결하죠.”
“네?”
나는 윌리아에게 스킬 하나를 부탁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아악!”
“뭐, 뭐야!?”
“서, 설마 저게 스킬이라고?”
그에 윌리아는 내 지시에 허공 폭발 스킬을 터뜨렸다.
엄청난 굉음이 폐허가 된 도심에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단 한 번의 스킬로 언제 그랬냐는 듯 겁을 먹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이들 앞에 나서며 말했다.
“이들은. 우리 사냥꾼협회 소속 사냥꾼을 공격하고 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한 겁니다.”
그리고 나는 성검 칼립소를 뽑아 들며 허공을 겨눴다.
“앞으로도 우리 협회를 공격하는 자가 있다면 자비 없이 심판을 가할 테니, 명심하십시오.”
이어서 성검에 마력을 왕창 쏟아부었고.
충만하게 마력이 깃든 성검으로 내장 스킬 ‘성검 방출’을 사용했다.
[성검 방출 / 극상급 스킬 / 액티브]
-마력을 소모하여 신성력이 깃든 칼날을 생성한다.
-성검을 방출한 상태에서 근접전투 스킬을 사용하면 위력이 더욱 증폭된다.
-마력을 한 번에 쏟아부어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할 수도 있다.
그러자 손잡이 위로 칼날이 형성되더니, 이내 허공으로 크고 강렬한 푸른 빛줄기를 쏘아 보냈다.
마치 하늘을 뚫을 것처럼.
“······.”
오글거리는 대사와 오글거리는 상황.
솔직히 무대 체질이 아닌지라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내 입장에선 소란을 잠재우기 위한 보여주기 식의 쇼였지만···.
이를 본 사람들 입장에선 그렇지 않은지, 다들 입을 쩍 벌리고 경악했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곧 강이솔 씨가 올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허공을 날아올랐고.
이어서 윌리아와 멍멍이도 날아 내 뒤를 따랐다.
“마력 괜찮으세요?”
멋 부린다고 마력을 왕창 쏟아부었다.
덕분에 지금 남은 마력은 겨우 10도 안 된다.
“안 그래도 얼마 안 남았어요. 어딘가에 숨어서 마력 좀 채우고 가죠.”
앞선 위용과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대답이었다.
***
인천 구월동팀의 팀장 김진욱은 피 묻은 자신의 검을 내려보다가 이내 질끈 눈을 감고 검을 거뒀다.
“실제로 보니 새삼 격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네.”
그런 그의 곁으로 던전에서 생환한 동료들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게 말이야.”
처음으로 대중을 향해 외친 서**의 발언.
근처에 질 좋은 사냥터가 많아, 양이태의 발악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었고, 그들은 똑똑히 서**의 위용을 직접 보게 되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서**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진욱 팀장조차 입을 떡 벌리며 놀랄 정도인데, 아마 서**을 잘 몰랐을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욱 클 것이다.
“저어···.”
그렇게 양이태를 포함한 부평팀 주축들의 시신을 인벤토리에 챙기던 구월동팀.
하지만 어째서인지 시체를 챙기는 이들의 무서운 모습에도 주변엔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저, 저분은 대체 누굽니까?”
그때, 어느 용기 있는 청년이 나서며 물었고.
“저희 사냥꾼협회의 협회장님이십니다.”
“아아, 그렇구나.”
누군가의 물음에 김진욱 팀장이 성실히 답을 하자, 갑자기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냥꾼 협회엔 어떻게 가입합니까?”
“협회에 가입하면 저분과 팀을 짤 수도 있는 거에요?”
“가입 조건 같은 게 있을까요?”
정신없는 상황에 김진욱 팀장이 당황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그리고 때마침 강이솔이 일행들과 등장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강이솔의 질문에 김진욱 팀장은 피곤함이 역력한 모습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협회장님이 상황 정리해 주시고 가셨습니다.”
설명을 들은 강이솔과 서울팀 멤버들은 역시 협회장님이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했지만, 김진욱 팀장이 겪던 것처럼 밀려드는 가입 문의에 바로 서울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
하루가 지났다.
바로 동료가 될 수 없다던 시에나를 위해, 가지고 있던 재료들로 한식 도시락을 준비한 나와 윌리아, 멍멍이는 오늘도 엘프 마을에 방문했다.
“오! 왔구나!”
“안녕하세요. 시에나 어르신.”
듣자니 나이가 700살이라고 한다.
어느 세계에서 그토록 오래 살았다기보단, 단순히 그런 설정일 것이다.
윌리아도 월광도에 나타나기 전까지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고 했으니.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남은 호감도 5%를 올리려 기껏 도시락을 싸왔더니만.
[시에나 / 호감도: 80%]
날 보자마자 동료로 영입할 수 있을 목표치에 절로 채워졌다.
“엥?”
진짜 나한테 반한 건가?
“저, 시에나 님. 혹시 저를.”
“이 지긋지긋한 엘프 마을을 나가고 싶었다고. 날 동료로 넣어줄래?”
그리고 나는 두말하면 입 아파지니, 곧장 시에나를 파티에 합류시켰다.
진즉에 윌리아와 회의를 하고 그녀의 영입을 결정한 바이다.
동료가 되자마자 시에나가 외쳤다.
“어디로 날 데려가 줄 거야?!”
“드워프를 별로 안 좋아하시던 것 같은데 우선 제가 아는 대장장이 드워프를 만나러.”
“···굳이?”
“하하, 농담이에요. 저희가 공략 중이던 사냥터가 있었는데 시에나 님 몸 좀 풀 겸 가볼까요?”
“좋지!”
나와 윌리아, 멍멍이만으론 공략 실패로 끝난 성장의 탑 10층.
각종 골렘이 무수히 나오는 그곳부터 도전키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