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화 사냥꾼 협회의 도시 (4)
레벨이 같을 경우.
일반 몬스터보다 네임드가 압도적으로 강하고.
네임드보다 보스가 강하며.
보스보다 엘더가.
엘더보다 로드급 엘더가 더 강하다.
이게 일반적인 몬스터의 구분이다.
레벨보다 중요한 건 개체의 등급이라는 것.
하지만 이번에 광역 보스라는 몬스터가 등장하면서 이 구도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광역 보스는 로드급 엘더와 비슷하거나 더 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레벨 100짜리 몬스터의 공격이라고?’
나는 지역 하나를 불바다로 만드는 공격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미 레벨 100의 보스 몬스터를 토벌한 경험이 있는 만큼, 레벨 100의 광역 보스 토벌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상을 뒤덮은 불바다를 보니,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이건 우릴 노리고 쏘는 겁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광역 보스가 영역 표시하듯 여기저기 무차별적으로 날리는 공격입니다.”
그것참 골 때리는 놈일세?
나는 실소를 흘리며 시에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시에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크로스 백처럼 메고 있던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고.
그러자 그녀의 인벤토리에 보관된 화살이 자동으로 꺼내지며, 시위에 걸렸다.
이어서 시에나가 시위를 놓으니.
-고고고고고!
순백의 빛이 직선으로 뻗어 갔다.
이어서 그 빛이 불바다의 중심을 관통하고, 화살이 지나간 자리에는 불꽃이 지워지며 제법 큰길을 만들었다.
“가죠.”
시에나가 사용한 스킬은 레이저 샷.
최상급의 공격 스킬이다.
윌리아의 폭발, 내 필살 스킬인 폭주도 같은 최상급의 스킬인 만큼 역시 급이 다른 성능을 보여 주었다.
마치 붉은색으로 칠해 놓은 너른 공간의 가운데를 지우개로 지운 것 같았다.
내 지시에 사람들은 제주공항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이 엘프분은 호감도를 높여 동료로 맞이한 분입니까?”
그때, 내게 관심이 많은 레벨 50의 제주 제일 사냥꾼 박성만이 다가와 물었다.
NPC라는 단어를 당사자가 싫어할 수도 있으니, 사용을 자제하는 모습에서 배려심이 느껴진다.
“네, 그렇습니다.”
“이야, 대단합니다. 저는 면상이 험악해서인지, 호감도를 높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호감도 작업은 외형보다는 그 NPC가 바라는 조건에 충족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니까.
나름대로 느낌 있고, 분위기 있는 외형이랄까?
“여기 있는 김시우 씨도 호감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동료를 맞이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생존이 시작되고 40일 정도가 지난 지금, 사냥꾼 사이에서 펫이나 NPC 동료는 더 이상 보기 힘든 존재가 아니다.
다만 대체로 NPC보다 펫의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유는 펫은 알아서 성장하지만, NPC는 내가 경험치를 떼어 줘서 성장을 시켜 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티 내에 NPC가 있을 경우 경험치 분배, 아이템 분배 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갈등의 골이 NPC에게까지 번져가면 호감도 하락으로 동료 관계가 끊기기도 하지.’
때문에 기존의 파티를 유지하면서도 문제없이 NPC와 함께 활동을 한다는 건, 그만큼 단체의 장악력이 강한 인물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실 NPC만큼 확실한 동료도 없지. 절대 배신하지 않고, 공을 들인 만큼 바로바로 강해지니까.’
나는 그제야 김시우라는 인물을 살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10번 시나리오 조각의 보유자인 경상도 킹스맨일 것이다.
그의 레벨은 46.
상당한 고렙이다.
하지만 지금 옆에 있는 제주도의 박성만(레벨 50), 서울의 윤시아(레벨 50), 수원의 김현수(레벨 50), 성남의 최도겸(레벨 49)은커녕, 그들의 주요 파티원보다도 레벨이 떨어졌다.
그래서 주의 깊게 살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46이면 한 지역을 대표하기에 부족함 없는 레벨이기는 하다.
그 밖에 아직 내가 못 본 다른 특징이 있을지도 모르고.
“동료분은 신전에서 맞이하셨습니까?”
내 물음에 김시우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부산 안전 구역의 신전입니다.”
초반에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NPC는 역시 신전의 NPC다.
윌리아도 원래는 신전의 NPC였으니까.
똑같이 신전 NPC를 동료로 맞이했다고 하니, 괜히 동료 의식이 든다.
물론, 지금의 윌리아는 전투 법사나 다름이 없다.
그녀가 나와 예전부터 함께 다녀서인지, 상대적으로 튀는 시에나라는 NPC가 곁에 있어서인지, 윌리아를 NPC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영입까지 얼마나 걸리셨어요?”
“약 한 달입니다.”
잘생긴 외모 덕을 좀 본 게 있을까 물었는데, 의외로 평균 수치였다.
하긴, 내 경우가 비정상인 거지.
이후에도 나는 제주도의 박성만, 경상도의 김시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주로 실없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진짜 강하시네요’ 같은 인사치레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내가 어려운 모양이다.
“응? 저거 몬스터 아냐?”
“네?”
그렇게 목적지인 제주공항에 거의 다다랐을 때.
시에나가 근처 건물의 옥상을 가리켰다.
그러자 내가 죽인 네임드 몬스터의 동료인지, 아니면 단순히 탐색을 나온 건지 모를 또 다른 네임드가 5층 높이의 상가 건물 옥상에서 원정팀을 내려 보고 있었다.
[네임드 라미아 대전사 디에나 / 레벨: 75]
아까 전 내게 죽은 네임드와 같은 레벨의 몬스터였다.
그에 박성만과 김시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임드가 연이어 얼굴을 들이미는 게 흔치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녀석이 공격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박성만과 김시우도 전투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간단히 윌리아를 불렀다.
“리아 씨.”
“네.”
우린 몬스터와 기 싸움을 하러 온 게 아니다.
처치하기 위해 온 거지.
윌리아는 내 부름만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채고는 인벤토리에서 현자의 지팡이를 꺼내 녀석을 겨눴다.
아마도 타깃 포인트 스킬(유도탄 기능)을 사용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곧이어 하늘 위로 먹구름을 뭉쳐 놓은 듯한 검은 점이 생기더니.
-콰콰콰아아아아앙!
세 줄기의 시퍼런 낙뢰가 이쪽을 주시하던 네임드 몬스터의 머리 위로 연거푸 떨어졌다.
덕분에 괜히 폼 잡고 있던 네임드 라미아가 새까맣게 그을려서 건물 위에서 떨어졌고.
전기에 감전된 듯 꼼짝도 못 하고 몸을 떨어 대는 라미아를 향해 폭발 스킬 역시 3방을 선물했다.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역시 윌리아의 공격은 언제 봐도 시원시원하다.
[네임드 라미아 대전사 디에나를 토벌하여…….]
그러자 윌리아가 토벌한 라미아의 보상이 내게 들어왔다.
“벌써 두 마리째네요. 하하. 시작이 좋은데요?”
내가 웃으며 바라보자, 박성만과 김시우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했다.
제주에 온 뒤로 계속 저 표정만 보는 것 같다.
하긴, 폭발 스킬 하나만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극강의 원거리 공격인데, 시각적으로 더욱 무서운 낙뢰까지 더해졌다.
이런데 누가 윌리아를 사제로 보겠는가.
마법사 그 자체지.
“오오, 대박!”
반면 크게 놀란 그 두 사람과 달리, 사냥꾼 협회의 멤버들은 놀라긴 했어도 걸음을 멈추는 일 없이 그저 박수를 치며 좋아할 뿐이었다.
* * *
“레벨 40 이상이 60여 명? 300명 중 제일 레벨 낮은 사람이 36이고?”
“그, 그리고 레벨 75의 네임드를 한칼에 잡고, 마법 스킬 몇 방으로 잡아냈다니…….”
“말이 돼?”
김시우는 제주공항 생존 구역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들의 동료를 찾아갔다.
그리고 사냥꾼 협회에 관한 이야기를 한 순간, 동료들의 동공이 쉼 없이 떨리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주도에 오기 전까지 그들 입장에서 김시우는 제일의 사냥꾼이고, 자신들은 제일의 사냥팀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 오고 레벨 50의 박성만과 질 높은 사냥팀을 보고는 당황해야 했다.
그런데 인제 보니, 제주도 팀은 별것 아니었다.
진짜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서**의 파티와 그가 이끄는 사냥꾼 협회의 등장에 그들의 자부심은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노, 농담하는 거지 시우야?”
당황한 건 김시우의 남부팸 멤버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남부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전라도 광주팀의 리더 최준우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는 항상 김시우를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라며 띄워 주던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격이 달라. 이대로라면 이번 제주도 원정에서 우린 존재감 없이 묻히고 말 거야.”
어차피 제주도 원정은 시민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지, 다른 사냥팀들과 경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위권 사냥팀들이 그런 것처럼 이들은 단순히 생존에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
누구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는 것.
그것이 이들을 포함한 대부분 상위권 사냥팀들의 목표였다.
그런 이들에게 승부욕이 없을 리가 없다.
때문에 싸우기 전부터 느껴지는 전력 차이와 그로 인한 패배감은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런 큰 전투는 개개인의 능력치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니까.”
“맞아, 우린 하나의 팀으로 오랜 시간 합을 맞춰 왔어. 하지만 그들은 협회라는 단체 아래 여러 사냥팀이 뭉쳐진 것뿐이잖아. 우리라면 레벨 몇 정도의 차이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봐.”
틀린 말이 아니다.
남부팸의 호흡은 더욱 수준이 높은 제주팀에서도 놀랄 정도였으니까.
덕분에 이들은 벌써부터 주눅 들 필요가 없다며 김시우에게 기운을 북돋아 넣었다.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김시우는 자신이 서** 파티의 무력에 너무 놀라 큰 걸 보지 못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은 혼자 하는 게 아니거늘.’
그렇게 동료들의 응원에 기운을 차린 김시우는 잠시 후 진행된 회의에 당당하게 참석했다.
하지만…….
“일단 광역 보스를 제외한 네임드와 필드 보스 먼저 일소하도록 하죠. 그러다가 광역 보스가 튀어나오면 저희 팀이 녀석을 끌고 이동하겠습니다.”
사냥꾼 협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회의에서 김시우 팀은 고렙 사냥팀1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레벨 70대의 네임드 2마리를 상대하는 것뿐이었고.
제주팀이 레벨 70대의 네임드 1마리에 레벨 90의 필드 보스 1마리.
사냥꾼 협회는 필드 보스 3마리와 네임드 3마리를 맡기로 했다.
그런데 사냥꾼 협회 측에서는 이도 위험해 보인다며, 사냥꾼 협회 측 멤버 일부를 제주팀과 김시우 팀에 배정해 주었다.
제주팀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김시우 팀은 그렇지 않았다.
“도움은 괜찮습니다. 저희끼리 네임드 두 마리 상대할 수 있으니까요.”
서**과 그의 동료인 여성 마법사가 각각 한 마리씩 네임드 몬스터를 잡았으니, 파견을 받는다면 김시우 팀과 광주팀을 합친 전력이 그 두 사람보다 못하다는 의미와 같았다.
때문에 김시우와 동료들은 오기를 부렸고.
조금 더 안전하게 사냥을 이어 가자는 의미로 제안했던 건데, 이를 거절 당하니 사냥꾼 협회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각 팀에 상대할 몬스터가 정해지고, 길게 끌 필요 없이 공략은 바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공략전에서 김시우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차이를 맛보고 말았다.
“뭐? 벌써 두 마리의 필드 보스를 잡고 광역 보스 탐색에 나섰다고?”
“그, 그렇대. 나머지 필드 보스를 상대하고 있는 팀들도 그럭저럭 우위를 점하면서 잘 싸우고 있다고 하고.”
김시우 팀이 만전을 기하며 사냥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펫을 포함해 단 넷뿐인 서**의 파티는 순식간에 필드 보스 2마리를 잡아 내고 광역 보스를 찾으러 갔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레벨 90대의 필드 보스를 이렇게 쉽게 잡다니.
당혹스러울 정도의 강함이었다.
“우리도 빨리 끝내자.”
“그래! 네임드 두 마리 따위야 금방 잡아 낼 수 있지.”
하지만 서** 파티와 사냥꾼 협회로 인해, 이들은 자신들의 수준을 착각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게 네임드가 레벨 70대의 몬스터였다.
최고 레벨이 46인 김시우의 사냥팀이 만만하게 봐도 될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크으윽!”
김시우 사냥팀은 단 한 번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팽팽한 전투를 이어 갔다.
결국, 전투를 먼저 끝낸 사냥꾼 협회 멤버들이 보다 못해 지원에 나서 힘겹게 승리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자칫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이런 수준의 몬스터를 단칼에 죽였다고?’
서**이라는 벽이 얼마나 높은지만 체감하게 된 전투였다.
김시우로서는 왠지 몰카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 * *
레벨 70~80대의 네임드 몬스터와 레벨 90대의 필드 보스는 특별할 것 없었다.
진짜 문제는 지금 마주한 녀석이었으니까.
[광역 보스 바실리스크 페이톤 /레벨: 100]
제주 종합경기장 주 경기장에 똬리를 틀고 있는 녀석은 뱀 형태의 몬스터였다.
하지만 한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지금까지 만난 어떠한 몬스터보다 덩치가 크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저건 거의 용이잖아?”
내 감상대로 저건 용이라 표현하는 게 맞을 듯했다.
정확하게는 이무기 같은.
“단독으로 해치울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그러나 사람들의 도움 없이 우리끼리 어떻게 하긴 힘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저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팀을 나누는 게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치는 최대 규모의 레이드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