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일본 여행 (1)
서백호의 아버지 서인호 준장은 한반도 지도를 띄운 태블릿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북한.
북한 지역에 붉은색의 라인이 쳐져 있었는데, 그 라인이 점차 남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북한 애들이 힘 합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긴 한데, 라인이 계속 밀리네.”
그의 혼잣말과 같은 대사를 받은 건 사냥꾼들로 구성된 특수전투 대대를 이끄는 주영우 중령이었다.
이번에 레벨 50을 달성한 주영우 중령은 군대의 적응군 중 가장 촉망받는 사냥꾼이다.
사냥꾼 협회를 가더라도 수뇌진이 될 수 있는 레벨과 실력을 겸비한 그가 가장 가까이하는 상사는 다름 아닌 수방사의 참모장 서인호 준장이었다.
“미사일과 독가스 사용조차 서슴지 않고 있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이렇게 맥없이 밀리는 겁니까?”
“그만큼 적의 규모가 크고, 강하다는 뜻이겠지.”
현재 북한은 중국에서 건너온 엘더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엘더 몬스터의 이동 방향이 남쪽인 만큼, 북한이 겪고 있는 위기를 결코 남의 일로 생각할 수 없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적의 규모는 파악된 겁니까?”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충은…….”
그리고 서인호 준장은 태블릿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자 15줄로 나열된 표가 나왔다.
“북한을 침공한 엘더 몬스터. 아니, 정확하겐 로드급 엘더 몬스터지. 그 로드급 엘더 몬스터와 휘하 엘더 몬스터 열넷의 목록이네.”
“로드급 엘더 몬스터가 일반 엘더 몬스터를 휘하에 두고 부린다는 겁니까?”
“지금까지 파악된 정보만 보면 그래. ‘로드’란 칭호가 괜히 붙어 있는 게 아니란 뜻이지.”
“허……. 그럼 저희가 일전에 잡은 엘더 크림슨 로드도?”
“운 좋게 녀석이 세력을 형성하기 전, 초기에 잡은 게 아닐까 싶어.”
서인호 준장의 이야기에 주영우 중령은 혀를 내둘렀다.
어찌 보면 엘더 크림슨 로드를 초반에 발견해 낸 강이솔의 공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파악된 엘더 중 레벨이 제일 낮은 개체가 80이야. 그조차 천여 마리의 일반 몬스터를 부리고 있지. 아마 로드급 엘더는 적어도 레벨 100은 가볍게 넘을 거라 추측하고 있어.”
“후우, 인제 보니 북한이 버티는 게 용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몬스터도 문제지만…….”
“네?”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따르는 인간 세력도 무시 못 할 위협이야.”
중국에 인간을 부리는 엘더 몬스터가 있다는 이야기.
이 소식은 생존 국가들 사이에서 꽤나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부리는 엘더 몬스터가 북한을 공격하는 로드급의 엘더 몬스터였다.
“로드급 엘더는 휘하의 인간들로 사전에 적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 북한에서 몬스터들을 토벌하기 위해 여기저기 함정을 설치했지만, 녀석들이 모조리 피해 버렸다고 해. 심지어 핵폭탄이 숨겨진 함정도 있었는데 말이야.”
“로드급 엘더가 인간들을 첩보 활동에 이용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래. 보통 똑똑한 몬스터가 아니야.”
주영우 중령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에 서인호 준장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몬스터를 상대로 첩보전을 벌이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아무래도 적응군을 첩보전에 투입해야 할 것 같아.”
“필요하다면 해야죠. 그게 군인이니까요.”
그런데 주영우 중령은 문뜩 떠오른 게 있다며 물어 왔다.
“차라리 우리가 북한을 지원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기와 사냥꾼들을 보내서 녀석들이 이 이상 남하하기 전에 토벌하는 게 최선으로 보이는데요?”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 정부와 국군 내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포착되었으니.
“그러려면 한 가지 확실히 해 둬야 할 일이 있네.”
“확실히 해 둬야 할 일이시라면?”
“사냥꾼 협회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단 거지.”
“아…….”
사냥꾼 협회는 제주도에 등장한 레벨 100의 광역 보스와 필드 보스들, 네임드들을 쓸어버렸다.
사냥꾼 협회의 전력에 적응군이 더해지면 북한 사태를 해결하는 것도 가능할 터이다.
하지만 이에 문제가 있으니.
“그런데 우리의 윗대가리들께선 사냥꾼 협회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게 문제야.”
길게 말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이유를 예상할 수 있었다.
“체면 때문입니까?”
“그래, 신정부는 사냥꾼 협회에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는 건 피하고 싶어 해. 그래서 이 일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거고.”
이해는 한다.
그런데 괜히 오기 부리다가 피해가 커지면 자신들만, 아니. 나라 전체가 손해 아닌가.
“사냥꾼 협회의 득세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야. 이 점을 인지하고 새로운 체제를 확립하는 게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닐까?”
“동감합니다.”
“그나마 정부에서 사냥꾼 협회를 인정하고 쓸데없이 견제하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모처럼 가진 무기를 활용하려 하지 않는 게 아쉽네.”
아직 삐걱대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사실 한국의 상황은 어느 나라보다 좋은 편이다.
비록 군사 정권이 들어서긴 했어도 정부와 군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고.
빠르게 사냥꾼 단체가 거대화되어, 다른 나라에 득세 중인 인간 사냥꾼들이 유독 한국에서는 힘을 못 쓰고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데면데면한 정부와 사냥꾼 협회의 관계는 과도기 속의 한 풍경일 뿐, 나름 건전한 사이라 할 수 있다.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하려 하는 신정부의 행동에 인상이 써지긴 하지만, 만약 자체적으로 이 일을 해결하는 데 성공한다면 정부의 힘은 꽤 강해질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져나가는 건 결국 윗대가리가 아닌 병사들이잖아?”
“으음…….”
때문에 서인호 준장의 반응이 좋지 않은 것이고, 사냥꾼 협회의 협조를 받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주영우 중령의 사고방식도 서인호 준장과 비슷했다.
다만 주영우 중령은 서인호 준장처럼 단호하게 말하지 못할 뿐이었다.
“이번 대회의 때, 북한 원정을 갈 생각이면 무조건 사냥꾼 협회에 협조 요청을 해야 한다고 제안할 생각이야.”
“괜찮겠습니까?”
“나라도 나서야지.”
이는 서인호 준장이 서백호의 아버지라 내리는 결정이 아니다.
그의 신념에 따른 결정이었다.
-똑똑!
그런데 그때.
“시, 실례하겠습니다! 서인호 준장님!”
“무슨 일이야?”
서인호 준장의 방에 형식적인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진 직후, 그의 비서가 다급히 들이닥쳤다.
이래저래 형식을 따지는 인물이었다면 화를 내기 충분한 상황이지만.
그는 부하가 허락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 상황보다,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물었다.
“위, 위성 통화가 모조리 먹통이 되었습니다.”
“뭐?”
“계룡대에서 전해온 마지막 정보에 의하면 아무래도 몬스터에게 통신 위성이 파괴된 것 같습니다.”
“인공위성을……. 몬스터가?”
그동안 위성 전화기 덕분에 각 지역에 문제가 생겨도 그럭저럭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그 위성 전화기조차 먹통이 되었다는 뜻.
물론, VHF 안테나 등을 이용해 어느 정도 통신 체계를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이전과 같은 편리함과 신속함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공위성을 파괴하는 괴물이 우주 공간에 있다는 것이 이들을 당혹게 했다.
* * *
한국은 정부가 생존 구역을 만들어 국민들을 관리하고, 사냥꾼들이 거대 세력을 형성해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많은 게 제약된 삶을 살고 있지만, 적어도 같은 인간의 공격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정부의 힘이 닿지 않는 곳. 사냥꾼 협회의 가입자가 없는 지역들은 여전히 이런저런 문제가 존재하지만, 지금의 성장세를 보면 머지않아 개선되겠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이 특수한 것뿐이다.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많은 나라는 그러지 못했다.
정권이 붕괴된 곳도 많고, 개인의 이득을 위해 같은 인간을 공격하는 이들이 전국 각지에 넘쳐난다.
올바른 사냥꾼 세력이 존재하더라도 지역 단위 단체가 대부분이며, 인간 사냥꾼 세력이 점령한 도시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의 상황을 두고 다른 나라를 비교하는 건 옳지 않았다.
“이게 오사카 도톤보리?”
오사카는 가족들과 여행 온 적이 있는 장소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리는 곳이기도 하고.
덕분에 나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당황했다.
도톤보리의 번화했던 그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대도시들도 많이 파괴되긴 했지만, 일본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곳곳에 사람의 두개골이 줄줄이 꿰인 막대기가 꽂혀 있고.
-까아아악! 까악!
도시를 점령한 까마귀 떼와 그런 까마귀에게 살을 내어 주고 있는 인간의 벌거벗겨진 시체가 도톤보리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나마 겨울이라 덜한 거지, 여름이었다면 인간의 시체가 부패해 구더기와 쥐 떼가 들끓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폐가 썩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이거 너희가 일부러 이렇게 연출한 거야?”
나는 하루토라는 이름의 일본의 인간 사냥꾼에게 물었다.
그에 녀석은 우물쭈물하더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 영역 표시 같은 거랄까요?”
나는 그런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러자 하루토는 눈깔이 튀어나오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바닥에 고꾸라졌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죽어도 싼 놈인지라 때려도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추가 원정 부대는 어딨어?”
“오사카 성입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로는 서울의 윤시아, 수원의 김현수, 제주의 박성만, 성남의 최도겸 팀 외에도 강이솔이 직속팀과 함께 데리고 합류한 서울2팀, 서울3팀, 여주팀, 보령팀이 함께였다.
제주 때와 다른 점이라면 레벨 40 이상만 합류를 시켰다는 거다.
이마저도 근 3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이었지만, 시간의 여유를 갖고 멤버를 더 모았다면 훨씬 많은 인원이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죠.”
“네!”
내 지시에 레벨 40 이상의 정예 근 300명이 우르르 걸음을 옮겼다.
이런 우리의 모습에 하루토는 더욱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응?”
그런데 잠시 후, 우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누, 누구냐?”
“하루토!?”
오사카 성의 해자를 사이에 두고 두 세력이 대치 중인 것을 발견했다.
나는 길 안내인 하루토에게 상황을 물었다.
“전부 네 동료인 건 아닌가 보지?”
“성 안쪽의 집단이 제 그룹이고, 바깥에 있는 집단은 사카이시에 거점을 둔, 다나카 타이치라는 남자가 이끄는 그룹입니다. 저희와는 성향이 달라서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그룹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단 뜻인가?”
“그렇습니다.”
“성향은 무슨,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차이지.”
“…….”
하루토가 속한 인간 사냥꾼팀은 오사카시 중심에 거점을 두고 있으며, 다나카 타이치라는 인물이 이끄는 일반 사냥꾼팀은 사카이시에 거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카이시 또한 오사카부의 도시지만, 대재앙 전 인구수는 오사카 268만에 사카이 84만으로 제법 큰 격차가 있다.
‘일본에선 인간 사냥꾼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착한 느낌이네.’
두 세력은 갑자기 등장한 우리들의 모습에 크게 당황하며 서로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그때, 검은색 코트 자락을 펄럭이는 남성이 미모의 여성 동료와 함께 걸어 나왔다.
[다나카 타이치 / 레벨: 42]
그가 바로 인간 사냥꾼에 대항하는 정상인 다나카 타이치였다.
쌍검을 등에 엑스자(X)로 교차 착용한 모습이 인상적인 그는 말했다.
“나는 검은 검사란 이명을 가진 다나카 타이치라 한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검은 검사?”
이게 뭔 개똥 같은 소리인가 싶어서 하루토를 바라보니, 그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일본인들은 별명 붙이는 걸 좋아하거든요. 저도 오사카의 사신이라 불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처치한 놈들 중엔 오사카의 디아볼로도 있었고요.”
나는 황당함을 표했다.
가끔이지만, 나도 이름을 숨기려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는 했었다.
그 후로 서아라고만 부르면 괜찮은데, 아즈나블까지 붙여 부르는 사냥꾼들이 있어 간혹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온라인 닉네임 같은 케이스였다.
그에 반해 이들은 별명이 붙었다고 그 별명을 자기소개에 붙여서 사용하다니.
너무 중2병 같지 않나?
“그런데 녀석의 검은 검사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소개하고 다니거든요.”
나는 그냥 문화 차이인가 보다라며 웃어넘겼다.
“대한민국 사냥꾼 협회다.”
이름은 대지 않았지만, 우리보고 누구냐 물은 검은 검사는 다른 것보다 한국의 국명이 거론되자 움찔 놀라는 게 보였다.
“너흰 사신의 동료인가?”
하루토의 동료냐는 물음.
항마력이 필요해지는 화법에 통역을 맡은 최도겸 팀의 사냥꾼이 수시로 몸을 긁어 댔다.
“아니. 적이다.”
“적?”
“그러니 저놈들은 우리에게 양보해 줬으면 좋겠어.”
대화를 길게 나눌 필요성을 못 느낀 나는 손을 들었고.
그러자 내 일행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그에 놀란 다나카가 급히 자신의 검을 쥐었지만, 이어진 내 행동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검에서 손을 뗐다.
-콰아아앙!
내가 성검을 뽑아 마력을 양껏 쑤셔 넣자, 강렬한 광선이 직선으로 뻗어 나가 오사카 성과 성벽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네, 양보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찔끔한 다나카는 너무도 깔끔하게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