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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03화 (103/273)

103화 일본 여행 (2)

어떻게 바다를 건너온 건지 알 수 없는 한국인들의 등장에 의문을 표할 틈도 없이.

오사카 성벽과 성의 일부를 칼로 도려낸 듯 날려 버린 남성이 다나카 타이치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 한국인 남성도 다나카처럼 검은색 바탕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갈색과 흰색 등의 포인트 색상이 들어가 있어서인지, 느낌은 전혀 달랐다.

다나카의 복장이 그저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있을 뿐이라면, 눈앞의 한국인은 디자인도 꽤나 신경 쓴 느낌이랄까?

덕분에 그는 장비를 걸치고 있을 뿐인데도 묘한 세련미를 갖고 있었다.

얼굴은 평범하지만, 복장의 센스가 좋아서인지 괜히 더 멋있어 보였다.

다나카는 역시 한국인들이 옷을 잘 입긴 입는다고 생각하며, 슬쩍 그의 무장을 살폈다.

‘저런 파괴력을 가진 무기는 처음 봐.’

남성이 손에 쥔 검은 다나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광선검같이 보였다.

한국인 남성은 그 광선검으로 오사카 성에 침입하기 위한 자신들만의 출입구를 만들어 버리고는 검을 왼쪽 허리춤에 권총처럼 채워 놓았다.

광선검 옆으로는 단검 두 자루가 나란히 걸려 있었으며, 왼쪽의 콤팩트한 무기들과 달리, 오른쪽 허리에는 기다란 장검 두 자루가 채워져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여.’

그로 인해 방금까지 스스로를 꽤 멋지다고 생각해 오던 다나카는 돌연 자신의 장비들이 볼품없어 보이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리고 비교되는 것은 아이템뿐만이 아니었다.

“공격.”

한국인 남성이 뱀피로 만들어진 가죽 코트를 펄럭이며 명령을 내리자, 수백의 사람들이 총알처럼 뛰쳐나갔다.

한명 한명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아서 그들의 레벨이 궁금해졌다.

“아스나, 왜 아까부터 말이 없어?”

“아스나라고 부르지 말랬지.”

“흠흠, 그래 아카리.”

다나카는 탐색 관련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탐색 스킬을 보유한 사냥팀의 서브 리더 아카리를 부른 것이다.

아카리는 흰색과 붉은색이 조합된 상당히 다나카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그래. 저 대규모 병력의 레벨이 전부 40 이상이야. 레벨 50 이상도 적지 않고.”

“뭐?”

상상을 초월하는 전력에 다나카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말은 다나카의 직속 최정예 파티를 수백 단위로 모아 놓은 집단이 바로 저 한국인들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카리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방금 성벽을 날린 저 남자랑 옆에 있는 여자들은 레벨이 안 보여.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어째서 이런 괴물들이 등장한단 말인가.

다나카는 마른침을 삼켰다.

“움직인다.”

드디어 부하들을 침투시킨 한국인 사냥팀의 대장이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전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세 사람과 한 마리로 구성된 그 파티는 여유롭게 오사카 성을 향해 걸어 나가더니, 이내 귀신처럼 홀연히 눈앞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아무래도 순간이동 스킬을 사용한 것처럼 보였다.

-콰아아앙!

-지이잉!

-콰릉! 쾅!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다나카와 아카리는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난데없이 오사카 성에 낙뢰가 수차례 떨어지고, 새하얀 빛이 수십 줄기가 솟구치며 성을 요란하게 파괴했다.

“끄아아악!”

“괴, 괴물!”

더불어 날붙이에 잘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팔다리, 머리 등이 수시로 허공에 떠오르니, 성벽으로 인해 성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

“…….”

그렇게 전투가 개시되고 5분도 채 안 흘러.

오사카 성 내부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가자.”

“아, 알겠습니다.”

그에 성 밖에 대기하고 있던 일부 한국인들.

정확하게는 오사카의 사신이라 불린 미야바 하루토를 개처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오사카 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가 보자.”

“뭐? 미쳤어?”

위험해 보이는 장소에 굳이 얼굴을 들이밀려고 하는 다나카의 제안을 아카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사카이 대표분들도 잠깐 들어오시겠습니까? 딱히 해코지를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사카 성에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 달려 나와 그들을 불렀다.

제 발로 저 안에 들어가는 건 격하게 반대하던 아카리였으나, 상대의 초대는 감히 무시하지 못했다.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 둘이 다녀올 테니, 좀 물러나서 기다리고 계세요.”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결국, 아카리는 마지못해 일행들에게 말을 남기고, 다나카와 함께 오사카 성 내부로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얼어붙은 아카리와 달리 다나카는 설렘을 느꼈다.

이유는 한국인 사냥팀의 대장이라는 인물의 존재감이 뇌리에 너무도 강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욱!”

그 후 오사카 성에 들어서자 가장 눈에 들어 온 건, 근 500에 달하는 인간 사냥꾼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풍경이었다.

피와 내장, 살점이 시체들과 복잡하게 뒤엉켜 오사카 성 내부는 지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절로 헛구역질이 치밀게 만드는 너무도 끔찍한 풍경.

새로운 시대에서 시체를 수도 없이 봐왔지만, 추운 겨울날 뜨끈한 김을 토해 내는 시체들의 내장과 짙은 혈향은 비위를 건들기 충분했다.

“괜찮아.”

하지만 다나카는 큰 동요 없이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다나카는 바보 같은 행동을 많이 하는 오타쿠지만, 중요한 순간엔 이렇게 늠름했다.

덕분에 아카리는 조금이나마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셨군요.”

한국인 리더의 의외로 친절한 응대.

더구나 반말로 짧게 주고받던 말투는 존댓말로 바뀌었다.

다나카와 아카리는 한국인 대장이 권한 자리에 앉았으나, 불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옆쪽으로 하루토와 오사카의 인간 사냥꾼 생존자들이 무릎 꿇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오사카 주변의 인간 사냥꾼 조직을 모두 청소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우린 방금 일본에 도착했기에 아는 정보가 많지 않군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자신이 어째서 불려온 건지 알게 된 다나카는 용감하게 물었다.

“어째서 한국인 여러분께서 굳이 먼 일본 땅까지 와서 악인들을 토벌하는 겁니까?”

그건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그에 한국인 대장은 태연히 답했다.

“그러는 당신들은 어째서 이놈들과 대치하고 있던 겁니까?”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주도권은 한국 쪽에 있었다.

“오늘 아침에 저희 사냥꾼팀의 멤버 5명이 오사카시와 사카이시의 경계 부근에서 활동하다가 증발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그 5명이 하루토 일행에게 쫓기는 것을 본 증인들이 있더군요.”

“그렇습니까?”

한국인 대장은 별 의심 없이 다나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앞선 그의 물음에 답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으로 넘어온 이 인간 사냥꾼팀에게 동료가 당했거든요.”

“네? 이놈들이 한국에 넘어갔었다고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에 다나카는 의문을 표했지만, 한국인 대장은 필요 이상으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오사카 주변, 인간 사냥꾼들을 모조리 처치하는 겁니다. 그러니 정보를 주시면 깔끔하게 청소해 드리죠.”

다만 다나카와 함께 동석을 하고 있던 아카리는 이어진 그 말 덕분에 ‘오사카에 한국과 연결된 무언가가 있다’라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방해가 되는 일본인들을 미리 제거하려는 것이고.

오사카를 단번에 청소해 버린 그들이라면 이 주변 일대의 소탕도 그리 어렵지 않을 터이다.

아카리는 다나카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그의 제안에 협조해서 손해 볼 게 없겠다고.

사실 원래부터 협조할 생각을 갖고 있던 다나카였다 보니, 빠르게 자신들의 정보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무릎을 꿇고 있던 하루토와 몇몇 살아남은 일행도 살기 위해 경쟁하듯 정보를 제공했다.

“너, 그리고 너. 자꾸 거짓말을 하는군.”

“자, 잠!”

-콰직!

“으악!”

-쿵!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둘 인간 사냥꾼들이 죽어 나갔다.

판단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한국 측의 리더가 인간 사냥꾼들의 정보가 거짓말이라 확신하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그가 손을 튕기면 왼쪽 허리춤에 채워진 단검이 스스로 날아올라 표적의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타인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무섭네.’

아무튼 이런 상황 덕분에 정보 수집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날 수 있었다.

자비 없는 손속에 움찔움찔 온몸이 떨렸지만, 다나카는 이상하게 한국 측의 리더가 멋지게만 보였다.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동료가 되고 싶다.’

* * *

복수심과 미래의 편의를 위해 시작한 일본 원정.

하지만 이번 원정으로 얻어지는 이득은 애초의 예상을 가볍게 초월했다.

“약 50개에 달하는 희귀 등급 장비와 1,000개가 넘는 특수 등급 장비를 획득했습니다.”

“수거를 마친 코인이……. 850만입니다.”

“가공식품도 200톤 분량을 획득했습니다”

오사카시 한곳을 털었을 뿐인데도 이 정도다.

이번에 추가로 확보한 정보에 의하면, 오사카팀과 비슷하거나 약간 규모가 작을 뿐인 인간쓰레기 집합소가 오사카시 인근에만 10곳에 달했다.

그곳들을 다 털면 얼마나 수확이 쏠쏠할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역시 악인 토벌이 짭짤하긴 해.”

피식 실소를 흘리며 내뱉은 내 혼잣말에 옆에 있던 강이솔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기쁜 듯이 말했다.

“이번에 건설 예정인 협회 본부와 직할 도시 계획에 필요한 재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 원정에 나서며 초기에 정한 게 있다.

획득한 코인은 협회 도시 건설에 모조리 투입하고, 장비는 우리 파티가 2, 나머지 사냥꾼들이 8로 나눠 먹기로.

꽤 양보한 편이다.

하지만 나는 당장 필요한 게 없어서, 사냥꾼 협회 전력 강화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정한 것이다.

때문에 동료의 죽음으로 원정 초기에 화로 가득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느새 풀어지고 있었다.

“우리 아예 이 기회에 일본의 구세주가 되어 보는 거 어떻겠습니까?”

“오사카를 넘어 일본 전역의 악인들을 처치하자는 거군요?”

“네!”

자연스레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 경험치는 얻을 수 없지만, 시체에서 코인과 지니고 있던 아이템은 빼앗을 수 있다.

그렇기에 악인들이 손쉽게 코인을 벌고, 손쉽게 파밍을 하기 위해 같은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다.

반면 우린 악인들이 긁어모은 재화를 노리며 청소를 하니, 그야말로 최상위 포식자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해. 일본에 있는 인간 사냥꾼들만 청소해도 사냥꾼 협회 소속 멤버들 전체의 무장을 강화하고도 남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협회 소속 사냥꾼들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재정에도 여유가 생기면 일반 생존자들도 지원할 여력이 생긴다.

당장 레벨 올리기에 소홀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비가 업그레이드되면 실질 전투력은 오히려 높아지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보일 법했다.

나 역시 관심이 갔고.

“일단, 오사카 주변을 청소하고 생각해 보기로 하죠.”

우선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뒷일은 추후 긍정적으로 고민해 보기로 했다.

“다음은 어디죠?”

내 물음에 이번에 얻은 정보를 토대로 문서화한 자료를 읽은 강이솔이 말했다.

“동 오사카(히가시 오사카시)란 곳이네요. ”

오사카 동쪽에 위치한 도시라서 동 오사카(히가시 오사카)라고 불린다.

그곳에도 상당한 규모의 인간 사냥꾼팀이 있기 때문에 다들 침략군 모드에 빙의하여 동 오사카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혹시 저도 참가할 수 있을까요?”

한몫 챙기려는 속셈일까?

다나카가 우릴 따라나서고자 했다.

“보상 필요 없습니다. 그저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기록에 남기고 싶은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아무 욕심 없는 말에 나는 동행을 허락했다.

그의 동행을 이렇게 쉽게 허락한 이유는.

다나카가 여러모로 재밌는 인간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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