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04화 (104/273)

104화 일본 여행 (3)

다나카는 우리에게 관심이 매우 많았다.

“그런데…….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요. 옆에 계신 분은 엘프 맞죠?”

“네, 맞아요.”

“와, 와아. 즉 NPC 출신의 동료분이란 거죠? 대박, 엘프는 처음 봅니다. 한국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네요.”

“사실 한국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건 없습니다. 사냥꾼 협회의 동료 대부분도 제 곁에 계신 시에나 님으로 엘프를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요.”

“나루호도! 협회장님이 특별한 것뿐이란 뜻이군요?”

“특별하다기보단, 남들보다 새로운 정보를 빨리 접하는 것뿐이죠.”

“역시 대단하십니다!”

역시 오타쿠 아니랄까 봐 가장 먼저 엘프인 시에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애니메이션 속 츤데레 미소녀 같은 외모와 금발의 포니테일까지.

시에나는 확실히 오타쿠들이 환장할 외형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다나카의 관심은 시에나에게서 그치지 않았다.

“옆에 계신 여성분은 얼굴을 왜 베일로 가리시고 계신 건가요?”

“버릇 같은 거랄까요? 리아 씨가 굉장히 미인이거든요. 그래서 험악한 사람이 많던 시기에 얼굴을 가리고 다녔던 건데, 지금은 그냥 마스크 대용처럼 쓰고 계시죠.”

“베일 덕분에 뭔가 신비한 느낌이 들어 멋져 보이세요!”

나와 윌리아가 입고 있는 외투에는 온도 조절 기능이 있어서 추운 날에도 이것저것 껴입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윌리아의 복장은 꽤나 얇았다.

우월한 체형이 돋보이는 옷차림에 베일로 얼굴을 가리니, 윌리아는 마치 요염한 무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 역시 오타쿠로서는 무시하기 힘든 컨셉인 모양이다.

“이 작은 강아지가 아까 그 시커먼 날개 달린 늑대라고요?”

“네, 비전투 시간엔 이렇게 작아져서 사람들 어깨에 걸쳐 낮잠을 자곤 합니다.”

“크으, 역시 주인공 파티에는 마스코트를 빼놓을 수 없죠. 크기가 작을 땐 귀엽고, 클 땐 늠름한 펫이라니, 완벽합니다.”

멍멍이를 마스코트라 칭한 다나카는 특이한 파티의 구성을 완벽하다며 감격한 얼굴로 엄지를 추켜세웠다.

“주인공 파티?”

나는 주인공 파티라는 이상한 호칭에 중간에 껴서 통역 중인 최도겸 팀 팀원에게 의문을 표했다.

“다나카 씨가 아까부터 협회장님의 파티를 주인공 파티로 칭하고 있습니다.”

뭐야, 그건?

나는 헛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그 후로도 다나카의 수다는 멈추질 않았다.

“제 패션에 대해 설명하자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패러디한 겁니다. 저희 팀의 서브 리더인 섬광도 그렇고요.”

“섬광이요?”

“제 이명이 검은 검사인 것처럼 서브 리더인 아스나의 이명입니다.”

“……. 서브 리더분 이름 아카리 아니었습니까?”

“겨우 두 글자 차이일 뿐입니다.”

“일치하는 이름은 한 글자뿐인데요?”

역시 독특한 인간이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아 좋기도 하고.

그냥 말하는 것만 봐서는 약간 모자란 친구 같지만.

의외로 다나카는 원정팀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저쪽엔 오크와 다이어 울프 사냥터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어서 귀찮으실 겁니다. 그러니 이쪽 길로 가는 걸 추천합니다.”

“여기선 차도를 이용하기보단 주택가 길을 이용하는 게 낫습니다. 차도를 따라가다 보면 협곡 형태의 이상 지형이 나와 길이 끊기거든요.”

“이 앞은 우회해야 합니다. 아직 클리어되지 않는 던전 두셋이 밀집되어 있어서 자칫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나카가 현지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재잘재잘 떠들다가도 지형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중간중간 앞장서 뛰어나가고는 했다.

덕분에 우린 오사카 인근의 인간 사냥꾼들을 빠르게 털어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동 경로와 습격 루트를 짜는 데도 큰 도움이 돼서 인간 사냥꾼 다섯 팀을 공격하는 동안 우리가 불리하게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 너는 다나카? 이 매국노가 외국인을 끌어들여!?”

“인간 사냥꾼 새끼가 무슨 매국노를 따져. 정작 나라를 망가뜨린 건 지들이구만.”

-챙! 핏!

더구나 중간중간 보여 주는 전투에서의 번뜩임은 꽤나 놀라웠다.

나는 쌍검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력으로 쓰기에는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다나카는 쌍검을 너무 잘 사용했다.

빈틈없이 공격과 방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조차 쌍검 사용을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스타버스트……. 스트뤼이임!”

물론, 싸우면서 계속 기술명을 외쳐대는 건 별로다.

나도 종종 재미로 몇 번 그랬었는데, 다나카가 하는 걸 보니, 앞으로는 자제해야겠다.

심지어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내게 상쾌해 하는 얼굴로 다가와 희한한 주먹 인사를 시도하려고도 했다.

“역시 어느 정도 보상을 떼 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다나카 씨로 인해서 아무런 피해 없이 오사카 주변을 청소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투에서도 1인분 이상을 톡톡히 해 주고 있고요.”

그건 강이솔의 이야기였다.

처음 다나카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냥꾼 협회 소속 몇몇 동료들도 이젠 다들 그를 인정하고, 웃으며 대하고 있다.

안 그래도 나 역시 강이솔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다나카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렇게나 잘해 주고 있는데, 대우를 해 주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하게 퍼 줄 필요는 없지만, 적절히 보상을 주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나카에게 보상을 분배해 주겠다고 했더니.

“아, 아닙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이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다나카는 끝까지 우리가 보상을 주겠다고 해도 거절했다.

그럼에도 당신이 받아 줘야 우리 마음이 편하다는 식으로 그를 설득했는데…….

“정말 사양할 필요 없습니다.”

“저어. 정 그러시다면 다른 부탁을 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다나카가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해 왔다.

“부탁? 뭔데요?”

“저희 사카이팀을 사냥꾼 협회에 가입시켜 주십시오.”

바로 사냥꾼 협회 일본 지부 설립 제안이었다.

당혹스럽지만 흥미로운 제안.

때문에 나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런 내게 강이솔을 비롯해 협회의 주축 멤버들이 다가와 말했다.

“다나카 님의 사카이팀 수준이면 사냥꾼 협회의 지방 팀들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습니다. 사카이팀을 필두로 일본의 고위 사냥팀들을 흡수하면 우리의 협회의 힘이 더 강해질 테지요.”

“그뿐 아닙니다. 지금 일본 정권이 무너진 상태 아닙니까? 우리 협회가 순조롭게 세력을 키워 나가면 입맛에 맞게 나라를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너무 과한 사고방식인 것 같지만, 그들을 협회에 가입시켜도 손해 볼 건 없다는 게 대부분의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고민을 해야 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우리의 일본 활동 방향이 정해지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긴 장고 끝에.

“좋습니다. 사냥꾼 협회의 일본 지사를 설립하기로 하죠.”

나는 다나카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다나카의 사카이팀에게 세 가지의 임무를 부여하기로 했으니.

그건 아래와 같다.

1. 한국과 통하는 연결로의 관리

2. 정보 수집

3. 세력 확장

다나카는 너무도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와 한솥밥을 먹는 게 그저 기쁜 모양이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런데 다른 팀원들에게 묻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알고 보니, 다나카의 요청은 순전히 그의 독자적인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우려를 다나카는 너무도 간단히 일축해 버렸다.

“제 결정을 부정할 사람이 사카이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군요.”

놀랍게도, 다나카는 사카이팀에서 ‘절대’라고 표할 수 있는 발언력을 갖고 있던 것이다.

가벼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모두가 그의 지시를 잠자코 따랐다.

* * *

일본으로 넘어오고 이틀째.

우리는 오사카 주변의 청소를 완료했다.

그리고 악인들을 처치하고 얻은 보상은 무얼 생각하든 그 이상이었다.

“초, 총수입 7,310만 코인. 이, 이 정도 코인이면 올림픽공원에 성벽을 두르고 그 안에 도시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원래는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었으나, 사냥꾼 협회가 자력으로 도시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가공식품 920톤.”

더불어 대량의 가공식품을 손에 넣은 데다가.

“특수 등급 장비 6,040개, 희귀 등급 장비 351개입니다.”

엄청난 양의 장비까지 획득했다.

이런 장비 중 20%는 우리 파티에게 할당되는지라 예정대로라면 70개의 희귀 등급 장비와 1,200개의 특수 등급 장비를 얻게 된다.

실로 엄청난 양이 아닌가.

희귀 등급으로 몸 전체를 떡칠하고도 남을 양이다.

‘뭐, 이미 착용하고 장비의 대부분이 희귀 등급 중에서도 상급이라 달라지는 건 크게 없을 테지만.’

엘프 마을에 가면 장비에 깃든 스킬을 추출할 수 있는 상점이 있는데, 이 기회에 장비에서 마음에 드는 스킬들을 추출해 봐야겠다.

‘그래도 남는 장비는 지인들에게 나눠 주거나, 협회의 사업 중 하나인 경매장 활성을 위해 내놔도 되겠지.’

참고로 아이템 분배는 나중에 서울로 돌아가서 한 번에 할 예정이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틀간 원정으로 획득한 보상을 정리해 보고하던 강이솔이 대뜸 그렇게 물어 왔다.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 물음은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쯤에서 한국으로 돌아갈지, 욕심을 더 부려서 오사카 외부의 인간 사냥꾼들까지 토벌할 건지를 묻는 거다.

그에 잠깐 고민한 나는 답을 했다.

“갔다가 바로 다시 오더라도 이틀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한국에 들르는 게 맞을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행들에게 그렇게 전해 놓겠습니다.”

* * *

서백호가 강이솔과 일본 활동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윌리아와 시에나, 멍멍이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오사카의 마천루, 아베노 하루카스의 60층 전망대에 올라왔다.

사냥꾼 협회 멤버들과는 안면도 터서 서백호가 없어도 편하게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터져도 반파된 통창으로 뛰어내리면 바로 서백호에게 돌아갈 수도 있어, 300m 높이에 올라왔다고 해도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아도 생각한 것이다.

“높긴 한데, 한국의 엘타워가 훨씬 높네요.”

윌리아는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뻥 하고 뚫린 창 아래를 내려다보며 전경을 즐겼다.

그러자 시에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타워?”

“아, 시에나 님은 못 가보셨구나. 저랑 백호 님은 지하 미궁 공략으로 서울에서 자주 활동갈 때 한 번 들렀었어요.”

“어쩌라고.”

[나도 가 봤어!]

멍멍이까지 자랑을 하니 시에나는 더 입술을 늘어뜨렸다.

“가는 게 뭐가 어려워? 나도 한국 가서 갈 거야.”

“그럼 저는 두 번째 가는 게 되겠네요. 시에나 님은 처음 가 보는 거고.”

윌리아는 은근히 시에나를 약 올리는 게 재밌었다.

시에나는 감정이 표정에 금세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쩌라고.”

자칭 700살이라는데 항상 사춘기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 순간, 무너진 곳이 많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계단으로 사람들이 몇 명 올라왔다.

일순 경계한 시에나와 윌리아였지만, 아는 얼굴들이라 경계심을 풀었다.

“어라, 먼저 온 분들이 계셨네.”

수원의 김현수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오고, 그 뒤로 보령의 공나무(콩나물)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따라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콩고물.”

“아, 시에나 님. 제 이름은 콩나물인데요.”

이름은 사실 공나무였다.

김현수도 시에나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뭐 보여요?”

“궁금하면 네가 봐. 애송이.”

수원의 김현수 하면 꽤 이름이 알려진 사냥꾼으로 통하는데 시에나에게는 애송이로 불렸다.

서백호와 만나면 빈번히 대련을 신청하는데 어쩌다 한번 어울려 주면 된통 깨지는 걸 봤으니 말이다.

지켜보던 윌리아도 조그맣게 실소를 흘렸다.

동시에 얼굴이 낯익은 다른 한 명이 추가되기까지 했다.

“여기 핫 플레이스인가 봐요?”

서울의 제일 사냥꾼 윤시아까지 마천루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에 김현수가 물었다.

“시아 씨? 협회장님과 계신 거 아니었어요?”

“제가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서, 뭐 기념품으로 챙겨갈 거 없나 해서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장식품 같은 거나.”

정말로 윤시아는 인벤토리에서 오사카 상가를 떠돌며 구한 물건들을 자랑했다.

그중에는 김현수가 탐낼 만한 것도 있었다.

“일본도네요? 안 그래도 저도 숙소에 진열할 만한 거 발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칼이에요. 내구성은 안 좋아 보여도. 어디서 구했냐면요.”

김현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구한 장소를 듣던 중, 시에나가 미간을 좁혔다.

“저거, 사람인가?”

“네? 뭐가 보여요?”

공나무도 조심조심 창가로 가 끊어지지 않은 펜스를 잡고 바깥을 주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리안 스킬이 있는 시에나이니 보인 것이다.

윌리아에게도 흐릿하게 무기 마찰에 의한 빛 정도만 보일 뿐이었다.

“뭐 같아요? 시에나 님?”

“사람? 아니면 사람 형체의 몬스터? 아무튼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어. 레벨 차이가 심한지 막무가내로 당하고 있지만.”

“어디쯤이에요?”

“아까 가려다 막힌 곳 있잖아. 바카나가 안내하다가 이 앞엔 다리가 끊어져서 못 간다고 말했던 곳.”

“다나카 씨요.”

그리고 시에나가 눈에 힘을 주고 본 끝에, 탐색 스킬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뭐가 됐든. 그러니까, 여기서 원래라면 다리로 건너갈 수 있던 서쪽의 섬인데.”

대학 시절 일본에 전지훈련을 온 적도 있던 김현수가 일본도를 구경하다 말고 대답했다.

“오사카에서 서쪽 섬이면, 아와지인가?”

“섬 이름까진 나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있어. 미쳐 날뛰는 레벨 100짜리 몬스터 검객이.”

검객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윌리아는 생각했다.

서백호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타입의 몬스터라고.

레벨 100의 검을 다루는 몬스터라면 아주 좋은 검을 보상으로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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