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중화 청년단 (3)
“아직 식사를 못 해서 출출한데, 혹시 여기 짱깨 요리됩니까?”
느닷없이 등장한 사내가 느닷없이 내뱉은 말.
그런데 문제는 한국어로 내뱉은 그 말을 어째서인지 중국인인 류웨이가 알아들을 수 있었단 것이다.
상대가 통역 스킬 또는 관련 기능이 붙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판단한 류웨이는 앉아 있던 회의실의 테이블을 쾅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감히 우릴 모욕하는 것이오!?”
회의실에 자리한 중화 청년단 소속 중국인은 류웨이 혼자가 아니었다.
조선족인지 단순히 한국어를 잘하는 한족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역 1명과 류웨이의 호위 셋까지 총 5명이었다.
때문에 낯선 사내의 발언에 류웨이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인들도 발끈했다.
“오, 이런. 미안합니다. 별 뜻 없이 비서실장님에게 물은 건데, 통역 반지를 끼고 있는 바람에 중국분들이 오해할 만한 상황이 되었군요.”
그에 불꽃이 일렁이는 망토를 착용한 남성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 왔다.
하지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말투와 표정, 태도 덕에 이 역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인지했다.
“지금 우리와 장난하잔 건가?”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흉흉해졌다.
류웨이의 호위들도 전투를 불사하겠다는 듯 검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덕분에 김응수 대통령을 포함한 대한민국 정부 측 인사들도 당황하며 엉덩이를 들썩여야 했다.
그러나 회의실에 난입한 사냥꾼 협회의 협회장 서**은 낮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장난은 그쪽이 시작한 거 아닙니까? 난 또 아무 말 대잔치가 열린 줄 알았지.”
“무슨?”
“실은 당신과 대통령님의 대화를 듣고 말았거든요. 꽤나 강압적이시던데.”
그제야 사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중화 청년단이 보이는 반응은 회의실에 모인 한국인들의 사고방식과 전혀 달랐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상황상 아쉬운 건 그쪽이고, 우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입장인데.”
중화 청년단은 중국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정부에 소속된 정식 기관은 아니다.
즉, 민간단체의 고위 관리자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겁박해도, 자신들이 입장상 우위에 있으니, 문제 될 것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세상이 난리가 나고 인간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놓지 않는 선민의식.
상대가 조금은 찔려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당당하니, 황당한 건 서**과 대한민국 정부 측 인사들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겠소!”
류웨이는 서**과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정부 인사들이 입을 닫자, 다시 의기양양해져서 그리 소리쳤다.
하지만.
“설치지 말고 앉아. 살아서 돌아가고 싶으면.”
서**이 더는 존중해 줄 가치가 없다는 듯, 회의실에 의자를 하나 차지하고 앉으며 반말로 명령했다.
덕분에 상대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고 생각한 류웨이와 그의 호위들이 강압적인 태도를 이어 가려 했으나.
“뭐? 살고 싶으면? 하!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모양인데! 우리 없으면 당신들은 전부 죽…….”
-핏.
언제 빼 든 건지, 단검 한 자루를 손에 쥐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서**의 모습과 동시에 목에서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
류웨이와 3명의 호위, 통역 모두가 자신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고, 곧 적지 않은 양의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피부만 날린 거니, 쓸데없이 기절하지는 말고. 부디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
무슨 공격인지 보지도 못했다.
원거리 스킬인지, 아니면 그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단검에 의한 상처인지.
단 한 번이지만, 자신들과 서** 사이에 아득한 격차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나? 중화 청년단 소속 전투원 1천여 명이 청와대 생존 구역 인근에 결집해 있다.”
용감한 것일까?
만용일까?
상대의 마음 먹기에 따라 목이 날아갈 수 있음에도 류웨이는 끝까지 할 말을 했다.
“그래 봤자 고작 평균 레벨이 30대잖아. 그 정도 실력자는 한국에 수도 없이 많거든. 대체 무슨 깡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야.”
“무, 무슨 허풍을……. 이미 한국 사냥팀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걸 조사하고 들어 온 건데.”
“아아, 나를 포함해 주력 사냥꾼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조사하고 갔나 보네. 인제 보니, 그래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거였어?”
서**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서울만 살피고 그렇게 판단한 거면 바보짓이야. 우리 협회 소속 사냥꾼들은 주로 지방에서 사냥을 하거든.”
그리고 이런 그의 말을 증명하듯 회의실의 문이 다급한 노크와 함께 열리며 중국인 여성이 들어와 류웨이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레벨 40 이상인 한국인 사냥꾼들이 대기 중인 전투단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 수가 500은 가볍게 넘고 레벨 50 이상 사냥꾼도 더러 보입니다.”
그제야 류웨이는 서**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의 수준은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베이징에 있는 본대와 비견될 정도로.
당황한 류웨이는 잠시 말을 잃었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며 말했다.
“이거 과정에 오해가 있었군요. 사과드립니다.”
갑자기 조심스러워진 행동.
하지만 서**을 비롯한 회의실 내의 한국인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저들이 다시 우위의 입장을 차지하게 되면 바로 태도를 바꿀 것이란 사실을…….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인물들이란 것을 말이다.
* * *
원래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중화 청년단의 근본 없는 행태에 결국 개입하고 말았다.
[류웨이 / 레벨: 48]
[리티엔 / 레벨: 40]
[장원하오 / 레벨: 39]
[씬자준 / 레벨: 39]
‘마음 같아선 전부 목을 날려 버리고 싶지만…….’
그전에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있다.
나는 태도가 신중해진 중화 청년단의 전략실장 류웨이란 작자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북한을 침공 중인 몬스터 집단을 대응할 수 있긴 한가?”
“그렇습니다.”
류웨이의 단호한 대답.
그리고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듯, 진실의 눈은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떻게?”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이런 내 반응에 그는 잠시 입을 닫더니, 이내 알려 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규모로 압도하는 거죠. 우린 북한 사태 해결을 위해 사냥꾼 5만 명을 동원하려 했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주력 사냥꾼들도 참가할 예정이고요.”
5만 명이라니.
가입자가 100만 명이니 뭐니 하더니만, 진짜로 단위가 달랐다.
우리 사냥꾼 협회는 전체 가입자가 이제 겨우 3만 명인데.
물론, 그 3만 명 중 레이드에 동원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사냥꾼은 훨씬 적지만 말이다.
나는 잠시 책상을 톡톡 두들기며 류웨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거짓말은 아니군.’
그럼 자연스레 다음 의문이 생기게 된다.
녀석들이 이렇게 대규모 지원 병력을 불러들여서까지 한반도를 도우려는 이유 말이다.
“단순히 호의 때문은 아닐 테고, 돕는 목적이 뭐지?”
대충 예상은 된다.
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진실의 눈으로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야, 이웃 간의 선의 아니겠습니까?”
-퍽!
녀석이 그리 말하자, 바로 진실의 눈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붉은 기운을 포착했다.
사실 이번엔 진실의 눈도 필요 없었다.
그 뻔한 개소리를 믿는 바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으니까.
하지만 말장난을 했기에 나는 바로 벌을 주었다.
손에 쥐고 빙빙 돌리고 있던 거마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거마도의 날이 늘어나 류웨이의 뺨을 가격했다.
“컥! 무, 무슨 짓을?”
더불어 거마도를 휘두를 때, 이번에 새로 획득한 투명검 스킬을 사용했다.
그로 인해 녀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칼날의 옆면을 맞아 의자에서 떨어졌다.
류웨이의 호위들이 움찔거렸으나, 앞서 목이 날아갈 뻔한 경험을 해서인지, 이전처럼 쉬이 무기에 손을 얹지 못했다.
어느덧 주도권이 완전히 한국에 넘어온 것이다.
한 게 없는 정부 측 인사들도 괜히 어깨에 힘을 줬다.
“한반도를 좌지우지하기 위함이잖아. 내 말 틀려?”
내가 다시 묻자 그제야 류웨이는 자신이 처한 입장을 제대로 이해한 듯했다.
이미 협상은 끝났다.
그런데도 류웨이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유는 ‘정보 수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닙니다!”
류웨이가 이를 갈며, 자신들의 선의를 왜곡하지 말라 외쳤다.
하지만 그의 외침과 달리, 붉은 연기가 피어올라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자기 나라나 잘 간수하지, 굳이 이 난리 통에 다른 나라를 차지하고 싶을까? 아니면 내가 자꾸 최초 보상을 차지하니 한국이 좋아 보이기라도 했나?’
이쯤 되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설마, 당신들이 로드급 엘더 몬스터가 북한으로 가게 유도한 건가?”
로드급의 엘더 몬스터가 중국을 휘젓다가 북한으로 갔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에 찾아온 중화 청년단을 보면 자연히 배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사태를 해결할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면서 진작 해치우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은가.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니라는 대답에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유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니란 건가?’
중국은 그저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자신들이 득이 될만한 방향으로 계획을 세운 것 같다.
‘아니면, 단순히 이 인간이 모르고 있는 것뿐일 수도 있고.’
중화 청년단의 뒤에 중국 정권이 있을 게 뻔하니 말이다.
* * *
“빌어먹을.”
류웨이와 호위들은 서**의 꺼지라는 축객령에 본전도 못 찾고 청와대 회의실을 벗어나야 했다.
“일이 꼬이는데요?”
호위의 물음에 류웨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정대로라면 이것저것 잔뜩 이권을 약속받고 나왔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와 사냥꾼 협회가 협력하여 자체적으로 일을 해결할 테니 중국은 개입하지 말란 경고를 먹였기 때문이다.
“정말 놈들이 자기들만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을까요?”
“…….”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자신들이 당한 수모를 떠올리면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졌다.
특히 서**의 무력은 쉬이 예측이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진짜 우릴 죽이려 했어.’
류웨이는 목의 살갗을 베인 감각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2번째 작전으로 가는 수밖에.”
“2번째 작전이라뇨?”
“한반도 전체를 어찌하진 못하더라도 북쪽은 컨트롤하기 쉬우니까.”
남한을 배제하고 북한과 손을 잡으면 그만이라는 반응.
류웨이는 반드시 한반도에서 이권을 챙겨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 * *
“너무 나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중화 청년단을 내쫓고, 바로 대통령에게 사과를 했다.
독단적인 내 행동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기분 나빠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응수 대통령은 털털하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
“잘했네. 속 시원해서 좋았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지금 이 세상에선 힘이 곧 법이로군. 그런 면에서 자네와 사냥꾼 협회가 대한민국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네.”
얼굴에 금칠해 주는 대통령의 행동에서 나는 씁쓸함을 읽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중국인들이 대통령을 무시한 것에 반해 나는 무시하지를 못했으니 말이다.
“계획을 물어도 되겠나?”
조심스러운 대통령의 물음에 나는 숨김 없이 답했다.
“저흰 바로 북한으로 갈 생각입니다. 중국 놈들이 다른 소리 못 하게 로드급 엘더를 먼저 토벌할 생각입니다.”
“그런가? 좋네, 우리도 힘껏 보조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중국이라는 공통의 적이 등장하여, 사냥꾼 협회와 김응수 정권이 첫 협동 작전을 진행했다.
우리 사냥꾼 협회가 선발대, 적응군을 포함한 정부의 전력은 공작원들을 통한 정보 제공 및 후발대로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일본에서 복귀해 쉴 틈도 없었지만, 청와대 인근에 모여 있던 협회 동료들은 내게 중화 청년단의 이야기를 듣고는 열의를 불태웠다.
“이 새끼들은 어째 세상이 바뀌어도 바뀌는 게 없네요. 출발합시다!”
애국자 강이솔은 이까지 갈았다.
우선 하늘을 날 수 있는 우리 파티가 웨이포인트를 찍어 가며 이동할 때마다 사냥꾼들을 점퍼로 전진시켜 주기로 했다.
덕분에, 얼마 걸리지 않아 우리는 북한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