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09화 (109/273)

109화 북한은 지금 (1)

“음…….”

뉴스에서나 보던 평양.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도시로 꼽히는 평양은 현재 막강한 몬스터 대군에 맞서 싸우는 요새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북한의 사냥꾼들이 도심을 적극 활용하는 시가전으로 몬스터의 수를 줄여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일반 몬스터를 죽여서는 소용이 없다.

일반 몬스터를 길들이는 능력을 가진 엘더 몬스터는 언제든 부하를 리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와, 우글우글 바퀴벌레 같아.”

“도시가 이렇게까지 파괴되다니……. 몬스터들이 바짝 약이 오른 모양이네요.”

시에나와 윌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몬스터 웨이브라 칭해도 될 정도.

고레벨의 엘더 몬스터들이 로드급 엘더와 함께 움직이니, 군세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대군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평양의 사냥꾼들은 그럭저럭 잘 싸우고 있었다.

파괴되어 가는 도심 속에서도 군대의 보조를 받으며 몬스터들의 발을 붙잡고 있었다.

‘나라면 그냥 통과시켰을지도…….’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차라리 도망치고 이 몬스터들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두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이래서야 중국이 싼 똥을 북한이 필사적으로 치우는 느낌 아닌가.

물론, 북한이 몬스터들을 통과시키면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북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남한은 혼란에 빠지겠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그나마 북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은 건지, 새로운 지휘부의 책임감이 강한 건지는 몰라도, 남한에 불필요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은 건 이들이 분투한 덕이긴 하다.’

만악의 근원인 김씨 일가가 무너진 덕인지, 예전이라면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볼 북한이라는 두 글자가 조금은 짠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할까요?”

윌리아의 물음.

그건 바로 개입하겠냐는 뜻이었다.

군대로 치면 우린 정찰대다.

선발대인 사냥꾼 협회의 핵심 전력은 현재 평양의 외곽 지역인 중화역에 집결하고 있는 상태다.

집결이 완료되면 사냥꾼 협회의 선발대는 바로 몬스터를 토벌하며 평양의 중심으로 이동을 시작할 텐데, 적어도 1시간은 지나야 선발대 전원이 이곳에 닿을 터이다.

언제 엘더 몬스터와 로드급 엘더 몬스터가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나도 아직 도착 못 한 선발대의 이동을 도와야 하지만…….

“아, 저쪽 라인은 죽겠네. 전투 인원에 비해 몬스터가 너무 많아.”

북한 사람들의 분투는 목숨값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이솔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메시지 보내라 하죠.”

“그 말은 즉시 개입하겠다는 거지?”

“네.”

막상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내가 나서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더불어 사냥꾼 협회의 본진이라면 개죽음을 당할 리는 없을 거란 판단이 섰고, 결국 일정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바로 강이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군말 없이 알겠다고 답을 했다.

[2번 조각 소유자(강이솔)]

-저희도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나는 허리춤에서 칼날의 길이가 5미터까지 늘어나는 거마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평소에는 크기를 줄여 단검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거마도가 날 길이 1.5미터가량의 장검이 되었다.

일본도와 달리 직선으로 뻗은 환두대도 형태의 도검으로 대량 학살에 최적화된 무기가 거마도다.

나는 그런 거마도를 어깨에 걸치며 윌리아와 시에나, 멍멍이를 바라보았다.

“시작하죠.”

내 지시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야호!”

시에나는 왠지 신이나 보이는 모습으로 바로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평양의 상공.

그녀가 지상을 겨누며 시위를 놓자 순백의 광휘가 빔이 되어 평양의 도심 곳곳에 떨어졌고.

-고고고고!

-콰아아아앙! 콰아앙!

그런 시에나와 경쟁하듯, 윌리아의 폭발 스킬까지 몬스터가 밀집된 지역에 작렬했다.

-타앗!

그사이 나와 멍멍이는 지면에 착지했으니…….

장소는 아까부터 속속 죽어 나가던 북한 사냥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뭐, 뭡니까. 당신은…….”

떠돌이 상인에게 구매한 통역 반지는 사투리까지 통역해 버리는지, 너무도 표준적인 서울 말투를 쓰는 남성이 나와 멍멍이를 경계하며 물었다.

[리명수 / 레벨: 51]

아무래도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연이어 떨어지고, 곳곳에서 의문의 폭발이 발생하여 놀란 모양이다.

그는 나와 멍멍이의 등장에 꽤나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말 대신 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사방에서 밀려드는 늑대인간과 검치호 수십 마리를 단칼에 베어 버렸다.

‘공간참.’

공간참 스킬은 정면 10미터 이내의 적들을 베어 버리는 스킬.

하지만 공간참 스킬을 씀과 동시에 거마도의 칼날을 늘리면, 칼날이 늘어난 만큼 공격 범위 역시 넓어진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내 앞으로 넓은 공간이 생겼다.

“여러분을 돕기 위해 온, 대한민국의 지원군입니다.”

“대한민국? 남측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흰 정찰팀이고, 1시간 이내에 1차 선발대가 도착할 겁니다.”

놀랍게도 레벨이 51에 달하는 사냥꾼인 리명수.

그의 주변으로 레벨 40 후반의 사냥꾼도 10여 명이 몰려 있었다.

아마도 이들이 북한의 주력 사냥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영광역이라 적힌 지하철로 보이는 입구를 등지며 싸우고 있었다.

나는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았다.

이유는 나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 속에.

[엘더 다크 나이트 힘멜 / 레벨: 80]

주요 제거 대상인 엘더 몬스터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녀석이 바로 리명수에게 달려들지 않은 건지 이유는 몰라도.

어차피 내 손에 죽을 녀석이니,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엘더는 내가 맡을 게 멍멍아.”

[난 위험해 보이는 사람 도와주면 되는 거지!?]

“응, 맞아. 땡큐!”

내가 의심스럽긴 해도 걱정되는 걸까?

“위, 위험합니다!”

엘더 몬스터 힘멜에게 몸을 날리는 나를 향해 리명수가 당황하며 외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 외침 덕에 리명수는 내게서 호감 스택 하나를 쌓았다.

[웬 놈이냐!]

나와 힘멜의 거리는 약 100미터.

하지만 내가 마음 놓고 달리니, 100미터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힘멜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상대가 레벨이 더 높은지도 모르고, 기세 좋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냥 죽어.”

나는 녀석이 일말의 방심을 놓지 않고 있을 때가 전투를 손쉽게 끝낼 기회라 판단했다.

그래서 초반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는 생각으로 왼손으로 성검을 빼 들었다.

동시에 허리춤에서 함대함 미사일이 발사되듯 춤추는 검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거마도는 투명검 스킬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게 변했다.

그리하여 총 3자루의 검이 엘더 몬스터를 노리는 한 무리의 늑대가 되어 공격을 시도했다.

첫 번째 공격은 하늘을 나는 춤추는 검이 강기를 머금고 힘멜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당연히 힘멜은 눈에 뻔히 보이는 그 공격을 검으로 쳐 냈다.

[큭!]

하지만, 단검에 실린 검강의 반발력이 만만찮은지 힘멜은 작게 신음을 토했다.

그에 나는 힘겨워하는 녀석에게 곧바로 성검을 이용한 찌르기 스킬, 쾌격을 선사했다.

두 번째 공격은 견제처럼 날린 첫 번째 공격과 근본적으로 위력과 스피드 모두 달랐다.

그러나 힘멜은 최선의 회피법을 이용해 가까스로 성검을 피해 냈다.

그가 찾은 최선의 회피법은 바로 나려타곤(懶驢打滾)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닥을 구른 힘멜은 매우 자존심이 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콰아아앙!

분노에 의한 오버 파워를 발휘한 건지, 투명검 스킬의 효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마도의 공격을 쳐 내는 묘기를 보인 것이다.

날 길이도 무려 5미터까지 키운 데다가 일도양단의 기세를 품고 있던 공격이었으니, 적잖이 놀랐다.

[어디 네 뜻대로 될 줄…….]

-피피핏!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힘멜은 맥없이 무릎을 꿇어야 했는데, 튕겨져 나갔던 춤추는 검이 원거리 스킬인 검환을 연달아 발사해 힘멜의 복부와 다리에 구멍을 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3자루의 검을 뽑았다고, 한 무기당 한 번씩만 공격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녀석은 다급하게 몸을 곧추세우려 했지만.

-핏!

순식간에 20cm까지 짧아진 거마도가 다시금 크기를 키웠다.

그리하여 거마도의 칼끝이 힘멜의 목을 꿰뚫고.

‘반월참.’

그 상태에서 횡베기 범위 스킬을 사용하자 힘멜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었다.

[엘더 다크 나이트 힘멜을 토벌하여 경험치 1,800,000을 획득했습니다.]

겨우 단 다섯 번의 공격만으로 레벨 80의 엘더 몬스터를 처치한 것이다.

‘운이 좋았네.’

나는 나 자신보다 레벨이 10 이상 많은 엘더 몬스터도 단독으로 잡아 냈었다.

그런 내게 레벨이 10 이상 낮은 엘더 몬스터의 사냥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판단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싱겁게 끝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이건 힘멜 녀석의 방심이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였다.

“마, 말도 안 돼!”

“레벨 80 엘더를 단 몇 초 만에!?”

하지만 과정이 어쨌든 손쉽게 엘더 한 마리를 정리한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나를 주시하고 있던 리명수와 주변 동료들은 경악하다 못해 어지러운지 비틀대기까지 했다.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반응에 피식 웃어 보이고는 주변 몬스터들을 청소했다.

아쉽게도 이후 다른 엘더 몬스터는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수많은 몬스터가 처리되어 우글우글하던 평양의 몬스터들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모두 나와 윌리아, 시에나, 멍멍이가 분전한 덕분이다.

* * *

상상 초월.

이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인간 괴물들이 남한에서 등장했다.

“이래서야 누가 인간이고, 누가 몬스터인지 모르겠구만.”

검사는 레벨 80의 엘더를 단 5합 만에 잡아 내지를 않나.

궁수는 하늘에서 빛을 쏘며 몬스터들을 학살하지를 않나.

마법사는 폭발과 낙뢰 등 강력한 광역 스킬 난사하지를 않나.

펫인 늑대는 그림자 창을 이용해 수많은 몬스터들을 꼬치로 만들지를 않나.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장면을 보게 된 리명수와 그의 동료들이었다.

“저 남조선 애들 어찌하실 겁니까?”

앞선 3명+1마리 파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니, 이들 구역의 몬스터가 많이 줄었다.

그들은 몬스터 믹서기 그 자체였다.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들인데 최선을 다해 편의를 봐줘야지.”

“하지만…….”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 해도, 반세기 이상 적대해 온 세력 아닌가.

저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는 거라고는 믿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리명수는 현실적인 사람.

상대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상태라 생각했다.

“마력 충전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어. 저분들을 안으로 모셔.”

“네?”

“어차피 곧 있으면 저분들이 속한 단체에서 지원군을 보내온다잖아. 그전에 미리 좋은 관계를 맺어 놓는 게 낫겠지.”

동료들은 리명수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지금 이 구역의 최고 리더가 그였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당신들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상대는 한술 더 떴다.

갑자기 지도자를 찾아 댔으니 말이다.

리명수라면 그들을 지도자에게 안내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리명수는 낯선 파티를 스윽 둘러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십시오.”

“대장님!?”

* * *

내가 중화 청년단이라면 청와대에서 소득 없이 돌아가게 되자마자, 곧장 북한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연히 마주하게 된 이들에게 다소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 운이 좋은 건지, 지도자의 격이 많이 내려간 건지, 예상보다 쉽게 북한의 지도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콜록! 콜록!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린 평양 주민들의 생존 구역을 지나쳐야 했는데, 그 풍경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빈민국이 북한이지만…….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가 보군요.”

“그렇죠.”

곳곳에 아사자와 동사자들의 시신이 생존자들과 뒤엉켜 있었다.

생존 구역은 지하철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는데, 밀폐된 장소에 시체와 사람이 함께 있으니, 이대로 가다간 전염병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표정이 좋지 않아서일까?

리명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조선의 상황은 이보단 좋은 모양입니다.”

“네, 뭐…….”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철도를 따라 이동하던 우린 머지않아 부흥역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놈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뜨악!”

요상한 비명을 지르는 남성.

바로 중화 청년단의 전략실장 류웨이였다.

역시 내 예상대로 중화 청년단은 북한에 손을 뻗으려 했다.

“안녕, 또 보네?”

내가 차갑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 예정에 없던 만남에 당황한 류웨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에 자칭 700살이어도 10대 초중반으로밖에 안 보이는 시에나가 대뜸 겁을 주듯 윽박을 질렀다.

“이 간사한 간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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