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10화 (110/273)

110화 북한은 지금 (2)

류웨이에게 겁을 주듯 내지른 시에나의 윽박.

“이 간사한 간나 새끼!”

나와 윌리아는 시에나의 성격을 알기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뱉고 싶어서 내뱉어 본 말임을 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이미 류웨이가 100만의 가입자를 자랑하는 중국 거대 사냥 단체의 주요 간부임이 알려진 상황.

때문에 우리를 안내하던 리명수와 중화 청년단을 응대하던 북한 측 인사들의 표정이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귀엽게 생긴 아가씨로군?”

그런데 웃긴 점이 시에나는 나처럼 통역 아이템이 없어서 정작 당사자인 류웨이는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거다.

오히려 귀엽다며 시에나의 난입에 한껏 긴장했던 표정을 풀기까지 했다.

“이 NPC 년이 감히!”

그런 류웨이를 대신해 부들대는 건 청와대에서 봤던 통역관이었다.

참, 이 중화 청년단 녀석들은 ‘감히’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가 시에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뭐라 소리치려 하자, 나는 곧게 펴진 그의 손가락을 반대 방향으로 곱게 접어 주었다.

-빠득.

“끄아아악!”

이런 빠꾸 없는 내 행동에 류웨이를 비롯한 중화 청년단의 멤버들이 헛바람을 삼키며 일제히 거리를 벌렸다.

“지,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올 거요? 우릴 적으로 돌린다면 결코 좋은 일이 없을 텐데?”

“내가 막 나가면 좋지 않은 건 당신들이지. 이래 보여도 속전속결로 목 따는 거 참 잘하거든. 방금 전에도 나 혼자 레벨 80의 엘더 몬스터를 3초도 걸리지 않아 처치하기도 했고.”

“3초? 무, 무슨 허풍을…….”

“허풍일까? 증인들이 많은데?”

이 중국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으니, 겸손은 미덕이 아니란 것이다.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듯, 류웨이와 중화 청년단의 멤버들, 그리고 몇몇 북한 사람들이 리명수를 바라보았다.

그에 우리 파티를 안내 중인 레벨 51의 사냥꾼 리명수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죠. 설마 고레벨의 엘더 몬스터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을 줄은 상상치도 못했습니다. 아마 제 수준의 사냥꾼이 떼로 덤벼도 이분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

이야기를 한 사람의 레벨이 레벨이다 보니,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몬스터 사냥 이상으로 인간 사냥도 참 잘해. 암살이 특기란 말이지. 중국 공산당이건 중화 청년단이건, 필요 이상으로 우릴 도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누가 됐든 다신 발 뻗고 못 잘 테니까.”

“크흠……. 서로 너무 신경질적인 거 같군. 우리 일단 진정하도록 하세.”

마음 같아선 벌써 죽이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이들을 살려두는 이유는 하나다.

서로 이판사판으로 나가면 이쪽에도 필연적으로 희생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놈들의 쪽수도 문제지만, 중국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현대 병기들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막 나가는 척 행동해도 마지막 한 발은 내딛지 않은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돼. 북한이 건재해야 완충 지대 역할을 해 줄 테니까. 더불어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되어 아군의 쪽수를 늘려 준다면 더할 나위 없고.’

나는 중국이 일본처럼 망가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은 큰 타격을 입긴 했어도 그럭저럭 정권을 잘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넓은 땅을 제대로 수복하지도 못하고, 힘들게 살고 있을 국민들이 넘쳐 날 텐데, 굳이 외부로 시선을 돌리려는 이유가 뭔지…….

‘한반도에 꿀이라도 발라져 있나?’

정말 나란 존재가 계속 최소 업적 보상을 띄워서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정말 여러모로 꺼림칙한 녀석들이었다.

“이만 이동하시지요.”

부흥역에 도착하고 계속 중화 청년단과 기 싸움을 벌이다 보니, 북한의 지도자와의 만남은 잠시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나는 리명수의 안내를 받아 지상으로 올라왔다.

부흥역은 내가 리명수와 만났던 영광역 다음 역이다.

우린 역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다니는 후문을 통해 철도 사무실로 보이는 건물로 넘어갔다.

마치 오래된 학교를 연상시키는 나무 바닥의 긴 복도를 가진 건물이었다.

“창가 쪽에 너무 붙지 마십시오. 그나마 이 동네에 몬스터가 적지만, 아주 없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북한 하면 떠오르는 건 가난한 국민들과 대비되는 화려한 삶을 사는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대재앙으로 인해 거품이 빠져도 조금 심하게 빠졌는지…….

“여긴 창고 아닙니까?”

우린 딱 봐도 창고로 보이는 낡은 철문 앞에 멈춰 섰다.

“이곳에 현 조선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분이 계십니다.”

설마 함정일까 싶었는데, 이어서 문이 열리고 눈에 들어온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었다.

-크르르르!

-쿵! 쿵! 쿵!

고블린, 오크, 다이어 울프 같은 초급 몬스터부터, 리저드맨, 검치호 같은 중급 몬스터까지…….

다양한 몬스터들의 사지가 결박된 채 엎어져 있었다.

몬스터들이 빠져나오려 발악하는 통에 창고 내부는 상당히 시끄러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손님인가?”

“네, 각하. 중국 중화 청년단이란 단체와 남조선 사냥꾼 협회란 단체에서 각하를 뵙고자 방문했습니다.”

수술복 차림으로 양손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 오른손에 메스를 쥔 작은 체구의 사람이 나타났다.

곧 그 인물이 마스크를 내리자,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덕분에 나는 속으로 놀라움을 표해야 했다.

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가 여성이라니, 굉장히 의외였다.

“이야,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건가? 다 죽나 싶은 순간에,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사람을 보내오다니! 지원 병력을 파견해 주겠다는 이야기겠죠? 그거 아니면 안 되는데.”

그리고 그녀의 말투는 좋은 말로 하면 격이 없고, 나쁜 말로 하면 푼수 같았다.

다만 한국과 중국의 국명을 상세히 얘기하며 예의를 한 스푼을 더하니, 어쩐지 그녀의 말투가 유쾌하게 느껴졌다.

“물론입니다. 각하께서 요청하시면 우리 중화 청년단의 단원 5만 명이 바로 지원을 올 겁니다.”

류웨이는 청와대에서 보였던 강압적인 태도와 달리, 공손하게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곁에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에 북한의 지도자와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초를 쳤다.

“저들이 내미는 손을 잡을 필요 없습니다. 한반도의 문제는 한반도의 힘으로 해결해야죠.”

그러자 류웨이는 입가를 씰룩이며 내게 따졌다.

“무슨 소리입니까? 우린 북한의 동맹국입니다. 남조선은 북조선의 적대 국가 아닙니까?”

“세상이 미치면서 체제가 붕괴했는데, 과거의 관계가 뭔 소용입니까? 우린 언어가 통하는 하나의 민족입니다. 겨레끼리 돕는 게 당연하죠.”

“여긴 동맹국이 나서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북한과 남이라 할 수 없죠. 우리 중국에도 조선족이 있으니, 형제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형제를 위해 몬스터 대군을 한반도로 유도한 모양이군요?”

“그런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토벌할 여력이 되는데, 해당 몬스터를 방치하며 모른 척하고 있다가, 녀석들이 한반도에 유입된 이후에나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 상황을 우연으로 치부하라고요?”

제2라운드.

설마 지도자 앞에서도 대놓고 티격태격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이들이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나와 류웨이의 언쟁을 북한의 지도자는 눈을 빛내며 지켜보다가.

“하하핫!”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몬스터의 피가 덕지덕지 묻은 백색 가운 차림의 그녀가 웃음소리를 흘리니, 마치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군요. 신은선 긴급위원장입니다.”

“서땡땡이라 하면 아시겠습니까?”

“서땡땡? 아아! 당신이 그!?”

신은선 위원장은 나와 악수를 한 직후, 류웨이와도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자신의 순서가 뒤로 밀려서인지, 류웨이는 꽤 당황한 듯 보였다.

이어서 그녀가 던진 질문은 꽤나 직선적이었다.

“서땡땡 님이 하시던 이야기의 뒷부분을 듣고 싶군요.”

류웨이는 필사적으로 오해라 말했으나, 그녀의 시선은 내게 집중된 상태였다.

“아마 중국은 이번에 여러분을 돕고 난 다음에 이것저것 요구해 올 겁니다. 그러니, 그들의 손을 잡지 마시죠.”

“남측은 다를 거란 뜻입니까?”

“네, 우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대가 없는 도움은 믿지 못하는 편인데요?”

“뭐, 굳이 목적을 따지자면 중국의 한반도 진출을 막는 게 목적이라 해 두죠.”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한 신은선 위원장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

“중국의 지원 없이 우리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내 확답에 그녀는 만족스러움을 표했고, 류웨이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예의 주시했고.

“가, 각하. 저희도 지나친 요구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딱 하나, 북한 내에서 중화 청년단 소속 사냥꾼들의 자유로운 활동만 보장해 주시면 됩니다.”

결국, 류웨이가 항복하듯 그리 무겁지 않은 조건을 제시했다.

덕분에 나는 중화 청년단, 또는 중국 정부가 한반도에서 하려는 일이 정치적인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체 뭘 도모하려는 거지?’

의문은 더욱 깊어졌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일은 대한민국 정부와 힘을 합치도록 하겠습니다. 한반도의 일은 한반도에서 해결할 테니, 중국이 신경 써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신은선 위원장이 딱 봐도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중국의 손을 다급하다는 이유로 막 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으득……. 내 이 수모는 반드시 잊지 않겠소!”

그리고 류웨이는 나를 향한 건지 신은선 위원장을 향한 건지 모를 메시지를 던지고 물러섰다.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이로써 중국이 한반도에 부리려는 수작질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의 마지막 대사처럼 이것으로 끝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북한 사태를 해결하면, 제대로 조사해 보고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겠다.

중화 청년단의 멤버들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떠나자, 이곳 창고에는 포박당한 몬스터들의 잡소리만 울려 퍼졌다.

-짝짝!

“자! 갈 사람들은 갔으니,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 볼까요?”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것처럼, 신은선 위원장은 박수를 두 번 치고는 지원 방안을 물어 왔다.

그에 나는 사냥꾼 협회와 한국 정부의 일정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었고.

“……. 위원장님 중국인들 다시 부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5만 명의 지원 병력을 입에 담았던 중국과 달리, 나는 겨우 5천 명의 지원을 거론하자 중화 청년단을 안내했던 40레벨대의 사냥꾼이 걱정스레 위원장에게 물었다.

나는 불안을 떨쳐 줄 겸,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했다.

“우린 정예입니다.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라요.”

“저도 이분이 허풍을 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명수도 동의한다며 내게 힘을 실어 주었다.

‘이 아저씨 계속 호감 스택 쌓네.’

덕분에 신은선 위원장도 믿겠다며 재차 악수를 건네 왔다.

그렇게 짧은 회의가 끝이 나고, 나는 바로 전투 지원을 가겠다며 자리를 나서려 했는데…….

아까부터 궁금했던 게 있어 묻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그런데 위원장님께선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이것저것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약점이라든가, 아니면 몬스터의 사용법이라든가.”

“사용법이요?”

“테이밍 아이템을 이용하면 몬스터는 나를 충실히 따르지 않습니까?”

“네.”

“테이밍 된 몬스터의 뇌신경을 조사해서 관련 아이템 없이도 사람의 명령에 따르게 할 수 있는지 등을 실험하고 있답니다.”

몬스터의 약점 파악을 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지만, 뒤이은 말에선 역시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은선 위원장이 어떻게 북한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그녀가 이끄는 북한이라면 이전과 다를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 * *

북한을 침공 중인 로드급 엘더 몬스터.

이 몬스터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다수의 엘더 몬스터를 부린다는 점이 아닌…….

바로 인간들을 부린다는 것이었다.

“류웨이가 돌아갔다고?”

“어, 웨이포인트 타고 사라지는 걸 부하가 봤다고 했어.”

“뭐지? 냄새를 맡고 개입한 게 아니었나?”

“얼핏 보니까, 류웨이가 남한 인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았다고 하더라.”

“뭐? 말도 안 되는 소릴……. 류웨이 그 새끼가 얼마나 악랄하고 귀찮은 놈인데.”

“그런데 마냥 무시하기 힘든 게, 그 남한 인사가 힘멜을 단 수 초 만에 골로 보낸 놈인 것 같단 말이지.”

“아……. 그래?”

평양 중심에서 동쪽으로 꽤 떨어진 지역에 있는 미림역.

미림역 역사를 차지하고 앉은 100여 명의 인간 주변으로 레벨 40의 라이칸스로프 수백 마리가 호위하듯 서 있었다.

몇몇 인간들은 그런 라이칸스로프를 괴롭히며 놀았지만, 몬스터들은 꼼작도 못 하고 얌전히 그들을 지켰다.

로드급 엘더가 인간들을 부린다고 하면 노예 같은 거라 생각하기 일쑤지만…….

이들과 로드급 엘더 몬스터의 정확한 입장은 협력 관계라 할 수 있다.

서로의 득을 위해 의기투합한 관계 말이다.

“변수가 끼어드는 건 좋지 않은데…….”

부하들의 우려에, 로드급 엘더를 따르는 인간들의 리더이자 중국 둥베이(동북부) 출신의 김동천이 콧방귀를 뀌었다.

레벨 48의 김동천은 원래 중화 청년단 소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보물 지도 한 장을 손에 넣었고, 그 지도의 가치를 알아보게 되면서 바로 중화 청년단을 벗어나 독자 활동을 시작했다.

“뭘 걱정해? 우린 하던 일이나 계속하면 돼.”

김동천은 걱정이 많은 부하들에게 비웃음을 흘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한반도의 어딘가.

문제는 지도가 그리 상세하지 않아, 발품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