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12화 (112/273)

112화 북한은 지금 (4)

이놈이고 저놈이고 우리 집을 찾으려 혈안인 상태.

김동천과 로드급 엘더는 그냥 해치우면 되는 거니 해결 방법은 간단하지만, 문제는 중화 청년단 녀석들이다.

쪽수가 더럽게 많은 데다가 뒤에 중국 정부를 업고 있는 단체.

아마 놈들이라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보물 지도 속의 장소를 찾으려 할 거다.

행여 내가 보물을 차지한다고 해도 분명 두 눈으로 직접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믿으려고도 하지 않을 테고.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다만 귀찮을 뿐.’

하지만 그냥 두면 더 귀찮아질 테니, 북한 사태를 빠르게 정리하고 난 후, 중화 청년단과의 악연을 끊기 위해 잠깐 중국 여행을 다녀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중화 청년단의 단장이 레벨 70 전후다?”

“그, 그렇습니다. 단장과 단장 파티를 향한 단체의 아이템 몰빵이 심해서 빠른 성장이 가능했던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단장이 공산당 고위 간부의 아들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화 청년단은 덩치를 키워 중국 정부의 눈에 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형성된 세력이거든요.”

내가 괜히 김동천을 황금 고블린이라 표현한 게 아니다.

녀석은 정보원으로서 참 쓸모가 많은 인물이었다.

김동천은 로드와 손을 잡기 전 중화 청년단의 간부였던 만큼 그놈들에 대해 아주 빠삭했다.

덕분에 로드급 엘더의 정보에 이어 중화 청년단의 상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중화 청년단의 본부 위치까지 말이다.

“제법 정보들이 쓸만한데?”

어떻게든 살겠다고 머리를 쥐어짜 정보를 토해 내는 그의 비굴한 모습에 살아남은 몇몇 동료들은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름 놈들 사이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던 모양이다.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은 것 같네.”

내가 만족하며 검에 손을 얹자 김동천이 급발진했다.

묻지 않은 정보까지 술술 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그거 아십니까? 동북 지방에 조선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소수민족 세력이 있습니다. 제법 규모가 크고 사냥팀도 상당히 강력합니다. 이들은 현재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독립 세력으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무협지 속 무림인들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세력이 대재앙 발생과 동시에 호북성에서 모습을 드러냈단 소문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 중국 정부에서 몬스터를 이용해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는데, 몬스터를 죽여도 시체가 사라지지 않는 법을 발견해 냈다고 합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몬스터가 빛이 되어 사라지기 전에 도축을 해서 고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급하게 내뱉은 말들이 꽤나 재미있다.

조선족을 중심으로 한 소수민족 세력은 잘만 이용하면 중국 정부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무림인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하지만,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무협지 속 세상은 모든 남자의 로망 아닌가.

물론, 중국에 사기 무술이 워낙 많아서 신뢰도는 제로의 가깝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더불어 중국 정부에서 몬스터의 시체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발견해 냈다는 이야기도 꽤나 흥미로웠다.

능력 있는 사냥꾼은 하루에도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해 내는데, 이들에게서 고기를 얻을 수 있다면 당장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뭐, 몬스터 고기도 고기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거야.’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먹을 수만 있다면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후로도 녀석이 하는 말들을 가만히 들어 봤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후로는 득이 되는 정보가 없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저를 이용하면 중국을 도모하시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확실히 그럴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괜히 머리 굴린다고 쓸데없이 인심을 부리다가 후회할 만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나는 그의 처리 방침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에서 자신의 끝을 직감한 김동천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스릉.

나는 검을 빼 들었다.

더는 얻을 정보도 없으니, 이만 김동천을 처리하고자 했다.

“응?”

그런데 그때였다.

‘백호 님!’

“조심해!”

내가 뭔가 이상함을 느낌과 동시에 윌리아의 텔레파시와 시에나의 육성이 급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직후 한줄기의 벼락이 내게 내리꽂혔다.

너무도 자주 봤던 스킬.

윌리아의 것과 같은 낙뢰 스킬이었다.

-콰아아앙!

“끄아아악!”

곧이어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하지만 그 비명 소리는 내 것이 아닌, 김동천의 것이었다.

나는 동료들의 경고와 동시에 백스탭 스킬을 사용했고, 그로 인해 후방 5미터까지 밀려났다.

낙뢰의 공격 범위에 아슬아슬 걸치긴 했지만, 정타로 맞은 게 아닌 이상 별다른 피해가 되지 않았다.

[혼자 잘난 척은 다 하더니, 웃기는구나. 김동천!]

나는 목소리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인간형 몬스터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엘더 리치 엑사이어 / 레벨: 90]

레벨 90의 리치.

그런데 상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나와 낙뢰로 인해 부상을 입은 김동천 사이로.

[엘더 뱀파이어 가르시엘 / 레벨: 90]

뱀파이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는 김동천을 보호하며 낙뢰에 당한 부상을 치료해 주었다.

새까맣게 그을렸던 피부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하고, 이내 상황 파악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김동천은 언제 고통스러워했냐는 듯, 환희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하, 하하! 역시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어!”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놈을 향해, 나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분위기에 초를 쳤다.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말이지.”

설마 로드급 엘더 몬스터가 이렇게 의리가 넘치는 존재일 줄은 몰랐다.

아니, 이 경우 자신의 성장을 위해 도움이 되는 김동천을 아직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의미인 걸까?

[빠져나간다면? 하하, 재밌는 녀석이군. 그냥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네놈들을 몰살한 다음 유유히 돌아갈 생각이다만?]

내 말에 찔끔거린 김동천과 달리 엘더 몬스터들은 여유 만만했다.

아무래도 우리 측 사냥꾼들이 긴장을 하자 의기양양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리치와 뱀파이어……. 어둠 속성인 놈들이 잘도 지껄이네.”

나는 허리춤에서 검 하나를 뽑아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에 녀석들은 영문 모를 내 대사가 기분 나쁜 건지, 아니면 ‘성검 칼립소’의 빛이 기분 나쁜 건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범상치 않아 보이는 놈이군. 힘멜이 괜히 죽은 게 아니란 건가?]

[그러나 우린 힘멜과 다를 것이다. 전투가 끝난 후, 네놈을 친히 언데드로 만들어 주지.]

뱀파이어와 리치의 연이은 대사.

-타닷!

하지만 나는 말을 줄이며 전심전력으로 녀석들에게 몸을 날렸다.

거의 기습이나 다름없는 스피드로.

“먼 곳까지 장비 배달 오느라 수고 많았어. 너희 건 우리가 잘 쓸게.”

그런 나의 뒤를 따라 윌리아와 시에나, 멍멍이가 따르고, 이어서 콩나물 님의 보령팀이 포함된 충청도팀 멤버들도 지원 태세를 갖췄다.

* * *

금수산태양궁전.

북한의 전 지도자들의 유해가 보관 중이라 알려진 장소다.

하지만 지금은 궁전의 주인이 바뀌었다.

[엘더 매지션 로드 노틸드 / 레벨: 125]

바로 침략자에 의해 말이다.

레벨 125의 로드급 엘더 몬스터 노틸드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상석을 차지하고 앉아 이리 말했다.

[엑사이어와 가르시엘의 주종 계약이 끊겼군.]

그의 말에 왕을 모시는 신하처럼 노틸드의 발아래 모여 있던 엘더 몬스터들이 일제히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에 보내진 엑사이어와 가르시엘은 방심하다가 끔살당한 힘멜과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노틸드가 이끄는 부하 중에서도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노틸드는 이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남한에서 왔다는 지원팀의 수준이 대단한 것 같아.”

하지만 대화 내용과 달리, 그의 반응은 너무 담담하다.

그리고 이런 반응처럼 노틸드의 외모 또한 무척 담백하기 그지없었다.

생존 구역을 뒤지면 어디선가 두세 명 정도는 튀어나올 것 같은 평범한 외형과 평범한 체구를 가진 남성이었다.

만약 그의 머리 위로 떠 있는 무시무시한 정보를 뺀다면, 일진들의 빵 심부름을 할 것 같은 인물상이었다.

그런 남성의 발아래 온갖 흉흉하게 생긴 몬스터들이 도열해 있으니, 더욱 기이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 어떻게 처리할까요?”

일전에 노틸드의 겉모습만 보고 달려들었다가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레벨 100의 엘더 몬스터가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고.

그에 노틸드는 잠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곤 이내 짧게 혀를 찼다.

“김동천은 죽었겠지?”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깝군.”

그리고 이어진 노틸드의 이야기에 생각 없는 부하들은 환호를 지르고, 자아가 강한 부하들은 하나같이 크게 놀랐다.

“굳이 상대에게 여지를 줄 필요 없겠지. 흩어져 봤자 각개격파의 기회만 제공할 뿐이니. 한 번에 싹 밀어 버린다.”

“그, 그 말씀은?”

“흑막인 척 인간들 흉내 내는 거 질렸어. 나도 나서지.”

* * *

“이대로 물러날 순 없어.”

류웨이는 남한과 손을 잡은 북한 지도자의 축객령에 이를 갈면서도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는 중화 청년단의 전략 실장.

이대로 물러나는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방법을 강구했고, 즉시 행동에 나섰다.

“반갑습니다. 중화 청년단의 류웨이입니다.”

“조선인민공화국 총정치국장 리재호요.”

그리하여 류웨이가 떠올린 방법은 바로, 현 북한 정권의 대표에게 불만을 가진 군부 세력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북한의 지도자는 총정치국장 리재호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대재앙과 동시에 갈가리 찢겼던 북한 지도부가 다시 합쳐지면서 정치 구도에 변화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득세한 것이 신세력인 신은선 위원장이었다.

당연히 리재호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뭐, 뭐요? 신은선 그 씅치 같은 것이 남조선과 손을 잡고 동맹인 중국의 도움을 거절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5만의 사냥꾼을 지원하겠다고 했음에도 어째서인지, 남한의 지원 병력 5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신은선 위원장이 남한과 손을 잡았다고까지 하니, 가뜩이나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리재호로서는 입에 거품을 물어야 했다.

지금은 구체제의 정신을 잇기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지만, 류웨이가 중간에 끼어 이간질을 하니, 어느새 리재호는 충실한 중화 청년단의 앞잡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기존 체제의 서열을 따지면 내가 전통 지도자라고 할 수 있소. 그런 내가 중화 청년단에 요청하겠소이다. 부디 우릴 도와주시오.”

“동맹국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실은 류웨이는 북한과 인접한 단둥시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 5만을 이미 전진 배치시켜 놓은 상태였다.

만약 이대로 북한과의 협상이 물거품이 되면 그냥 피아 구분 없이 밀어 버린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 와중에 명분을 손에 넣었으니 거칠 게 없었다.

* * *

레벨 90의 엘더 뱀파이어에게서는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는 출혈 스킬북과 난무 스킬이 붙은 채찍을 획득했으며.

엘더 리치에게서는 마법형 스킬의 소모 마력 감소 반지를 획득했다.

[출혈 / 최상급 스킬북 / 액티브]

-지속적인 출혈 피해를 일으켜 적의 전투력을 약화시킨다.

-최대 3회까지 스킬을 중첩시킬 수 있으며, 출혈이 중첩될수록 피해량이 커진다.

-유지 시간: 1분

-소모 마력: 1

출혈 스킬은 여러 적에게 효과적으로 스택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에나가 갖고.

[장미 채찍 / 등급: 희귀]

-흡혈 장미의 줄기를 엮어 만든 채찍.

-채찍으로 적에게 타격을 줄 때마다 붉은 꽃잎이 흩날린다.

-명중률 보조

-모든 능력치+2

-내장 스킬: 난무(소모 마력: 3)

꽃잎이 흩날리는 채찍은 호기심 때문에 내가 갖기로 했다.

다른 건 아니고 채찍 스킬을 추출해 검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실험하기 위함이다.

[엑사이어의 반지 / 등급: 희귀]

-마법형 스킬의 마력 소모량을 30% 감소시켜 준다.

그리고 이 반지의 주인은 당연히 윌리아다.

이는 전략을 위한 선택이니, 일일이 누구의 것이 더 좋다고 비교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빛을 엮어 만든 세트로 전신을 무장하고 그 채찍 들고 다니면 대박이겠다.”

시에나의 쓸데없는 상상에 채찍이 왠지 모르게 혐오 장비가 된 느낌이다.

빛을 엮어 만든 장비는 투명하며 형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장비.

게임 속 캐릭터처럼 알몸으로 다니는 걸 가능케 해 주는 장비다.

거기에 꽃잎이 날리는 채찍을 들면…….

‘쉣!’

나는 불쾌한 상상을 떨쳐내고는 시체가 되어 버린 김동천을 내려 보았다.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에게는 더 큰 절망으로 되돌아왔다.

때문에 두 엘더가 토벌당하며 충격에 빠진 김동천도 빠르게 길동무로 보내 주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김동천은 북한을 침략한 로드급 엘더 몬스터가 평양 북동부 금수산태양궁전에 숨어 있다고 했다.

때문에 짧은 고민 후,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 오는 콩나물 님에게 이렇게 답했다.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가 보죠. 일단 적의 본체를 확인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콩나물 님이 중심인 충청도팀을 이끌고 로드급 엘더가 숨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이럴 수가?”

놀랍게도 우리가 도착한 그곳에는 선객이 있었다.

엄청난 수의 사냥꾼들이 고위 몬스터들과 뒤엉켜 전쟁이나 다름없는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오성홍기가 나풀거려 어렵지 않게 그 사냥꾼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중화 청년단인가?”

그들은 중화 청년단이 분명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사냥꾼들이 개떼처럼 몬스터를 인해 전술로 찍어 누르는 수법을 쓸 수 있는 단체는 단언컨대 그곳밖에 없다.

류웨이가 미쳐서 이판사판 날뛰는 건지, 내가 모르는 정치쇼가 있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인간이 마치 소모품처럼 쓰이는 전투를 보며 감탄 섞인 감상을 내뱉어야 했다.

“개판이 따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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