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13화 (113/273)

113화 이무기 (1)

그건 마치 디펜스 게임을 보는 듯했다.

인간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게 아니라.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인간들을 처치하는 역(逆) 디펜스 게임.

몬스터들은 질린 표정으로 미친 인간들에게 밀리고 밀려 푸른빛으로 산화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름 장관이었다.

그나마 몬스터 측이 꾸역꾸역 버티는 건 개체 수가 많지 않은 레벨 80 이상 고레벨의 몬스터와 엘더 같은 특수 몬스터들이 존재한 덕이었다.

[엘더 헬하운드 엔로드 / 레벨: 88]

[엘더 라미아 디디아 / 레벨: 85]

[엘더 좀비 이르바 / 레벨: 90]

[엘더 트윈헤드 오우거 카탄 / 레벨: 105]

그리고 그런 몬스터들 사이에서.

“저놈이군?”

당황한 게 역력해 보이는 모습의 로드급 엘더를 발견했다.

[엘더 매지션 로드 노틸드 / 레벨: 125]

전혀 강해 보이지 않는 외형.

솔직히 탐색 스킬로 상대 머리 위의 정보를 보지 못한다면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인간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지션 로드면 리치 계열인가? 아니면 처음 보는 마법사 계열 몬스터?”

엘더 크림슨 로드가 뱀파이어였던 것처럼 로드급 엘더 몬스터의 미들 네임은 일종의 칭호이지, 다른 일반 엘더처럼 종족명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아마 조금 더 공략 난이도를 어렵게 하기 위한 시스템이겠지만…….

다행히 내 입장에선 순수 마법사 계열이 검사 계열보다 상대하기 쉽다.

즉, 상성은 나쁘지 않다는 소리.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의 이야기일 뿐, 중화 청년단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콰아아아아앙!

로드급 엘더의 손짓 한 번에 윌리아의 폭발 스킬을 몇 배로 키운 듯한 대폭발이 일어나 중화 청년단 단원들을 날려 버리고.

-피피피피핑!

크레모아를 모티브로 만든 듯, 마력탄 크기의 구슬들이 폭발하듯 비산하며 사람 수백을 다진 고기로 만들기도 했다.

-고고고고!

그뿐 아니라, 그의 손바닥 위로 떠 오른 새빨간 빛이 광선이 되어 정면의 모든 것을 꿰뚫어 버리고.

-휘이이익! 쇄애애애액!

바람의 칼날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범위 내의 사람들과 시설을 토막 냈다.

“무시무시하군.”

노틸드라는 이름을 가진 로드급 엘더는 레벨 125라는 수치가 장난이 아님을 증명하듯 하나같이 강력하고 범위가 큰 스킬을 난사했다.

때문에 녀석에게 달려드는 중화 청년단은 갈려 나간다는 표현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중화 청년단 단원들은 꾸역꾸역 밀어붙였다.

덕분에 로드급 엘더는 무시무시한 위용을 보여 주고 있음에도 일그러진 표정은 쉬이 펴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틸드의 레벨이 높고 강력하다 한들, 머리가 부서지면 죽는 건 인간과 같으니.

이런 복잡한 난전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트라칸!]

결국, 참다못한 로드급 엘더는 드러내지 않고 있던 수를 꺼냈다.

그건 바로 레벨 100의 엘더 드레이크가 이끄는 와이번과 드레이크 등, 아룡계 공중 몬스터 부대를 참전키로 한 것이다.

겨우 200마리 남짓한 숫자였지만, 놈들이 일제히 화염 브레스를 내뿜자 일대가 지옥으로 변모했다.

“질리게 만드네.”

그럼에도 웃긴 건 당한 사람이 전체에 비하면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심지어 그냥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중화 청년단이 비행 몬스터를 향한 원거리 공격을 시도했다.

수천, 아니 1만에 가까운 원거리 공격 스킬이 동시에 하늘 위로 솟구치고, 그에 비행 몬스터 수십 마리가 한 번에 지상으로 떨어졌다.

“죽여!”

-키에에엑!

그리고 지면에 떨어진 비행 몬스터는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중화 청년단에 의해 척살되니, 어느새 하늘을 나는 몬스터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게 됐다.

나름 비장의 수로 보였지만, 허무하게 비행 전력을 잃은 로드급 엘더가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사냥꾼 협회라면 원거리 공격 스킬을 가진 사람은 따로 분류해서 별도의 부대를 만들 텐데, 쟤넨 그런 것도 없었다.

‘아니, 별도의 부대를 만들면 집중 타격의 대상이 될 테니, 일부러 저렇게 배치한 건가?’

이유야 어쨌건 인해 전술은 시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설령 그것이 몬스터라 해도.

[바퀴벌레 같은 놈들!]

다급해 보이는 엘더의 모습에 콩나물 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두면 중화 청년단이 저 괴물을 잡아 버리는 거 아닙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그만큼 중화 청년단의 쪽 수라는 무기는 너무도 강력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중화 청년단의 광기 어린 전투는 오래 못 갈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우리가 나설 때고요.”

“네?”

의문을 표하는 콩나물 님을 보며,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되어 버린 김동천을 떠올렸다.

로드급 엘더에게 붙어먹었던 인간.

김동천은 중화 청년단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중화 청년단은 고레벨의 강력한 몬스터와 전투를 하게 되면 일반 단원에게 아편을 보급합니다. 두려움을 잊고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광전사로 만들어 버리는 거죠.’

아편을 사용하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위급 상황에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대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단원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아편을 사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화 청년단 내에서 상부의 지시에 불응한다는 건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게다가 약에 절여져도 안전 구역에서 조금 쉬면 후유증은 사라진다.

그리고 힘든 전투에서 살아남는다면 고위 단원이 되어 떵떵거릴 수 있게 되고, 재수 없게 죽더라도 남은 가족은 안락한 삶을 영위하니, 단원들은 기꺼이 아편을 사용했다.

목숨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미친 단체.

그럼에도 중화 청년단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넘쳐나는 게 현 중국의 상황이다.

“어, 어쩐지 게임도 아니고, 사람이 앞에서 죽어 나가는데도 달려드는 모습이 기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아편을 사용했다니…….”

“죽은 사람에게서 아이템도 회수해 신참에게 분배하면 빠른 성장이 가능하니, 금세 새로운 광전사가 탄생하겠죠. 인구 대국이기에 가능한 소모 & 리필 방식입니다.”

“그런데 방금 저런 방식은 오래가지 않을 거라 하셨잖아요? 그건 왜 그런 겁니까?”

내게 중화 청년단의 인해 전술의 비밀을 듣게 된 콩나물 님과 그 일행들이 하나같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콩나물 님의 물음에 이유를 알려 주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독물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다는군요. 레벨이 30을 넘으면 아편의 지속 시간은 고작해야 30분 남짓이라 합니다.”

“확실히 약효가 떨어지면 이런 전투가 불가능하겠군요?”

“그렇죠. 정신이 멀쩡히 돌아오면 생존 본능도 그만큼 커질 테니까요.”

즉, 중화 청년단의 인해 전술에는 타임 리밋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약효가 떨어지는 순간엔 정신 착란과 같은 부작용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혼란이 발생할 테니, 그때 들어가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는 중화 청년단을 이용하는 거기도 하지만, 그들의 개죽음을 조금이라도 막아 주는 일이기도 했다.

‘뭐, 나름 윈윈이란 뜻이지.’

정작 중화 청년단의 간부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류웨이의 지시에 여기저기 자리한 지휘관들의 윽박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는데, 그건 누가 봐도 초조함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때가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상황을 주시하길 수 분여.

“어? 중국 애들 반응이 이전과 다른데?”

천리안 스킬로 적들의 동태를 세밀히 살피던 시에나의 말에 중화 청년단에게 타임아웃이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중화 청년단은 엄청난 인명 피해만 내고, 로드급 엘더 공략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하하, 그렇군! 눈빛들이 이상하다 했더니, 약에 취한 거였나!]

그리고 운이 없게도 로드급 엘더는 정확하게 중화 청년단의 상황을 파악해 냈다.

[휩쓸어라! 이 바퀴벌레들을 한 마리도 살려 보내선 안 돼!]

로드급 엘더의 외침에 류웨이가 발악하듯 공격을 재촉했지만, 중화 청년단의 움직임은 확연히 전과 달라져 있었다.

“갑시다!”

나는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내 지시에 우리 파티와 콩나물 님이 리더를 맡고 있는 충청도팀 멤버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충청도팀의 뒤로 방금 합류한 서울팀과 수원팀, 북한팀이 가세해 따라왔다.

미리 시나리오 메시지를 이용해 강이솔에게 지시를 내려놨었기 때문에 어느새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달려가는 남북 연합팀의 숫자가 6천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쳐 숨을 헐떡이는 두 세력(중화 청년단+로드급 엘더)과 다르게 우린 너무도 쌩쌩했다.

“리아 씨, 시에나 님. 큰 거 한 방 날릴까요?”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활기찬 건 나와 윌리아, 시에나, 멍멍이였다.

“네!”

“오케이!”

어부지리면 어떠하리, 보상만 달달하면 그만인걸.

[이런 빌어먹을.]

그리고 이런 우리를 바라보는 엘더 매지션 로드 노틸드와 그의 부하인 엘더들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 * *

모든 사람이 정부를 신뢰하는 건 아니다.

특히 군부에 의해 돌아가는 정부라면 더더욱.

때문에 생존 구역들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안정성도 높아지고 있음에도, 정부에 기대지 않으며 독자 생존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은 독자 세력들의 핫 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다.

안전 구역이 멀지 않고, 주변에 큰 몬스터 집단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은 크고 작은 독자 세력이 모여 하나의 생존 구역화된 장소였는데, 최근 이들의 환경에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자네, 올림픽공원 봤는가?”

“봤죠. 난리도 아니더만요.”

“그, 뭐랬지? 사냥꾼 협회?”

“네, 맞아요. 툭하면 최초 어쩌구 하는 메시지를 띄우는 서땡땡이 설립한 단체요. 성장세가 가팔라서 정부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허, 참…….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 아무튼, 그놈들이 올림픽공원 차도를 따라 성벽을 올리지 뭐던가.”

“알아요. 저도 봤습니다.”

이들이 떠드는 주제는 바로 사냥꾼 협회에서 협회 본부와 소속 멤버들을 위해 설립하는 도시였다.

현장은 아산병원과 가까운 올림픽공원이었으니, 오고 가며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오늘 낮에 근처에 갔다가 자재 들어오는 걸 내가 봤거든? 글쎄 사용하지 않은 매직 블럭을 길바닥에 산처럼 쌓아 놨더라고!”

“그래요?”

“그런데 관리가 허술해 보이더라고. 잘하면 매직 블록 몇 개 챙겨 올 수 있을 것 같더라.”

매직 블록은 진흙 만지듯 원하는 만큼 떼서 모양을 잡으면 손쉽게 건물을 수리하거나 지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사용한 매직 블록은 콘크리트 형태로 매우 빠르게 굳는데, 내부에 철근을 넣지 않아도 그걸 뛰어넘는 강도를 보여 준다.

덕분에 재앙의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건축의 기본 재료였다.

다만 문제는 그 매직 블록이 안전 구역 안에 있는 상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몬스터를 사냥해야 얻을 수 있는 코인으로만 상점 물건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마구 남발하기 힘든 귀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사냥꾼 협회라는 단체에서 그런 매직 블록을 산처럼 쌓아 두고 있다고 하니, 그 재력을 쉬이 예측할 수 없었다.

“미, 미치셨어요? 사냥꾼 협회의 것을 건들다가 걸리면 욕 한 사발 듣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몬스터를 잡다가 다쳐도 코인을 벌어서 사는 편이 낫습니다.”

사냥꾼 협회가 의도했건 안 했건, 어쨌든 이번 일로 인해 그들의 재력 수준은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제대로 알려지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언감생심 주제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나 친해진 소규모 생존 그룹의 리더 45세 김익진과 31세 최공찬이 그러했다.

“에이, 몇 개 가져오는 거로는 티도 안 난다니까? 그리고 걸리면 뭐 어때.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죽이진 않겠죠. 하지만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사냥꾼 협회의 모토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니까요.”

“괜찮대도. 안 걸릴 테니까.”

“아니, 이 아저씨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위험하다니까요?”

“그럼 한번 봐봐. 진짜 위험한지.”

“네? 하아……. 그래요. 어디 한번 가 봐요.”

최공찬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한두 번 본 사이가 아닌 김익진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동행에 나섰다.

거리는 멀지 않았으니 금방 도착했는데, 진풍경에 놀란 최공찬은 입을 떡 벌려야 했다.

“허…….”

“봐, 내 말이 맞지? 가져가도 모를 것처럼 보관 중이잖아.”

45세 김익진은 일가친척 20명이 의기투합하여 생활 중인 생존 그룹의 리더였고, 31세 최공찬은 그의 베스트 프렌드 4명이 각자의 가족과 함께 생활 중인 그룹의 리더였다.

두 사람 모두 리더이다 보니 책임감이 강할 수밖에 없는데, 정말 버려지다시피 쌓여 있는 매직 블록을 발견한 순간 욕심에 침이 절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래도 안 됩니다. 저는 제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그 피해가 사냥꾼 협회 측에겐 개미 오줌 수준밖에 안 될 텐데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죠. 저는 아예 시작 자체를 안 할 겁니다.”

“그럼 뭐, 나만 챙기지.”

그래도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는 최공찬은 아예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이질 않았다.

반면 김익진은 찰나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끝내 사냥꾼 협회 재산에 손을 대고야 말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