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이무기 (2)
“대박. 대박.”
연신 대박을 외치며 인벤토리에 매직 블럭을 닥치는 대로 주워 담는 김익진.
최공찬은 김익진이 너무 많은 양의 매직 블럭을 챙기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봐도 1,000코인이 넘는 양을 챙긴 상태였으니 말이다.
“지, 집이라도 지으시려고요? 적당히 하세요. 그러다가 우리 전부 피 봐요.”
“에이 이 정돈 티도 안 나. 모를 거야.”
점점 대담해지는 김익진의 모습에 최공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래서야 자신 역시 공범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최공찬은 적극적으로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하시라니까요.”
“왜 자네가 막아? 협회가 자네에게 뭐 해 준 게 있다고.”
“우리가 협회에게 해 준 것도 없잖아요.”
“어차피 그놈들도 정부랑 똑같을 거 아냐! 아니,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이런 시설 짓는 거 보면 더할지도 모르지!”
“그들이 돈 벌어서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아무리 합리화하려 해도 도둑질은 도둑질입니다.”
“잘났으면 우리같이 어려운 사람들 도와줄 수도 있는 거잖아!”
“남의 목숨값을 거저먹겠다는 거잖아요. 아저씨 정말 민주주의 국가 출신 맞으세요?”
둘은 매직 블럭 잡고 실랑이를 벌였다.
하지만 뒤늦게 자신들이 너무 소란을 크게 피웠다는 것을 알아챘고.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그들이 자리한 곳에 설치 중인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헉!”
“…….”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은 김익진은 동공이 쉼 없이 흔들리고, 최공찬 역시 이런 시설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씁쓸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자신들은 어찌 처리되는 걸까?
“왜, 계속하지?”
성벽 위에서 말을 걸어오는 남성은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장비를 걸치고 있었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김익진보다 20살은 어려 보이고, 최공찬보다는 5~6살 정도 어려 보였다.
어린 사람이 반말을 한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새로운 세상에서는 레벨이 계급이고, 무엇보다 자신들은 도둑질을 하다가 현행범으로 적발된 것이니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전부 원상 복구시켜 놓을 테니, 용서해 주실 수 없을까요?”
이럴 때는 변명을 해 봤자 역효과만 발생할 따름이다.
그래서 최공찬은 빠르게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
그런데 이어진 상황에 최공찬은 벙찐 표정을 지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자고 했지? 왜 도둑질을 해서는!”
“아저씨?”
김익진이 자신의 죄를 최공찬에게 뒤집어씌우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익진은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제발 넘어가 달라는 듯.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대체 어느 누가 대신 누명을 써 주겠는가.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이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니었다.
다행인 건 성벽 위의 감시자가 끼어들며 김익진의 모함은 힘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형님이 아저씨 말리는 거 다 봤으니까, 개소리 작작 하셔.”
-핏!
“끄아악!”
그리고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김익진의 허벅지에 피가 튀어 올랐다.
‘마력탄!?’
마력탄은 검기와 함께 일반 사냥꾼과 고위 사냥꾼을 나누는 기준점이 되는 대표적인 스킬이다.
이는 자신들이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다는 뜻이다.
김익진의 레벨이 8이고, 최공찬이 13이니, 상대가 될 리 없다.
그나마 상대가 최공찬의 결백을 알아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김익진처럼 지금쯤 구멍 뚫린 허벅지를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공찬은 사과를 반복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 형님은 결백한 거 압니다. 굳이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이분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넓은 아량으로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면 합니다.”
“설마 자신을 모함한 그 아저씨를 변호하는 겁니까?”
최공찬의 정중한 사과에 사냥꾼 협회의 멤버는 의문을 표했으나, 이내 그의 사과가 자신이 아닌 일행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자, 황당하다는 얼굴로 탄식했다.
“호구 되기 딱 좋은 성격이시네.”
그렇게 말하는 사냥꾼 협회의 멤버도 꽤나 정직한 인물로 보였다.
마력탄 한발을 날리긴 했지만, 그건 거짓말에 대한 벌일 뿐, 마음만 먹으면 김인진과 최공찬을 둘 다 엮어 마음먹은 대로 괴롭힐 수 있는 입장이었으니까.
“저도 입장이란 게 있으니, 협회 재산에 손을 댄 아저씨를 무사히 돌려보내 줄 순 없습니다. 본보기를 보여 줘야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사냥꾼 협회의 멤버는 최공찬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연이어 마력탄을 발사해 양팔, 양다리의 근육을 꿰뚫으며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끄윽! 사, 살려…….”
김익진의 비명에도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멱살을 들어 올려 안면에 연이어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로 인해 김익진의 앞니가 우수수 떨어져 나가고 피가 줄줄 흐르는 얼굴은 금세 부풀어 올라 곰보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으니, 김익진은 순간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아 컥컥대었다.
마치 장난감 다루듯 힘들이지 않고 저지른 폭행에 김익진은 완전히 피떡이 되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형님은 상황 파악을 잘하시는 것 같으니, 알 거라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많이 봐줬다는 것을요.”
“무, 물론입니다.”
사냥꾼 협회가 아닌, 다른 사냥 단체의 재산을 건들다가 걸렸다면 꼼짝없이 죽고 말았을 것이다.
목숨을 부지시켜 준 것만으로도 자비였다.
이 정도 부상은 안전 구역을 잘만 활용하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최공찬은 축 늘어진 김익진을 어깨에 짊어졌다.
“전 서울 제3전투단의 5번 조장 길종혁입니다. 형님이 책임지고 그 아저씨가 훔쳐 간 매직 블록 챙겨오세요. 오늘 자정까진 이 현장에 머무를 예정이니, 그 안에 오셔야 합니다.”
“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길종혁이라 소개한 남성이 훔쳐 간 매직 블럭을 가져오란 지시를 내리자, 최공찬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돌아가세요.”
이어서 축객령과 같은 지시에 최공찬은 김익진을 둘러멘 채 자리를 피했다.
최공찬은 한참을 이동한 후에 뒤를 돌아봤더니, 여전히 길종혁이 주의 깊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흠칫 놀란 최공찬은 더욱 바쁘게 발을 놀렸다.
* * *
“마음에 들었나 보지?”
최공찬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길종혁은 다시 성벽으로 뛰어올랐다.
그런 그의 곁으로 검은 로브 차림의 여성이 유령처럼 등장했다.
그녀는 같은 파티 멤버였기에 길종혁은 놀라지 않고 태연히 행동했다.
“요즘 시대에 저런 사람은 보기 힘들잖아.”
“그래 봤자 부적응자 아냐? 정부에서 운영하는 생존 구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겁쟁이.”
“그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 가족이나 동료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영입하게?”
“그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없다면?”
로브의 여성은 그런 길종혁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제자 문제는 그냥 협회에 가입한 신인 중 아무나 한 명 잡으면 편한데, 뭐 하러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건지.”
“재밌잖아. 그리고 뛰어난 신인은 우리보다 잘난 팀에서 뽑아갈 테니까.”
길종혁의 행동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사냥꾼협회 상부에서 최근에 내려온 하나의 지시 때문이다.
[레벨 30 이상의 사냥꾼은 1명 이상의 제자를 두고 성장을 지원할 것.]
당연하지만 이는 필수 사항이 아닌, 권고 사항이다.
하지만 협회에서 간부라 불리는 이들은 위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이제부터는 반드시 제자를 두어야 했다.
이는 협회의 규모를 빠르게 키우고, 지속적으로 엘리트 그룹을 탄생시켜 단체를 강화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길종혁은 자신이 후원할 대상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경계 근무로 배정을 받은 장소에서 흥미로운 인물을 발견했다.
그게 최공찬이었다.
‘그가 가진 분위기가 협회장님과 매우 비슷했어.’
사실 최공찬을 선택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길종혁은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감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그런 그가 대재앙 이후 서**을 만나고 느낀 것이 있으니.
무조건 서**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분을 따르면 개죽음을 당할 일은 없을 거야.’
이는 생존 본능과도 같은 감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정답이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덕분에 잘 먹고, 잘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길종혁은 최종찬에게서 서**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저 사람은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혹시 그가 협회장의 반의반만 따라가도 자신의 출세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때문에 길종혁은 인내심을 갖고 최공찬을 기다렸고.
“왔네. 난 간다.”
로브의 여성이 짧은 대사와 함께 모습을 숨기자, 길종혁과 최공찬 두 사람만의 시간이 만들어졌다.
최공찬은 한쪽에 챙겨 온 매직 블럭을 다시 쌓았고, 길종혁은 비로소 본론에 들어갔다.
“합격. 형님을 저의 제자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네? 저를 제자로요?”
“말이 제자지, 협회의 후견인 제도라 보시면 됩니다.”
“그, 그렇군요.”
“형님이 협회에 가입을 하게 되면 제가 성장을 위한 파트너와 장비, 자금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가요?”
상식적으로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가 정부의 생존 구역이 아닌, 독자 구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엉뚱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협회에 가입이요? 저야 그래 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정말입니까? 저를요?”
다행스럽게도 최공찬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에 길종혁은 한 가지를 요구했다.
“그럼, 인연을 맺게 된 김에 짧게 사냥하는 모습을 제게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최공찬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길종혁의 요구에 따랐다.
최공찬의 입장에서는 해코지를 당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설마 이렇게 좋은 제안을 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덕분에 난데없이 시작된 미션에도 성실히 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둘은 가까운 사냥터를 찾아갔고, 최공찬은 낡은 장검으로 오크를 노련하게 사냥해 냈다.
‘느낌만 비슷한 게 아니었어. 전투 스타일까지 비슷해. 심지어 센스도 좋고.’
이건 잘만 키우면 크게 될 복권이다.
길종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비, 비겁한!]
“비겁한 게 어딨어. 죽고 죽이는 싸움에.”
-푹!
성검이 평범하게 생긴 남성의 로브 자락을 관통하고.
곧 요란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엘더 매지션 로드 노틸드의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엘더 매지션 로드 노틸드의 레이드 보상은 공적 순위에 따라 차등 지급이 됩니다.]
[레이드 공적을 정산하는 중입니다.]
[공적에 순위 발표 시, 이름을 전체 공개, 성만 공개, 익명으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표기를 미리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초기 불친절했던 시스템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절해지는 느낌이 든다.
무려 레벨 125의 로드급 엘더 레이드의 맛있는 부분을 쏙 빼먹어서인지, 아니면 전장 곳곳에서 풍기는 아편 향 때문인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선택 완료,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 완료되면 순위표가 공개됩니다.]
피로 물든 금수산태양궁전의 넓은 광장.
전투가 끝났음에도 그 안에서 나와 우리 파티를 사이에 두고 남북한 공동 사냥팀과 중화 청년단이 대치를 하고 있다.
양측 다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했으나, 몇몇 사람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이! 이게 무슨 짓이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중화 청년단의 전략실장 류웨이였다.
이 무리한 사냥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대로 복귀하면 모가지 댕강하는 거 아닐까 싶은 인물.
나는 분노한 그의 모습에 지금까지 받았던 불쾌함을 털어 내듯 어깨를 으쓱였다.
“구해 줬잖아?”
“뭐, 뭐요?”
“딱 봐도 패색이 짙어 보이길래 난입한 건데 문제 있어?”
“당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우리의 힘만으로 충분히 사태를 정리할 수 있었소!”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북한 사냥팀의 리더인 리명수를 바라보았다.
“제가 보기에도 당신들의 전투는 끝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봐, 현지 담당자분이 이렇게 말씀하시잖아. 북한 정부를 무시하고 멋대로 남의 나라 영토에 침범한 중화 청년단 여러분아.”
이어서 내가 표정을 지우자 류웨이를 포함한 중화 청년단의 주요 간부들이 움찔거렸다.
어부지리로 손쉽게 타깃을 해치우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인 우리의 전투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내가 성검의 빛을 줄기줄기 내뿜고, 시에나와 윌리아의 막강한 원딜, 조용히 뒤통수를 노리는 멍멍이의 활약까지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과 화려함을 품고 있었다.
당장 손에 쥔 성검을 류웨이 쪽에 겨눠 투사 형태로 사용하면, 녀석은 맥없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우린 총정치국장의 요청에 따라 북한을 돕기 위해 나선 거요. 영토 침범이라니, 무슨 얼토당토않은…….”
한풀 꺾인 류웨이의 모습에 전의를 상실한 중화 청년단 사냥꾼들은 하나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큰 피해를 입고 만 그들은 류웨이가 잠자코 물러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닥친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총정치국장의 요청? 그 양반 처형됐다던데?”
“뭐, 뭐요?”
솔직히 중화 청년단이 이렇게 빨리 평양에 들이닥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그들이 신은선 위원장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취할 행동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때문에 신은선 정권은 만약 총정치국장에게 류웨이가 접근하면 그를 제거하기로 사전에 계획한 상태였다.
“즉, 너희들에겐 명분이 없다고. 이 밀입국자들아.”